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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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및 미군정 경상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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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상북도지사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의 친일 관료.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조선인으로 충청북도지사,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했다. 본관은 연안 이씨[1]다.


2. 생애[편집]


1900년 7월 29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이윤모(李潤模)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 중학부를 마친 후 1923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 영법과를 졸업했다.

1923년 12월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2] 귀국하여 숭실중학교 강사와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있다가 1925년 조선총독부에 들어가 내무국 지방과 소속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충청남도 내무부 산업과장·학무과장, 조선총독부 학무국 종교과장, 함경남도 재무부장, 평양세무감독국 세무부장, 경상북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 경기도 참여관 및 산업부장 등을 거쳐 1942년 고등관 2등으로 승급하여 충청북도지사, 1943년 고등관 1등으로 승급하여 경상북도지사에 부임했다. 1945년 6월 지사직을 물러났다.

광복 후에는 화신무역주식회사 전무, 상호무역주식회사 전무, 경찰후원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자수하여 특별검찰부로 송치되어 기소유예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6.25 전쟁 중에 납북되었으며,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과,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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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장군공파 25세 근(○根)자 항렬이다. 부친은 24세로 모(○模)자 항렬이고, 자녀는 26세로 황(○晃)자 항렬이다.[2] 사법과는 1925년 조진만이 처음 합격했고, 외교과는 1933년 합격한 장철수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