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훈(야구선수)/선수 경력/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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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반기
1.1. 시즌 전~시범경기
1.2. 개막~4월
1.3. 5월
1.4. 6월~7월
2. 후반기
2.1. 7월
2.2. 8월~9월
3. 총평


1. 전반기[편집]



1.1. 시즌 전~시범경기[편집]


연봉이 8천만 원으로 2천 2백만 원이 올랐다.

스캠 협살 훈련 도중 넘어져 뇌진탕 증세를 보였으나 회복했다.

3월 13일 시범경기에서 2회초 실책성 플레이와 9회말 어처구니없는 투수 앞 번트를 쳐서 까였다.


1.2. 개막~4월[편집]


개막전에서 블로킹 실패 및 약한 공격력으로 까이는 중.[1] 하지만 첫번째 경기였고, 스프링 캠프 때 뇌진탕 부상의 후유증인지는 모를 상황이기에 아직 온전한 실력이라고 재단하기엔 이르다.

3월 30일까지 계속 주전으로 나오고 있지만 타율이 7푼대로 심하게 좋지 않다. 아무리 포수라지만 1할대도 못뚫는다면 2군행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투수리드도 점점 이상해져 조바깥 차동문같이 한쪽만 유도하거나 어이없는 코스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냥 젊은 조동문)

3월 31일 SK와의 홈 경기에서 제이슨 휠러와 같이 배터리를 맞췄고 이날 제구가 거친 휠러와 어떻게든 4회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이끌어내며 위기를 모면하나 했지만 다음타자인 최정을 거르고 로맥과의 승부를 건다. 하지만 로맥에게 거한 만루 홈런을 맞으면서 7-0으로 승기를 완전히 내주게 되었고 결국 13-1로 무기력 패배하게 되었다.

4월 1일 경기에서도 역시 공수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팀은 스윕당했다.

4월 3일 경기에서는 3타수 2안타 4득점 1타점 1도루(!)를 기록하며 타격에서 모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참고로 개인 통산 첫 도루. 타율도 .150까지 올렸다.

4월 14일 경기에서 4타수 2안타를 치며 전날 까지 부진했던 타격감을 조금 끌어 올렸다. 특히 중요한 순간 1타점 적시타를 치며 상대 선발투수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4월 18일 두산전 8회초에 지성준의 대타로 나섰으나, 풀카운트 상황에 박치국의 투구가 최재훈의 왼쪽 손목을 강타하였다. 맞은 후, 한동안 그라운드에 고통을 호소하면서 누워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1루로 출루하였다.[2] 역시 무리였는지 주루사가 나왔고 8회 초 공격이 끝나자 이성열이 5년만에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교체되었었다. 만약 부상이 장기화된다면 지성준과 최재훈으로 포수진을 이루고 있던 한화 입장에서는 포수진에 큰 공백이 생기게 된다.[3] 천만다행으로 단순 타박상 진단이 나왔다.

이후에도 외국인 투수들이 나오면 지성준이 주전으로 기용되고 있다. 26일 지성준이 9회 2사에서 역전 결승타를 친 뒤 정우람과 배터리를 이루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28일 2회 1사 1,3루에서 하주석이 삼진당한 뒤 레일리를 상대로 2스트까지 몰리며 광고 소환을 하나 싶었으나 오선진의 도루로 만들어진 2사 2,3루에서 가운데로 몰린 밋밋한 체인지업을 받아쳐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1.3. 5월[편집]


5월 1일 LG전에서 8회초 외인 전담 지성준과 교체출장해 8회말 안타를 때려냈고 희생번트로 진루했으나 2사에서 송광민의 3루 땅볼 이후 태그 아웃을 당했다.

5월 15일 KT전에서 3회 선두타자 삼진, 7회 무사 1루에서 병살타, 9회 1사 2,3루 기회에서 삼진을 당하며 식물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월 23일 두산전에서 첫타석에서부터 147km의 직구에 헤드샷을 당해 쓰러졌다. 금방 일어나서 1루로 걸어가긴 했지만 통증이 있는지, 지성준으로 교체되었다. 이와중에 이용철은 최재훈이 아닌 두산 불펜을 걱정해 논란이 되었다.

5월 26일 SK전 4회말 수비 도중 빠진 송구를 잡느라 홈으로 달려오는 제이미 로맥의 주루 경로를 막아 홈에서 충돌하여 지성준과 교체되었다. 충돌을 피하려고 점프를 한 로맥의 무릎으로 안면을 가격당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충격이 매우 클 것 같은 상황. 23일 두산전에서 헤드샷을 맞은 최재훈이기에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는 송구를 잘못한 좌익수/유격수 책임이 크다.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사과한 로맥이나 걱정하는 타팀 감독 잡지말고 쾌유를 빌어주자.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한다.

5월 27일에는 휴식을 위해 한용덕 감독이 경기 전 간단한 워밍업만 소화하고 바로 퇴근시켰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한화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포수 유망주 김창혁을 정식선수로 시킴과 동시에 1군에 등록시켰다. 다행히 몸 상태가 금새 호전되었는지 30일 다시 정상 출장했고 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때문에 김창혁은 마스크 한번 못쓰고 2군으로 갔지만...


1.4. 6월~7월[편집]


6월 1일 롯데전에서 4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하면서 타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할대였던 타율을 2할 7리로 끌어올렸다.

그후 다시 1할 9푼대를 헤매는 듯 했으나 반전이 시작되었다. 6월 28일 멀티히트를 시작으로 7월 8일까지 19타수 9안타로 타격감각이 굉장히 좋다. 팬들은 이제 야채훈이라 부르지 않게 되어 기뻐하는 중. 타격반등의 이면에는 한용덕 감독이 송광민의 타격시 배트를 느슨하게 잡았다가 칠때 강하게 쥐는 그립을 추천해 준것이 있다고. 이외에도 타격폼과 듣는 음악까지 바꾸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첫 시즌의 활약이 대단했고, 팀도 순항했기에 팬들의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법하다. 당장 팬 커뮤니티 중 하나인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도 칰의지 드립이 난무했었고, 온갖 비판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전반기 말미에 변화에 성공하여 반전을 시작하며 상당한 비난을 가라앉히고 있다. 주전으로서의 첫 시즌인 만큼 변화에 성공한 점은 의미가 크다.

7월 10일에도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타율 2할 3푼 돌파 및 통산&시즌 4번째 도루 성공[4]은 덤. 더블스틸을 의식한 나머지 포수가 공을 던지지 못했다.


2. 후반기[편집]



2.1. 7월[편집]


7월 19일 이틀전 후반기를 시작한 이후 9타수 4안타로 확실히 타격에 변화를 준 뒤로는 안정적인 타구를 생산하고 있다.

이후로도 꾸준히 안타를 생산하며 출루하여 7월 월간 타율 .389로 전체 6위를 기록했다. 7월 시작 시점에서 .201였던 타율도 .249로 크게 끌어올렸고, WAR도 스탯티즈 기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뀌었다.


2.2. 8월~9월[편집]


8월 2일 kt전에서 3회 말 선두 타자로 나와 마수걸이 솔로 홈런을 신고했으며, 1점 차로 지고 있는 9회 말 1사 1루 상황에서 귀중한 안타를 쳐 내어 팀의 역전 끝내기 승리에 공헌했다. 또한 4회 초 실책성 내야 안타로 출루한 황재균의 도루를 정확한 송구로 잡아내며 수비 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8월 5일 NC전에서는 1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교체됐다. 이 시점에서 최재훈의 스탯을 보면 0.256/0.332/0.333, OPS 0.665로 어느새 작년과 별 차이없을 정도로 스탯이 많이 올라왔다. WAR는 0.688로, 이대로라면 올해가 최재훈의 커리어하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8월 11일 한밭 kt전에서 8회말 1사 3루, 3-4로 간발의 리드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몸쪽 높은 공을 가까스로 스퀴즈 번트로 연결시키며 이날의 마지막 타점을 뽑아냈다.

7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포수 중 타율 1위, OPS는 1.006으로 유일하게 1이 넘고있다.

9월 9일 현재 후반기 타율 0.359 OPS 0.938로 리그 수위급 타자가 되어버렸다. 타격도 밀어치고 당겨치고 제대로 타격감이 올라왔다. 도루도 7개로 개인 최다 도루 기록중이다. 8일 소사에게 얻어낸 첫 안타도 최재훈이었다.

9월 11일 삼성전에서도 멀티 히트를 쳐내며 타율이 이젠 2할 7푼 언저리까지 성큼 다가왔다. 이제 발사이즈 타율이 얼마 남지 않았다.

9월 20일 기준 현재까지 도루 8회 시도, 8회 성공으로(성공률 100%) 팀내 5위(이용규 27, 호잉 20, 하주석 11, 이성열 8)에 위치하고 있다.


3. 총평[편집]


최종 성적은 타/출/장 0.262/0.337/0.329 ops 0.666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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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수 리드 문제도 있지만 이건 세이버메트리션상 명확하게 밝힐 수 없는 것이라 제외한다. 그래도 논란을 굳이 말하자면, 강력한 패스트 볼을 지닌 샘슨에게 속구/변화구 비율을 50에 가까이 던지게 했다는 것. 물론 투수가 강력히 요구한 것인지 포수가 이끌어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2] 이 과정에서 선수가 공에 맞았는데도 바로 교체하지 않고 주루까지 시킨 한용덕 감독의 대처가 큰 비판을 받았다. 이전에도 사구를 맞은 하주석을 굳이 교체시키지 않고 주루 플레이를 시켰는데 야수관리 측면의 흠이 꽤 큰 편.[3] 박상언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했고, 허도환정범모도 각각 SK 와이번스NC 다이노스로 떠났으며, 김창혁, 이성원, 오흥진은 육성선수 신분이라 정식 등록이 가능해지는 5월 이전까지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나마 정식 선수인 엄태용도 혈행장애가 있는데다 이 시점엔 발목부상으로 재활군에 내려가있었기 때문에 아예 쓸수가 없던 상황.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4] 한화에 와서 통산 도루를 모두 적립했다! 두산 팬들의 놀라는 반응은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