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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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대장군(大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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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前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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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한신 ||
2대

두영 ||
3대

위청 ||
4대

곽광 ||
5대

왕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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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왕상 ||
현한

이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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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後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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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두헌 ||
8대

등즐 ||
9대

경보 ||
10대

양상 ||
11대

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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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두무 ||
13대

하진 ||
14대

한섬 ||
15대

조조 ||
16대

원소 ||
||
17대

하후돈 ||<#fff><-4>||
||<-5><bgcolor=#A11> ※ 둘러보기 : 후한의 태위 (太尉) · 조위의 태위 (太尉) · 조위의 사도 (司徒) · 조위의 사공 (司空) · 동오의 승상 (丞相) ||





후한의 대장군
韓暹
한섬

최종직위
대장군(大將軍) 겸 사례교위(司隷校尉) 겸 가절(假節)
성씨
(韓)

(暹)
생몰연도
? ~ 197년
사망지
예주(豫州) 패국(沛國) 저추현(杼秋縣)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장군으로 본래 백파적이었는데 어려움에 처한 황제를 경호하게 되면서 중앙 정치에 을 디뎠다. 대장군까지 올랐으나 조조에 밀려 각지를 떠돌다 사망했다.


2. 정사[편집]



2.1. 황제 구출[편집]


흥평 2년인 195년 11월, 장안을 나와 동쪽으로 향하던 헌제 일행은 홍농군 홍농현에 도착했으나, 서로 인질을 교환하고 헌제를 홍농현에 두자는 장제의 제안을 거부하고 더 동쪽으로 향하였다.[1] 헌제 일행은 장제가 이각, 곽사와 손잡고 공격해오자 많은 사람이 죽고 치중을 잃는 가운데 간신히 조양간(曹陽澗)에 닿았다. 황제 일행은 하동군에 있던 옛 백파적 이락, 한섬, 호재, 그리고 남흉노의 거비(去卑)[2]에 구원을 요청해 적군에 대항했다. 이들은 추격군 수천 명을 참수하며 쫒아내기도 했으나 격전 끝에 거의 다 죽고 섣달에는 섬현까지 내몰렸다.

이렇게 되자 황제의 호위군인 호분(虎賁)과 우림(羽林)은 백 명도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밤에 몰래 십여 장(丈) 높이절벽을 내려가서 황하를 건너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기어오르거나 뛰어내려 다치거나 죽고, 살아남은 자들이 배에 오르려고 하니 동승과 이락이 매달린 손가락들을 내리치며 배를 출발시켰다. 손가락이 잘린자들은 떨어져 동사, 익사했고 잘린 손가락이 여기저기 널려있어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이렇게 계속 사람들이 죽어나가 수십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침내 하동군 대양현(大陽縣)을 거쳐 안읍현(安邑縣)에 당도하였다. 하내태수 장양을, 하동태수 왕읍(王邑)이 비단을 공급하였다. 한섬, 호재, 이락은 모두 장군직에 가절(假節)을 받았으며 삼공처럼 개부하였다.


2.2. 권력 다툼[편집]


건안 원년인 196년이 밝았다, 동승과 장양은 환도하자고 했지만 양봉과 이락은 내키지 않아했다. 이 와중에 한섬은 동승을 공격해 동승은 야왕현(野王縣)의 장양에게로 피신하고 한섬을 호재와 양봉이 공격하려다 헌제의 명령에 그만두었다. 5월, 양봉, 이락, 한섬도 환도에 나서 길을 떠났다.[3] 장양과 동승은 미리 낙양의 황궁을 보수하고 호재와 이락은 하동군에 남았다.

7월, 헌제가 낙양 땅에 도착했다. 8월, 장양은 내군으로 돌아가 대사마가 되었고, 양봉 역시 거기장군이 되어 하남윤 양현(梁縣)으로 나갔으며 헌제는 위장군 동승과 대장군 겸 사례교위 한섬이 보위하였다. 모두 가절월(假節鉞)을 받았다. 이때 한섬이 공을 믿고 멋대로 정사에 관여하자 동승이 조조를 끌어들였다.[4] 한섬과 장양을 조조가 탄핵하니 한섬은 살해당할까 두려워 양봉에게 도피하였으나 헌제는 그간의 공로를 들어 일절 를 묻지 않았다.

한편 조조는 낙양이 궁핍하다는 핑계로 양봉을 속이고 환원관(轘轅關)을 지나 허가 있는 동쪽으로 황제를 데리고 갔다. 양봉은 뒤늦게 깨닫고 한섬과 같이 추격했지만 양성산(陽城山) 골짜기에서 먼저 다다른 경기병 부대가 복병에 당해 놓치고 말았다.[5] 10월, 양봉과 한섬이 영천군 정릉현(定陵縣) 일대를 유린하자 조조는 양봉의 본거지인 양을 공격해 함락시켰고 두 사람은 양주원술에게로 달아났다.


2.3. 밀려난 이후[편집]


건안 2년인 197년 무렵 양봉은 공손찬, 원술, 한섬과 함께 현상금이 걸려 체포대상이었는데 이 와중에 원술은 황제참칭을 감행한다.[6] 서주의 여포진규와 조조의 꼬드김에 넘어가 진행되고 있던 혼담을 끊어 원술과 관계를 단절하니 원술은 화를 내며 장훈, 교유, 양봉, 한섬으로 하여금 일곱 길에서 수만 명으로 서주를 쳤다. 이에 여포는 양봉과 한섬에게 편지를 써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장군이 어가를 호송하며 동쪽으로 온 것은 나라에 제일가는 공이오. 당연히 역사에 남아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오. 원술은 반역하여 토벌받아야 마땅한데 어찌 역적과 한패가 되어 나 여포를 친단 말이오? 나 여포 또한 동탁을 주살한 공신이오. 힘을 합해 원술을 격파하고 천하에 공을 세웁시다.


라 하였다. 또 노획한 군수물자도 전부 주겠다고 하니 마침내 내응하기로 했다. 여포가 진격하여 장훈과의 거리가 100보쯤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동시에 장훈군을 타격하였다.[7] 배신을 당한 원술군은 죽고 다치고 물에 빠진자가 수두룩했고 결국 궤주했다.[8] 이후 양봉과 한섬은 여포와 같이 구강군 수춘현(壽春縣) 방향으로 수륙병진하며 지나는 곳마다 노략하고 종리현(鍾離縣)에서 회하 북쪽으로 회귀하기도 하는 등 서주와 양주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차 양봉은 유비와 회견할 일이 있어 갔다가 붙잡혀 죽었다.[9] 한섬은 달리 의지할 데도 없어 천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병주로 돌아가던 중 패국 저추현(杼秋縣)에 주둔하던 장선(張宣)에게 살해당했다.

어찌 보면 헌제의 입장에선 이각, 곽사에게 핍박당할 때 가장 든든한 조력자[10]였고, 한섬과 양봉의 입장에선 근본도 없는 도적이나 하급 무장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아 강력한 적이었던 이각, 곽사에게 대적하며 천자에게 충성을 했는데 그걸 조조가 가로챘다.

자신들은 다시 유랑도적 신세로 돌아갔으니 도적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약탈을 일삼은 것 때문에 화를 자초했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사정은 여포가 이들을 외지로 보내 홀대하면서 군비 확충이 제대로 안 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도적 때 성정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약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3. 연의[편집]


대부분의 행적은 정사와 동일하지만 진등이 여포에게 한섬을 설득하기 위한 계책을 얘기할 때 원술이 깔보아 힘써서 섬기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으며, 하비에서 영채를 세울 때 진등의 설득으로 여포군과 내통했다.

여포가 기도목으로 추천해줬으며, 여포가 한섬, 양봉 등을 가까이 두고 싶다고 할 때 산동에 보내어 공격하면 1년만에 산동을 바칠 것이라는 얘기를 해 산동을 공격했다. 이후 여포가 기도 현에 들게 했다가 군사를 풀어 백성들을 약탈하다가 유비가 잔치를 베풀어 일을 의논하자는 구실로 초청되었다가 관우, 장비의 공격으로 죽었다.


4. 미디어 믹스[편집]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편집]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162.jpg
삼국지 12, 13, 14

삼국지 1부터 개근하여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열악한 조건에서 이각, 곽사에게 대항했던 것 치고는 능력치도 구리다. 백파적 출신이고 황제를 모시던 시절이 그나마 그가 가장 유명하던 때인데, 이 점이 부각되기보다는 옷 때문에 황건적 소속이라는 점만 유저들의 기억 속에 남는 무장.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1/무력 69/지력 33/정치력 37. 병법으로는 분전, 정란 뿐이다. 성격은 대담인데, 열세에도 불구하고 헌제를 위해 이각, 곽사의 군대에 당당하게 맞선 사실을 반영한 듯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9/무력 67/지력 35/정치력 36/매력 48에 특기는 징병, 삼단. 총 2개 뿐. 징병 특기가 있지만 매력이 48이라 효용도가 좋지는 않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9/무력 66/지력 36/정치력 18/매력 51에 병종 적성 창병 B/극병 C/노병 B/기병 C/병기 C/수군 C인 평범하게 후진 잉여 무장.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오른손에 도검을 든 채 왼손으로 칼등을 만지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력 69/무력 66/지력 36/정치력 18. 전법은 무력저하로 황건군이 아닌 이상 쓰이지 않는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훈련 1, 공성 1, 일기 1. 전수특기는 훈련으로 전법은 창속강화.

이것만 보면 잉여 확정인 것 같지만.. PK에서는 이상위명이 지용겸비라서 깨알같이 상향되었다. 지용겸비를 이상위명으로 가지는 장수는 나름 흔한 것 같지만(조조, 주준, 강유, 여대, 여몽 등등 네임드 장수도 많긴 하다) 대부분 위나라와 오나라 세력에 몰려 있어서 다른 세력으로 하면 생각보다 희귀한 편이다. 이것도 주인공(플레이어)으로 쓰기보다는 npc로 쓰기 좋은 위명이다. 공적치 일만만 먹여줘서 5품관 만들어주면 병법가가 되는데 이 상태로 전투에 참가시키면 전술력 100이 추가된다. (지용겸비는 160) 전술력 100이면 매 전투마다 기도진 하나 더 쓸 수 있는 수치다. 낙석함정(160필요, 병법자 위명 스스로 사용가능)이나 당지정병(180필요, 충렬의열 위명 필요)같이 사기적이지만 요구치가 큰 전술을 사용하기 쉬워진다. 물론 명경지수나 천하명장이 더 많이 올려주긴 하는데 거기까지 키우려면 2품관을 찍어줘야하니 실용성이 떨어진다. 시나리오 2부터 계속 재야로 등장하며 술과 보물을 좋아하여 붕우 맺기도 쉽다. 일단 등장만 하면 비자연사라 나름 오래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9, 무력 66, 지력 35, 정치 18, 매력 49로 전작과 달리 지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공명, 적도, 탐욕, PK에서는 강탈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아도, 정책은 운반개발 Lv 2, 진형은 봉시, 전법은 분전, 화시, 친애무장은 양봉, 이악, 혐오무장은 없다.


4.2. 영걸전 시리즈[편집]


파일:The Legend of Cao Cao Han Xian.png

삼국지 조조전 Online에서는 유비전, 손책전, 여포전 등에서 적으로 등장하며, 유비전에서 원술이 패망해서 북쪽으로 도주할 때 동행했다가 유비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며, 손책전, 여포전에서는 유비, 조조, 손책 등의 연합이 공격할 때 수춘에서 전사한다. 병과는 적병. 능력치는 무력 70, 지력 73, 통솔 36, 민첩 66, 행운 82. 성격은 경솔.


4.3.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편집]


파일:전략한섬.jpg

원술의 무장인데 진규의 설득에 넘어가 배반한다. 양봉은 언급만 된다. 이 둘의 최후 또한 나오지 않는다.


4.4. 삼국전투기[편집]


얏타맨도론죠로 등장한다. 그런데 도론죠는 원작에서는 여자인데도 한섬은 여기서 여전히 남자다. 장사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하며 따까리들인 이락, 호재와 함께 장사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했다.

장사 전투 편에서는 황제 가로채기를 시도한 양봉과 한패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정작 부하인 이락, 호재와는 달리 본인은 별 한 것도 없이 실패하고 양봉과 도망치는 게 끝이었다.

하구 전투 편에서 오랫만에 재출연. 원술군에 눌러앉은 양봉과 함께 행동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양봉과 더불어 원술의 서주 7로 침공군에 참여하여 우이 방면의 군을 맡았으나, 양봉과 함께 여포에게 회유된 후 우이 방면의 군을 그대로 하구로 돌려 여포와 함께 기령군을 박살냈다.

환 전투 편에서는 여포에게 회유된 뒤 양봉과 함께 서해 지역을 영지로 받지만, 지역 자체가 흉년으로 인해 폐허가 다 된 터라 양봉과 함께 여포에게 크게 실망하여 여포를 치기로 결정한다. 소패의 유비가 여포에게 악감정이 있다는 것을 이용해 끌어들여 보러 소패로 향하지만, 유비에게 명을 받은 관우, 장비에게 양봉과 같이 허무하게 사망한다.

연의와 같은 결말이지만, 차이점이라면 한섬과 양봉은 아직 약탈을 벌이지 않았고, 여포에게 실망하여 유비를 회유하러 갔을 뿐인데 다짜고짜 그냥 베였다. 관우, 장비도 의문스러워서 베고 난 뒤에 유비에게 여포가 적인 건 똑같은데 왜 손을 잡지 않느냐고 묻자 유비는 "양봉과 한섬 같은 애들이랑 놀면 이미지 망쳐서 장사 못한다"라고 대답한다. 말 그대로 양봉과 한섬은 알려진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에 이런 녀석들과 손을 잡으면 자신의 진영의 이미지도 덩달아 내려가고, 자신의 이름을 팔기 어려워진다는 뜻.


4.5. 삼국지 가후전[편집]


원씨 가문의 후원을 받고 백파적 두령들과 함께 우보의 군사와 싸우면서 원씨 가문에게 받은 돈을 나눠가지고 튀면 어떻게냐는 모습을 보이면서 산 속에 틀어박히기 힘들다는 말을 하며, 이후 가후의 계략에 따라 백파적이 이간질에 속아 가후의 군사에게 격파당한다.

[1] 《헌제춘추》 ; 《태평어람》92권 황왕부 제17 효헌황제에서 인용.[2] 《후한서》동탁전, 《삼국지》무제기, 원굉의 《후한기》에서는 우현왕. 《후한서》헌제기에서는 좌현왕.[3] 《후한기》29권.[4] 《삼국지》1권 위서 제1 무제 조조에서는 동승이 원술의 부하 장노(萇奴)와 연계하여 조조가 보낸 조홍을 막았다고 하였으나 이 기록과 상충된다.[5] 《헌제춘추》 ; 이현 주석, 《후한서》72권 열전 제62 동탁에서 인용.[6]영웅기》 ; 배송지 주석, 《삼국지》7권 위서 제7 여포에서 인용.[7]구주춘추》 ; 배송지 주석, 《삼국지》7권 위서 제7 여포에서 인용.[8] 《후한서》75권 열전 제65 여포.[9] 이 일은 《삼국지》32권 촉서 제2 선주 유비엔 196년의 일로 잘못 삽입되어 있다. 《삼국지》32권 촉서 제2 선주 유비에서는 한섬까지도 유비가 처단했다고 오기하였다.[10] 당시 백파적의 전투력은 관군보다 훨씬 강했다. 다만 이각, 곽사가 그 이상으로 싸움에 도가 튼 인물들이라 패했던 것뿐. 도적의 무리였던 흑산적이나 청주병이 당시에 얼마나 악명이 높았는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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