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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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포스
Κάλλιππος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352/351년
출생지
그리스 아테네
사망지
이탈리아 레기움
지위
시라쿠사 참주
국가
시라쿠사
가족
필로(아버지)
히포팔로스(형제)
시라쿠사의 참주
재위
기원전 354년 ~ 기원전 353년
전임
디온
후임
히파리노스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시라쿠사 7대 참주.

2. 생애[편집]


아테네 출신으로 필로의 아들이라고 한다. 형제로 히포팔로스가 있었다. 아테나이오스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그는 디온과 함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편지 중 하나에서 아테네에서 자신을 따르고 나중에 디온을 살해하는 데 가담한 두 명의 친구를 이름 없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철학에 대한 공감으로 친구가 된 게 아니라 평범한 우정을 바탕으로 친구가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플라톤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칼리포스와 히포팔로스는 플라톤의 제자로 간주될 수 없다. 물론 플라톤이 제자가 자신의 친우를 살해한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그들을 배제한 것일 수도 있다.

소 디오니시오스에게 축출된 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머물던 디온과 친구 사이가 되었으며, 기원전 361년 아테네 해군에서 복무하다가 메토네에서 타소스로 망명한 칼리스트라토스를 구출하려고 허락도 받지 않고 출진했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자발적으로 망명하기로 하고, 디온이 모집한 용병대를 따라 시라쿠사로 가서 소 디오니시오스를 타도하기로 했다. 기원전 357년 시라쿠사에 입성했을 때, 머리에 화환을 쓴 채 디온 옆에 걸어갔다. 그러나 상황이 디온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다가 급기야 디온의 정적이엇던 헤라클레이데스가 디온의 추종자들에게 암살당하는 바람에 민심마저 잃어버리자, 그는 정변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소 디오니시오스로부터 뇌물을 받고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진위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기원전 354년, 그는 정변을 일으켜 디온의 집으로 쳐들어가 디온을 살해하고 디온의 누이 아리스토마체와 아내 아레테를 감옥에 수감했다. 그는 디온 살해를 "시라쿠사인들을 폭군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의거"라고 선언했고, 시민들은 이에 호응해 그를 통치자로 세웠다. 그러나 그의 입지는 불안정했다. 디온의 친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확고하게 얻어내려면 군사적 위업을 달성해야겠다고 판단하고, 원정을 감행하 카타나를 장악하고 메사나를 공격했다가 패배한 뒤 해협 건너편의 레기움을 점령했다. 그는 카타나와 레기움에 자치권을 부여했다.

기원전 353년, 대 디오니시오스의 아들이자 디온의 조카인 히파리노스가 군대를 이끌고 도시를 장악했다. 이로 인해 시라쿠사로부터 들어오던 자금을 영영 받을 길이 없게 되면서, 용병들에게 급료를 지급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기원전 352년 또는 351년, 두 병의 병사 렙티누스와 폴리스페콘이 디온을 단검으로 찔러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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