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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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아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W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05 여름
2007 겨울
2008
2009
2010
2011
2012









파일:한국여자농구연맹 로고.svg
WKBL 베스트 5 (4회)
2007-08, 2008-09, 2011-12, 2012-13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KOREA NATIONAL WOMEN BASKETBALL TEAM

최윤아(崔輪我)
출생
1985년 10월 24일 (38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68cm, 62kg
직업
농구 선수 (포인트 가드 / 은퇴)
농구 코치
학력
서대전초등학교 (졸업)
대전중앙여자중학교 (졸업)[1]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한남대학교 (생활체육학 / 학사)
프로 입단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청주 현대)
소속
선수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 (2003~2004)
안산-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4~2017)
코치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2017~2019)
부산 BNK 썸 (2019~2021)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2021~ )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0003970269_001_20170407161512004.jpg
파일:/image/003/2009/03/30/NISI20090330_0000902117_web.jpg
대한민국 농구 선수 출신 코치.


2. 선수 경력[편집]


대전 출신으로 대전여상을 졸업하고 2003년에 처음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다. 고교 시절 선수가 단 여섯 명일 정도로 워낙 선수층이 얇던 팀 사정상 가드지만, 이 포지션 저 포지션을 뛰고, 많이 움직여야 했던 경험이 있다. 이는 뒤에 더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처음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04년 대만에서 열린 존스컵 국제농구 대회에서 시비가 붙은 대만 선수가 주먹을 휘두르자, 발차기로 응수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몸싸움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계속 대만 선수가 뭐라 그러길래 한 방 날렸다고. 그녀의 성격인 악바리 같은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바로 퇴장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정확한 것은 당시 대만 홈경기로서 대만 선수들의 텐션이 매우 올라가있는 상태였고 대만의 주장이었던 첸웨이쥐안은 무소불위로 비매너 플레이를 일삼고 있었다. 경기 종료 직후 첸은 최윤아의 머리를 수고했다는 의미로 툭툭쳤고 이에 뚜껑이 열려버린 최윤아는 일부러 어깨로 세게 쳤다고 한다. 이에 첸이 주먹을 휘두르자 최윤아가 발차기를 날린 것.[2]

발차기 영상

워낙 넘사벽전설 아닌 레전드 선수들이 많던 레알 신한은행에서 자리를 못 잡다가 2007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주전 가드로 성장했다. 특히, 볼이 없는 상황에서 움직임과 스크린 플레이, 볼 소유를 잘 분배해서 공격을 조율하는 능력이 좋다. 아울러 나름 괜찮은 돌파 실력도 갖추고 있는 편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전여상 시절에 가드부터 센터까지 모두 소화하면서 얻은 장점.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가드로 나와 맹활약하면서 '완소윤아', '햄토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쯤에서 이런 '근성 햄토리'가 생각나면 기분 때문이겠지. 주전 가드로 외국 선수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돌파와 패스를 선보이면서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다만, 8강전에서 본인은 꼬리뼈 부상을 당해 대회가 끝난 후 열린 WKBL에서는 한동안 공백을 가졌다. 수술 후 재활을 거쳐 다시 신한은행의 주전 가드로 복귀해서 맹활약, 팀의 5년 연속 우승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스타 기근에 시달리는 WKBL에서 이 선수를 놓치지 않았고, 2008-2009 WKBL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성적은 정선민이 좀 더 좋은 편이었지만, 정선민이 앞서 6번이나 MVP를 수상했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 발굴 차원에서 최윤아를 밀어 주기도 했다.[3] 물론 그녀 자신의 실력도 출중했다.

그러나 거듭된 부상으로 전성기 때의 기량을 더 이상 보이지 못했고, 결국 2016-17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04년 신한은행의 전신인 현대여자농구단에 입단해 13년 동안 신한은행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최윤아는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를 비롯해 신한은행 7번의 우승에 모두 함께 했다.

최윤아는 168cm로 신장은 작지만 탁월한 경기운영능력과 악착같은 플레이로 팀을 이끌었다. 전주원 코치 은퇴 후에는 팀의 야전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국가대표로도 수차례 활약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한국을 8강으로 이끌며 여자농구의 스타로 떠올랐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17년 6월 2일 의 코치를 맡아 2018-2019 시즌까지 코치직을 맡다가, 신기성 감독이 경질되자 같이 팀을 나가며 16년 만에 신한은행과 결별했다.

이후 KDB생명 팀을 인수[4]하여 재출범하는 부산 BNK 썸의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2시즌 동안 6개 구단 중 5위[5]-6위라는 저조한 순위를 기록하는 바람에 유영주 감독과 모든 코치진이 동반 사퇴했다.

대한민국 여자 농구국가대표팀 감독 정선민의 추천으로 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었다.


4. 여담[편집]


  • 귀여운 외모로 인기 있다. 별명이 농구계의 문근영이었을 정도.

  •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중학교 시절부터 농구를 힘들게 했다.

  • 2011년에 한남대학교에 입학, 학업과 농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다.


  • 2021년 박신자컵 서머리그 중계의 해설을 맡기도 했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9 02:37:02에 나무위키 최윤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학생 수 감소로 2012년에 폐교했다.[2] 19살 신예 선수가 대만의 전주원인 첸웨이쥐안(대만에서는 농구 외에도 여러 광고에 출연하는 등, 그야말로 전주원급 인기였다. 공교롭게도 둘 다 錢씨다.)에게 발차기를 날렸다며 대만 기자들은 분노했으나 이에 최윤아는 전주원 선배님이었다면 나를 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며 대차게 응수. 이미 이 때부터 근성 햄토리의 자질이 보였다.[3] 정선민은 2009-2010 시즌 MVP에 오르며, 7번째 MVP를 차지했다.[4] OK저축은행은 네이밍 스폰서였다.[5] 2019-20시즌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시즌이 조기 종료됐고, 중단 시점의 순위를 최종순위로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