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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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관료. 대한민국의 교수, 공무원, 외교관.
1909년 4월 8일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최연국(崔演國)의 3남으로 태어났다. 경성중학교를 거쳐 1935년 와세다대학 법학부 독법과를 졸업했다.
1936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평안북도 내무부 지방과 속에 임명되었고 평안북도 경찰부 경무과 경부를 겸임했다. 1940년 고등관 7등 군수로 승진하여 경기도 용인군수, 여주군수를 지냈다. 1943년 고등관 6등 이사관으로 승급해 경기도 산업부 산업과장으로 광복 때까지 근무했다.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경기도 내무부 사회과장, 보건위생부 사회과장, 광공부 광공과장을 지내고 1946년 사임하여 국민대학관 교수로 부임했다.
1949년 주중화민국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에 임명되면서 관직으로 복귀하여 일본대표부 총영사, 외무부 정무국장을 역임했다.
1954년 대학으로 돌아와 1961년까지 국민대학 법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부학장, 학장을 역임했다.
1960년 5월 12일부터 1960년 10월 7일까지 제6대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1961년 외교관으로 복귀하여 주홍콩 총영사, 주뉴욕 총영사, 외무부 차관, 주콩고 대사, 주뉴욕 대사, 주우루과이 대사, 외무부 대기대사를 지냈으며 이후 부산의 재한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을 지내고 1982년 8월 31일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고등관 이상의 관료 경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관료 부문에 등재되었다.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의 관료. 대한민국의 교수, 공무원, 외교관.
2. 상세[편집]
1909년 4월 8일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최연국(崔演國)의 3남으로 태어났다. 경성중학교를 거쳐 1935년 와세다대학 법학부 독법과를 졸업했다.
1936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평안북도 내무부 지방과 속에 임명되었고 평안북도 경찰부 경무과 경부를 겸임했다. 1940년 고등관 7등 군수로 승진하여 경기도 용인군수, 여주군수를 지냈다. 1943년 고등관 6등 이사관으로 승급해 경기도 산업부 산업과장으로 광복 때까지 근무했다.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경기도 내무부 사회과장, 보건위생부 사회과장, 광공부 광공과장을 지내고 1946년 사임하여 국민대학관 교수로 부임했다.
1949년 주중화민국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에 임명되면서 관직으로 복귀하여 일본대표부 총영사, 외무부 정무국장을 역임했다.
1954년 대학으로 돌아와 1961년까지 국민대학 법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부학장, 학장을 역임했다.
1960년 5월 12일부터 1960년 10월 7일까지 제6대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1961년 외교관으로 복귀하여 주홍콩 총영사, 주뉴욕 총영사, 외무부 차관, 주콩고 대사, 주뉴욕 대사, 주우루과이 대사, 외무부 대기대사를 지냈으며 이후 부산의 재한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을 지내고 1982년 8월 31일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고등관 이상의 관료 경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관료 부문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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