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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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미국 대사관저 난입, 테러 사건
3. 학원 강사 시절 체벌 의혹
4. 종편 출연 거부 논란
5. 성향으로 인한 논란
6. 숱한 막말 논란
8. 유시민 디스 논란
9. 아들의 성범죄 사건
10. 뺑소니 사건
11. 산수 논란
12. 박원순 성추행 사건 피해자 2차 가해 논란
13. 임대주택 건설 반대 님비 논란
14. 추미애의 청탁 의혹에 대한 옹호 및 김치찌개 비유 논란
15. 후원금 구걸 논란
16. 윤석열 방지법 발의 논란
17.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 발언 논란
18. "박영선마포구 을 사전투표에서 이겨" 허언 논란
19. 언론중재법 반대자들 조폭 비유/ 국회법 위반하여 직권 상정 안한다며 국회의장 비난
21. 기자 밀침 논란
22. "넷플릭스에서 유치했다는 투자는 통상적 수준" 허위 주장 논란
23. 최고위원, 상임위원장 겸직 논란
24. 김기현 당대표 연설 중 고성 및 질의 방해 논란
25. 단식투쟁에 대한 이중잣대
26. 대정부질문 중 고성 및 방해 논란
27. '한일전 축구 우승 금메달. 내년 한일전 총선도 이겼으면 좋겠다' 발언 논란


1. 개요[편집]


정청래의 비판 및 논란을 다룬 문서. 정계에 입문하기 전부터 수많은 구설을 일으킨 정청래는 원래도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국민의힘 인사들이 잘못하면 매섭게 비난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잘못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비열한 정치공세로 규정하며 무조건 보호하고 보는 내로남불이 몸에 배면서 국민들에게 내로남불의 대명사라고 비판받는다.

2. 미국 대사관저 난입, 테러 사건[편집]


1989년 10월 9일, 당시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청래(24)는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투쟁국의 이강토/이강자(가명·25세 가량)로부터 미 대사관저 점거 및 방화, 폭탄 테러 지시를 받고 "그레그(당시 주미대사) 처단과 민족 자주권 쟁취를 위한 반미 구국 결사대"를 조직해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4학년 김희준(20), 한신대학교 기독교육과 4학년 심상오(22), 건국대학교 화공과 4학년 조형석(22), 한양대학교 전자통신과 4학년 이선홍(24), 한신대학교 신학과 4학년 이대준(21)과 함께 건국대 국문과 학생회 사무실에서 나흘간 합숙하며 계획을 세웠다.

사건 당일인 1989년 10월 13일 오전 6시 25분 경, 정청래를 비롯한 학생 6명은 서총련이 제공한 부산1허3004호 짙은 쥐색 포니엑셀 렌터카 승용차를 타고 서울시청 쪽에서 전속력으로 미국 대사관저 쪽으로 오다가, 남문에서 북쪽으로 20여m 쯤 떨어진 담장 바로 옆에 정차시켰다. 이후 준비해 온 사과탄 4개, 화염병 6개, 사제폭발물 4개 및 쇠파이프 등을 소지하고 정차한 차량 지붕을 밟고 높이 3m 가량의 담을 넘어 대사관저로 들어갔다.

월담 직후 사과탄 및 사제 폭탄 1발을 터뜨렸으며, 폭발음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을 향해 2발을 다시 터뜨렸다. 이어 담에서 100여m 떨어진 대사 공관으로 접근, 미리 준비한 쇠파이프를 휘둘러 현관 유리창을 부순 뒤 공관 안 응접실로 들어갔다. 이들은 조지 H.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액자를 쇠파이프로 부순 뒤 접견 실에 있던 소파 4개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 대사관저 직원들을 인질로 하여 "노태우 매국 방미 반대", "그레그 대사 취임 반대 및 추방", "수입 개방 압력 철회"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약 45분간 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대사관저에는 그레그 대사 부부를 포함하여 대사관 직원과 가족 20여명이 잠자고 있었고, 당시 학생들은 이들을 찾기 위해 응접실과 연결된 6개의 방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직원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치하여 직접 접촉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레그 대사 부부는 잠옷 차림으로 관저를 빠져 나와 탈출했다.

미국 대사관 측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으나, 학생들은 관저 거실에 시너를 뿌리고 경찰이 접근할 경우 시너에 불을 붙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경찰은 대사관 경비 담당자의 요청으로 정문 앞에 약20분간 대기하고 있다가 오전 7시 10분 쯤 대사관 측의 요구로 공관 뒷문으로 들어갔다. 경찰이 진입하자 이들은 바닥에 뿌린 시너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당시 연례 행사처럼 벌어지던 학생들의 미 대사관 공격에 대비하여 거실 바닥을 내화성 재질로 만들었기 때문에 불이 붙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을 향해 사제 폭탄 2발을 터뜨리고 사과탄을 던지는 등 완강히 저항했으나, 자체 제작한 사제폭탄이 불량으로 만들어져 폭음만 발생하고 제대로 터지지 않아 폭탄 테러도 미수에 그쳤다.

결국 진입한 기동타격대 10명에게 진압돼 오전 7시 15분경 전원 연행되어 남대문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경찰은 이들이 소지하고 있던 "민족자주선언문"과 "결사투쟁선언문" 등 2종의 유인물 12장을 압수했다.

사건 종료 후 오전 10시 그레그 미 대사는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사건은 관련 학생들의 개인적인 사견으로 기존의 한미우호 관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날 서울에서는 서울대 등 서총련 소속 10여개 대학생 5천여명이 각 대학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방미 철회와 그레그 미 대사 축출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 투석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서강대, 한양대 등의 일부 대학에서는학생들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와 성조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대구, 광주, 전주, 청주, 대전, 인천, 마산 등 지방도시에서도 20여개 대학, 1만5천여명의 학생들이 각 지역별로 연합집회를 갖고 도심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같은 해 10월 9일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2층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서총련 투쟁 소속 25세 이 모군으로부터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 지시를 받았으며, 12일 밤 11시 경 이 군이 준비한 차량을 제공 받아 이 차를 타고 대사관저에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관저에 잠입한 6명 이외에 다른 차량에 탑승한 4명의 엄호조가 있었으나 달아났다는 증언에 따라 이들의 대사관저 침입을 지원한 4명을 수배했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북한은 중앙방송 등을 통해 매 시간마다 반복해서 전했으며, 사건 경위도 상세히 보도했다. 또한 같은 해 10월 24일 미국 정부는 6명 학생들에 의한 피해 보상으로 3만 달러(1,980만원)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1989년 11월 10일,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는 이들 6명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화염병사용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을 적용해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구속기소했다.

1990년 3월 28일,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2부(재판장 강홍주 부장판사)는 이선홍 등 2명에게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이대준에게는 징역 2년을, 심상오 등 3명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정청래의 경우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총 6년형,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지만 바닥이 내화성 재질로 되어 있어 불이 붙지 않아 방화 혐의가 아닌 방화미수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사제폭탄 역시 불량으로 제조하는 바람에 터지지 않아 폭탄 테러 역시 미수에 그쳤다. 이러한 연이은 불운(?) 덕분에 형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실제로 복역한 기간은 2년이다.# 2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후 1992년 마포에서 친구와 학원을 개업하여 크게 성공했다.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정부광복 50주년 기념 8·15 대거 특별 사면 때 복권되었다. 1995년에 사면복권되었기 때문에 95년까지 복역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2년 복역 후 출소하여 92년 학원을 개업하여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였으며, 95년 광복절 특사로 인해 남은 형기 및 자격정지가 완전히 사면복권된 것이다.

이 특별 사면 복권 내용은 현재라면 피해 당사국인 미국에서 직접적으로 반대할 것이며 대사관에 사제 폭탄을 투척하는 것은 명백한 테러 행위이기 때문에 사면은 불가능하다. 항간에 떠도는 미국 입국 금지는 사실 무근이고 2012년 미주 국정감사 때 미국 비자가 나와서 미국을 방문했다. 다만 그 다음 해에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 고생하긴 했다.[1]

이후 정청래는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 '나는 정청래다'에서 당시 자신은 사형을 선고받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낮은 징역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한 소회를 밝힌 바가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자신이 젊은 시절에 했던 행동을 후회하거나 반성하지는 않는 듯 하다.

여담으로 도널드 그레그 당시 대사는 일명 친한파 미국 정치인으로 김대중 납치사건CIA 서울 지부장이었으며 당시 미 정부에 김대중 구명을 요청하여 김대중의 석방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6명 주한 미국대사관저 기습점거, 반미 시위
미 대사관저 한때 점거농성
대학생 6명 미대사관저 한때 점거...서총련소속,대통령 방미반대


3. 학원 강사 시절 체벌 의혹[편집]


정청래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마포구 성산동에서 '길잡이학원'을 운영하여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길잡이학원은 초기에 양태회와 정청래가 동업으로 시작하였고, 처음에는 양태회와 정청래 2인이 강의, 상담, 홍보, 청소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이후 교직원이 100여명으로 늘어 마포 일대에서 가장 큰 학원으로 불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 길잡이 학원은 당시 마포 일대에서 무지막지한 체벌과 폭력으로 유명했다. 당시 어찌나 체벌이 심했는지, 애를 잡는다고 '애잡이학원'으로 불린 것은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 결국 지나친 체벌과 주변에 명문대 출신 강사들이 운영하는 실력있는 학원들이 늘면서 학생들이 급감했고 1997년 정청래는 길잡이학원을 정리했다.

정청래 본인이 직접 체벌을 가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정청래가 운영하던 학원의 강사들이 상당한 체벌을 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설령 정청래 본인이 체벌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장으로서 이를 조장하거나 방조한 것은 명백하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렵다.


4. 종편 출연 거부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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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총선 당시 TV조선의 인터뷰를 거절하는 정청래 후보자.

JTBC도 마찬가지로 출연거부를 했으나 최순실 태블릿 보도를 계기로 JTBC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고 2017년 1월 19일 썰전에 출연하였다. 왜 그동안 종편에 출연하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오자 초선 의원이던 2004년 말에 '독과점 신문은 방송을 가질 수 없다'는 신문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자신이 만든 법이 무의미해졌기에 그동안 종편에 출연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5. 성향으로 인한 논란[편집]


대놓고 계파성향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호의적이다. 즉, 굳이 따지자면 친문에 가까우나 문재인 당대표 취임 당시 문재인의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고 타 친문계 정치인들과 대오를 달리한 적도 많다. 친문이라고 쳐도 아웃사이더에 해당한다.

열성적인 노사모 회원 출신이었으므로, 전형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잡미묘한 부분이 많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한 말을 빌리자면, 그 당시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아서 뜻을 같이 한 것이라 답을 했다. 그래서 자신을 친노 인사라고 칭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했다.

사실 정청래는 현재 비노계로 분류되는 정동영계에 속했던 인물로 이 시기에 유시민과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당연히 박스떼기 사건에도 개입할 수밖에 없던 인물이다. 정동영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참여정부의 황태자'라고 불릴 만큼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이었지만 정권 말기 부동산 정책, 대연정 제안과 같은 참여정부의 여러 실정으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자 참여정부의 실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물론 대권에 도전하는 유력 후보가 인기를 잃은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여*야 할 것 없이 내려오는 전례이기는 하겠지만, 정청래의 경우엔 탄핵에 대한 비토 여론으로 노무현에게도 힘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을 2004년에 자신과 이상호가 공동대표로 이끌던 친노단체 국민의 힘을 노사모와 함께 운영하던 국참0415가 아닌, 정사모가 주도적으로 만든 단체인 개나리 봉사단으로 이끌고 들어갔고, 이 후 2달 뒤인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식으로 후계 권력자로 점지어지던 정동영의 아래로 들어간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정동영과 완전히 떼놓을 순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정청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정치인인 건 맞지만, 노 전 대통령이 힘을 잃었을 때에도 그의 곁에 남아 있었던 문재인, 안희정, 이광재,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등과 같은 지금의 '친 노무현계'와 같은 그룹으로 묶기엔 부적합한 사람이다. 실제로 2016년 8월에 업로드 된 팟캐스트 벙커1 채널의 '국회의원 사용법' 강연 녹취에서 그는 스스로가 친노 정치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덧붙이며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을 친노라고 부른다면 자신은 친노라고 할 수 있다' 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사실은 친노 핵심이라 불리는 인사들조차도 당시 정치를 하지 않았던 문재인을 제외하면 노무현 정부가 지지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지고 열린우리당이 공중분해자 2008 총선 당시 살아남기 위해 노무현과 어느정도 거리두기를 시전했었다. 현재 친노 주류라 불리는 유시민, 이해찬은 물론이고, 노무현의 최측근, 왼팔, 정치적 동업자라고까지 불렸던 친노의 적장자 안희정조차도 친노는 폐족이라면서 스스로 친노를 부정했을 정도였다. 다만 이듬해인 2009년 노무현이 사망하고 나서 여론이 반전하자 노무현 장례식을 계기로 다시 친노가 다시 재결집하기 시작했다.

위의 각주에 이미 언급되었듯 2015년 4.29 재보궐선거 때 정동영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서울 관악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을 때 정청래는 입장을 내놓은 게 없었다. 또한 선거 중에 새정련 후보를 지원하는 선거 유세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워낙에 말이 많은 문제이다. 새정련 측에서 인지도가 낮은 정태호 후보를 꼭 등록해야만 했느냐는 비판도 있다. 차라리 원래 지역구 의원이었던 이상규 의원을 지지해야 했다고 주장하는 진보계 인사들도 있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재보선 유세 중에 친노계파를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들을 쏟아냈을 때에도 정청래 전 의원은 조용했다. 그로 인하여 이때 '그래도 자기 옛 주군이라서 못 까겠다는 거냐'라면서 그를 공격하는 목소리가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있기도 했다.

이렇게 '친노인 듯 친노 아닌 친노 같은' 과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청래가 친노 &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건 문재인 지도부가 출범했을 때 같은 당 지도부 인사로서 문재인 대표를 지지하는 입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이 대표로 취임한 직후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자 “독일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 현장이나 히틀러의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천황의 묘소에 가서 절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문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친문 성향을 보였던 것에 대해 본인은 어떤 계파적 이해가 아니라, 당을 위하는 차원에서 당대표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학생 운동 경력 등으로 인해 386 인사로도 분류되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386파 분류 시점은 정세균계가 활성화 된 시점이었고 386파들은 이때 정세균계와 함께 발을 맞췄기 때문에 정세균계라고 칭하기도 한다. 왜 그런지는 당시 민주당 항목을 참조.

정청래 본인도 몰지각한 친노 강경파 인사라는 새정련 비주류 진영과 보수 진영의 공격에 '나는 친노도 비노도 아니다. 나는 홀로다. 그러나 불의에는 격노다. 소주는 진로다. ㅋㅋ'라는 게시물을 본인 SNS에 올려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웃어 넘겼다. 현재는, 사실상 위에 정의한 대로 정동영계나 정세균계 등의 계파 소속 논쟁에서 자유로워진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청래는 출신 성분부터 특정 계파에 소속되지도 않았다. 정치 데뷔도 탄돌이로 했고, 동교동계와는 당연히 무관하며, 운동권 비주류인 건국대학교 출신에다, 정통활동으로 친노 핵심들과도 척을 졌었기 때문에 무계보 무계파이다. 지역구 활동 및 인터넷,SNS,방송을 통한 자기정치로 자신 스스로 젊은 세대 및 더불어민주당의 감성적 지지자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그에 대해 '친북 성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한을 문제삼지 않고 미국을 비난하고 나선 점, 2007년 5월 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는 점, 2007년 10월 13일 광화문 열린 공원에서 열린 소위 '간첩· 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점, 2014년 4월 북한 무인기 사건이 터지자 북한의 짓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러 자료를 보이며 국정원과 기무사의 '음모론'을 주장했다는 점, 2015년 3월 문재인이 천안함 폭침이라고 발표하자 우클릭했다고 발언하는 점 등 때문이다.


6. 숱한 막말 논란[편집]


대가리가 빈 새끼들이 거칠고 큰 소리로 주접을 잘 떨죠.[2]


바뀐 애방 빼, 바꾼 애들 교도소로!


아래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입이 상당히 거칠고 막말과 욕설의 빈도가 잦다. 경박하다고 보일 수 있는 언어 사용은 대중들이 떠올리는 정청래의 대표적인 이미지일 정도이다. 구글에서 정청래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정청래 막말"이 나온다. 심지어 당 내에서도 내부에서 총질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다만 본인은 정작 조경태 의원이 지도부를 공격할 때, "내무반에 총질하는 행위"라며 극렬히 반발한 바 있다. 언론에서도 사설을 통해 그의 말의 품격을 비판한다.# 결국 2015년 5월 26일 공갈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당직 자격정지 1년’ 처분을 받았으나, 약 4개월 뒤인 9월 23일 징계가 해제되고 당직에 복귀했다.

이를 두고 당 주류의 감싸기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에게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냐'는 막말을 퍼부었던 조경태 의원에게는 정작 징계가 내려지지 않아 이 비판은 소리소문 없이 잦아들긴 했다.

사실 조경태의 경우 서면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정청래가 징계 해제된 시점과 비슷한 시점에 새정련 소속으로 마지막 징계 절차를 밟을 적에도 징계는 사실상 확정이었다. 그러나 징계를 어느 정도 수위로 주어야 하는지 결론이 나지 않아 최종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윤리심판위가 와해되면서 흐지부지됐을 뿐이다. 조경태 본인은 그냥 자신을 제명하라고 했다.


  • 2011년 12월 31일, 트위터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명박박명’이라고 적었다. 미인은 불행하거나 병약해 요절하는 일이 많다는 ‘미인박명(美人薄命)’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빗댄 말이다. 아무리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사람에게 빨리 죽으라는 ‘저주’는 금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았다.

  • 2013년 7월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바꾼 애들 감빵으로!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들은 감빵으로!"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그동안 막말을 여러번 한 정청래의 이 트윗 내용은 여러 매체에서 "박 대통령은 정당하게 당선되지 않았으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 책임자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도했고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품위 없고 경솔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정청래는 그저 '정치공작 규탄 및 국가정보원 개혁촉구 당원보고대회’에서의 말을 인용만 했다고 해명 했다.

  • 2014년 9월, 당시 새정련의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원내대표였던 박영선 의원이 중앙대 이상돈 교수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하자 극력 반대하였다. “이상돈 교수의 단독 비대위원장이든 안경환 교수와의 공동 비대위원장이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상돈 영입 카드가 계속된다면 박(영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단식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어제가 9월 11일이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 부분에 대한 9.11 테러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말도 했고, “이상돈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우리당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불철주야 안간힘을 썼던, 박근혜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라며 “이런 사람이 우리당의 선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상돈 교수를 향해서는 "처신 잘하시길 바란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라는 말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밥 숟가락 얹을 자리는 없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막말이 쏟아지자 이상돈 교수는 새정련 입당을 곧 거부하였으며, 박영선 의원은 그 후 10월 2일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정청래 의원의 막말이 쐐기를 박은 건 아니다. 박영선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유가족이나 당과 별다른 논의 없이 새누리당의 제안을 덜컥 받아버린 바람에 이미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고 그때 비대위원장직도 겸직하고 있어서 위원장직을 외부 인사에게 넘기려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5.16 군사정변을 '혁명'이라 주장하고 김대중 &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논조의 칼럼을 쓴 보수 진영 인사를 당의 수장으로 데려오겠다고 했으니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던 것이다.

  • 당 지도부가 출범하고 최고위원이 된 이후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 있었다. 2015년 2월 문재인 당시 대표가 국립현충원에 있는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한 것과 관련하여,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 현장이나 히틀러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는데, 이승만, 박정희가 자국민을 무차별 학살하거나 억울하게 죽였다거나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수천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라는 비판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정청래 의원 본인은, 위 발언은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 지지자 한 분이 "문재인 대표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는 히틀러 (또는 야스쿠니) 묘역에 참배하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억울함을 토로하기에 지지자의 발언을 당의 의원으로서 인용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보수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일부 있었다. 다만, 애초에 문재인 당시 대표가 당내의 목소리와 다른 행보를 한 것에 대해 비판을 했을 뿐이라며 정청래 당시 최고위원의 입장을 응원한 지지자들도 많았으므로,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다.

  • 2015년 4월에는 본인의 트위터에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없이 엉뚱하게 정치 개혁을 말한다. 자기개혁부터 하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댁들(꼬꼬댁)의 거짓말에 국민들은 질렸다”고 적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성 비하적인 표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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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 발언 당시의 모습.

  • 2015년 4.29 재보선 참패 후 주승용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의 거취를 거론하며 공격하자, "사퇴하지도 않을 거면서 사퇴하겠다고 공갈치는 것이 더 문제"라며 맞받아 쳤다.# 이것 때문에 발끈한 주승용 최고위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는데 실제로 주승용 최고위원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먼저 사퇴하겠다는 말을 누차 했으면서 정작 실천엔 옮기지 않았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주승용 최고위원의 이런 언행불일치를 '센 표현'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되어 자격정지 징계를 받아 한동한 자숙 기간을 보내다가 2015년 9월에 윤리심판원에서 그의 복권에 전원 찬성해 일선에 돌아왔다. 이 사건이 워낙 시끌시끌해서 이 일이 있은 후로는 확실히 발언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본인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보인다.

  • 막말과 별개로 말을 할 때 라임이 찰지다는 평도 있다. 당장 위에서 소개된 "나는 친노도 비노도 아니다. 나는 홀로다. 그러나 불의에는 격노다. 소주는 진로다."라는 드립력만 봐도 충분히 그러한 평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국회를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내자,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3년 7개월간의 의정 활동 성적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13년 7개월간의 의정 활동 성적을 비교하는 판넬을 만들어 공개하며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맞디스했다.#

  •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민주당과 진보진영 관련 지인들이 모여 대화한 온갖 과격한 내용들이 야권 지지자들의 환호를 얻으면서도 동시에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7. 2016년 컷오프 사태[편집]


내 인생 사전에 이혼과 탈당은 없다.
[3]

2016년 3월 10일, 4.13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2차 컷오프 명단에 정청래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이 때문에 당 안밖 그의 지지자들이 크게 반발했다.[4]

정청래의 컷오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 그의 날카로운 언변 때문이라는 견해다.

다시 말하자면 더민주 지지 세력을 불리는 데 정청래의 거친 언변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돌직구식 화법은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겐 큰 호응을 받지만, 무당파 중도층에게도 같은 효과를 내는지는 미지수이며 오히려 역반응만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나는 꼼수다의 멤버였던 김용민 PD가 2012년 19대 총선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울 노원구 갑 지역에 출마했다가 2004∼2005년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막말이 뒤늦게 총선 때 터지면서 무당파 중도층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민주통합당이 피해를 입었던 사례가 있다.

다른 의견으로는 '문재인 대표와 비노계의 대립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른 장본인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여기에 대해선 설명이 좀 필요할 듯 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열렸던 2.8 전당대회에서 가장 유력한 당권 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박지원 의원은 '친노 VS 비노', '당권 대권 분리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세를 꺾진 못해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근데 박 의원의 전략이 새정치연합 당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호남 당원들에게 먹혔는지 김한길 의원의 최측근이자 여수시에 지역구를 두고 있던 주승용 의원이 최고위원 선거에서 서열 1위로 선출되기도 했다.

문 대표는 취임 이후 무당파 중도층과 보수층 표심을 얻기 위해 박정희, 이승만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란걸 인정하는 행보를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새정치연합 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2015년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전패하자 주승용 최고위원을 비롯한 비노계가 재보선 전패의 책임을 물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非당원 지지층이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비노계의 문 대표 사퇴 요구는 '안 그래도 당이 혼란한 마당에 출범한 지 겨우 두 달밖에 안 된 지도부가 바로 물러난다는 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이냐'는 반박에 부딪혀 크게 힘을 받지 못했다. 김한길 안철수는 당대표직에 오른지 문에 주승용 최고위원도 공개적인 비판을 점점 줄이기 시작했다. 지지층은 되려 문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는 데다 사퇴 요구는 '좀 더 지켜보자'는 주장에 막혀서 더 이상 길을 뚫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주 최고위원이 다시 한 번 문 대표를 비판하자 최고위원 서열 2위였던 정청래가 "사퇴할 것처럼 공갈만 치고 사퇴 안 하는 게 더 문제라 생각한다"며 맞받았고 이 말에 격노한 주 최고위원이 방송사 카메라들이 쫙 깔린 회의장을 그냥 박차고 나가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자신을 포함한 지도부가 모두 물러나야 한다며 여러 차례 주장을 했고 자기가 가장 먼저 물러나겠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실천에 옮기진 않는 행태를 보였다. 정청래는 바로 이러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공갈'이라는 단어가 막말이냐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성냥불에 지나지 않았던 문재인 VS 비노계의 대립이 순식간에 산불처럼 커져버리고 말았다. 문 대표는 비노계와의 화합을 위해 핵심 당직에 비노계 인사들을 여럿 앉히는 등의 탕평 인사를 했지만, 정청래 최고위원이 당시 가장 문 대표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던 지도부 인사였던 터라 '이게 문 대표의 실제 의중이냐'면서 비노계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노사모'에서 활동했던 적도 있었고 또 이 사건 때문에 정청래 의원은 친노계의 핵심 인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정청래는 엄밀히 말하면 정동영계에 속했던 정치인이다. 때문에 4.29 재보선 때 정동영 전 의원이 새정련을 탈당해 서울 관악 을에 출마했을 때 당 안팎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컸지만 정청래는 의외로 잠잠했다.

정청래가 주승용 최고위원을 그 자리에서 그냥 무시했거나 아님 정제된 말로 비판했다면 아마 그와 같은 대형 돌발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사용하곤 하는 '정제된 말'로 비판했는데 발끈해 뛰쳐나가 버렸다면 그건 주승용 의원이 옹졸한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인증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근데 부적절한 단어를 섞는 바람에 주승용 최고위원이 화가 나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행동이 어느 정도 정당화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 보면 재보선 전패의 후유증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잊힐 테고 그럼 비노계를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좋게 좋게 데려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 공갈 발언 하나 때문에 건수를 제대로 잡혀 문재인 VS 비노계의 구도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버리게 됐다.

이에 비노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본격적으로 反문재인 전선을 펴서 당대표 흔들기에 나섰다. 덕분에 문재인 대표는 임기의 대부분을 비노계의 공격을 방어하는 일에 아깝게 허비해야 했다. 그리고 끝내 당내 분열을 막지 못한 당대표라는 억울한 낙인마저 찍혀버리게 됐다. 문재인 대표는 혁신위원장 직을 비노계의 대권 주자였던 안철수 의원에게 제의하고, 재신임 투표도 치르겠다고 하고, '문안박 연대'를 제안하는 등 비노계를 달래기 위해 갖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비노계는 이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문 대표도 총선이 임박해오는 위급한 시기에 이들과 더 이상 대화로 해결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는지 강경책으로 선회하게 된다.

게다가 문 대표와 비노계가 싸우는 동안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기 때문에 정청래에게는 장기간 당직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가 차후에 복권되었다. 그런데 아예 20대 총선에서 그를 컷오프시킴으로써 그의 발언에 대한 제재에 정점을 찍었다는 주장이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내 적지 않은 현역 의원, 당직자 및 지역구 지지자들은 이 컷오프에 대해 상당히 반발하고 있다. 상당수의 지지자들은 위의 주승용 의원에게 한 발언은 오히려 국민과의 약속을 안 지키는 주 의원에게 경고를 하고, 당을 지키고 당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발언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이다.[5]

또한 정청래는 19대 국회 정국의 어려운 더불어민주당에서 선두에 서서 맞서 싸운 인물이었다. 그동안 정국에서 야당이 목소리를 못 낼 때 목소리를 낸 인물이자, 가장 야당다운 인물 중 하나였고, 지역구 관리도 FM 수준으로 모범적인데 겨우 공갈 발언 하나 때문에 이렇게 내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친문 세력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구제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다른 컷오프된 의원들도 이의를 제기할 거고, 그들의 지지자들이 정청래 의원의 지지자들처럼 시위를 함으로써 당의 권위를 추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문 대표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란 걸 인정한다'는 발언을 '보수 쪽으로 편향된 발언'이라고 평가한 건 둘째 치고 그동안 정 의원은 수많은 막말을 쏟아내고 대리기사 폭행을 지시, 방조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던 김현 전 의원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6] 이 사건을 강하게 비판한 몇 안 되는 민주당계 진영 인물인 조경태 의원과 표창원 등에게 새누리당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그리고 조경태 의원은 새누리당으로 정말 넘어가 버렸다.

3월 16일, 공천 탈락 결정에 승복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정청래는 "우리 당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 당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 라고 발표했다. 또한 "개인 김종인에게 서운하더라도 당대표 김종인에 대한 비판은 자제해달라" 면서 지지자들에게 분열 방지와 과도한 비난 방지를 촉구했다.###

당 지도부가 손혜원 더민주 홍보위원장을 마포구 을전략공천하자 정청래 역시 흔쾌히 동의하며 손혜원 후보의 당선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했다. 이 전략공천은 정청래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많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나마 정청래가 신뢰해왔고 정청래 구명에 적극 나섰던 손혜원이 정청래의 동의와 지원을 받는다는 모습으로 정청래의 지역구에 공천되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인물을 전략공천했다면 지지층이 더 이탈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인지 손혜원 더민주 마포구 을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정청래와 함께'였다. 지역구에서 인기가 좋은 정청래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였다.

정청래 본인이 공천 배제 승복을 한 이후 출연한 '정봉주의 전국구'와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서 풀어낸 이야기에 따르면, 공천 배제 소식을 듣고서 지역구인 마포구 을 선거구 주민들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심지어 승복 기자 회견 이후에는 지지자들이 모여서 성토를 하다가 분함을 못 이겨서 지지자들끼리 싸우는 일도 벌어졌다고. 이런 사례들을 볼때 이 컷오프 사태가 지지자에게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에는 후보자들의 지원 유세에 나선다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총선 후 당권 주도권 경쟁을 준비하기 위한 홍보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관한 입장을 3월 28일자 오마이뉴스 팟짱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이른바 진보 진영 기자 한 명이 "지금 유세단 하는 거, 전당대회 노리고 하시는 거죠?"라고 질문한 일을 언급하면서 너무나 비인간적인 질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모임의 원래 이름은 더불어 컷오프 동지회의 줄임말로 더컷동이라고 했는데 손혜원 후보가 '더 컸으면 하는 사람들 모임'이라는 뜻의 "더컸유세단"으로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의 국민의힘 초선의원 대상 강연에서 이 사건이 다시 한 번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정청래는 금태섭을 정치를 후퇴시키는 불량배라고 지칭하며 우물에 침을 뱉지 말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정청래는 공천에서 배제된 뒤 탈당하지 않았고 당을 지원하며 선거에서의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한편 이에 대해 진중권은 침 아깝게(...) 오물에 뱉지 말라는 비꼼으로 응수했다.


8. 유시민 디스 논란[편집]




유시민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2000년대 중반 같은 열린우리당 소속 유시민에 대해 수차례 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정청래 본인이 직접 노사모 홈페이지나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 유시민을 비난하는 글을 여러차례 올렸다. 이 글들을 보면 정청래는 노사모 조직은 처음에 정청래 본인과 명계남, 문성근 등이 함께 만들었지만, 외부에 있던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이 굴러들어와 이를 접수한 상황을 매우 못마땅해 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유시민은 장외에서 개혁당을 창당하여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적극 도왔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관점의 차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정청래 본인은 유시민이 노사모에 굴러들어와 염치없는 태도로 조직을 강탈해갔다고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친노 적장자였던 안희정이 노무현 대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투옥[7]된 이후 유시민이 친노의 중심 인물이 되어갔고 그의 지지자들이 노사모 홈페이지를 장악했으며, 초기 노사모의 핵심이었던 문성근, 이상호, 정청래, 명계남은 오히려 겉돌게 되었다. 결국 정청래와 문성근, 이상호는 일부 세력을 이끌고 유시민계와 대척점에 있던 정동영계가 만든 '개나리봉사단'에 합류하고 만다.

정청래는 친노이면서도 정동영계였는데, 열린우리당내 호남계를 극도로 비판해왔던 유시민은 특히 정동영, 문희상 등 열린우리당 내 호남계 중진들을 여러차례 비난했었다. 이에 정동영의 측근이 된 정청래가 유시민을 맞디스한 것. 일단 당시 열린우리당 내에서의 일련의 디스전은 대리전 양상을 띄었는데, 유시민이 정동영을 비난하면 정동영은 유시민에 대응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으며, 대신 정청래가 유시민을 공개 비난했다. 그러면 유시민 또한 정청래에 직접 대응하지 않고 침묵하였으며, 대신 유시민의 지지자들이 노사모나 우리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정청래를 맹비난했다.

정청래가 유시민을 맹비난했지만 유시민은 정청래를 비난한 적이 거의 없다면서 유시민이 대인배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시 열린우리당내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유시민은 자신 동급, 즉 각 계파의 수장급인 정동영, 문희상, 김근태만 비판했고, 그들의 대변인격인 정청래에 대해서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즉 정청래와 유시민의 양자 관계만을 보자면 정청래가 유시민을 일방적으로 공격한 것이 되지만 사실은 거시적으로는 이런 대리전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표면적인 양자 관계만 놓고 유시민을 대인배라 한다면 같은 논리에 의해서 유시민의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을 직접적으로 비난한 적이 거의 없는 정동영이 진정 대인배가 되는 것인데, 하지만 사실은 정동영 대신 대변인격인 정청래가 유시민을 맹폭해 주었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 유시민이 정동영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 이후 정청래가 유시민이 당내 분열을 야기시킨다, 해당 행위를 한다는 맞공격을 했고, 그후 유시민 지지자들이 넷상에서 정청래를 공격하는 양상이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노사모의 패권은 이미 유시민에게 넘어갔기에 노사모 홈페이지에는 정청래를 비난하는 글들이 도배되었고 이에 정청래는 익명에 숨어서 무비판적인 주장을 하지 말고 자기와 직접 맞짱을 뜨자면서 노사모 게시판에 본인의 전화번호를 직접 공개하기도 했다.

정청래와 유시민의 관계는 노무현 정권 말기로 갈수록 더욱 극악으로 치달았는데, 정권 후기에 정청래는 완전히 정동영의 최측근이 되었기에 유시민과는 정치적으로 척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2007년 5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정청래는 유시민이 같은 당 대선 후보인 정동영의 대선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면서 유시민을 또다시 맹비난하며 아예 당에서 제명, 축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정청래는 5월 13일에서 15일에 걸쳐 언론 인터뷰 및 당홈페이지에 직접 장문의 글을 올려 유시민을 연속적으로 극렬히 디스하며 숱한 주옥과 같은 발언을 했는데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유시민 같은 간신은 내쳐야 한다"고 한 말은 이후에도 회자될 정도였다.

2007년 9월 16일, 유시민이 대선 출마를 포기하자, "정치 기술자 유시민은 대중으로부터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 사실 한 발짝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는 이미 숱한 거짓말로 대중을 현혹해 왔다. 거짓말은 새로운 거짓말을 낳고 끝내 그 거짓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어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그의 말로를 나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이다."라는 글을 썼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유시민은 주로 정동영, 문희상, 김근태 등 각 계파의 헤드를 집중적으로 공격할 뿐 정청래 같은 행동대원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았다. 먼 훗날인 2016년 썰전에서 정청래가 자신을 "간신"이라 한 것에 대해 이정도는 문학적 표현(또는 주관적 소신)일 뿐이지 막말까진 아니라고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허용된다는듯한 뉘앙스로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정청래 컷오프 논란 때 컷오프의 부당성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 크다. 전원책이 컷오프를 (전체적으로는 비판했지만) 중간에 약간 옹호하는 뉘앙스로 "정청래 의원은 근데 그동안 너무 막말이 심해서 이미지가 안 좋았어요"라고 하면서 "그대(유시민)에게도 간신이라고 했잖아요"라고 하자 나온 말이다.

근데 유시민은 정치 그만둔 후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을 받는 인물로, (비유용 드립이었지만) "김무성 의원이 저에게 종북세력이라고 음해 한 적이 있다. 근데 김무성은 종북이라는 말이 정치계에 유행하기 시작할때부터 공식석상이나 선거 유세 및 지역행사나 안 가리고 계속 썼던 사람이라 유시민 말고도 김무성의 종북프레임에 당한 사람이 많으며, 그중 언제 언급한 걸 말하는지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통진당에게도 종북타령했지만, 정의당에게도 종북타령,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종북타령, 참여연대에게도 종북타령, 심지어 문재인에게도 '종북세력을 국회에 잠입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 '종북 세력과 연대했던 사람'이라며 공격해서 논란이 있었다. 특히 이 발언은 통진당 출신 무소속 국회의원인 윤종오, 김종훈의 지역구인 울산 지역 선거유세에서 했던 거라(당시 김무성이 새누리당 후보 지지 연설을 하며 '(상대 후보는) 통진당 간판을 달고 나오다 이번에 무소속으로 위장해서 나왔다'라는 말과 더불어 문재인 비난을 같이 한 것) 두 의원(당시 후보)은 참다 못해 허위사실유포와 후보 비방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을 했다. 그 뒤에도 분을 못 이기고 '윤종오는 공수특전여단 출신의 국가보훈대상자인데 방위 복무한 김무성 후보가 무슨 자격으로 종북 운운이냐'는 말까지 남겼다. 게다가 과거 김무성 본인이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원내 협상 중 야당의원의 반대로 의견충돌이 해결 안 될 때) 몇몇 야당의원들에게 '그러니 당신들이 종북주의자라고 비판 듣는 거 아니냐'라고 하니 그들이 스스로 그래 우리 종북주의자 맞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야당 정치인 다수는 수년 동안 이어진 김무성의 종북프레임 발언에 당한 적이 있다.

유시민은 김무성에게 만약에 저한테 사과한다면 '그때 왜 그랬어요?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라고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도 할 정도라 같은 진보진영 출신에게는 원한을 가지거나 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그러나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유시민이 서로 '무관계한 사이'일 뿐이라고 표현한 것을 봤을 때 실제로 화해를 했는지는 미지수다.

2015년 5월 유시민은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정치카페를 통해 정청래 최고위원의 최근 막말을 언급하며 “정 최고위원은 자기 맘에 안들면 그 사람이 어떤 정파에 속했든 공격하는 정치인이다. 수 틀리면 공격한다”라며 평했다. 하지만 동시에 유시민은 정청래는 자기의 소신이 강한 사람이며 특정 정파의 이익에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평가했다. 유시민의 여러 발언을 종합하면 정청래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있지만 어쨌거나 정청래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의 발언은 매우 자제하고 있다.


9. 아들의 성범죄 사건[편집]


정청래 "아들이 여학생 성추행…피해자 2차가해 없길"
정청래 "아들 성추행 사건 송구…처벌회피 시도 없었다"
정청래 “前 의원 아들 성추행사건은 제 아들…깊이 사과”

정청래의 셋째아들이 또래 여중생에게 여러 차례 성추행성희롱을 가하고도 3년째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5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정청래의 아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을 따로 불러내 가슴 등 신체 부위를 만지며 성추행을 하였다. 그러나 피해 여학생은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길 원치 않아 신고 등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청래의 아들은 2학년이 된 이듬해에도 SNS를 통해 피해 여학생에게 "가슴을 만지고 싶다", "니 가슴 출렁이는거 보고 나 혼자 자위했다"라는 등 지속적인 성희롱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참다 못한 피해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하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조사 후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송치했다. 재판을 거쳐, 2017년 3월 가정법원은 혐의를 인정해 정청래의 아들에게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을 명령했다. 판결 이전에 정청래의 아들은 이미 학교폭력자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하루 8시간씩 5일간 총 40시간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했고 부모 교육도 8시간 이행했으며, 판결 이후 추가적으로 아이 교육 40시간, 부모 교육 8시간 이수 명령을 받았고, 정청래 측은 이를 이행하였다.

특히나 중학교 1학년생이 성범죄를 저질러 재판까지 받았는데, 성인이었다면 실형에 해당하는 중요한 범죄 사건이다. 게다가 그 성범죄가 단발성으로 그친것도 아니며 같은 학교에 다니며 수년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정청래의 아들은 이를 떠벌리고 다녀 피해자의 주변 친구들도 이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미 물 건너간 일이지만 만약 아들을 자진해서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조치를 취했다면 타격이 덜 했을 수도 있다. 성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를 계속해서 같은 생활권에 두는 건 피해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해자의 부친이 당시 국회의원이었으니 피해자 측에선 강하게 나오기가 꺼려졌을 수도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청래는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생겼는데, 정몽준이 단지 아들의 SNS 때문에 정계에서 은퇴하는 지경에 이른 걸 생각해보면 정청래 역시 정계에서 은퇴하거나 은퇴를 하지 않더라도 정치활동이 sns에 머무르는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것이 뒤늦게 드러났기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정청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조차 큰 실망감을 안긴 것이 사실이다.

아래는 정청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공식 사과문이다.

<사과드립니다.>

9월 22일자 한국일보, 동아일보 등 사회면 기사에 나온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님, 그리고 학교 측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피해 학생이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팩트는 이렇습니다. 2015년 당시 제 아이와 피해학생은 중학교 1학년, 만 12세였고 친구 사이었습니다. 그 때 제 아이가 문제의 행동을 하였고, 피해학생이 거부하자 행동을 중단했습니다. 이후 중학교 2학년 때 제 아이가 피해학생에게 익명으로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냈고 피해학생이 이를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제 아이는 자신이 한 일이라는 사실을 바로 밝히고, 피해학생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했습니다. 이에 피해학생과 부모는 취하를 원하며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수사와 재판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었고 제 아이는 지난 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하루 8시간씩 5일간 총 40시간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했고 부모교육도 8시간 이행했습니다. 또한, 올해 초 가정법원재판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아이교육 40시간, 부모교육 8시간 이수 명령을 추가로 받고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전체 과정 동안 저는 제 아이의 처벌회피를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음을 밝혀둡니다.

기사에서 제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제가 먼저 사실을 밝히는 것은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혹여 추가 취재과정에서 피해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그 신원이 노출되어 또 다른 상처를 입을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언론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오며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는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마음이 무겁고 착잡합니다. 제 아이 역시 잘못을 뉘우치며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저도 제 아이도 함께 각별히 노력하겠습니다. 거듭 피해학생과 학부모님에게 깊이 사과드립니다.

학교 측에도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추후 어떠한 조치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2017년 9월 22일

정청래 올림.


정청래의 페이스북에서는 위 사건에 대해 정청래를 옹호하고 응원하는 댓글과 더불어 음모론, 그리고 정청래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김종인 대표가 이 사건 때문에 정청래를 공천 배제 대상으로 찍은 것 아니냐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정청래 아들의 학교 성범죄 논란은 민주당이 연일 아들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장제원의 정계은퇴를 압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3년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가해 논란과 관련하여 정순신 임명이 하루만에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통령의 사과와 한동훈 법무장관의 해명까지 요구하자 여당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하였다. #

이동관 아들의 학교폭력 의혹과 더불어 정청래 자녀가 학생이었을 때 벌인 성추행 행각이 재주목되고 있다.

10. 뺑소니 사건[편집]


정청래는 2018년 5월 4일 오후 8시 30분쯤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차량 전면을 들이받은 후 차주에게 연락하거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정청래는 직접 제네시스 차량으로 후진하던 중 주차돼 있던 벤츠 차량 전면을 들이받아 벤츠 차량 전면이 일부 파손되었다. #

차량 파손을 발견한 벤츠 차주는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주차장 폐쇄회로TV(CCTV)를 확보해 가해 차량을 확인했는데, 가해자가 정청래임이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CCTV에 정 전 의원이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두리번 거리는 장면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청래는 음주상태는 아니었으며 “촬영 때문에 급하게 이동하느라 그랬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19일 사실 확인 후 도로교통법에 따라 정청래에게 주차장 뺑소니 사고에 대한 범칙금 14만원을 부과했다. 정청래는 수리비에 대해 '보험 처리했다'고 밝혔다. #


11. 산수 논란[편집]


2020년 7월 2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것을 두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야권에서 이탈표가 나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탄핵소추안 부결 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야권 측에서 찬성표 투표에 빠진 사람이 있다고 추측했다. 그는 "미래통합당, 무소속 등 110명 제출안 탄핵소추안에 실제로 찍은 표는 109표였다"며 "올림픽 정신에 입각해 탄핵안을 냈다지만 정작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안 찍은 범인 1명은 누구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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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표결 후 당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동 발의한 야권 의원) 110명 중 3명이 빠졌는데, 최소한 우리 쪽에서 무효표가 없었다는 가정하에 표가 더 나왔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또 "기권표 4개가 있었는데, 기권은 사실상 찬성"이라며 "(여당 쪽 이탈표는) 최소 6표 이상"이라고 말했고 진중권은 24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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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박원순 성추행 사건 피해자 2차 가해 논란[편집]


2020년 7월 13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박원순 영결식 당일 피해자 A씨 측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데 대해 "만감이 교차했다. '꼭 오늘이어야 했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문제 삼으며 영결식과 피해자의 기자회견 날짜가 겹치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거기에 정의당의 ‘조문 보이콧’ 논란에 대해서도 “당원의 도리보다는 인간의 도리가 더 중요한 것이다. 정의당의 노회찬 전 의원이 살아계셨으면 조문 가지 않겠다는 정의당 의원들을 향해 뭐라고 했을까”라고 했다.# #

이와 관련해 진중권 전 교수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청래가 노회찬을 언급한 것을 그대로 인용하며 “노회찬 의원이 살아계셨다면 잘 했다고 하며 밥 사줬겠지. 노회찬이 자기 같은 줄 아나”라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13. 임대주택 건설 반대 님비 논란[편집]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8.4 부동산 대책에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있었는데, 정 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짓지 말라고 해서 님비 논란이 되었다. 정 의원은 "상암동은 이미 임대비율이 47%"라며 "여기에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문재인 정부의 주택 정책을 반대할 리 있겠냐"면서도 "주민들과 마포구청, 지역구 국회의원과 단 한마디 사전 협의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게 어디 있느냐.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그냥 따라오라는 방식은 크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마포구 민주당은 부동산 등의 경제정책에서 보수화되는 경향이 짙었는데, 그러한 부분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는 노웅래, 유동균 등 마포구 민주당 정치인들의 행보에서 꽤 많이 드러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아현포차 철거 사건, 경의선공유지 논란 등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서울에서 정의당등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이 지역의 집권세력인 민주당 세력과 대립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14. 추미애의 청탁 의혹에 대한 옹호 및 김치찌개 비유 논란[편집]


tbs라디오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보좌관의 군부대 전화 논란에 대해 "아들과 보좌관이 친하니 엄마가 아니라 보좌관 형한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라며 "식당에서 김치찌개 시킨 것을 빨리 달라고 한 게 청탁이냐"고 주장했다. 이는 본질을 벗어난 비유이며, 국민 정서와 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 #

정청래의 김치찌개 발언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9일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평소에 식당에서 김치찌개 시켜먹듯 청탁을 하나 보다”라고 비판하며 글을 남겼다.#


15. 후원금 구걸 논란[편집]


해당 기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10월 27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장이 텅 비어 있으니 마음마저 쓸쓸하다”며 “한 푼 줍쇼”라는 글을 올렸다. 얼마 전 같은당 김용민 의원이 “김밥만 먹고 있다”며 앵벌이성 글을 올려 논란이 됐는데 정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글을 올린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잇따라 ‘앵벌이성’ 글을 올리는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후원금 구걸논란에 신경 안쓰이는지 2700만원 벌었다고 자랑하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16. 윤석열 방지법 발의 논란[편집]


12월 28일, 집행정지 결정의 신청이 본안소송 등의 실익을 해치고, 행정행위의 당사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이 발생하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처분의 효력정지 신청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소위 '윤석열 방지법'을 발의했는데, 특정인을 압박하기 위한 여권의 '입법 전횡'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한 비난은 덤이었다.#


17.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 발언 논란[편집]


“국가 원수가 실험 대상이냐” 백신 1호, 정청래 발언 논란

한국에 도입예정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에 대한 안정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문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이 자초한 국민의 백신 불신 해소를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1호 접종을 대통령부터 하시라”고 주장하였다. 앞서 문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만약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아주 높아져 솔선수범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1호 접종을) 피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약속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국가원수나 국가통수권자들 중에선 백신불신의혹을 낮추기 위해 본인이 먼저 접종을 맞은 사례가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보다 11세나 나이가 많은 조 바이든대통령이 미국국민들보다 먼저 백신을 맞았고,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등 세계 각지의 국가원수들이 솔선수범으로 나서서 백신을 제일 처음 맞았다. 그리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등도 자신이 제1호 접종자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종사자들에게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닌 화이자 백신을 맞는 것으로 결정되었기에 정부 스스로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를 낮춘 상황이었다.

유승민의 주장에 정청래가 발끈하며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이 백신 주사를 먼저 맞으라는 건 ‘초딩 얼라’[8]보다 못한 헛소리”라며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인가. 국가원수는 건강과 일정이 국가기밀이고 보안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정청래를 향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그럼 국민이 생체실험 대상이라는 건가”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국민의 힘 김용태 경기 광명을 당협위원장 또한 “정청래 씨는 국민이 솔선수범해 접종하고 안전이 검증되면 대통령이 맞아야 한다는 말인가. 본인 논리대로라면 국민이 무슨 실험대상인가”라고 비판했다.# #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다 오히려 부담만 더 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을 받자 정청래 의원이 유승민 전 의원에게 같이 아스트라제네카 먼저 접종받자# 라는 제안을 하였지만, 네티즌들로부터 뜬금없는 말돌리기라는 비판을 받았고, 백신을 관리하고 방역 체계의 컨트롤 타워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역시 "백신을 맞는 모든 국민들은 누가 되든 실험 대상이 아니다" 라고 비판하며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또한 대통령의 아스트라백신 1호 접종요구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18. "박영선마포구 을 사전투표에서 이겨" 허언 논란[편집]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뒤, 정청래 의원 자신의 지역구인 마포구 을 선거 결과에 대해 "사전투표는 박영선이 5.00% 이겼고 총합은 박영선이 8.46% 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포구 을에 속한 9개동(서강동, 서교동, 합정동, 망원1동, 망원2동, 연남동, 성산1동, 성산2동, 상암동)의 관내사전투표에서 오세훈 후보가 4만 8019표, 박영선 후보가 4만 1248표를 얻어 오 후보가 6771표차로 이겼다. 게다가 마포구 관외사전투표[9] 역시 오세훈 후보가 5845표, 박영선 후보가 5338표를 얻어 오 후보가 앞섰다. 여기서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마포구 을에서 박 후보가 5338표를 다 얻고 오 후보는 1표도 못 얻었다고 치더라도, 관내사전투표에서 오 후보가 6771표차로 이겼기 때문에 오 후보가 사전투표에서 이긴 게 명백하다.# 정 의원은 그것도 모자라 국민의 힘 대선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의 승리를 점쳤는데, 정작 홍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당원 투표에서 큰 차이로 밀리며 최종 결과 6%차로 패배했다.

19. 언론중재법 반대자들 조폭 비유/ 국회법 위반하여 직권 상정 안한다며 국회의장 비난[편집]


페이스북 원문

2021년 8월 3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2021년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 논란을 두고 개정안 입법에 반대하는 언론을 향해 도둑, 조폭에 비유했다.

그는 "'가짜뉴스, 허위기사는 처벌합니다.'에 소리 높여 반대하는 언론들 이해가 됩니까?(진실만 보도하겠다는 다짐이 중요하지.)"라고 얘기하며 이와 함께 "'도둑질하면 처벌한다.'에 반발하는 도둑들이 있다면 이해하시겠습니까? (도둑질 안 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지.)",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고 조폭들이 집단 항의시위 한다면 여러분들은 동의하시겠습니까?(착하게 살겠다는 개과천선이 필요하지.)", "파리 모기약 팔지 말라고 파리 모기들이 약국 앞에서 집단항의 시위하다면 파리 모기들 편들어 줘야 합니까?(파리 모기들을 나무라야지)"라고 극언을 날렸다.기사

그러나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정청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인권위 사무처는 검토보고서에서 "국제사회는 허위정보 대응에 대해 정부 기관이 판단을 내리는 방식과 가짜뉴스 그 자체를 처벌하는 법률 제정은 '지양'하고 장기적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상임위원들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의결했다.인권위 "허위보도 시정명령 법안, 언론 자유 침해" MBC 뉴스 2020-10-29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와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조폭, 도둑, 파리·모기들이 반대하는 개정안이 아니라 국내외 언론단체들이 언론 자유의 본질을 훼손한다며 비판하는 개정안이다. 그에 말에 따르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큰 우려와 함께 반대 의사를 표명한 세계신문협회(WAN-IFRA), 국제언론인협회(IPI), 국제기자연맹(IFJ), 국경없는기자회(RSF)등은 국제적인 범죄조직인 마피아삼합회 쯤이 된다.

더군다나 UN 인권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UNHRC)도 민주당에 공식적으로 우려 의사를 표명했다.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OHCHR#)에선 민주당에 언론중재법이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인권규약에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한 반론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정청래 의원이 글을 게시한 날이 언론이 이 사실을 확인해 보도한 날이다.#1 #2

정청래는 언론중재법 직권상정을 거부한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을 국회 사유화 라며 비난했는데# 국회법에 따르면 직권상정 자체가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고 모든 법안은 여야 합의로 본회의에 상정하는게 원칙이다. 정청래는 다선의원인데 국회법을 모르고 할 법한 발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언론, 시민 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저런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은 충분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강행처리에 반대했다.#

정청래가 특단의 대책을 운운 하며 경고까지 했으나, 박병석 국회의장측에서는 "처음에 귀를 의심했다"며 "부적절하고 있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냈다. 결국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포기했다.


20. 불교계 문화재관람료 통행세 비하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청래 사찰 통행세 발언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정청래 정치경력에서 가장 큰 위기라 볼 수 있다.


21. 기자 밀침 논란[편집]


2023년 1월 10일, 이재명 대표가 성남 FC 후원과 관련한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따라붙었는데 정청래가 기자를 밀쳐서 논란이다.野의원들, '이재명 방탄' 위해 질문하는 기자 밀쳐 논란

논란에 대해 정청래는 1월 13일 "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으며, 비판 여론에도 정 최고위원은 "사람들이 월드컵의 메시처럼 (기자들을) 제쳤다고 하더라"라며 농담을 건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겠다 생각했다. 저는 손을 쓰거나, 몸을 쓰거나 그러지 않았다"며 "제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갔더니 옆에 있던 기자가 싹 돌아섰던 것이다. 기자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기자 밀침 논란에…정청래 "나보고 월드컵 메시 같다더라"


22. "넷플릭스에서 유치했다는 투자는 통상적 수준" 허위 주장 논란[편집]


정청래 최고위원은 4월 26일 당 최고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한미정상회담 중 넷플릭스에서 유치한 4년간 25억 달러(3조 3천억원) 규모의 투자가 자랑거리가 맞냐고 반문하며 2022년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액이 8천억원이었다면서 계산해 보면 정부에서 유치했다고 알린 투자액 수준인데 어차피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돈 벌려면 그 이상의 투자를 해나가야 할 상황이라고 정부의 투자 유치 성과를 평가절하했다.

그러자 넷플릭스에서 직접 반박문을 내어 정부가 유치한 투자액은 넷플릭스가 2016년부터 당시 시점까지 한국에 투자한 누적 액수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라고 밝혔다. 그리고 정청래 의원의 주장을 '최근 한국 정치권 일각에서 있었던 주장'이라고 지칭하면서 거기서 언급한 2022년 투자액이라는 액수는 실제 제작비를 반영하지 않은 오류라고 지적하여, 정청래 의원의 주장이 허위 주장임을 명백히 했다. #1#2#3


23. 최고위원, 상임위원장 겸직 논란[편집]


국회 과방위원장 ‘겸직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3선·서울 마포을)이 차기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도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당외는 물론 당내에서도 논란이 거센데, 정 최고위원은 박광온 원내지도부가 자신의 행안위원장 임기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고, 박광온 원내대표는 난색을 표하고 있어[10] 갈등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겸직 논란'에도 행안위원장 가닥…당내선 "욕심 아니냐" 불만
정청래 겸직 논란, 무모한 버티기? 방송 개편 샅바싸움?
정청래, 겸직 논란에 "상임위원장 2년 임기, 관례 아닌 법"
'겸직 논란'에 정청래 "과방위원장직 계속"…野 지도부 고심
'상임위 내홍'에 정청래 "다음 타깃은 李…기필코 사수할 것"

24. 김기현 당대표 연설 중 고성 및 질의 방해 논란[편집]



19일 이재명 당대표의 교섭연설이 끝나고 다음날 20일 김기현 국민의 힘 당대표의 첫 국회연설 도중 "땅땅땅", "울산 땅", "땅 대표", "땅 파세요", "울산 땅이나 걱정하세요" 고성을 외치며 대놓고 연설을 방해하여 네거티브성 조롱을 하기 시작하였고 듣다 못한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야! 정청래!" 라고 항의하자 "왜! 왜그래!"라며 철면피스럽게 맞받아쳤다.#

정작 옆자리에 있던 이재명 당대표는 정청래를 제지하기는 커녕 미소를 지었고 옆에 있던 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게 김기현 국민의 힘 당대표 연설내내 정청래 의원 주도 하에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울산땅'과 김기현 당대표 아들이 코인관련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것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워딩으로 연설을 방해하였다.

21일 국민의 힘측 이용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19일 이재명 당대표 연설당시 자신을 포함한 국민의 힘 의원들은 대장동, 성남FC 관련 워딩으로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당대표니까 예우차원에서 경청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예우도 없이 당대표가 연설하는데 고성을 지르며 방해하였고 이날 방청석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견학 겸 방청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초거대 의석 정당이 이렇게 수준낮은 행위를 하는데 어린 초등학생들이 이걸 보고 무엇을 배우겠냐"며 비판하였다.#

25. 단식투쟁에 대한 이중잣대[편집]


2023년 8월 31일부터 이재명 대표가 무기한 단식투쟁과 정치적 일정 소화를 병행하자 이 대표의 단식을 지지한다며 하루 동안 같이 단식하였다. 그러나 2019년 11월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당대표가 단식투쟁을 할 때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출퇴근 단식[11] 처음 봤다", "단식은 어떻게 보면 마지막 수단인데 지금 정기국회 중인데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한다는 좀 안 맞는 콘셉트 같다", "황 대표는 나라가 위기다 이렇게 주장하지만 제가 볼 땐 단식하는 그 자신의 위기이고, 그걸 탈출하기 위해 단식을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조롱하고 비난했다. 거의 동일한 상황에서 단식의 주체에 따라 정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정청래의 과거 발언은 현재 이재명의 단식을 비판하는 여론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26. 대정부질문 중 고성 및 방해 논란[편집]


동년 9월 8일 국회에서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임오경이 질의를 하던 중 한동훈이 "검수완박으로 마약 수사 못하게 해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좀 이상하죠?"라고 하자 큰 소리를 지르며 야유를 보냈다. 질의에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기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부의장 김영주 의원까지 다소 화가 난 말투로 정숙을 요구하며 "국민들께서 방청하고 계시고 국회 방송을 통해 생방송 중입니다. 의원님들께서 질의하시는 의원님이나 답변하시는 정부 측에 불만이 있을 수 있어도, 의원님들도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청래는 경고가 끝나자마자 다시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짜증이 난 한동훈은 "정청래 의원님, 정상적인 질의 응답이 안 됩니다.", "야구장 오셨습니까? 왜 자꾸 야유를 하세요?",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시겠어요?"라고 일침을 날렸다.#


27. '한일전 축구 우승 금메달. 내년 한일전 총선도 이겼으면 좋겠다' 발언 논란[편집]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팀이 일본을 상대로 승리해 금메달을 따자 페이스북에 "내년 한일전 총선도 이겼으면 좋겠다"고 써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1] 정청래도 비록 후순위이긴 해도, 대권주자로 거론은 되는 입장인데, 그러하다보니 만약 정청래가 대통령이나 혹은 국무총리 등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면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임에도 과거 행적 때문에 미국 입국 금지라서 미국에 못가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는거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물론 미국이 그정도로 꽉 막힌 국가는 아니기에, 그런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은 낮긴하다.[2] 2012년 5월 전원책 변호사는 KBS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에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개새끼'라고 하면 종북세력이 아니다. 만약 대답을 못하고 피한다면 종북세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정청래의 평이 바로 이 말이었다. # [3] 하지만 당시 손혜원 후보의 말에 의하면, 정청래 후보 부인은 자기는 이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고 하고 이 말을 듣은 정청래 본인이 굉장히 우울해했다고 한다.[4] 차라리 정의당에 가라는 의견까지도 있었으나, 정의당에 입당해도 시기가 너무 늦어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없기에 어쨌든 총선 출마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좌파 사민주의 성향의 정의당과 정청래의 정치 노선 또한 확실히 다르다.[5] 같은 당의 임수경이나 김현의 경우는 대민 마찰 전력으로 인해 컷오프당했는데, 정청래는 수많은 막말과 김현 의원을 비판한 조경태, 표창원 등의 이른바 '새누리당 프락치들'에 대한 폭언을 쏟아냈지만 적어도 대민 마찰은 없었다.[6] 훗날 김현 전 의원은 이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는 데다 CCTV로 입증된 사실과 진술 내용이 엇갈리고, # 김현 의원의 '명함 뺏어!' 발언은 직접적인 폭행 지시는 아니라고 판단해서라고 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7] 이에 대해 노무현은 안희정이 자신을 대신해 큰 희생을 감수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8] 어린 아이를 뜻하는 경상도,평안도,함경도 방언으로 과거 유승민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고리 3인방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지칭하며 비판한 것을 정청래가 역으로 재활용 한 것이다.[9] 관외사전투표는 시군구 단위로 집계되므로 마포구 을만 떼어놓고 알 수는 없다.[10] 참고로 박광온 원내대표는 1일 기자들과 만나 "박홍근 (전 원내)대표가 말하길 그때가 전당대회가 진행 중이라 (정청래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더라면 (정 의원에게 과방위원장직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근데 아직 (최고위원에 당선) 되지도 않았는데 전당대회에 최고위원으로 출마했다는 이유로 배제할 수가 없어서 맡겼다. 대신 최고위원에 당선되면 (과방위원장직) 사직을 해달라고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근데 정청래 의원은 '그 얘기를 듣기는 들었으나 난 동의한 적이 없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 설명했다.[11] 황교안은 낮에 청와대 분수 광장에서 농성하고 밤에는 국회 본관 앞 천막에서 잠을 잤는데 이걸 비꼰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도 낮에는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을 하며, 밤에는 대통령도 장관도 아닌 국회의원 한 명인 자신의 경호 문제를 이유로 국회 본관 내에서 취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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