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리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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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리요코
池田理代子 | Riyoko Ikeda


파일:201910_08_01.jpg

본명
이케다 리요코 (池田 理代子(いけだ りよこ)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출생
1947년 12월 28일 (76세)
오사카부 오사카시 아베노구
직업
만화가, 성악가
수훈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2009년)
서명
파일:이케다 리요코 서명.jp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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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도쿄교육대학 (문학부 철학과 / 중퇴)
도쿄음악대학 (성악과 / 졸업)
혈액형
AB형
고향
치바현 카시와시
거주지
시즈오카현 아타미시
배우자
카쿠 가게히데[1](賀来景英)(1995년 결혼)
데뷔
장미 저택의 소녀 (1967년)
장르
순정만화 (역사물)
활동 기간
1967년 – 현재


1. 개요
2. 생애
3. 특징
4. 주요 작품
5. 여담
6.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일본만화가, 성악가.

순정만화계의 전설 중 한 명으로 대표작은 베르사이유의 장미오르페우스의 창이 있다. 이 작품으로 일본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까지 쓸어버린 사람이다.


2. 생애[편집]


원래 이케다는 학자가 꿈이어서 도쿄교육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자 주제에 공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보수적인 부친은 학비를 1년만 주었고, 결국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만화였다. 젊은 시절 한때는 일본 공산당의 청년조직 민주청년학생동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1][2] 1978년 일본 공산당 서기당장이었던 후와 테츠조의 선거 팸플릿을 그려준 적도 있다. #

평소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에 흥미를 갖고 있던 이케다 리요코는, 이를 작품화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부 편집자에게 "그런 건 여자아이들에게 먹히지 않아"란 소리를 들었지만 "인기 없으면 바로 끝낸다"는 조건으로 연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는 "반드시 히트해 보이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녀의 다짐대로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1972년 첫연재 후 약 2년간의 연재기간 동안 빅히트를 했으며, 순정만화계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등극한다. 이케다 리요코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주인공인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앙드레 그랑디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음료, 의류, 자동차, 빠칭코의 광고 모델로 등장하며, 작품을 모티브로 한 화장품까지 상품화가 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문제는 너무 라이센스를 남발해서 지금은 뜬금없는 성형외과 광고에도 오스칼 캐릭터가 이용되는 등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놀라운 점은 베르사이유의 장미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대로 된 그림 공부를 해봤다는 것. 보통 그림 공부를 하고 데뷔하는 것에 비해, 이케다 리요코는 순서가 거꾸로였던 셈이다. 본인의 그림 실력에 부족함을 느껴 석고 데생부터 유화까지 차례대로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보면 초기에는 약간 동글동글하던 그림체가 중반부터 조각상처럼 상당히 섬세하고 유려해진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오르페우스의 창 이후로는 단편 위주 혹은 성악가 활동을 하고 있다

파일:external/pbs.twimg.com/B5dFgixCIAAO_rS.jpg

말년에 접어들어 특유의 매력적인 그림체가 변해버려서, 전성기 시절 작품의 팬들은 안타까워 한다. 역변 수준을 넘어 아예 다른 사람이 그린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2014년 일본의 결혼정보 잡지 「젝시」 12월호에 실린 베르사이유의 장미 앙드레 그랑디에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의 결혼식 일러스트.

이른 나이에 불임과 갱년기 장애가 와서 삶의 목표를 잃고 고민하다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성악에 입문, 음대를 졸업하고 성악가로도 활동한다. 이제는 성악가로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개인 공식홈에도 꾸준히 성악활동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잠시 절필하기도 했으나 1999년 니벨룽겐의 반지를 만화화하면서 다시 복귀해, 지금도 성악활동과 겸하며 꾸준히 그리고 있다.

2008년 베르사이유의 장미프랑스의 문화를 알린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파일:이케다리요코1.jpg

젊은 시절엔 연예인도 오징어로 보이게 만드는 엄청난 미모와 몸매로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였다.[3]


3. 특징[편집]


근세 유럽을 배경으로 삼아 격정적인 로맨스를 담아내는 것은 당대 일본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방식 중 하나였고, 이케다 리요코 역시 일단은 이 노선을 따라갔다. 하지만 이케다 리요코는 더욱 적극적으로 역사의 격동 속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밀어넣고 실제 역사속의 인물들을 담아내면서 여타 작가들과 차별되는 면모를 드러냈고, 이를 통해 캐릭터들의 비극적인 로맨스 역시 실제 역사적 사건들과 결부시키면서,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가 만드는 비극으로 승화시켰다.

이케다 리요코가 보여준 역사성과 순정만화적 요소의 적극적 결합은, 이후 80년대에 등장하는 한국 순정만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4. 주요 작품[편집]



파일:1704ikeda.jpg




5. 여담[편집]


여담으로, 베르사이유의 장미 여주인공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의 쓰리사이즈는 87-63-90(33-27-36)의 설정인데, 젊었을 적 당시 본인의 쓰리사이즈와 같다고 한다. 꿈의 사이즈인 90-60-90(36-24-36)에 근접한 수치로, 사실이라면 수치로만 보았을 때 젊은 시절부터 몸매가 참 좋았던 듯 하다.

순정만화광들의 세계사 점수 상승에도 일조한 사람.

2007년에는 태왕사신기 만화판을 그리기도 했다. 2010년대 기준으로는 만화보다는 일러스트와[4] 성악 위주로 활동 중이다.

개인 사생활이지만 이혼이 3번에 일본의 고위관료와 불륜이 2건이 있다. 본인 만화 캐릭처럼 격정적인 사랑을 하는 것 같다. 관련영상 (영상 시작부터 1분 6초까지가 관련 내용)


6.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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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렇게만 들으면 극좌 운동권이었나 싶겠지만, 이케다 리요코가 대학생이던 60년대 말-70년대 초 일본공산당과 그 산하조직 민청은 학교본부 편에 서서 전공투 운동권을 각목으로 때려잡던 반권 집단이었다. 동갑내기인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이런 행태에 환멸해서 민청을 탈퇴하고 전공투로 전향했다.[2] 이 점은 이케다 리요코가 대학에 다니던 60년대 말~70년대 초가 흔히 68운동이라 불리는 학생운동의 전성기였다는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미국+서유럽=제1세계 국가>의 학생운동에서 공산당이나 사회당 등 기성 좌파정당의 산하조직은 온건파, 또는 개량주의자나 타협주의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 보다 급진적인 강경파 성향을 가진 학생들은 흔히 신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 일본의 예를 보자면 무당파 성향의 전공투나 좀 더 강한 이념적(이론적) 지향을 보인 경우 일본 신좌파에 속하는 조직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 시대 출신 인물로 극좌 과격파라는 딱지를 달고 싶으면 이케다 리요코와 동년배(두살 차이)인 시게노부 후사코 정도는 되어야 하고, 하다못해 운동권 소리를 듣고 싶으면 전공투등에 참여해서 경찰과 가두 전투를 벌이거나 시설을 점거하는 정도의 활동을 한번쯤은 해 주어야 하는데, 우경화된 기성 정당의 청년조직에 들어가 활동했다는 정도로는 그냥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젊은이 수준의 행적을 보여준 것 뿐이다.[3] 에이스를 노려라의 야마모토 스미카 작가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타케우치 나오코 작가 등등 리요코처럼 80년대에서 90년대에 주로 활동한 여성만화가들은 재색을 모두 겸비한 실력파가 많기로 유명했다.[4] 주로 영화 관련 콜라보레이션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다. 아시가르 파라하디의 누구나 아는 비밀 일본 개봉 축전을 그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