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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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학교 학장
경성인문중등학원
서울여자전문학관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
제1대
주영하
수도여자사범대학
제1대
주영하
제2대
최옥자
제3대
주영하
제4대
최옥자
제5대
주영하
세종대학
제1대
김준섭
제2대
정병선
제3대
강영복
제4대
정병선
제5대
원흥균
세종대학교 총장
제1대
원흥균
제2대
박홍구
제3-6대
이중화
제7-8대
김철수
제9대
양승규
제10대
박우희
제11-12대
신구
제13대
배덕효





출생
1919년 10월 21일
함경북도 회령시
사망
2019년 2월 20일 (향년 99세)
직업
교육자, 목사, 의사
학력
덕수초등학교 (졸업)
숙명여학교 (졸업)
도호대학 (의학부/졸업)
도호대학 (의학박사/졸업)[1]
경성제국대학 (의학박사/졸업)
풀러신학대학원 (선교학, 목회학석사/졸업)
파슨스 디자인 스쿨 (회화, 산업디자인/졸업)
약력
서울여자학원 공동 설립, 초대이사
수도여자사범대학 제2ꞏ4대 학장
수도여자사범대학 대학원 설립, 초대 대학원장
수도여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초대ꞏ4대 교장
세종대학교 학내교회 애지헌 설립
철탑산업훈장 수훈
대 숙명인상 수상
배우자
주영하
자녀
장남 주명건(朱明建)[2], 차남 주장건[3],
장녀 주경란[4], 차녀 주경은[5]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서울여자학원[6], 수도여자사범대학 대학원[7]을 설립하고 수도사대 제2ꞏ4대 학장과 수도사대 부속고 초대ꞏ4대 교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교육자, 세종대학교 학내교회 애지헌을 설립한 목사, 의사.


2. 생애[편집]


1919년 10월 21일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아버지 최원식과 어머니 김원 사이의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세 살 때 서울로 이사했다. 덕수초등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미술 공부를 원했으나 아버지로부터 “나라 없는 백성이 무슨 그림 공부냐.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나라에 보탬이 된다”는 말을 듣고 일본 도쿄 소재 도호대학 의학부(東邦大学 医学部)에 유학해 1942년 졸업하였다. 이후 도호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8], 서울의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9]

세종대학교의 시초인 경성인문중등학원 창립자, 교장이었던 주영하 박사와 1944년 4월 8일 결혼하였고, 신당동에 성동의원을 개원하였다. 1947년 5월 3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국민의 절반이 되는 여성교육이 절실하다고 여겨 부부가 공동으로 출자해 학교법인 서울여자학원[10]을 공동 창립하고 초대 이사에 취임했다. 최옥자 박사는 여성 교육자 배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친정아버지인 최원식은 평소 꿈꾸었던 대학 설립과 교육 발전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희사하여 서울여자학원 설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11] 친정어머니인 김원은 대양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세종대학교 (구)새날관 신축에 김원 이사장의 유산 1,000만원이 기금으로 사용되었다.[12]

주영하, 최옥자 부부는 지금의 중구 명동 충무로 세종호텔 자리에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열었으나, 캠퍼스가 협소해 1957년 지금의 세종대학교 광진구 군자동 대지를 구입하였다.[13] 1958년 12월 수도여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59년 4월 최옥자는 수도사대 부속고 초대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주영하, 최옥자 부부는 여성고등교육의 발전을 도모하면서 대학의 규모를 확장하여 1961년에 수도여자사범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였고, 중등교원을 양성하여 전국에 배출하였다. 1961년 10월 수도사대 제2대 학장에 취임하였다. 1966년, 최옥자는 수도사대 대학원을 설치하고 초대 대학원장에 취임하였다. 1968년 2월, 최옥자는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수도여자사범대학에 호텔경영학과와 관광개발학과를 설치하여 호텔 및 관광 사업을 개척하였으며, 그 공로로 1973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14]

궁중의상 및 전통의상, 서화 도자기에 큰 관심이 있던 최옥자는 1973년 5월 수도여자사범대학 박물관[15]을 건립하였으며, 1973년 9월 1일 수도사대 제4대 학장에 취임하였다. 또한 1975년 복식의 체계적 학문 연구를 위해 한국복식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자유중국, 미국의 주요도시와 캐나다 등지에서 궁중의상을 비롯하여 무용극, 음악, 미술(도자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공연과 전시를 주도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1990년부터 4년간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회화와 산업디자인 학위를 받은 후 귀국전시회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16]

독실한 크리스천인 남편 주영하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최옥자가 1966년에 창립한 한국여성크리스천클럽(C.W.C.)은 50여년의 전통을 갖는 신앙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지금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믿음의 의지가 강했던 최옥자는 60세에 신학공부를 시작하여 미국의 풀러신학대학원[17]에서 선교학과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83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 안수 후, 세종대학교에 학내교회 애지헌을 세우고 목회활동을 했다. 이후 2019년 2월 20일 향년 99세로 별세하였다.[18]


3. 여담[편집]


  • 남편 주영하 박사와 같은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며, 향년 98세로 별세한 남편과 마찬가지로 향년 99세로 장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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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 최옥자 여사에 일본 의학박사 학위[2] 1947.5.3. 출생, 세종대학교 명예이사장 역임[3] 전 세종호텔 대표이사[4] 세종대학교 명예교수[5] 전 세종초등학교 교장[6]대양학원[7]세종대학교 대학원[8] 조선일보 - 최옥자 여사에 일본 의학박사 학위[9] 여성신문 - [기고] 여성 교육에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은 교육자 최옥자 선생[10] 지금의 세종대학교 학교법인인 대양학원의 전신[11] 여성신문 - [기고] 여성 교육에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은 교육자 최옥자 선생[12] 2015년 2월 (구)새날관 철거 후, 2021년 12월 기존의 세종대학교 테니스장 부지에 준공된 건물은 김원 이사장의 이름을 건물명으로 삼아 '김원관'으로 명명되었다.[13] 1962년 광진구 군자동으로의 세종대학교 캠퍼스 이전을 완료하였다.[14] 여성신문 - [기고] 여성 교육에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은 교육자 최옥자 선생[15] 현 세종대학교 박물관[16] 여성신문 - [기고] 여성 교육에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은 교육자 최옥자 선생[17]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파사데나 소재의 초교파 기독교 신학교이다.[18] 여성신문 - [기고] 여성 교육에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은 교육자 최옥자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