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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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활동
3.1. 이스라엘과의 교전


1. 개요[편집]


헤즈볼라의 역사와 최근의 활동을 서술하는 문서.

2. 역사[편집]


1982년 이스라엘이 자국에 계속해서 테러 공격을 가하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의 뿌리를 뽑겠다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이 많은 내전 중인 레바논을 침공하여 베이루트점령하자, 반이스라엘을 표방하면서 이슬람 지하드 조직의 간판을 내걸어 결성한 시아파 유격대이자, 이슬람주의 테러 단체인데, 평소에 추종하는 사상의 측면에서 1979년에 일어난 이란 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립자는 무함마드 후사인 파들랄라와 압바스 알무사위이다.

탄생하자마자 이스라엘 육군유격전으로 전투 경험을 쌓았고,[1] 동시에 폭탄테러 전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극심한 골치를 썩였고 예상보다 더 큰 인명피해를 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나마 나았고 헤즈볼라가 전국구급으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1983년의 일이었다.

1983년 4월 18일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 건물에 자살차량폭탄테러를 감행하여 미국 대사관을 폭파시켜 버렸다. 이에 격노한 미국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전부 쓸어버리겠다면서 강경하게 나왔지만 이후에도 10월 23일 평화유지군으로 베이루트에 있던 미군프랑스군 막사에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는 초유의 공격을 단행했다.

이 공격은 단일 폭탄테러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컸다. 무려 TNT환산 12000 파운드 가량의 폭발물을 사용했는데 현재 미군이 사용하는 범용항공폭탄 중 가장 큰 것이 2000 파운드(약 1t)이고 작약량은 그 절반 가량인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이 공격으로 미군 241명과 프랑스군 58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러조직을 상대로 싸워서 300여 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낸 건 전무했다. 반대로 헤즈볼라는 자폭대원 2명만 죽었다.[2] 대사관 테러에도 버텼던 미국이지만 이 공격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강경파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소련 문제에 신경써야 했기에 헤즈볼라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물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헤즈볼라는 전 아랍권에서 자폭 테러 2번으로 미국을 이겼다며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헤즈볼라는 급격한 성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설립자이자 리더인 압바스가 1992년 2월 16일에 군사행진 중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군이 날린 유도 미사일에 맞아 가족과 함께 사망했다. 뒤를 이어 하산 나스랄라가 32세의 나이에 제2대 당수로 임명되고 현재까지 헤즈볼라를 이끌고 있다. 나스랄라는 압바스를 죽인 보복으로 1달 뒤인 3월 17일에 아르헨티나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에 폭탄테러를 감행해 이스라엘인 30명을 살해했다. 이 때문에 후원국인 이란과 모국인 레바논을 제외하곤 전 세계에서 비난을 받았다. 물론 헤즈볼라는 복수를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바람에 레바논 내부에서도 가루같이 까이면서 "정통 게릴라전을 강령으로 삼는 합법 정당"과 그 당군이라는 헤즈볼라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헤즈볼라가 합법적인 정당이라는 점 때문에, 헤즈볼라의 테러리스트들은 당군에 가깝다 할 수 있고, 따라서, 헤즈볼라의 테러를 이스라엘의 압제에 대한 저항과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 당군 사이의 정당한 교전(?)으로 볼 여지가 있는 탓에 헤즈볼라가 민간인을 방패로 삼는다는 것 말고는 마땅히 욕할 명분이 없었으나, 이런 이유로 EU는 물론, 심지어 미국도 그동안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지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수니파 국가들한테 찍히다 보니 몰락하고 말았다. 결국 미국과 EU도 명분을 찾아서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단 유엔 안보리는 끝까지 테러단체 지정을 결의하지 않았다.

2014년 이슬람 국가(ISIL)라는 악질 무뢰배들이 등장하면서 헤즈볼라는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헤즈볼라와는 차원이 다른, 그러니까 알카에다마저 포기한 무장단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엄청난 성장세와 도를 넘는 만행을 지켜본 레바논도 헤즈볼라를 압박하는 것보다는 우선 힘을 합쳐서라도 이슬람 국가 및 그에 동조하는 세력을 먼저 토벌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2018년 5월 7일 레바논 총선에서 《3월 8일 동맹》이 전체 128석 중 과반수인 67석(52.3%)을 차지했다. 하리리 총리의 미래연대 의석 수는 종전 33석에서 2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한편 ISIL 덕분에 헤즈볼라와 기독교가 연대하는 상황도 벌어졌지만, 이는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이다. 이미 여러번 집권해왔고, 레바논 선거제도가 종파별로 의석을 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집권을 위해서는 기독교 정당들과 연대가 필요했다. 예나 지금이나 헤즈볼라의 본질은 수니파 글로벌 지하디스트가 아니라 레바논시아파 이익을 대변하는 군벌이다. 때문에 립서비스성 반서방 이데올로기와는 별개로, 수면 밑으로는 기독교인들이나 외부 세력과 연대가 불가할 이유가 없고, 실제로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외부 세력과 관계를 맺어 왔다.

3. 활동[편집]


탄생 초기에는 상기 서술한 미 대사관이나 레바논 주둔 미군에 대한 테러공격을 단행하는 것으로 그 악명을 전 세계에 떨쳤다. 그 뒤로도 테러활동은 철저히 미국과 이스라엘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공격도 무분별한 것이 아니라 목표를 갖고 특정 시설에 정확하게 테러를 가한다. 미 본토를 들이치는 놈들과는 달리 어그로를 적게 끌었던 것.

다만 2001년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를 비난하고 이로 인해 희생된 미국인에게 애도를 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쌍둥이 빌딩에 대한 공격 한정이고 미국의 군사 기구인 펜타곤에 대한 공격에 한해서는 오히려 공격을 옹호하는 행태를 보여 그들의 애도가 위장전술임을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펜타곤 공격에서는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다(승객 53명, 승무원 6명). 자신들이 증오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군인과 민간인, 정치인을 구분하지 않고 테러하고 이를 옹호하는 것은 전형적인 테러리스트들의 사고방식. 다만 후술하겠지만, 헤즈볼라가 시아파 정당이다 보니, 수니파 극단주의 집단인 알카에다는 헤즈볼라를 적대하며, 실제 헤즈볼라 대원들이 알카에다에 포로로 잡혀 살해당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2005년 2월 14일, 친서방·친이스라엘 성향의 라피크 하리리 레바논 총리를 트럭 폭탄 테러로 암살하였다.

2006년엔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 공격[3]으로 민간인 43명이 사망하고 4262명이 부상당했으며, 14억달러 상당의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했다. 특히 사망자 중 18명이 아랍인이었기 때문에 수니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 민간인 희생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투쟁을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수니파 무장 단체가 헤즈볼라에게 보복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증오하여 이스라엘·유대인에 대한 테러에 있어서는 활동범위가 세계구다.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대사관 및 이스라엘계 회사 및 유대인 학교를 날려버리고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테러 공작을 기획하는 한편 말라카 해협을 지나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한 공격까지 시도했다. 하이재킹도 기본 중의 기본.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을 많이 도와주고 하마스를 도와 이스라엘군과 싸우다 보니 이스라엘 입장에선 하마스만큼 잡아 죽여야 할 주적이다.

이처럼 강력한 활동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 이슬람 성금 네트워크를 구축해 성금을 받고 있으며 이란시리아의 자금 지원 및 무기 밀수, 이스라엘인 납치 몸값 등 다양한 자금줄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헤즈볼라는 그 어느 테러 조직도 시도하지 못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더 알아둘 점은 헤즈볼라는 시아파 조직이라는 성격이 크다. 이슬람 대다수인 10억이 넘는 수니와 달리 채 2억도 안 되는 신도 수와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이라크, 바레인을 제외하면 시아가 대다수인 나라도 없는 현실에서도 이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으로 쳐들어갔을 때 일부러 수니파와 기독교인, 드루즈인에게 피해를 안 주고 시아파들이 사는 구역만 폭격했을 정도이다. 2006년 당시 알자지라가 레바논 수니파 지역을 취재할 때에는 그야말로 평화롭고 전쟁과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이 전쟁에 끼어들 마음까지 없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수니파와 기독교, 드루즈는 헤즈볼라 때문에 레바논이 피해 입는다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결국 버티지도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사실 이스라엘은 인구가 적다 보니 소모전을 감당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때 여론도 안 좋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신경써야 했기에 헤즈볼라와의 전쟁을 끝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체 방송사로 위성방송인 알마나, 라디오 방송인 알누르를 소유하고 있다.

2013년 12월 27일 베이루트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70여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수니파 거물 샤타 전 재정장관이 사망한다. 샤타는 시리아 반정부세력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하리리 전 총리의 자택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시니오라 하리리(전 레바논 총리)는 이번 테러는 헤즈볼라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

2016년 5월 14일에 시리아의 수니파 반군의 화포로 최고사령관 무스타파 바드레드다인이 사망했다. 그래서 헤즈볼라는 시리아 수니파 반군들을 범죄조직이라고 비난하며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7월 2일에는 레바논 북동부의 알카와 시리아 국경 인근의 라스발벡 외곽에 있는 알즈와이티나의 IS 지휘소를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하여 IS의 고위 인사인 아부 카탑과 휘하 대원들을 몰살시켰다. 이외에도 민병대를 동원해 라스발벡과 알즈와이티나의 국경마을 외곽에 있는 IS 거점 2곳 역시 파괴했다.

7월 16일에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니스 테러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테러는 노인과 젊은이,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지 않고 공격하며 특정 지역을 타깃으로 삼지 않고 인류를 향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10월 11일에서 헤즈볼라 당수 나스랄라가 이례적으로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스랄라는 여기서 "현재 시리아 상황은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협상이나 외교적 해법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고 밝혀 시리아 내전이 말로는 해결이 안될만큼 악화된 것을 인정하였다.

11월 선거에서 친헤즈볼라계 인물이 오랫동안 공석이던 레바논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2017년 2월 13일에는 시리아 내전을 끝내기 위한 모든 휴전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2017년 3월에 당수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이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의 핵시설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시리아의 골란 고원 회복을 돕기 위한 '골란 해방여단'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그러기만 하면 레바논 전역을 공격하겠다고 맞섰다. 물론 레바논 내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이 터졌는데 헤즈볼라를 탓하는 척 하며 아주 레바논을 먹으라고 하는 거냐며 늬들이 그러면 되려 레바논 다른 종파들까지 헤즈볼라 뿐만 아니라 이란이나 다른 나라들과도 손잡고 죽기살기로 싸우겠다고 분노했다.

2017년 6월에 이란에서 일어난 IS의 테러를 비난하며 이들이 시리아 내의 미군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7년 7월 30일부터 시리아 반군들과 휴전하고 서로 포로와 시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25일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헤즈볼라가 아랍 국가들에 개입하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이 인물도 레바논에서 비난도 많은데 친미국, 친이스라엘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전 총리이자 같은 외교적 태도를 취하던 아버지인 라피크 하라리는 암살당했다. 레바논에는 종교 세력이 워낙 팽배해서 이런 선언에 극과 극 반응이다.

2018년 2월 2일 미국 정부는 헤즈볼라와 관련된 개인과 기업을 제재했다.#

2019년 2월 2일 레바논은 새 내각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중 헤즈볼라가 보건장관 등 장관직 3개를 차지했다.#

2019년 4월 미국 국무부는 헤즈볼라의 재정 시스템을 붕괴시킬 정보에 최대 1천만 달러를 현상금으로 걸었다.# 그리고 미국측이 헤즈볼라 고위인사 3명을 제재하자 레바논측은 비판했다.#

2019년 헤즈볼라 당수 나스랄라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생할시 이스라엘이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폭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폭격할 경우 헤즈볼라와 레바논에 궤멸적인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맞섰다.#

2021년 미국 정부는 헤즈볼라와 관련된 레바논의 전직 장관 2명을 제재했다. 이에 헤즈볼라는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했다.#

2021년 8월 7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영토로 로켓포 16발을 쏘았고 이스라엘도 대응으로 대포 40발을 쏘았다. 다만 양측의 사상자는 없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탈출 과정에 부인인 캐롤 곤과 연락을 주고받은 헤즈볼라가 관여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3.1. 이스라엘과의 교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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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자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혼란을 틈탄 반이스라엘 무장 조직이 레바논에서 성장할 것을 우려했다. 이에 기독교 우파 정당들의 무장조직을 지원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견제했으나 효과가 신통치 않자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여 남부 지방을 점령한다.

당연히 반이스라엘 단체의 무장 투쟁이 있었고 18년 동안 게릴라전이 펼쳐진다. 헤즈볼라도 이때 탄생했다. 국제 사회의 압력이 거세지고 이스라엘군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이스라엘은 2000년 병력을 철수시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남레바논을 점령하고 있는 동안 기독교 단체를 지원하였고 이 기독교 단체들은 민병대를 창설해 이스라엘의 비호 아래 무슬림에 대한 공격을 했다. 전란을 수습해야 하는 헤즈볼라는 기독교인들과 공존을 택하고 학살극에 대한 책임을 이스라엘로 돌려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특히 하마스의 창설자 아흐메드 야신이 이스라엘 정부에게 암살되었을 때 복수하겠다며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했다. 특히 2006년에 이스라엘에 박격포와 로켓포, 대전차 미사일을 쏘아 이스라엘군에게 16명의 사상자를 나오게하고 병사 2명을 납치해 이스라엘을 도발했다. 빡친 이스라엘은 납치된 병사들을 구하고 헤즈볼라를 족쳐서 레바논에 친이스라엘 정권을 세울 목적으로 2006년 1만의 병력으로 레바논을 다시 침공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침공 초기부터 헤즈볼라는 물론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민병대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은 막강한 화력과 공중 지원을 앞세워 밀고 들어가 레바논과 헤즈볼라를 박살내주고 있었기에 전쟁을 빨리 종결시킬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있었다. 어차피 공군과 해군이 없는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병 전투에서는 헤즈볼라 대원들이 이스라엘군과 대등하게 싸우다 보니 오히려 그들에게 밀렸으며 막강한 기계화부대도 매복한 헤즈볼라의 대전차로켓 공격에 곳곳에서 무기력하게 저지당했다. 예시로 이스라엘군의 메르카바 전차는 보병 위주의 적을 상대로 한 전투에선 세계 최고로 평가를 받으며 설계 사상부터가 그걸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기에 대보병전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자랑하면서 헤즈볼라 보병들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메르카바 시리즈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전차의 크기가 다른 전차들보다 배는 더 컸다는 게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공격, 헤즈볼라는 방어를 하는 입장이었다. 당연히 헤즈볼라는 시가지나 참호에서 방어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상황에다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는 소탕하기 위해서는 시가지로 진입할 수밖에 없는데 시가지 자체가 메르카바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았다. 어떻게 어거지로 진입한다 해도 좁은 통로를 활용한 헤즈볼라의 로켓에 보병, 전차 가릴 것 없이 터져나가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고, 이런 전술에 이스라엘군은 이도저도 못하고 피해만 늘어났다. 게다가 헤즈볼라 수장인 나스랄라를 암살하려고 그의 집을 공습해서 파괴했지만 나스랄라가 집에 없는 바람에 암살도 실패했다. 물론 장비와 화력에서는 이스라엘군이 압도적이라 인명피해는 헤즈볼라가 더 많았다.

심지어 헤즈볼라가 이란으로부터 무기들을 지원받아 지대함 미사일을 쏴서 이스라엘 해군 초계함 INS 하니트를 반파시키는 등[4] 이게 도저히 국가와 테러 조직 간의 전쟁이라고는 생각치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오히려 헤즈볼라의 반격으로 이스라엘 제1의 도시이자 최대 항구인 텔아비브와 제3의 도시인 북부의 하이파까지 로켓탄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는 지경에[5] 이르자 빡돈 이스라엘군은 보복으로 백린탄집속탄화학무기까지 마구 쏴대 레바논과 헤즈볼라에게 몇 배의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이 공격에 레바논 민간인들만 피해가 속출하고 반이스라엘 감정이 커지면서 거꾸로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조직만 인기를 늘려가게 된다.

이스라엘은 이런 걸 막고자 의도적으로 헤즈볼라에 대하여 긍정적인 발언을 한 알자지라 레바논 중계팀을 폭격으로 날려버리기까지 했다. 결국 알자지라가 되려 빡돌아서 이스라엘군이 저지른 학살이라며 피해 입은 민간인들 시체와 피해 상황을 세계적으로 보도하면서 이스라엘만 국제적으로 욕먹었다. 알아둘 점은 알자지라는 친아랍 방송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당시 알자지라는 레바논에서 종파끼리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을 다루면서 레바논도, 헤즈볼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모습(민간인들을 방패 삼는다면서 비판했다)을 보여주며 중립을 지키려고 했지만 백린탄에 박살난 도시와 민간인 시체라는 진실을 보도함에도 냅다 중계팀을 폭격하는 이스라엘에게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국제적으로 욕 먹어도 미국이 비호를 해 주니 이스라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장에 UN의 정전도 미국이 반대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보고 레바논을 실컷 패주라는 것.

하지만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헤즈볼라를 실컷 패주었으나 전쟁이 예상 외로 장기전이 되자 재산피해가 이스라엘 쪽이 더 커지고 국제적으로 더 욕먹고 매스미디어전에서도 실패해 도무지 얻을 게 없던 이스라엘은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레바논 영토에서 철수했다. 이스라엘의 후원국 미국에서도 효과가 없으니 철수를 권고할 정도. 특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신경써야 해서 레바논에 오래 매달릴 수가 없었다. 그것도 사망자 158명을 내는 완벽한 전술적인 패배로 물러나야 했다. 종전의 중동전쟁에서 당한 피해를 생각하면… 게다가 이건 한 나라가 아닌 테러 조직과 전투에서 발생한 피해 수치이다. 그리고 헤즈볼라는 단번에 아랍권의 영웅이자 반이스라엘 저항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떠올랐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군은 148명, 헤즈볼라는 550명가량 사망하고 국경에 레바논군과 UN 평화유지군이 배치된다. 이후 2008년 말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가자 전쟁을 벌였는데, 여기서는 2006년 전쟁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준비 태세, 전술 등을 개선하여 군사적 기준에서는 훨씬 성공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대신 팔레스타인에 대한 피해 규모는 훨씬 크고 잔혹해졌으며, 때문에 국제적인 평판은 더욱 나빠지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점에서 전문가들은 가자 전쟁을 승자없는 싸움으로 평가했다.

이후 2008년에 미국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가 협력하여 1985년 TWA 여객기 납치사건과 1992년 아르헨티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공격을 주도한 헤즈볼라 사령관 이마드 무그니예를 폭탄으로 암살했다. 무그니예의 아들도 헤즈볼라 단원이라서 2015년 1월에 헬리콥터 공격으로 암살된다.

2014년 1월에 이스라엘군은 골란 고원 근처 쿠네이트라 지역에서 헤즈볼라 대원 6명을 사살했다. 2014년 7월에 발생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때 헤즈볼라는 지원군을 파견해 가자 지구의 하마스,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함께 이스라엘군에 대항해 싸웠다. 2015년 12월 21일에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자라마나 지역에 가한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령관 사미르 칸타르와 8명의 대원을 죽였다. 그러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6] 2016년 1월 4일에 이스라엘 국경과 인접한 셰바 농장 지대에 이스라엘 국경수비대를 겨냥해 로켓 공격을 했다. 이스라엘 역시 가만있지 않고 대응포격을 해 헤즈볼라의 고위 장교 1명을 사살했다.

2021년 8월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전날 이스라엘을 타격한 로켓포가 발사된 레바논 남부지역을 전투기로 두차례 공습했다"며 "레바논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테러조직을 단속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공격이 지속되면 공습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레바논의 로켓포 공격에 대해 "레바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

8월 6일, 이스라엘군은 이날 낸 성명을 통해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10발이 넘는 로켓포가 이스라엘 쪽으로 발사됐다고 밝혔다. 헤즈볼라도 이날 성명을 내며 "이스라엘이 점령한 셰바 지역 농장 지역에 다수의 로켓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

8월 7일, 사예드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어떤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도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

8월 17일, 이스라엘에서 북한이 헤즈볼라와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 통해 1천3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어 땅굴 기술을 수출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

2022년 2월 6일, 이스라엘 정부는 헤즈볼라의 미사일 생산을 지원한 레바논 기업체 3곳을 제재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에도 북부 이스라엘에 포격을 가했다.


3.2. 시리아 내전[편집]


시리아 내전에는 공식적으로는 관여하지 않다가 2013년부터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 소속 민병대 리와 파테미욘, 리와 자이바니욘[7]과 함께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헤즈볼라의 참전 이유는 레바논 내전 때부터 시리아 정부군의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아 동맹 관계였다는 점도 있었지만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세력이 강력해지자 레바논 수니파들도 이에 동요하여 무장단체를 결성하고 시리아 원리주의 세력과 협력하기 시작하여 불안요소가 증대하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수니파 거주 지역인 콸라문 산악지대는 시리아와 국경이 길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을 통해 반군들에게 물자와 인력이 오가고 있었고 이곳을 장악하려면 정부군과 협력하여 국경 내외에서 반군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 참전하면서 경제 봉쇄와 탈영, 소모로 전력이 급감한 시리아 정부군에 큰 도움이 되었고 헤즈볼라의 도움에 힘입어 2014년에는 콸라문 산악지대를 거의 완전히 통제하는 데에 성공했다. 2015년 알카에다 소속 알누스라 전선이 주도하는 최강의 반군연합체 "정복군"이 재탈환을 시도했지만 이것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2017년 현재 콸라문 산악지대는 IS 일부와 지역 반군 일부만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서로 싸우는 데다 반군이 IS와 전투할 때 정부군이 공습 지원도 해줬기 때문에 사실상 서로 건드리지 않는 관계로 콸라문 산악지대는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헤즈볼라는 알레포, 하마, 홈스, 라타키아 등 여러 전선에서 정부군을 보조하며 보병 전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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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의 전반기에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육군에게 흔해빠진 反이스라엘 조직들에 불과했다. 원래 이스라엘 정부의 구상은 PLO를 튀니지로 내쫓은 다음에 親이스라엘 중립국으로서 레바논 신정부의 창립과 함께 철수하려는 의도였다.[2] 1985년에 만든 미국 미니시리즈 드라마 <워싱턴 위기일발>(KBS 방영제목)에서는 여대원 1명만 탄 차량으로 미군으로 위장하고 미군 기지로 들어와 남자들만 있던 미군들이 휘파람 불며 환영하며 몰려들자 자폭해 버리는 것으로 각색했다. 이 드라마는 허구가 많은데 헤즈볼라가 대놓고 대낮에 백악관에 로켓포를 쏴버리기까지 한다.[3] 북한으로부터 로켓 무기를 밀거래하고 땅굴 기술 지원을 받아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4] 이때 초계함에 타고 있던 이스라엘 해군 4명이 사망했다. 초계함도 심각하게 파괴되어 이스라엘 항구로 데려가야 했다.[5] 레바논에서 텔 아비브, 하이파까지의 거리는 하루 정도면 올 수 있을 만큼 가깝다.[6] 그런데 사미르 칸타르는 이스라엘인 부녀를 잔혹하게 죽인 악질 테러범이다. 이런 사람이 무기징역을 살다가 협상으로 풀려났을 때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는 영웅대접을 받았다. 이 지역들에서 반이스라엘 감정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에서는 칸타르의 죽음을 아주 기뻐했다.[7]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란으로 탈출한 하자르족(몽골계 아프간인)들과 파키스탄 난민으로 이뤄진 민병대. 가족들을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이들에게 이란 시민권과 집, 생활과 교육을 보장했기 때문에 많은 난민들이 입대했다. 리와(Liwa)는 여단이라는 뜻이며 파테미욘은 아프간, 자이바니욘은 파키스탄 난민으로 구성되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에 파병되어 있다. 하지만 군경험도 마땅찮은 중년 남성인데다 먹고 살기 위해 입대한 자들이라 전투에서 소모율도 높고 전투력도 평균적으로 낮은 편이라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