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악셀 폰 페르젠(베르사이유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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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베르사유의 장미.페르젠.jpg
フェルゼン(ハンス・アクセル・フォン・フェルゼン)
성우는 호리 카츠노스케(극초반부)/노자와 나치/토미야마 케이(극장판)/김민석(KBS), 이정구(대원비디오판), 이규화(MBC 극장판), 양석정(EBS)

1. 개요
2. 작중 행적
3. 여담



1. 개요[편집]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등장인물. 실존 인물 한스 악셀 폰 페르센이 모델이다.

2. 작중 행적[편집]


오스칼,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해인 1755년에 스웨덴의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다. 첫등장은 집사와 함께 프랑스로 산학을 배우러 유학가는 걸로 나오며 이때 집사로부터 프랑스 왕세자 부부 결혼 소식을 듣는다. 그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도중 오스칼만 데리고 파리의 가면무도회에 온 마리 앙투아네트와 만나며 두 사람은 첫 눈에 필이 꽂힌다.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는 신분이 발각되기 전에 도망치려 했는데, 페르센이 저지하다가 오스칼과 3자 대면을 한다. 이 자리에서 오스칼마저 페르센에게 반함으로서 3각, 아니 4각 관계(앙드레 포함)가 시작된다. 이후 오스칼의 마음을 꿈에도 모른채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느끼며, 각별한 친구가 됐고 나중에야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마리를 사랑하고 있던 페르센은 오스칼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 한다.

이처럼 지고지순하게 마리 앙투아네트만을 사랑하지만 프랑스의 왕비인 그녀와의 관계는 결국 불륜이었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추문은 프랑스 내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이 더욱 떨어지는 계기가 된다. 결국 보다 못한 오스칼의 조언으로 페르젠은 잠시 프랑스를 떠나지만 불행하게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페르젠이 떠난 빈 자리를 채우고자, 폴리냑 부인 등의 간신들의 부추김으로 국정을 멀리하고 패션과 도박에 빠지면서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자신의 평판을 스스로 깎아 먹는 짓을 한다.

이후 목걸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찾아와 폴리냑 부인들을 멀리하고 오스칼과 메르시 백작 등을 비롯한 충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충고하고, 페르젠 본인도 직접 프랑스 위병대에 입대하여 프랑스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알아보고 동시에 여동생 소피아를 통해서 왕실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여러 조언을 한다. 그러나 이미 선대때부터 쌓인 프랑스의 오랜 빚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이은 무능한 행보 때문에 왕실을 향한 프랑스의 여론은 나락으로 떨어질대로 떨어졌고 세금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삼부회도 실패하면서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만다.

다른 왕족과 귀족들이 왕실에게 등을 돌리고 해외로 도피하는 반면 페르젠은 끝까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켰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 왕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다 못해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임을 직감하고 결국 프랑스를 벗어나 왕비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로 도주하는 걸 제안하며 이를 계획, 실행하는 총 책임자를 맡는다.

그리고 도피 날짜 당일 가까스로 파리를 벗어나는데 성공했지만 페르젠의 안위를 걱정한 루이 16세의 강권으로 강제로 왕실 가족을 두고 떠나야 했으며 결국 페르젠이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민중들에게 잡혀 죄수처럼 파리로 끌려와 튈르리 궁전에 유폐된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페르젠은 어떻게 해서든 루이 16세 가족을 구하러 애썼지만 마리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그 어느 나라도 페르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오스칼의 아버지인 자르제 백작의 도움으로 목숨을 걸고 변장한 채로 찾아오면서 마리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며 루이 16세에게 탈출을 제안한다. 그러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내부의 여론이야 말할 것 없고 외국들도 자신들을 버린 현실을 직감하였기에 구차하게 사는 것이 아닌 왕과 왕비로서 아름답게 최후를 맞이하겠다며 페르젠과의 도피를 거절하는 동시 마지막까지 자신들에게 충성을 바친 페르젠에게 고마움를 표하며 영원히 이 둘은 헤어지고 만다.[1]

그뒤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당한다는 소식에 반쯤 미쳐서 죽을 각오로 프랑스로 가려고 하지만[2], 어릴 적부터 페르센을 손수 맡아 돌보던 늙은 집사가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며 그를 붙잡고 죽어라 놔주지 않는다. 분노한 페르센이 "안 놓으면 너부터 죽인다!"라고 소리치고 이에 집사는 울면서 "그럼, 이 늙은이부터 죽이고 가십시오. 백작님을 어릴 적부터 돌보며 손자 같이 느껴왔는데 그런 백작님이 죽으려고 가는 길을 이 늙은이는 볼 수 없습니다!"라고 애원하자, 차마 집사를 건드릴 수 없어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의 구명을 포기하고 바렌느 도주 사건루이 16세의 명을 거부해서라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울부짖으며 절망한다.

이후 2018년에 발매된 최종 에피소드에서 앙투아네트와 이별하고 스웨덴으로 돌아간 뒤의 후일담과 페르젠의 최후가 상세하게 그려졌다. 마리의 죽음 이후 스웨덴 왕 구스타브 아돌프 4세의 측근으로 있었으며 냉혹한 정치가로 돌변하여 평생 독신으로 사는 등 여동생 소피아의 말대로 동시에 살아있되 죽은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때 자르제 백작을 만나 마리의 유언과 그녀의 유품을 전달받고 동시에 오스칼이 프랑스 혁명에 투신하다가 전사한 것을 듣고 오열한다. 이후 프랑스 혁명 세력을 막기 위한 스웨덴 왕의 요청으로 오스트리아의 외교 사절로 갔다가 빈 궁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와의 포로 교환으로 오스트리아에 망명해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를 보며, 평생동안 사랑한 여인의 딸을 통해 오스칼과 앙투아네트와 함께하며 행복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 몰래 울음을 삼켰다. 이외에도 스웨덴으로 망명해 있던 로잘리의 아들 프랑소와[3]를 왕립도서관 법률고문으로 취업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원작 마지막에서 언급된 페르젠의 살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이 드러나는데 사실상의 자살이었다. 당시 스웨덴은 구스타프 아돌프 4세가 폐위되고 그의 숙부인 칼 13세가 즉위했는데 페르젠은 구스타프 아돌프의 측근이자 반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파였기에 백성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었다. 그러다 칼 13세가 양자로 삼은 덴마크 왕태자 칼 아우구스트가 낙마 사고로 사망하는데 스웨덴 민중들 사이에선 페르젠이 왕태자를 죽였다는 헛소문이 돌았고 결국 왕태자의 장례식이 있던 6월 20일 페르젠을 살해하는 계획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마침 이 계획을 프랑소와의 친구 파비앙 노벨[4]에게 들은 로잘리 모자는 페르젠을 찾아가 내막을 알리고 장례식 참석을 말린다. 그러나 6월 20일[5]이 자신에게 어떤 날인지를 알았기에 페르젠은 굴욕적인 삶을 스스로 끝내고자 장례식에 참여해 생을 마친다. 당시 나이가 든 페르젠의 모습은 얼굴에 주름이 지고 콧수염을 기른 상태였고 로잘리에게 마지막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켜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며 동시에 아들 프랑소와에게 힘껏 살아남아, 우리의 시대의 결말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장례식 당일 날 분노하던 스웨덴 민중들에게 구타를 당해 살해당하며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오스칼과 앙투아네트를 보고 눈을 감는다.


3. 여담[편집]


다카라즈카판 뮤지컬 버전에서의 페르젠은 오스칼과 앙드레 스토리를 제외하면 거의 작중의 진주인공으로 활약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여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는 하나 초판과 2000년대 이전 공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페르젠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와 밀애하며 얼굴 비추고, 최후반부에 콩시에르쥬리에서 단두대 행으로 직행하는 것을 제외하면 앙투아네트의 비중은 밀리다 못해 거의 쩌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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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니메이션판에선 바렌느 도주사건을 끝으로 루이 16세 일가와 이별하고 벨기에로 망명하는 걸로 그려지고 있다. 오스칼 사망 이후에도 이야기 전개에 상당분량을 할애했던 원작만화와 달리, 애니메이션판은 오스칼 사후의 이야기를 1화로 압축을 해버렸기 때문이다.[2]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의 내연남으로 프랑스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지라 혁명 정부의 주요 감시 대상이였고, 이후 바렌느 도주 사건을 진두지휘하며 루이 16세 일가의 도주를 적극 도와주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현상금까지 걸린다.[3] 페르젠이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스칼의 미들네임에서 따온 이름이다. 당시 아버지가 알랭 드 수아송과 함께 나폴레옹 암살 미수로 처형당하자 어머니와 함께 스웨덴으로 망명해 있었다.[4] 성도 그렇고 자신 빼고 가족들 모두 과학자라는 걸 보면 알겠지만 알프레드 노벨의 조상 중 한명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파비앙 본인도 공화파이지만 페르젠에 대한 소문을 민중들이 비뚤어진 선동에 넘어간 거라고 냉정히 판단하고 있었다.[5] 전술했듯이 바렌 도주 사건이 있던 날이며 페르젠은 그때 자신은 죽었다고 회고하였다. 로잘리도 파비앙에게 암살 음모를 듣자마자 바로 눈치챘으며 그의 선택을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