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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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의도순복음교회 관련
2. 기복신앙 관련
3. 언론 관련
4. 자녀 병역 관련


1. 여의도순복음교회 관련[편집]


여의도순복음교회 문서 참고


2. 기복신앙 관련[편집]


기복신앙을 설교에 강하게 반영한다는 것에 대해 비판이 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 기복신앙이 왜 문제가 되냐면,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에서는 돈과 권력을 비롯한 물질적 성공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신을 믿고 세상을 아끼며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나오는 정신적 평화와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에 훨씬 가깝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난에 쪼들려도 믿음과 소명이 있다면 얼마든지 평온할 수 있다'는 굉장히 정상적인 신앙관을 가진 종교라는 것인데,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신의 집단의 현세적 성공만을 추구하다 보면 기독교 본질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는 뒷전이 되는 것이라, 목사라면 현실적인 희망을 바라는 신자와 기독교의 본질적인 추구함을 균형을 맞춰 설교를 해야 마땅하다는 평도 있다.

카메라 앞에서는 살짝 몸을 사릴 만도 한데, 조용기 목사는 CBS 방송 설교에서도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많이 받고, 헌금 적게 하면 복을 적게 받습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으니까."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생각이 확고하다. 다만 해방 전부터 한국의 개신교는 무속 신앙, 토착 신앙 등 기복신앙의 자리를 대체하며 성장했다. 초기 한국 개신교는 토속신앙과 샤머니즘에 빠진 한국인을 기독교 신지로 바꾸고자 구한말 무당들을 집중 전도했다. 이런 현지화 과정에서 한국 기독교도 기복신앙의 영향을 받았다.(한국 기독교의 역사. 1, 기독교문사(2014))

기복신앙적 요소는 어느 종교에나 다 있다. 특별히 기복신앙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순복음교회가 소속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오순절교회 계통으로 방언 등 성령 체험을 강조하는 교단이다. 오순절교회는 현재 개신교 제1교파로 아프리카 개신교 국가들 중 다수가 오순절교회를 믿는다. 교단 자체가 기복신앙으로 해석될 특성이 있다. 오순절교회는 20세기 초반부터 미국의 보수적인 교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조용기 목사가 기복신앙의 원조가 아니다.

조용기 목사가 이단 시비에 걸리고 결국 자신의 생각을 거두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은 기복신앙이 아니다. "방언 못하면 구원 못받는다."라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명백히 이단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 기복신앙 때문에 이단 시비에 걸렸던 것이 아니다.

3. 언론 관련[편집]


자신의 비리를 고발한 시사저널에 교인들을 보내 '지옥 드립'을 외치게 하였다. 이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비리를 주도적으로 고발한 <시사저널>의 주진우 기자(현 시사in)는 '사탄 기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1]

그 결과 MBC PD수첩에서 자신의 비리를 보도하자, 아들이 운영하는 국민일보와 스포츠투데이[2] 1면에 가이스터즈를 비방하는 기사를 내보내게 한 일도 있다. 다행히 여기 한 곳만 열심히 노력해서 묻혀졌지만 2011년 2월 수쿠크에 대한 과세면제법안을 두고 "이 법안이 통과될 시에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하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그동안 열심히 지지하던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에서도 "주제 넘게 나서지 말라"는 비난을 들었다.# 그리고 보수 성향의 단체인 자유총연맹으로부터도 "MB가 하야하라는 망언을 사과하라"는 비판을 받았다. 영화 속 수많은 악인들이 그랬듯, 자기 편마저 배신하고 개드립 치다가 두드려 맞는 시나리오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4. 자녀 병역 관련[편집]


조용기 목사 본인은 7개월 만에 군 제대[3], 그 외 아들들은 모두 미국 영주권 취득으로 병역 면제.[4]

물론 이는 편법이긴 하더라도 1990년대 당시에는 합법이긴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설교 때마다 반공철저한 안보 정신 무장을 주장해왔다. 조용기 목사 본인의 건강 문제로 인해서 의병 제대를 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사지멀쩡한 아들들을 외국인 만들면서 안보 타령하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선을 넘어서서 혐오감을 느끼게 만들었다.[5]

국내 언론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단일 국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법이 있어서, 아들들은 모두 영주권 등을 가지고 있다가 병역법과 해당 법령에서 제한하는 연령이 넘어가자마자 냉큼 국내로 들어와 국민일보 임원이 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중간에 법령이 개정되어서 연령이 1년 늘어났는데, 그 이후부터는 아들이 1년 늦게 들어왔다고 알고 있었지만 순복음교회 맞은 편에 위치한 국민일보 사옥에서 벌어진 국민일보 파업에 관한 기자들의 현장취재. 이 기사에 의하면 조용기의 아들이자 국민일보의 사주인 조민제 씨는 미국 국적자라 신문법에 의거하면 불법적인 사주임이 드러났다. 신문법에는 대한민국 국적자만이 사주가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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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전에 기독교 이단을 비판하는 기사를 싣던 잡지인 <현대종교>의 탁명환 소장의 경우, 비판한 교회가 고용한 사람의 칼에 찔려 죽은 사건이 있을 정도이니 대단한 용기라고 볼 수 있다.[2] 국민일보 자매지였으나, 선정성 논란 등에 연루되어 폐간하였다. 아래 나꼼수김용민 PD가 이것과 조용기 목사의 공금 유용을 지적했다가 첫 직장을 잃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3] 1961년 1월 입대하여 군복무를 하던 중, 심한 장질환으로 인해 수도육군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대전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자 결국 7개월 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의병 전역하게 되었다.[4] 조용기의 아들들이 군대에 갈 정도의 나이가 된 1990년대 당시까지는 외국 영주권 취득만으로도 병역 면제가 가능했다. 단, 2002년 이후 현재는 외국 영주권자라 해도 1년에 반년 이상 국내 거주하면 바로 영장이 나온다. 입영을 거부하면 한국에 영구 입국 금지되며 누구 때문에 바뀌었기 때문이다.[5] 마찬가지 이유로 김용갑한나라당 의원도 반공과 안보 및 주사파 빨갱이 척결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달고 살았으나, 두 아들이 군대에 안 갔다온 일로 매번 까였다. 이에 대해 김용갑 의원 측은 "정당한 면제였다"는 의견과 근거를 수 차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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