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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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arl_Denke.jpg[1]

이름
Karl Denke
생일
1860년 2월 12일[2]
사망
1924년 12월 22일
향년
64세

1. 개요
2. 생애
2.1. 초기
2.2. 범죄
3. 기타



1. 개요[편집]


독일식인 연쇄살인마.

독일의 연쇄살인범이자 사람고기 장수로 1921년부터 1924년까지 3년 동안 최소 30명 이상의 노숙자, 부랑자, 여행객을 살해한 후에 사람고기를 돼지고기로 속여 시장에서 팔았다.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1860년 2월 12일 폴란드 접경지대에 있는 독일의 오버쿤젠도르프[3]의 작은 탄광촌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덴케는 어린시절 학교에서 말썽만 일으키는 다루기가 까다로운 아이였으나 12살때 가출을 한것 빼고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덴케의 어린시절은 다른 범죄자들과는 달리 평범했다. 덴케는 12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와 정원사 견습생으로 일했다.

덴케는 25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재산 일부를 상속받고 그 돈으로 오베르쿤젠도르프 외곽에 작은 농장을 사들였지만, 농사일에는 소질이 없었는지 마땅한 돈을 벌지 못하자 농장을 팔아버린다. 그 후에는 뮌스터베르크로가서[4] 마을에 2층짜리 집을 샀다. 그곳에서 덴케는 작은 가게를 열어 혼자 생계를 꾸려 살기 시작했다. 덴케는 마을에서 아이들을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는 마을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지역 루터교 교회의 신자이자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 여성과의 관계도 하지 않는등 정직하고 고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자선 활동을하고 노숙자들과 여행객들을 식사를 대접하고 재워주는등 지역 사회에서 평이 좋은 사람이었으며 사람들에게 '파파 덴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게 되면서부터 덴케의 삶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각한 경제난이 들이닥치면서 물가는 엄청나게 치솟았고 덴케도 가게를 닫고 집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 덴케는 고향인 오버쿤젠도르프로 돌아가 아파트에 전세를 얻었다. 덴케는 그곳에서도 조금이라도 돈을 벌 생각으로 집옆에 작은 노점상을 차리게 된다. 덴케는 노점상에서 구두끈, 멜빵, 벨트, 비누와 같은 생필품들을 팔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마을 장터에 나가 물건을 팔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집에서 만든 쇠고기조림을 팔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굶주리는 인구가 너무나 많았기에 고기는 곧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덴케는 풍족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경제난 속에서도 덴케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2.2. 범죄[편집]


덴케의 살인행각은 1924년 12월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1924년 12월 21일 그가 임대하고 있던 아파트의 세입자였던 택시 운전사 가브리엘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강도가 침입한거라고 생각하고 내려가자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덴케가 도끼로 자신을 공격했다고 소리치며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빈센츠 올리비에라는 노숙자 청년이 있었다. 가브리엘은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청년을 경찰서에 데려다주었고, 도착한 경찰이 덴케를 체포하자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덴케는 경찰의 심문을 받자 빈센츠 올리비에라는 청년이 와서 며칠간 묵을 방을 내주려 했는데, 청년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더니 자신을 공격했고, 자신은 정당방위로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덴케의 진술은 올리비에의 진술과는 엇갈렸기에 사실 확인을 위해 일단 덴케를 유치장에 넣는다. 그리고 그날 저녁 11시 30분 덴케는 유치장 천장에 멜빵으로 목을 매달아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덴케의 이러한 죽음은 매우 이상하였지만 누구도 이때까지는 그의 잔인한 실체를 몰랐다.

그 후, 덴케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경악을 하게 된다. 그가 지금껏 저지른 막장 행각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집에서는 커다란 통에 절여져 있는 정체불명의 고기와 벽장에 걸린 수많은 피 묻은 옷들 벽에는 수십 쌍의 멜빵과 벨트가 있었는데 돼지가죽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 가죽이었다. 구두끈조차 사람 가죽이나 머리카락을 꼬아서 만든 것들이었다. 그리고 12개의 신분증, 나무로 만든 톱, 곡괭이, 칼, 31명의 사람 이름과 그들을 죽인 날짜, 몸에서 나온 고기의 양 등을 기록한 장부 그리고 아래에 적힌 수많은 뼈들이 발견되었다.

집에서 발견된 뼈는 다음과 같다.
  • 16개의 대퇴골
  • 15개의 중간 크기의 긴 뼈
  • 네 쌍의 팔꿈치 뼈
  • 한 쌍의 쇄골
  • 2개의 어깨뼈
  • 8개의 발뒤꿈치와 발목뼈
  • 120개의 발가락뼈와 기절골
  • 65개의 발뼈와 중수골
  • 150개의 갈비뼈
  • 한 쌍의 상부 견골
  • 9개의 노골

파일:칼 덴케의 집.jpg
덴케가 살았던 집(현재 모습)

이웃사람들은 평소 덴케의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고, 가끔씩은 그가 피가 가득 든 양동이를 마당에 쏟아 버리거나, 밤에 망치질하는 소리와 톱질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다. 또한 심각한 경제난이 있었던 기간에도 덴케가 파는 고기의 공급량은 줄지 않는것을 보아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덴케에게서 고기를 저렴하게 살수있었고 마을에서 실종사건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덴케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덴케가 자살을 했기 때문에 덴케의 범행동기, 살해방법등이 외부에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에 따르자면 범행동기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고기를 얻기 위해서 자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기타[편집]


  • 당시 독일에는 전쟁의 영향을 받아 기근에 시달려 식인을 일삼는 범죄자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는 프리츠 하르만, 게오르크 그로스만 같은 연쇄살인범들이 있다.

  • 1999년, 지비체에는 작은 전시관이 마련되어, 덴케가 사람고기를 절임할 때 썼던 칼과 통, 단지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이 전시되어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아직도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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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 후에 찍은 사진, 덴케의 유일한 사진이다.[2] 1870년 8월 12일생이라는 말도 있다[3] 현재 폴란드 영토[4] 현재 폴란드 지비체(Zieb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