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라인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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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미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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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29대

30대
존 루스
캐롤라인 케네디
윌리엄 해거티

미합중국 제29대 주일미국대사
캐롤라인 부비에 케네디
Caroline Bouvier Kennedy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roline_Kennedy_US_State_Dept_photo.jpg

출생
1957년 11월 27일 (66세)
미국 뉴욕 맨해튼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부모
아버지 존 F. 케네디 (1917년 5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 (향년 46세)
어머니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1929년 7월 28일 ~ 1994년 5월 19일) (향년 65세)
형제
아라벨라 케네디[1]
존 F. 케네디 주니어(1960년 11월 25일 ~ 1999년 7월 16일) (향년 39세)
패트릭 케네디
배우자
에드윈 슐로스버그(1986년 결혼~2015년 별거)
자녀
장녀 로즈 슐로스버그(1988년생)
차녀 타티아나 슐로스버그(1990년생)
장남 존 슐로스버그(1993년생)
학력
Convent of the Sacred Heart[2]
하버드 대학교 (영화예술학 / B.A.)
컬럼비아 대학교 (법학 / J.D. )
정당


종교
가톨릭(세례명:가롤라)
경력
제 29대 주일미국대사(2013~2017)
제27대 주호주미국대사 (2022~)

1. 개요
2. 생애
3. 기타
3.1. Sweet Caroline의 주인공



1. 개요[편집]



파일:1280px-JFK_with_Caroline_on_the_Honey_Fitz,_1963.jpg

1963년 8월 25일[3], 아버지 존 F. 케네디와 함께.

존 F. 케네디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딸이자 미국의 외교관.

케네디의 네 자녀 중 현재까지 살아서 자손을 남긴 유일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302378-18F4D02A000005DC-313_634x685.jpg

케네디가 가족사진
캐롤라인은 1957년 11월 27일 존 F. 케네디재클린 케네디의 딸로 태어났다. 위로 아라벨라라는 언니가 있었으나, 언니 아라벨라는 1956년에 사산되어 죽어서 태어났다. 이후 1960년 11월 8일 아버지 존 F. 케네디리처드 닉슨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60년 11월 25일 남동생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태어났다. 그렇게 캐롤라인은 만 3세의 나이에 대통령 영애로서 백악관 생활을 하게 된다.


파일:external/assets.nydailynews.com/john-f-kennedy-jr.jpg

부친의 장례식에서의 모습[4]
그러나 1963년 8월 9일,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 된 남동생 패트릭이 제왕절개 여파로 호흡곤란에 빠져 사망한데다 같은 해 11월 22일 아버지암살당하면서 6살 생일을 5일 앞두고[5] 백악관을 떠나게 된다.


파일:external/img2.timeinc.net/082114-celebrity-wedding-dresses-20-567.jpg

슐로스버그와의 결혼사진
대학교는 하버드 대학교 영화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만 28세이던 1986년 12세 연상의 전시 디자이너 에드윈 슐로스버그와 결혼했다. 1988년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을 상위 10% 성적으로 졸업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으며 슬하에 3남매를 두었다.



  • 장남 잭: 1993년 1월 19일생(31세).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 로스쿨과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일본의 대기업들에서 일했고, 미국 국무부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파일:caroline-obama_fzrdgc.jpg

오바마 후보와 함께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를 공개 지지했고, 오바마 행정부 2기(재선 후)인 2013~2017년 기간에 주일 미국대사로 재직했다.[6]

1999년 7월 16일 남동생이 비행기 사고로 올케와 함께 사망하면서, 케네디의 자녀 중에서는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있다.

주일미국대사로 재직하면서 일본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이후에도 미일관계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등 미국 내의 대표적인 지일, 친일 인사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고래사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일부 와패니즈들로부터 타국의 문화를 존중할 줄 모르는 오만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아베 신조 내각 각료들에게 미국 베스트셀러 파친코(소설)을 읽어보라고 면전에서 권한 걸 보면,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긴 하지만 마냥 친일인사로 보기도 힘들다.

대사 재임 시절 유튜브에 캐롤라인 자신이 일본의 가수 겸 탤런트인 호시노 겐의 노래인 코이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1년 12월 미국의 주 호주 대사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5년 만에 다시 공직에 복귀하였다. 가자 사망날은 언니(1956년:1살때 사망) (첫째 남동생:존 F. 케네디 주니어:1999년 7월 16일 비행기 사고로 사망)(둘째 남동생:1963년 사망) (아버지:존 F. 케네디 1963년 사망) 어머니: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1994년 사망) 참고로 아버지와 둘째 남동생은 같은해 사망


3.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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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로즈 슐로스버그는 외할머니 재클린 케네디와 매우 닮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상술한 것처럼 파친코(소설)에 큰 인상을 받은 듯하며 이후로도 이 책을 자주 추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책이 한국판 브루클린이라 평해질 정도로 재일교포의 억압받는 삶, 그리고 등장하는 4대에 걸친 세 여성의 억압된 삶을 그려 낸 대하드라마임을 감안해보면 미국의 대중 정치인으로서 어필하기 좋은 소재인 것은 사실이다.


3.1. Sweet Caroline의 주인공[편집]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인 Sweet Caroline의 캐롤라인이 바로 캐롤라인 케네디이다. 다이아몬드가 잡지 표지에 말을 타고 있는 11세의 캐롤라인의 모습[7]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파일:caroline-kennedy-sweet-caroline.jpg
바로 이게 그 잡지 표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8회 이닝 교대 시간에 부르는 노래로 사용되고 있다.



  • 캐롤라인 케네디가 레드삭스 경기 중 직접 Sweet Caroline을 부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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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케네디 부부의 장녀로 사산되었다.[2]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가톨릭 미션스쿨[3]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기 3개월 전에 찍은 사진이다.[4] 천진난만한 두 아이의 뒤로 에드워드 케네디, 로버트 케네디의 침통한 표정이 보인다.[5] 남동생 역시 3살 생일을 3일 앞두고 아버지를 잃었다. [6] 그의 할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 시니어도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대통령 재임기인 1930년대에 주영미국대사로 재직했다.[7] 노래 발표가 11살 때이고 말을 탄 사진은 4살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