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오지 슈퍼 강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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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王子スーパー 強盗殺人事件

1. 개요
2. 슈퍼에서 들린 총성
3. 발견 당시의 모습
4. 범행 동기는 강도인가, 원한인가?
5. 범인은 누구인가?
6. 사건 이후


1. 개요[편집]


1995년 7월 30일 일본에서 일어난 의문의 강도살인 사건.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총기 사건인데 2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한 채로 수사 중이다.

2. 슈퍼에서 들린 총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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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슈퍼 사진
1995년 7월 30일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슈퍼마켓 '난페이 오오와다점'에는 여자 3명이 아르바이트 중이었는데 이들은 파트타임 근무자 이나가키 노리코(稲垣則子, 47세)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고생 야부키 메구미(矢吹恵, 17세), 또다른 여고생 마에다 히로미(前田寛美, 16세)였다. 이하에서는 이나가키를 A, 야부키를 B, 마에다를 C라고 약칭하여 설명한다.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사건 당일 시간대별 상황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
  • 시간은 정확하지 않으나 근무시간이 되어 파트타임 직원 A를 지인(남자)이 슈퍼마켓까지 차로 태워 주었다. A는 이 남자와 근무시간이 끝난 후 음식점에 가기로 약속하고 차에서 내렸다.
  • 역시 시간은 정확하지 않으나 근무시간을 앞두고 여고생 B가 자전거로 출근했다. B의 집은 슈퍼마켓에서 불과 2-3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 오후 5시: A와 여고생 B가 각각 3, 2번 계산대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이 시간에 다른 남자 근무자는 퇴근해 가게에는 여자 근무자밖에 없었다.
  • 오후 5시 30분: 4~50대 정도로 보이는 하얀 셔츠에 회색 바지 차림을 한 남자가 슈퍼 근처를 배회하는 모습을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나가던 60대 부부가 목격했는데 아내의 증언에 의하면 남자는 가게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슈퍼 손님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 오후 6시 30분: 슈퍼 인근 약 100m 정도 떨어진 공원에서 현지 자치회가 주최하는 오봉춤 대회가 열렸다. 가게 주변은 오봉춤 행렬 때문에 소란스러워졌다.
  • 오후 6시 50분: 당일 비번이었던 여고생 C가 가게에 들렀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여고생 B를 만나 근무 일정을 확인할 참이었다고.
  • 오후 7시 59분: 손님이었던 20대 여성이 후일 증언한 바에 의하면 여고생 C는 'B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며 이 사람은 "A가 '일이 끝난 뒤에 집안 제사를 지내러 간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고 증언했다.
  • 오후 8시: 가게에는 C를 포함해 여자 3명만 남았다. 오후 9시에 가게 문을 닫지만 A는 1시간 일찍 계산대를 닫고 매상을 2층 사무실로 가지고 올라갔다.
  • 오후 8시 30분: 계산대에는 B와 C만 남아 있었는데 이때 물건을 사지 않고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는 6~70대 남자가 목격되었다. 이를 목격한 50대 여성[1]에 따르면해당 남성은 몇 분간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매대와 계산대 주변만 돌아다녔다고 한다.
  • 오후 8시 51분: 가게 문을 닫기 직전 C가 우유콘돔을 샀다. 이는 이후 발견된 영수증에서 확인되었다.
  • 오후 9시: 오봉춤 행렬이 탄고부시(탄갱절)을 부르면서 절정에 달했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B는 일하던 계산대 매상금을 들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갔으며 A가 이 돈을 받아 금고에 넣었다.
  • 오후 9시 6분: A가 가게 불을 끄고 문단속을 했다. 같은 시각에 근처를 운전하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이 슈퍼 옆 골목에 남자의 그림자가 있는 것을 목격했지만 차의 라이트 불빛 때문에 얼굴은 볼 수 없었다.
  • 오후 9시 7분: 오봉춤 행렬은 마무리되었고 주위는 조용해졌다.
  • 오후 9시 15분: A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말한다. 이는 통화기록 조회로 확인되었다.
  • 오후 9시 17분: 근처를 지나가던 고등학생 커플이 슈퍼에서 총성 5번을 들었다. A가 지인과 통화한 지 불과 2분 30여 초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 오후 9시 20분: A의 지인이 슈퍼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정차하고 A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 오후 9시 45분: A의 지인이 25분 남짓 기다렸으나 A가 나오지 않자 먼저 음식점으로 갔다고 생각하고 확인해보려고 음식점으로 차를 돌렸다.
  • 오후 10시: A의 지인은 음식점에 A가 없음을 확인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평소 알고지내던 음식점 여주인과 동행하여 다시 슈퍼로 향했다. 10시에 도착한 후 여주인이 사무실로 들어가 보기로 했는데 혹시 여직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중일지도 몰라서였다. 이때 여주인은 사무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여주인은 키가 150cm밖에 되지 않아 문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사무실 앞에서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어 일단 A의 지인에게 돌아왔다. 이후 두 사람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총에 맞아 죽은 세 여자를 발견했다.

3. 발견 당시의 모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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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A와 B는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였기 때문에 범인은 이들이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에 침입한 것으로 보였다.[2] A는 사무실 금고 옆에 축 늘어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머리에 총알 2발을 맞은 채였다. 또한A의 머리에 총구의 열 때문에 화상을 입은 흔적이 있으므로 A는 총구가 머리에 가까운 상황에서 총알을 맞은 것으로 보였다.

B와 C는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금고 앞에서 마주본 자세로 서로의 손을 잡은 자세로 접착테이프로 손이 묶이고 입이 막힌 채로 각각 머리에 1발씩 총을 맞아 죽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범인은 먼저 A를 쏘아 죽인 다음 B와 C를 위협해 손을 접착테이프로 묶은 뒤 총을 쏜 듯한데 이 모든 행동이 불과 몇 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기묘하다.

범인은 나머지 1발을 금고에 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범인은 금고를 열거나 사무실을 뒤지거나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간 것처럼 보였다.

최초 현장조사에서는 사건 이전에 인근에서 유사한 강도사건이 5건이나 있었으므로 이 사건도 강도범행 중 일어난 우발적 살인으로 보았다.

처음 추측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범인은 아르바이트생 B와 C가 마주보는 자세로 손을 테이프로 묶고 입도 역시 테이프로 막아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47세 여자 A를 협박하여 금고를 열려고 하였으나 A가 저항하자 구타했다.[3] 이 과정에서 범인의 이름이나 행적에 관한 내용이 누설되자 A의 머리에 총 2발을 쏘고 정보를 들은 아르바이트생 B와 C도 죽였다. 이후 범인은 금고를 열고자 했으나 실패하자 분노로 금고를 향해 1발을 쏨으로써 총 5발을 쏘았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해부소견과 현장 조사메모를 분석하여 범인이 총 5발을 발사하긴 했으나 1발을 금고에 쏘진 않았고 피해자가 살해된 순서가 처음 추측과 달라 강도가 벌인 우발적 살인이 아님을 알았다.

범인은 아르바이트생들을 테이프로 구속하고 바닥에 눕혀 저항할 수 없게 한 후 지근거리에서 발사하여 살해했다.[4] 범인은 이후 A가 도망치거나 저항하지 못하도록 A의 다리에 총을 쏘았는데 이때 다리를 관통한 탄이 금고에 흔적을 남기고 도탄되어 사무실 책상 밑에서 발견되었다. 범인은 금고를 향해 화풀이를 한 게 아니었다.

A의 이마와 등의 타박상이 생긴 순서는 불명확하지만 다리에 부상을 입은 피해자를 벽쪽으로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등을 타격하고 마지막으로 이마의 정중앙을 타격하여 주저앉힌 듯하다. 벽에 등을 기댄 자세로 주저앉은 A의 이마에 사형하듯 총구를 대고 좌우로 두 발을 발사하여 살해하였다.

혈흔과 지문감식을 통해 범인은 여고생 둘을 먼저 살해했고 A도 살해되기 전에 금고로 간 적이 없으며 범인도 금고를 열려고 어떤 시도를 하지도 않고 현장을 떠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래서 경찰은 강도가 아닌 원한살인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형했다.

4. 범행 동기는 강도인가, 원한인가?[편집]


범인의 범행동기를 두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일단 범인이 슈퍼의 매상을 노리고 권총을 들고 가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분석이 있었다. 금고에 1발을 쏜 점으로 미루어 보면 금고에서 돈을 훔치려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그대로 도망쳤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강도라고 보기엔 뭔가 사건의 정황이 석연치 않았다. 만약 매상을 노렸다면 권총으로 여자들을 협박해서 금고를 열게 해야 정상적일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 남은 범인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사무실에 들어가서 사람을 죽인 뒤 그대로 나온 것처럼 보여서 문제였다. 범인이 금고를 열지 못해서 피해자들을 죽였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A는 금고를 여는 방법을 알았다. 그렇다면 A를 위협해 금고를 열어 매상을 탈취한 뒤 그대로 달아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범인은 죽은 여자들의 지갑을 뒤지지도 않았다. 따라서 범인의 목적은 처음부터 살인에 있었고 돈은 상관없었던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또 A가 총 2발을 맞았다는 점, 그리고 A가 생전에 커터 날이 든 협박 편지를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A를 노린 범행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A만 죽이려고 했는데 현장에 B와 C도 있어서 목격자를 없애려고 같이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 B와 C의 손을 굳이 묶고 살해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당시 금고 안에는 주말 매상금 약 5백만 엔(한화 약 5천만 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다룬 일본 방송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달리) A는 금고를 잠그는 방법은 알았지만 여는 방법은 몰랐다고 설명했으며 발견 당시 금고는 잠긴 상태였다고 한다. 범인이 금고를 열려고 시도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금고 열쇠는 꽂힌 채였는데 금고는 다이얼+열쇠 이중잠금 형태였기 때문에 다이얼은 풀리지 않았다.

1층 슈퍼에서 2층 사무실로 가려면 슈퍼 주차장과 연결된 외부 계단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정산할 때 계산대 속 돈통을 통째로 들고 밖으로 나온 후, 길을 걷다 오른쪽으로 돌아 주차장에 진입한 후 외부 계단을 타고 사무실로 올라갔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해당 슈퍼의 매상금이 움직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므로 본 사건이 금전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5. 범인은 누구인가?[편집]


사무실에서 발자국 10개가 채취되었는데 모두 같은 족흔이었기 때문에 단독범이라고 추정되었다. 이 발자국에서 미세한 철분과 점토, 이끼가 검출되었는데 철분은 용접 과정에서 나온 듯하였다. 범인이 철공소에서 일하거나 그곳을 출입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또 범인은 총기 사용에 매우 능숙한 것 같았다. 범인이 사용한 필리핀제 권총은 명중률이 썩 좋지 않은 총기였는데 피해자 셋 모두 뇌의 중추에 총탄을 정확하게 맞았기 때문이다.

주간문춘(週刊文春)의 보도에 의하면 구치소에 수감된 한 폭력배가 다른 구치소의 지인에게 편지를 보내 이 사건에 자신이 일부 개입했고 범인은 전직 자위대 장교라고 밝혔다고 한다. 총기 사용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범인이 자위대 출신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니혼 TV와 산케이신문 등은 2002년에 체포된 70대 남성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 근거로 이 사람이 1997년에 오사카에서 일으킨 강도 미수사건의 총탄의 강선 자국이 이 사건의 총탄 강선 자국과 유사했다는 점, 사건 당시 하치오지시에 이 남자가 거주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사건은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의혹을 제기한 주간신쵸출판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승소하기도 하였다.

한편 하치오지시 경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중국에서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된 사람이 공안에게 증언하길, 알고 지내는 사형수가 하치오지시 사건에 관여했다고 한다. 이 사람은 2010년 3월에 중국에서 처형되었다. 이 사람이 지목한 사형수와 면담하게 해 달라고 하치오지시 경찰이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결국 이 사형수도 처형되고 말았다.

6. 사건 이후[편집]


사건 이후 슈퍼마켓은 해바라기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지만 결국 1998년에 폐업하고 가게 터는 주차장이 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4년이 지난 1999년에 같은 하치오지시의 담배 가게에서 주인 모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 역시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2010년 일본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어 사형에 해당되는 범죄는 공소시효를 영구중단하기로 했다. 이 사건도 소급 적용되어 공소시효가 중단되었다.

2014년 9월에도 강도살인사건 용의자를 찾는 포스터를 하치오지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3년 여름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본부에 '캐나다에 사는 중국인이 사건의 진범을 알고 있다.'는 제보가 입수되었다. 이 중국인은 위조여권을 들고 일본을 거쳐 캐나다로 출국했다. 수사본부는 인터폴을 통해 캐나다에 협조 요청을 구해 이 중국인을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해 일본으로 송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이 중국인은 캐나다에서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수사본부에서 이 남자를 강도 높게 심문했으나 남자는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애당초 이 사건의 진범을 알고 있다는 제보자의 주장은 과장되었던 것. 결국 수사본부는 위조여권 사용 혐의만으로 이 남자를 기소할 수밖에 없었고 이 남자는 캐나다로 추방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사건에서 여고생 둘을 구속하는 데 쓰인 접착 테이프를 당시 기술로는 분석할 수 없었으므로 손상을 막기 위해 그대로 보존하였다. 2015년 2월 그 테이프를 특수 기체를 이용해 손상을 최소화하며 접착면을 분리함으로써 지문의 일부분을 알아내었다. 경시청은 지문의 특징점 중 8점(1억 명 중 1명 일치)을 찾아 전과자 천만 명의 지문 데이터에서 일치하는 일본인 남자 한 명을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확인된 지문은 용의자가 이전에 분재절도사건 용의자로 체포되었을 때 채취한 것이었다. 사건 당시 하치오지 근방인 다마(多摩) 지역에 거주했고 택시운전수로 근무 중이었으며 현장에서 목격되었던 차종과 일치하는 흰색 차량의 소유자라 참고인으로서 사정청취를 받은 이력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2005년에 60대로 이미 병사했고 특징점이 12점에 미달하여 완전 일치는 아니었다. 당시 근무지의 타임카드를 확인한 결과 알리바이가 있을 가능성도 높았거니와 무엇보다 용의자 친족에게 실시한 지문 유전자 감식이 불일치하여 실행범이 아닐 가능성이 부각되어 흐지부지되었다. "지문유사"인 남자는 확정될까 발생 20년의 하치오지 슈퍼 사살사건, 급전개의 향방은?

사건이 일어난 지 22년이 지난 2017년에도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청과 경찰청 하치오지 경찰서는 현상금 지급 기한을 1년 늘리고 사건의 범인 확정에 유력한 증거를 제출하는 사람에게 주는 현상금을 지역 민간단체의 현상금과 합쳐 최대 6백만 엔을 현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19년 7월 23일 경시청에서 사건 해결을 위해 당시 사건 현장을 3D로 재현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당시 촬영한 사진과 영상 등의 주변 정보를 제공해 주길 재차 요청하였다.

2020년 7월 28일, 한 일본인 남자가 아는 중국인으로부터 해당 사건을 저질렀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하여 다시 수사에 들어갔다. 이 일본인 남성은 폭력단 관계자로 2004년 지인인 중국인의 생활편의 등을 봐 주었는데 그 중국인이 범죄에 사용할 승용차를 구하기 위해 같이 하치오지에 가던 중 하치오지에서 미해결 상태인 강도살인 사건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이 중국인의 주변의 사람들 말을 종합해 보면 하치오지 슈퍼 강도살인 사건임을 확신한다고 증언하였다. 조사본부는 이 중국인과 그의 조직단에 관한 정보를 얻었으나 발견하지는 못하였다고 전했다. (일본어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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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인 혹은 이 6~70대 남자를 제외하고 마지막 손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와 B의 시신의 손을 묶은 테이프를 풀고 손을 펼쳐보니 자전거 열쇠가 나왔다"고 증언했다.[3] 피해자의 이마와 등에서 폭행으로 생긴 타박상의 흔적을 발견했다.[4] B가 맞은 총알은 관자놀이를 관통했고, C가 맞은 총알은 두개골을 부수었으나 관통되지 않고 허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