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생애/다이애나와의 결혼과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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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이애나와 카밀라
2. 변명과 반론
3. 결론


1. 다이애나와 카밀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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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했을 때 경기도 파주군 설마리 전적지의 영국군 묘지를 배알하는 모습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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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에 왕세자 부부가 노태우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국 방문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별거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부인 다이애나 스펜서를 등지고 지속한 카밀라 파커 보울스불륜을 저질러서 사람들에게 불륜남으로 낙인찍혔다. 1981년 다이애나와 결혼했다가 1996년 이혼하면서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불륜 관계를 지속한 것이 드러나서 지탄을 받고 인기가 폭락했다. 더더욱 지탄받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부부의 나이 차이인데 찰스는 1948년생인데, 다이애나는 1961년생으로 13살 차이였다. 같은 연배라고 보기 힘들만큼 나이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찰스의 선택이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어머니이기 전에 영국의 여왕이고, 찰스는 아들이기 전에 왕세자다. 엘리자베스 2세는 찰스를 상당히 엄격하게 키웠고, 삶에서 공적인 부분이 크게 차지했기 때문에, 찰스는 애정결핍을 겪었다. 그 와중에 만난 카밀라는 푸근한 성격이라, 찰스에게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1996년에 시끄럽게 이혼하고, 1년 뒤에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슬퍼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으나, 그것도 잠시. 이내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함께 공식 석상에 참석하는 행보를 보여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2005년에 기어이 카밀라와 재혼했다. 일각에서는 '저것도 사랑'이라는 반응을 받았으나 대부분은 '세기의 불륜'으로 비난했고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

생전 다이애나의 인기가 워낙 많았던지라 그녀의 사망으로부터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린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부도덕한 자로 회자된다.

사실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전에 카밀라와 교제하다가 깨졌는데, 다시 카밀라와 재결합했을 때 이미 그녀는 앤드루 파커 보울스라는 사람과 결혼한 상태였다. 즉, 카밀라와 결혼하려면 그녀가 이혼해야지 가능했던 것. 하지만 왕실은 절대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고 싶어했다. 또한 이혼녀는 무조건 죽기살기로 싫어했던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영향도 있었다. 카밀라와는 결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왕세자비에 적합한 여자로 당시 막 성인이 된 다이애나로 선택해 결혼한 것이니 다이애나 입장에서는 사기결혼을 당한 셈이다.

그리고 다이애나를 추천한 것은 카밀라의 영향도 있었는데, 찰스와 비슷한 나이대보다는[2] 다이애나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어린애라면 함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 카밀라가 예상했던 대로 결혼할 당시 이제 갓 21세였던 다이애나는 그렇게 한동안 휘둘리며 살았다. 하지만 카밀라와 영국 왕실도 몰랐던 게 있었다. 다이애나가 생각보다 자기 주장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2. 변명과 반론[편집]



  • 분풀이 차원이라 해도 다이애나 스펜서 역시 명색이 왕세자비 신분인데다 차차기 왕위계승권자인 아들들을 두고 있는데도 공공연히 여러 인물과 불륜 스캔들을 일으켜 왕실 입장을 더 당혹스럽게 만든 것도 사실.
여러 불륜 스캔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승마 교관과의 불륜 스캔들은 치명적이어서, 다이애나의 차남인 해리 왕자의 친부가 찰스가 아니라 불륜 상대였던 승마 교관이라는 악성 루머까지 돌기도 했다.
부부의 이혼에 쐐기를 박은 것은 이 맞불륜으로, 장녀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와 차남인 앤드루 왕자가 이혼하자 찰스만은 이혼시키지 않으려 했던 엘리자베스 2세조차, 다이애나가 맞불륜을 저지르면서 BBC와의 인터뷰에서 찰스의 불륜과 어려웠던 왕실 생활을 폭로하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다이애나에 대해서도 간혹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한 왕실 인사들이 아직까지도 다이애나에 대해 감정적 앙금을 보이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시어머니였던 여왕도 그렇지만,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인 시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는 스캔들이나 성격상의 이유로 다이애나를 싫어했다.
  • 그러나 다이애나가 잘못했다고 해서 찰스가 덜 잘못한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이 모든 건 찰스의 불륜이 야기한 일이고 다이애나는 그 전부터 남편 찰스의 무시와 시집살이로 인한 왕실 생활 부적응 때문에 시가(媤家)인 왕실에서 고생해 왔다. 게다가 찰스와 다이애나의 나이가 비슷한 것도 아니고 무려 13살이나 어린 여자애 상대로 이렇게 개차반으로 대했다는 것은 찰스의 잘못이다. 어지간히 잘 대우해줘도 사랑받기 어려운 위치임에도, 심하게 냉대했다. 애초에 선빵을 친 건 찰스였고, 시가인 영국 왕실 입장에서도 아들의 불륜을 좌시하고 며느리의 불륜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내로남불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격이다.

  • 다만 다이애나가 끝까지 맞바람을 피우지 않고 이혼을 했더라면 이런 논쟁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다이애나의 지지자들에게는 좋든 싫든 일단 다이애나 또한 결혼 중 불륜을 저지른 사실에 실망한 사람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삐그덕거렸고, 다이애나는 스트레스로 손목을 4번이나 긋고, 첫째 윌리엄 왕세자임신했을 당시 스스로 계단에 몸을 던지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므로 빠르던 늦던 언젠가는 결국 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을 사이였다. 차라리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이혼한 뒤에서야 자유롭게 연애했다면, 시월드 문제와 찰스 감싸주기 병크와 삽질로 도배되어 국민들에게서 싸늘한 시선을 받던 영국 왕실의 언플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 이런 논쟁 자체가 나오질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역시 말도 안되는 억지인 것이, 찰스와 다이애나의 부부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르러 다이애나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처지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왕실의 체면때문에 왕세자의 이혼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던 것이 여왕과 영국 왕실의 태도였고, 찰스의 친구들은 이를 뒷배삼아 오히려 결혼 생활 파탄의 책임이 다이애나의 편집증에 있다는 언플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맞불륜 및 언론 폭로와 같은 강경한 맞대응을 통해 자신이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자신을 계속 억압할 경우 얻게 될 부담이 이혼에 의한 체면 손상의 부담보다 더 커질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다이애나가 겨우 이혼을 통해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장 본 '변명'문단에서도 절대로 찰스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강한 압력을 행사하던 엘리자베스 2세가 결국 포기하고 이혼을 인정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다이애나의 맞바람이었다고 분명히 서술되어 있는 것. 즉 맞바람과 같은 강력한 대응으로 맞불을 놓지 않았다면 왕실의 압력과 영향력으로 이혼 자체가 지극히 어려웠을 것이고, 다이애나는 계속 일방적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늦던 빠르던 언젠가는 결국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합리적인 의견 제기라고 하기 어렵다.

  • 그에 대한 동정의 여론도 꾸준히 있다. 사실 불륜만 접어놓고 보면, 찰스 왕세자는 책을 많이 읽고 문화와 사회전반과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관심이 높아 과연 일국의 왕세자에 걸맞는 지성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다이애나는 왕세자비로서의 교양이나 지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었다.

집안에서도 언니들과 남동생은 다 우등생인데 다이애나만 유독 공부를 못해서 암암리에 '집안의 망신'으로 여겨졌다. 학업 성적이 심각하게 나빴기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으며, 고등학교 졸업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해서 중퇴하였다. 그 후 독립해서 친구들과 동거하며 취미생활로 유치원 보모와 청소부 아르바이트를 했고, 종종 여러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렸다.[3]
또 검박함보다 호사스러움을 지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왕실 언플일 가능성도 크다. 다이애나의 옷은 협찬받거나 기증받은 것도 많았고, 소유한 보석도 대부분 친정과 왕실에서 물려준 것이며, 개인적으로 가진 보석은 얼마 없었다.
  • 하지만 다이애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그녀가 명망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건 사실이지만 1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나는 바람에 오래도록 아들을 바라고 있던[4] 부모가 몹시 실망했고 이 때문에 다이애나가 자존감이 낮았던 건 잘 알려진 일이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심지어 고작 6살 무렵에 부모가 이혼한 뒤 주로 아버지 밑에서 불행하게 자라야 했다. 당시 영국 상류 사회에서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이애나의 유년시절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다이애나는 자서전에서 부모의 이혼 후 언니들, 남동생과 함께 정기적으로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어머니가 "너희들을 돌려 보내기 싫다."며 울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에는 부모의 허락을 받아 런던에 아파트를 얻어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 1981년에 만 20살의 나이로 찰스와 결혼하기 전까지 짧은 처녀 시절을 친구들과 함께 지낸 것. 이때 상류층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에서 파트타임 보모로 일했고, 그밖에 언니의 친구들이 주최한 파티에서 서빙을 하는 등, 취미삼아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 룸메이트들뿐만 아니라 룸메이트들이 부른 다른 남사친들과도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참고로 저때가 다이애나의 길지 못했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점이라고 한다. 다이애나 본인도 "저땐 아무런 걱정 없이 크게 웃을 수 있었다"고 회상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애나가 저렇게 자유롭게 살아왔던 것을 찰스가 결혼 전에 몰랐을 리 없다. 애초에 찰스가 결혼 상대자로 낙점했던 건 다이애나의 친언니인 사라였다. 그러나 사라가 말 실수를 좀 했다고 바로 내친 뒤에 이제 막 성인이 된 그 여동생을 왕세자비로 낙점해 놓고 자격 운운하는 것도 어찌보면 적반하장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다이애나도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연애하던 시절에도 찰스는 다이애나를 위해 그 어떠한 배려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이애나만 파파라치들에 시달리며 호되게 고생했다.
반면 사람들이 못생기고 볼품없다고 여기는[5] 카밀라는 사실 어떤 주제로도 대화가 가능하고 찰스와 토론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교양과 지식이 있어서 둘의 관계가 잘 이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또한 굉장히 예절 바르고 상냥해서 다이애나 생전에도 엘리자베스 2세가 카밀라를 아껴서 가까이했는데, 이 때문에 남편과의 사이는 최악이었어도 시어머니만은 공경했던 다이애나의 배신감이 컸다.
정당성은 다이애나에게 있음에도, 마치 그녀가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를 방해하는 듯한 모양이 된 것이다. 이는 두 여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 찰스의 책임이 결정적이다.

  • 두 왕자에게는 좋은 아버지이며 왕족으로서 구설수에 오르거나 잘못된 처신도 없다.
윌리엄 왕세자해리 왕자도 현재 가정을 이루었고 국민들의 신임이 좋은 편이다. 과거 해리 왕자가 말썽이였지만 대체로 두 왕자들에 대한 평판은 좋은 편이다. 불륜만 아니었어도 의외로 지금쯤 어머니 못잖게 존경받는 왕이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두 왕자에게 아주 훌륭한 아버지이고 왕자들도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왕자들의 어린시절 사진과 영상을 보면 두 아들을 상당히 아끼는 것을 볼 수 있다.[6]
  • 이것도 반박될 만한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다이애나가 우는 것을 본 윌리엄이 "아빠는 왜 엄마를 마음 아프게 해요?"하고 물었던 적도 있다. 또 왕실 별장에 휴가를 갔을 때, 찰스 왕세자는 아내와 함께 있기 싫어서 왕세자 부부 침실을 두고 윌리엄의 침실을 썼다고 한다. 침실을 뺏긴 윌리엄이 본인 침실을 쓰고 싶다고 말해도 찰스는 모른 척해서, 다이애나가 "누가 아이인지 모르겠다."(아버지가 아들 침실을 뺏어 쓰고 있으니…)라는 냉소적인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무리 자식의 성장에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아들이 잘 컸다=아버지가 잘했을 것이다"라고 딱 잘라 단정할 수 없다.

  • 이 문서를 지금까지 읽어봤다면 잘 알겠지만 불륜에 관해서는 찰스가 잘못한 것이 누가 봐도 맞다. 그러나 찰스가 싫다는 다이애나를 억지로 납치해다가 결혼한 것도 아니고,[7][8] 결혼에 동의하고 왕세자비로서의 권리와 영향력을 누린 사람 역시 다이애나임을 고려하면 그의 입장에서는 불륜에 대한 벌을 과분하게 받았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그가 한 행동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았지만, 그것이 전세계인들한테 알려져서 20년간 욕을 먹고,[9] 낙인까지 찍어버릴 정도냐는 것이다. 영국에서 다이애나 사후 거의 20여년이 된 2015년에 들어서야,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찰스가 즉위해야 한다는 여론이 반대의견을 넘어 과반수를 차지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찰스는 칠순, 나아가 역사상 최고령 영국 국왕이 되어 얼마나 재위할지 불투명한 상태인데도 그렇다. 왕실의 새로운 얼굴마담이 들어서고, 새로운 아름다운 왕세손비가 왕실에 입성하며 대중의 관심이 다이애나에게서 멀어지자 자연스레 찰스에 대한 비난도 줄어 들었다는 것이다.
  • '찰스가 싫다는 다이애나를 억지로 납치해다가 결혼한 것도 아니다' 라는 논리는 그대로 뒤집어서 찰스에게 적용할수도 있다. 누가 찰스 목에 칼을 들이대고 다이애나와 결혼하라고 협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결혼을 통해 다이애나가 왕세자비로써의 권리와 영향력을 누렸다고 하면 찰스 및 영국 왕실 역시 젊고 아름다운 왕세자비의 스타성을 얻었고, 애초에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를 왕세자비로 선택한 것 자체가 그녀가 그 역할에 적당하다고 판단되기에 고른 것이다. 즉 결혼이 일방의 강요가 아니라 쌍방의 동의에 의한 것이라면 그 약속을 지키고 관계를 유지해야 할 책임도 양쪽 모두에게 있는 것이고, 그 관계로부터 혜택을 얻을 권리 역시 양쪽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 주장은 유독 다이애나에게만 '본인도 결혼에 동의한 것이고, 그로 인해 얻은 것도 있지 않으냐'고 책임을 요구함으로써 정작 먼저 관계를 파괴한 찰스와 그를 방조한 왕실의 책임을 희석하려는 기묘한 이중잣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
위의 주장에서 일방에게만 유리한 이런 노골적인 이중잣대를 제외하고 그나마 말이 되는 부분을 찾아보면 '찰스가 먼저 잘못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수십년간 두고두고 욕을 먹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않으냐'는 감정론이라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의 '이중잣대'는 다이애나가 피해자라는 인식을 공격함으로써 그러한 감정론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론에 대해 평가한다면, 물론 어떤 사람은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20년 이상 흐른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찰스나 카밀라에 대한 여론이 얼마간 호전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들은 찰스의 소행이 오랫동안 비판받을만한 것이라고 여기기에 역시 같은 시기에 이르러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있고, 여론 역시 그저 애매해진 정도일 뿐 완전히 호감으로 돌아서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감정적인 문제는 개인의 호오에 달린 문제일 뿐이지 객관적인 변호의 대상이 될 문제는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난 수십 년간 찰스가 먹은 욕이 그가 저지른 잘못의 크기에 비추어 충분한 응보였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더 이상 찰스를 욕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찰스가 저지른 잘못이 커서 더 욕먹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찰스를 계속 비판할 수 있고, 이에 대해 타인이 '내 생각에는 이젠 충분하니 너는 더 이상 찰스를 욕해서는 안된다'고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다못해 다이애나 사건으로 찰스가 정말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하는 등 공적인 책임 추궁이라도 당했다거나, 비판 여론이 과도하여 찰스의 삶이 정말 위협당하는 처지에 내몰리는 것과 같은 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면 그에 대해서는 잘못의 크기에 비해 적절한 응보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비판적인 여론, 즉 그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하는 목소리조차 애매한 감정론을 내세워 고나리하는 것은 황당하다.

3. 결론[편집]


위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속적인 불륜 행각이 한 여자의 인생을 비극적으로 만든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이애나가 맞바람을 피운 것은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랑하지 않는 다이애나를 후계자를 낳아 줄 왕세자비로 낙점한 것도, 다이애나와 결혼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불륜을 자행해 온 것도 찰스 3세 본인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이애나가 막판에 가서 맞바람을 피워 구실을 잡힐 만한 일들을 벌인것도, 전부 찰스가 원인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 믿었던 남자가 사실은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고 있었고, 자신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었으며, 결혼 생활 중에도 그 여자와 당당하게 밀회를 하며 밖으로 도는 남자를 세상 어느 여자가 그냥 참고 살지 언정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여성 인권이 낮았던 중세나 근대도 아니고 엄연히 여성 총리까지 배출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치세인 20세기 후반에 말이다.

찰스는 큰할아버지가 그랬듯 왕위를 버리고 카밀라를 선택하던지, 아니면 다이애나와 왕위를 선택하고 카밀라와의 관계를 접던지 해야했다. 왕위와 사랑, 둘 모두를 욕심내었기 때문에 한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 대가로 본인이 비난을 받음와 동시에 왕실의 이미지까지 실추시켜 버리게 된 것이다.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여야한다.

다이애나가 막판에 실책을 몇가지 한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비판하지 않고 두둔하는 것은, 다이애나의 상황이 "그럴만했다"라고 자연스레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고, 찰스와 카밀라는 다이애나 입장에서 엄연한 정신적 폭력을 휘두른 불륜남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찰스가 사전에 다이애나에게 카밀라와의 사이를 처음부터 말하고 결혼했다면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엄연히 속이고 결혼한, 명명백백한 사기극이었기 때문.

게다가 영국 왕실은 국민들에게 입헌군주제 폐지의 꼬투리가 될만한 스캔들을 어떻게든 무마시키고 덮으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찰스의 외도를 알면서도 모른척, 입다물고 쉬쉬할 수 밖에 없었고, 다이애나 입장에서는 제 편을 들어줘도 시원찮을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전부 자신에게 참고 살라고만 하니 당연히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다이애나의 익히 알려진 성격 상, 절대 넘어갈 수 있을만한 일도 아닐 뿐더러, 찰스는 자식들까지 낳아놓고 당당히 카밀라와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 다이애나 사후에는 아예 카밀라와 재혼했다.

아버지로서의 자각도 남편로서의 자격도 없는 정말 찌질한 면모만 잔뜩 보이니 영연방 국가에서는 "윌리엄 왕세손이 왕이 되면 인정해줄 수도 있겠지만, 찰스가 왕이 되는 꼴은 못 본다. 차라리 국민투표입헌군주제를 폐지해라"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위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온 사실이지만, 찰스 왕세자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왕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권력욕 때문에 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와 달리 사랑만을 택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할 용기는 없지만 자기 마음대로 살고는 싶은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왕세자비감으로 손색 없는 다이애나를 인형처럼 앉혀 놓고, 후계자 출산 셔틀로 써먹으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도 왕위를 물려받을 왕세자로서도 빈말로조차 옳다고 할 수 없는 역겨운 행실이었다.

이 때문에 다이애나 사후부터 지금까지 세간의 엄청난 비난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는 이에 대해 변명 한 마디 없이 살고 있는데, 이게 그들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의 사랑이 안타까운 사랑이라고 동정하며 "저만 하면 인정해 줘야 한다"는 아주 극소수의 반응도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행실 때문에 꿈 많던 한 여자의 인생이 철저히 망가졌는데도 그것을 외면한 채 지속적으로 부도덕한 사랑을 나눠 왔으며, 결국 다이애나가 이혼하고 왕실을 떠난 뒤 곧 사망하자 얼마 지나지도 않아 대놓고 우리 사귄다는 티를 내며 둘이 같이 다니기 시작하더니, 끝내 결혼에 골인했다. 이혼 후 바로 재혼한 것은 아니고 9년간 텀을 두긴 했지만, 그것도 세상의 눈치를 봤다기보다는 찰스 왕세자의 외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가 이혼녀를 말 그대로 극혐했기 때문이 크다.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101세까지 장수하지 않았다면 말 그대로 이혼하자마자 재혼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왕대비가 죽고 나니 옳다꾸나 하고 바로 이듬해(2003년)부터 동거를 시작했고, 3년상 끝나자마자 재혼했다.

어쨌건 해리 왕자는 일단 "새어머니가 좋다"면서 대외적으로는 카밀라를 어머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으며, 뿐만 아니라 영국 왕실에서는 찰스의 재혼에 대해서 크게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서열과 전통을 그렇게 중요시하는 영국 왕실에서 과연 아들이 새어머니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까? 더군다나 친어머니는 이미 교통사고로 사망해 이 세상을 떠난지 오래고, 아버지는 불륜 빼면 잘못한 게 없고, 할머니도 왕위 계승을 지지하며 버젓이 살아 계시는 상황에서 말이다. 두 왕자가 카밀라를 어떻게 생각하든 윌리엄 왕세자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윌리엄은 오래전부터 항상 같은 시계만 착용해왔는데, 다이애나 비가 생전 마지막 생일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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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색이 부부라는 사람들이 공개 석상에서 서로 손도 잡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나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으나, 원래 영국 왕실은 부부 사이라도 공식 석상에서는 손을 잡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는 것은 예외. 해리 왕자메건 마클은 공식 석상에서 이 규율을 어기고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했다.[2] 찰스와 비슷한 나이대면 이미 사회 생활 경험이 꽤 있어서 세상 물정에 능하고 머리도 커져서 함부로 다루기 힘들다.[3] 다이애나의 친정은 부유한 최상류층 귀족 가문이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었다. 다이애나가 했던 일은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이었다.[4] 당시에는 스펜서 백작위를 물려줄 후계자가 없어 작위가 단절될 위기였다. 영국 귀족 작위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여자의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는 다이애나의 남동생인 현 스펜서 백작이 낳은 두 아들이 있다. 여담으로, 부계쪽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현 스펜서 백작도 딸들만 줄줄이 얻다 아들을 얻은 것이다.[5] 사실 그렇게 못생긴 건 아닌데, 다이애나의 미모가 워낙 뛰어난지라 비교되어서 못생겼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6] 차남 해리 왕자가 태어났을 당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원했던 찰스는 둘째도 아들이 태어나자 아내 다이애나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매우 실망했다고 한다. 해리 왕자가 빨간머리라서 더 싫어했으며, 심지어 언론에 아기를 본 소감을 말해줄때 "머리카락은 어중간한 색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후에 이 비화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해리 왕자가 핍박받으며 자란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는데, 주변인들은 왕세자는 두 왕자를 차별 없이 매우 아꼈다고 말했다. 다이애나도 "찰스는 윌리엄보다 해리와 더 친근하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부인과의 불화와 개인의 생각과는 별개로 자기 자식인 아들들에겐 다정하게 대해준것.[7] 감정을 속였다지만…[8] 다만 당시 영국 상류층 사회의 정서를 생각하면 현재 왕실에 시집온 평민 출신 며느리들처럼 '알 거 다 알고 자기 뜻으로 왕실에 시집 온' 케이스라고 보기 어렵다. 다이애나는 당시 20세의 어린 나이에, 연애 경험 한 번 없는 숫처녀였다. 남자와 사귀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다이애나의 입장에서는 찰스가 자신을 대하는 것이 사랑인지, 그저 적당히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얼굴마담을 내세우기 위해 대충 속여넘기는 것인지 알아차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당시만 하더라도 왕족들과 귀족들은 뒤로는 정부를 둘지언정 겉으로나마 대단히 보수적인 결혼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 다이애나 혼자 주변의 압박을 무시하고 파혼을 결정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9] 오랜 시간이 흘러서 영국에서의 여론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바다 건너 먼 나라인 한국에서는 아직도 욕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