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원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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兔園策府 / Rabbit Garden Imperial Book Repository

1. 개요
2. 내용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국의 고대 유서(類書)[1]. 당나라 시대부터 송나라 시대에 걸쳐, 민간 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쓰인 교육용 서적이다. 당나라 용삭(龍朔) 2년(662년)부터 인덕(麟德) 1년(664년) 사이의 기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총 30권 또는 총 10권 짜리 두 종류가 존재했으며 48개 부문으로 구성되었다. 당태종의 아들인 이운(李惲)이 직속 관리인 두사선(杜嗣先)에게 편찬을 명하여 만들어졌다. 우세남(虞世南)이 쓴 것이라는 얘기도 전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 내용[편집]


책 이름에서 '토원(兔園)'[2]은 이운이 소유한 정원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다. 고대의 도서 목록에는 중구난방으로 '토원책(兔園策)', '토원책(兔園冊)', '토원책부(兔園冊府)', '토원책자(兔園冊子)' 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됐다.

서당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라고는 하지만 고급 과정에 속하는 교재였는데, 과거 시험에 대비하는 수험용 참고 서적같은 성격을 띠었다. 당나라 시대 과거 시험 중 하나인 상과(常科)에서 출제되는 '시사, 정치 문제를 묻는 시험 문제'[3]와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의 형식을 취했다. 전체 문장이 문답형으로 쌍으로 짝을 지어 이루어진 대구(對句) 형식이며 변려문(騈儷文)[4] 형식으로 쓰여졌다.

원나라 시대 이후로는 사라져서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나라 때 들어와 막고굴에서 책의 잔편(殘片) 다섯 조각이 발견되어서, 현재는 서문 전체와 제1권의 내용 일부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원래 전체 서적 규모의 약 1/10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와 현대(당나라 시대)의 인문, 사회, 자연의 여러가지 다양한 문물과 시사, 상식, 정치 등에 관한 지식을 실었고, 유교 경전 및 역사서를 인용하여 설명을 붙였다. 통속적인 서술 방식을 택하여 이해하기 쉬웠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토원책부≫는 내용이 천박하다 하여 무시하였기 때문에, 원래 이름보다도 ≪토원책자(兔園冊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당시 중국의 교육 상황과 과거제도에 관련된 여러 가지 측면들을 살펴볼수 있는 1차 자료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3. 관련 문서[편집]



[1] 여러 가지 책, 글들을 내용이나 항목에 따라 분류ㆍ편찬한 책. 현대의 백과사전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주된 목적은 여기저기 흩어진 글들을 한 데 모아놓는 데 있었다. [2] 양원(梁園)이라고도 한다. 오늘날의 허난 성 상추(商丘)시에 있었다. [3] 시책(試策).[4] 중국의 육조시대(六朝時代)에서 당나라 시대에 걸쳐 유행한 문체. 문장이 대구로 구성되어 읽을 때 운율감을 준다. 4자로 된 구를 앞에 두고 6자로 된 구를 뒤에 배치하는 고정된 형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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