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노 아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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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탈리아 공화국의 제48대 총리이자,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958년, 이탈리아 사회당에 가입하면서 일찌감치 정치계에 발을 들였고 1983년부터는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선출직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 연정이 지속되면서 재무장관, 부총리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다가 1992년 6월, 드디어 총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 시기 마니 풀리테 스캔들이 터지면서 내각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그래도 이 시기, 재정적자를 적극적으로 축소하고 리라 평가 절하에 대응하면서 이탈리아가 자체 화폐 대신 유로화를 도입하는 첫발을 떼게 된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치사상 초유의 스캔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결국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정계에 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특히 부패 사건 수사를 정부가 직접 통제권을 행사하는 경찰로 이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던 점[1] 에서 과연 아마토 총리가 진짜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의지가 있었는 지, 아니면 그냥 덮으려했는지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됐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반독점기구 수장, 제도개혁 및 재무장관을 맡으면서 정계에 남아있다가 2000년 4월, 다시 한번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때는 과거와 달리 사회복지 확대 등을 추진했지만 내각을 구성한 올리브나무 동맹 내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01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 연합에게 패하면서 다시 한번 총리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후 주로 유럽 무대와 학계에서 활동하다가 2013년,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아마토 전 총리를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하면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원래는 마리오 몬티의 거국중립내각 붕괴 이후 후임 총리로 물망에 오르고 있었으나 엔리코 레타 민주당 부대표가 대신 지명되면서 아예 헌법재판소 쪽으로 가게 된 것.#
2023년에 AI위원장으로 임명되었는데, 너무 많은 나이와 IT 비전문성의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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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의회를 통과했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