회령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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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전투
3. 원인
4. 이후


1. 개요[편집]


안중근의 의병부대가 일본군들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 패퇴한 사건이다. 회령전투 또는 영산전투라고 부른다.


2. 전투[편집]


1908년 함흥북도 경흥에서 당시 일본군을 격파한 안중근의 의병부대인 대한의군이 일본군에 기습 공격을 당했다. 안중근과 동료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일본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안중근의 부대를 보복한 일본군은 5천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안중근의 동료들은 대부분 이 전투에서 죽거나 도망쳤고 안중근과 몇몇 동료만 가까스로 탈출해 큰 타격을 입고 후퇴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안중근의 의병부대는 300명에서 겨우 60명만 생존했고 같은 동료인 우덕순은 일본군에게 잡혔다.


3. 원인[편집]


이 전투가 일어나기 전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했을 당시 일본군 포로들을 잡았고, 그 포로들을 사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안중근은 이에 반대하여 국제법상 전쟁 중 포로를 죽이면 안 된다며 의병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로들을 풀어주며 무기까지 돌려줬다고 한다. 왜 풀어줬냐며 항의하는 대원들에게 안중근은 저들과 똑같은 짐승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풀어준 일본군 포로들이 안중근과 의병부대에 위치를 밀고해 이 전투가 일어난 것이었다. 패퇴 후 안중근은 자신이 포로를 풀어준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고 한다.


4. 이후[편집]


안중근은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많은 한인들의 비난을 받고 부대는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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