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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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주요 도시
3. 경계
4. 역사
5. 같이보기



1. 개요[편집]


중국의 지역 명칭.

파일:fine_art_china.jpg
중원 평야는 대체로 산해관을 경계로 '요서 회랑'의 북부에 위치해있는 '만주 평원'과 인접해 있다.

후한 13주사례, 예주, 기주, 연주, 청주, 유주 일부에 상당하며, 당나라 '하남도 + 하북도[1]'에 해당되어 관중 분지과 쌍두를 이뤘던 화북의 중심지였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난세에 항상 전투가 벌어져서, 중원축록고사성어처럼 중국 자체, 그리고 패권 경쟁의 중심지를 의미하는 말이 됐다.


2. 주요 도시[편집]


  • 낙읍 : 함곡관을 두고 '관중 분지'와 인접해 있다. 때문에 관중 분지가 변방 신세가 되기 이전에는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나중에 낙양으로 개명되었다.

  • 업성 : 조조가 원소 세력을 멸망시키고 기주화북 평야를 점령한 뒤(208년) 위공(魏公)에 오른 뒤 허창을 떠나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다.



  • 허창 : 조조가 기주 및 화북 평원을 점령하여 조위 왕조를 창업하기 전까지 주요 지점이었다.



3. 경계[편집]





  • 대파(다바) 산맥

  • 운귀 고원

  • 동남 구릉[2]


4. 역사[편집]


고대 말 중세 초 5호16국시대오호(흉노족, 갈족, 강족, 저족, 선비족)를 비롯하여 탁발선비가 중원을 차지하였는데, 북위 제3대 황제인 세조 태무제 시기에 북하, 북연, 북량을 멸망시키고[3] 화북 평야를 점령했다. 거란족요나라중원 일부를 차지했었다.

북주의 무제가 북제를 무너뜨리고 중원 평야를 점령했다. 그 이후에 양견(楊堅)[4]이 집정한지 거의 직후에 수나라로 국명을 바꾸면서 문제가 되고나서 '장강 중하류 평원(長江 中下游 平原)'에 있는 진(남조)를 무너뜨렸다.

송나라 시절에는 금나라의 침공으로 인하여 '중원 평야'와 관중 분지를 빼앗겼으며, 때문에 송나라가 보유한 평야 지대는 '파촉', '장강 중하류 평원'정도만 남은 상태가 되었고, 이 때부터 금릉[5]은 한족 왕조가 침투왕조, 정복왕조를 몰아내기 이전의 임시 수도로 활용되었다.

몽골족원나라, 만주족청나라 등 이민족이 중원 전체를 정복하기도 하였다.


5.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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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하북도와 인접한 지역인 '하동도'는 태행 산맥, 산서성, 펀허강, '여양(呂梁 , 吕梁 : 뤼량) 산맥(山脈)'이 있는 곳이다.[2] 강남 구릉 + 영남 구릉 + 동남 연해 구릉.[3] 물론 오호의 인구는 한족에 비하면 매우 적었다.[4] '양황후(선제의 황후)의 아버지'이자 '양충의 아들'이며, 당시 대장군이자 수국공 직책에 있었다.[5] 명나라 시절에 남경으로 개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