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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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
2. 이종범 vs 양준혁
3. 94 이종범 vs 14 강정호
4. 보이지 않는다?
6. 사구와의 악연
7. 기타



1.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편집]


전성기 때는 화려한 성적으로, 전성기가 지난 후에는 KIA 타이거즈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과 여러 가지 사건으로 유명한 이종범이지만, 특히 2009년부터는 야갤정사갤을 중심으로 퍼진 홍어드립을 비롯한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항목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살펴보면 이종범이 잘못한 부분은 거의 없다. 오히려 피해자인 경우도 있을 정도.

2. 이종범 vs 양준혁[편집]


잘라서 말하면, 둘의 롤이 달랐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하기가 힘들다. 한 명은 유격수-외야수였고, 한 명은 거의 1루-지명타자였기 때문이다. 누적 통산 WAR은 양준혁이 훨씬 이종범보다 오래 KBO에서 뛰었기 때문에 양준혁이 높을수 밖에 없다.[1] 그래도 이종범은 누적 WAR이 대략 역대 5위권안에 든다. 정확히는 양준혁이 타격 WAR 역대 누적 1위, 이종범은 타격 WAR 역대 누적 3위다. 그러나 단일 시즌 임팩트으로 보면 94 이종범은 야수로서 KBO 역대 압도적인 WAR 1위이며 양준혁의 어느 시즌보다 우월하다. 결정적으로 중요한건 양준혁은 외야, 지명타자로 나와서 수비지표가 딱하기 그지없지만, 이종범은 내야수로 다섯시즌을 뛰었다. 그것도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2] 단기간 리그를 씹어먹는 엄청난 임팩트냐 아니면 장기간 꾸준함이냐에서 호불호가 갈린다고 해야 되겠다. 이는 이종범 vs 전준호의 논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통산 도루 갯수는 전준호가 KBO에서 훨씬 더 많이 뛰었고, 이종범은 전성기에 일본가서 까먹은게있기 때문에 이종범이 누적에서는 손해를 봤ㅈ만, 단일 시즌으로는 세이버메트릭스 스텟상 94 이종범이 wSB 11.1으로 압도적으로 1위다. 그리고 단일 시즌 순위로 보면 10위권에 전준호는 04년도 한 해밖에 없으나 wSB 순위에 이종범이 4시즌이나 있으므로 그 당시 기준으로 이종범이 주루로 전준호를 압도하는게 맞다.

당사자들 역시 이러한 팬덤의 VS 놀이에 재미들렸는지 은퇴 후에는 공식적인 인터뷰건 사적인 자리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더 잘했다고 신경전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2015년 6월 12일과 13일 펼쳐진 삼성과 KIA의 맞대결에서 이 둘이 해설로 함께 경기를 준비하면서 입담 대결을 펼쳤다.

그리고 2016년 스크린 야구 레전드야구존 광고에 양준혁과 같이 출연해 "일본만 안 갔어도 형 기록 다 내껀디"라는 드립을 시전했다.#

참고로 아들에게 이종범 vs 양준혁 떡밥에 대해 엠스플에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때 이정후는 양준혁 편을 들었다. 그래서 이종범이 시무룩해했다는 카더라가 존재.

그리고 양준혁은 2017년 들어서 다른 이유로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다. 여전히 솔로부대로 남아 있는 양준혁에 비해 이종범은 벌써 아들인 이정후가 프로 선수로 입단해서 그해 신인왕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MBC 에브리원비디오 스타에 출연해 사투리 만담 콜라보를 펼쳤다. 1997년도 신문기사에서 이종범은 "팀에 기여한 만큼은 받아야겠다. 양준혁보다 적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고 양준혁은 "방망이싸움서는 늘 이기고도 이름싸움서는 늘 뒤졌다. 연봉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96년 해태는 우승을 했고 삼성보다 순위가 높았음에도 삼성이라는 곳은 우승을 안해도 돈을 더 많이 받는다. 당시에도 내가 2천만원정도 덜 받았다"며 "회사가 (상대가) 안돼요~. 삼성은 반도체 팔고 우리(해태)는 맛동산 10개 파는데~"라며 당시 겪었던 서러움을 재미나게 풀어놓으며 MC 및 게스트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양준혁은 "야구, 당구, 축구는 이종범이 나보다 더 잘한다. 난 이종범보다 잘하는 게 없다"고 이종범을 추켜세웠으나 이종범은 "양준혁이 자신보다 훨씬 부족하다"면서 "자식도 없고 센스도 없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하였다.

3. 94 이종범 vs 14 강정호[편집]


강정호가 MLB로 진출하여 적응에 성공함으로서 포지션 불문 KBO출신 야수들중에서는 최고임을 증명이 되었나[3] 다만 역대 KBO 기록으로 단일 시즌 최고의 유격수는 누구였는가라는 떡밥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4]

94 이종범: 타 0.393[5] 출 0.452 장타 0.581 안타 197 홈런 19 타점 77 득점 113 도루 84.
14 강정호: 타 0.356 출 0.459 장타 0.739[6] 안타 137 홈런 40 타점 117 득점 103 도루 3.
고전 스탯으로 보면 타율, 도루만 빼면 타격 부분에서 강정호가 확실히 좋아보인다. OPS도 1.198 vs 1.033으로 강정호가 앞선다.

파크팩터를 계산하고 리그 평균치를 100으로 해서 조정한 조정 OPS를 보면[7] 이종범이 OPS+가 195이고 강정호는 193으로 이종범이 크게 차이가 안 나는 이종범의 근소 우위. 자, 그럼 이제 공격 부분 세이버메트릭스 스탯상 가장 대표적인 wOBA(가중 출루율)을 보자. 강정호 0.504, 이종범 0.463으로 강정호가 좀 우위다.[8]

이 wOBA를 가지고 득점생산력을 계산한 wRC를 다시 리그 기준을 100으로 계산한[9] wRC+를 보면 이종범이 193, 강정호가 189으로 이종범이 근소 우위라는 걸 알 수 있다. 세이버메트릭스 지표상 94 이종범이 근소하게 우위이므로 이종범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순수하게 압도적인 출루율+장타율이 높은 강정호의 손을 들어줄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루지표인 wSB가 이종범이 11.1으로 단순히 도루 갯수만 많은 게 아니라 득점으로도 연결을 많이 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므로 도루지표 때문에 이종범에게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수비는 당시 에러 산출 방식의 문제가 있었고, 90년대 보살 및 자살 기록이 전무한 상황이라 수비지표에 딱히 확답을 내리기 어려우나 일단 단순 에러 갯수로 14 강정호가 94 이종범보다 적음으로 조심스럽게 강정호가 수비가 낫고, 그러기 때문에 유격수 강정호가 낫지 않은가라는 결론도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WAR이 94 이종범이 역대 야수 WAR 1위[10]임을 생각하면 이종범이 유격수이자 야수로서 더 낫지 않은가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딱 잘라 말해서 둘 다 KBO에서 1, 2등하는 역대 유격수임은 틀림 없다. 세이버메트릭스상 타격지표는 비슷하므로 취향대로 뽑으면 된다.

그래도 누적은 강정호가 위가 아니냐라고 할지도 모르는데 이종범 유격수 5년 누적 WAR이 강정호 유격수 누적 WAR보다 높다.

4. 보이지 않는다?[편집]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등지에서 틈만 나면 까이고 있으며, 투명드립의 필수요소(...)로 쓰이고 있다. 단, 선수 본인의 잘못은 전혀 없다. 게다가 세이버스텟이 국내에 보급되면서 고전스텟으로 "보이지 않는 스텟"을 세이버스텟이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5. 흑역사[편집]


이종범의 3대 흑역사는 기쎈비타 TV광고, 금종범, 선동렬/ 양수경과 같이 Two&One으로 낸 음반이 있다(...)

  • 기쎈비타
이 광고는 숀 헤어, 무등경기장 물방개 사건과 함께 타이거즈 3대 흑역사로 남아있다. OTL 기쎈비타는 당시 판매하던 에너지 드링크 음료이다. 기쎈비타 광고 영상
'16년 MBC 스포츠플러스엠스플 텔레비전 9화에 이종범이 출연하여 직접 이 CF의 제작비화를 설명했다. 시즌 중 CF촬영을 너무 싫어했던 코감독님의 눈을 피해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새벽5시부터 24시간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김선신과의 깨알같은 재연은 덤. 2017년 MBC every1비디오스타에 출연해 김숙과 또 한 번 재연했다.

  • 금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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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리즈시절=금종범.jpg 금종범은 불암콩콩코믹스에 소재로도 나왔다. 그것도 4번씩이나. 2009년 8월 20일, 2010년 6월 10일[11] 6월 16일, 이종범 은퇴만화(옷을 벗기는 남자 편), 마구마구 레전드 열전 은퇴 기념 레전드 카드 발매만화.

금종범 사진 중에서 다이빙 캐치하는 사진은 스포츠신문 해태 타이거즈 전담 기자였던 박승현 씨[12]의 조력으로 탄생했다.

* 음반 발매
93년 우승 당시 모기업 해태는 우승을 해도 포상금을 두둑하게 챙겨주지 못했고 결국 이상국 단장이 김응룡 감독 몰래 추진한 일이 음반 발매였다. 연습과 녹음을 병행하느라 코피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재고만 3만장 쌓였고, 감독에게는 두고두고 까였다고 한다. 선동렬, 이종범이 다치기만 하면 코치에게 '나이트 자리 알아봐라'고 했다고. 참고로 그룹 이름은 'Two&One'이다. 당시 인기 가수였던 양수경씨가 같이 한 앨범. 앨범 보기.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6. 사구와의 악연[편집]


몸에 맞는 공으로 부상도 많고 헤드샷도 많이 당한 선수. 장나라를 시타할때 맞춰서 다치게 할뻔했다. 끝내기 헤딩골 헤드샷을 맞은 적이 있다면 믿겠는가.


7. 기타[편집]


  • 등번호 7번은 원래 김종모가 쓰던 번호였다. 1992년에 그가 은퇴하면서 물려준 것. 일본으로 갔을 때는 대형 유망주였던 외야수 장일현이 달았으나, 이후 장일현이 폭망하고 그가 돌아오면서 7번은 다시 원 위치로 돌아왔다.

  • 우투우타이기에 오른손잡이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왼손잡이이다. 그 이유는 야구를 익히던 초기에 왼손으로는 유격수 수비가 힘들기에 오른손으로 바꿔서 했다는 얘기도 있고 바람의 아들 MLB 버전인 이분처럼 야구는 당연히 오른손으로 해야 하는 줄 알고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야기 쇼 두드림에 출연해 당시 오른손 글러브 밖에 없어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야구 이외의 생활은 전부 왼손을 주로 사용한다.

  • 해태 타이거즈에서 구타를 제거한 인물이다. 당시 프로구단에서 선배 선수가 후배 선수를 구타하는 일은 빈번했다. 당장 감독부터가 주먹질을 했으니 하지만 이종범이 하지 않으니 아래의 후배들(김종국 등)[13]도 안하게 되니 저절로 사라지게 됐다는 듯. 다만 기아 특유의 엄격한 선후배 문화는 유지되었다.[14] 이것까지는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 해태 타이거즈 선수 생활 당시 이종범의 응원가는 펩시맨~!!! 다만 그냥 이름 구호만 외치는 단순한 응원 구호였다.

  • 원래는 축구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근데 축구부가 해체돼서 여러 운동부를 전전하다 잘나가던 동네형인 김기태를 따라 야구로 바꾼다. 실제로도 축구를 꽤나 했다고 하는데, 해태에서 뛰던 시절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박종환은 이종범이 축구하는 걸 보더니 "1년만 빡시게 굴리면 국가대표 승선도 가능하겠는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립서비스 성격이 강하겠지만 어쨌든 흠좀무. 이순철도 자기가 축구를 제법 했는데 이종범만큼 축구잘하는 야구선수를 본 적이 없다며 준프로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15] 하일성 해설위원에 따르면 실제로 축구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기사

  • 달걀을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 간식은 무조건 달걀이었고 하루에 30개씩 먹었기 때문에 달걀공포증(?)이 생겼다고 한다.#[16]

  • 2009년 11월 23일 열린 야구인 골프 대회에서 우승. 총 타수가 핸디캡[17] 12타를 더하고도 80타다.

  • 이종범은 몸 쪽으로 오는 공을 당겨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몸에 맞는 공으로 두 차례나 큰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고. 2009시즌 타격폼을 바꾼 이후로는 몸 쪽 공 공략이 나아진 편.

  • 2009년 11월 25일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이종범 편 1부가 방송되었다. 개인사와 프로야구 데뷔부터 일본 진출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했으며 그의 흑역사인 음반 발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강호동을 팔씨름으로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8]

  • 1997년에 결혼하여 이듬해 정후라는 아들을 얻었고[19], 초등학교때부터 아버지를 본받아 야구를 하고 있다. 좌타를 못한 게 아쉬워서인지 좌타로 가르치려고 하는 듯. 근데 양현종 선수가 노리고 있다고 한다 유격수하는데 롤모델은 앱등이란건 함정 그리고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이정후는 아버지와 달리 우투좌타이며,[20] 이종범이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이라는 점에서 따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가졌다. 평화왕, 평화왕자에 이은 평화왕 손자 등장이요 또다른 별명은 반투명이다 이정후는 프로 입단 후 외야로 전향했다.


  • 아들친구와 장난삼아서라지만 김치녀 발언을 SNS에 적었다가 삭제한 적이 있다. 이를 안 이종범은 매우 화를 내며 정말로 때리기 직전까지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이정후가 언급했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굉장한 아들 바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도 여러 구설수가 있던 적이 있으니 아들은 자기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성애라고 보면 되겠다.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당시 유일한 현역으로 일구회 멤버로서 천하무적 야구단과의 뇌경색으로 쓰러진 기아 타이거즈 김동재 코치 돕기 자선 경기에 출전해 희생 플라이로 1타점을 올렸다. 천무단 멤버들이 전원 경악했다. 일설에는 정말 작정하고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미있는 선발투수가 2이닝도 못 채우고 강판되었고, 계속되는 실점에 천하무적 야구단에게 5점이나 뒤져 있었으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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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 은퇴 기념으로 레전드 카드를 출시하였다. 기본 우익수 카드에 유격수로 듀얼포지션 훈련이 가능하다.

  • 은퇴가 발표되자 각종 논란과 루머가 들끓을 때 나온 은퇴 기념 불암콩콩 코믹스 #


  • 은퇴 후 90년대 이종범의 가장 큰 피해자 최훈이 그린 은퇴 기념 만화 #[22]

  • 일본에서의 프로 생활과 대학교 생활만 제외하면 전부 광주광역시서 보낸 광주 토박이[23]]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였으나, 2012년 , 의 교육 문제 등으로 인해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다. 엠스플에서는 간혹 현 거주지를 응용하여 '압구정에 살고 있는 이종범(46) 위원' 드립을 간혹 치기도 한다(...)

  • 빵 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받았지만 은퇴 후 출연한 방송에서 스스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오히려 누군가 빵을 먹는 걸 봤다면 체하지 말라고 마실 것을 줬을 거라고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빵 사건 범인에 대해 슬쩍 단서를 던져줬는데, 덕분에 이 사람이 진범으로 굳어져가는 분위기였으나 다시 한 번 반전이 일어나며 다른 용의자가 진범으로 밝혀지자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갔다며 까임 아닌 까임을 당했다.

  • 프로야구매니저에서는 레전드 이종범 영입 재료로 8그룹에 박재홍과 기아 시절 마해영을 집어넣어 빵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이종범이 프로야구 매니저의 모델이 되었을 당시 한 GM이 공지사항에 이종범과 프야매 측이 모델 계약을 체결하는 사진을 올려놓고 거기다 보이십니다라는 드립을 쳐서 유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염경엽 SK 와이번스 단장과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24]과는 충장중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염경엽 전 감독은 인터뷰에서 1998년에 사망한 그의 아버지가 자신과 이종범을 많이 비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 김기태 감독과는 어린 시절부터 친한 형-동생 사이었다고 하니, 김기태가 그를 기아 타이거즈로 오라고 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 가는 수준.

  • 이상하게도(?) 엠스플 해설위원으로 위촉된 이후에는 원형탈모(...)의 대명사로 밀어주려는 느낌이 강하다. 이석재 PD가 평하기를 '이종범의 활약은 원형탈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드립을 칠 정도.

  • 2015 시즌 종료 후 뜬금없이 롯데 자이언츠 수석 코치로 들어간다는 꼴갤발 루머가 돌았다. 롯데 구단 측에서 이종운 감독을 성적 부진을 이유로 1년만에 경질하고 조원우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코치진도 개편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뭔가 그럴싸했는지 이 루머가 엠팍에까지 퍼졌다. 이렇게 이종범의 롯데 행 떡밥이 잠깐이나마 달아올랐으나 곧 루머로 드러남에 따라 금방 사그라들었다.




  • 일간스포츠 김유정 기자가 아내인 정연희씨와 한 인터뷰에서 알려진 사실인데 한때 이혼설이 있었지만 현실은 아내인 정연희씨가 개명해서 생긴 헤프닝.[25] 그 근거는 이쪽이다. 인터뷰 2편

  •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 있는 건국대학교 야구부의 야구훈련장 이름을 동문인 이종범의 이름을 딴 '이종범 야구장'으로 지었다.


  • 해태 입단 당시 계약금은 아버지께 드리고 본인은 버스타고 다녔다고 한다.기사

  • 본 기사와 무릎팍도사에서 모두 언급됐는데, 홍현우와 캐치볼을 하다가 모 선배에게 맞은 적이 있다. 기사

  • 2017년 카스포인트 어워드에서 아들인 이정후의 노래에 춤을 췄다. 사실 이정후가 카스포인트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 이종범이 춤을 추고 이정후가 남진둥지를 부른다는 공약을 했기 때문. 문제의 부자 공연 영상. 여담이지만 이 동영상이 2017 카스포인트 어워드 동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많다.


  • 이종범 별명 중 가장 대중적인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은 서수남과 함께 콤비를 이뤄 코미디를 했던 가수 하청일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한다. 당시 하청일 씨가 야구용품점을 운영했는데, 하청일 씨 매장의 단골이었던 이종범에게 그러한 별명을 지어준 이유는 도루할 때 바람을 일으키면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이종범 본인은 이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도루하고 나서 먼지를 많이 털면서 먼지가 되어를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1] 타석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2] 그렇다고 양준혁 단 일시즌 WAR이 낮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매우 높은 편. 타자투수 합쳐서 역대 누적 WAR 2위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인왕 먹은 93년 wRC+는 백인천, 장효조, 심정수 다음으로 가히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3] 추신수는 곧바로 직행한 케이스므로 논외[4] 역대 KBO 기록으로 놓고 보는 것이므로 이종범의 일본리그진출을 언급한는 건 부당하다고 볼 수가 있다. 당시 최고의 타자였던 이종범조차 힘들어했을정도로 리그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걸로 당시 최고의 야수였던 이종범을 폄하하면 당시 KBO 타자들 기록역시 같이 폄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5] 역대 2위. 1위는 82 백인천[6] 역대 2위였으나 15 에릭 테임즈에게 2위를 헌납했다.[7] Baseball lab 기준.[8]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그냥 출루율만 봐도 강정호가 우위다.[9] 타고투저 시대와 타저투고 시대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위해서.[10] KBO, Baseball Lab 및 구 스탯티즈 전부 포함 94 이종범이 단일 시즌 야수 WAR 1위인 건 똑같다.[11] 안영명을 환영하는 선수들 사이에 끼어있다.[12] 이국적인 외모로 오바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의 클럽하우스에 드나들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기자였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메이저리그 중계에서 가끔 해설위원을 한다.[13] 김종국은 고교, 대학 시절 군기반장을 했지만 선배인 이종범이 구타 문화를 없애면서 폭력을 쓰는 일은 없었다.[14] 코미디언 정준하는 2011년 무한도전 '타인의 삶' 기획에서 이숭용과 역할을 바꿔 넥센 히어로즈 선수로 뛰면서 마침 녹화 당일 경기 상대였던 기아 측 식당을 방문했는데, 선후배가 뒤섞여 이야기를 나누며, 심지어는 팀 내 최고참(의 대역 정준하)에게 농담도 치며 식사하던 넥센 식당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대선배인 이종범이 혼자 독상을 하고 다른 선수들도 별 대화 없이 묵묵히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팀 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15] 대학 시절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평소 학내 축구부와 친분이 있었던 이종범은 야구부 연습이 없는 날 축구부 친구들과 주먹구구식으로 볼을 차곤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축구부 감독이 '쟤는 야구분데 왜 축구하고 있지?' '볼은 좀 차네' '입학 정원 할당 때문에 야구부 가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 야구부 감독에게 "이종범이 필요 없으면 우리 줘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한 야구부 감독님의 답변이 "그럼 우린 뭘로 야구하라고"였다고.[16] 운동 선수들이 단백질 섭취를 한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란을 소금조차도 없이 그것도 흰자만 주구장창 먹는 경우가 많다.[17] 실력이 높은 선수에게 과거의 시합 기록에 기초하여 더해주는 것.[18] 다만, 이건 강호동이 방송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일부러 져주는 기믹도 감안해야 한다. 강호동이 현역 은퇴를 한지 오래됐고, 전성기만큼 근육량을 갖고 있지 않기도 했지만 지금도 5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다부진 몸과 괴력을 소유하고 있다. 일부러 허당이나 당하는 역을 많이 맡아서 그렇지 현역 스포츠 선수들과 정말 제대로 힘대결을 할 때 그들조차도 놀라서 긴장할 정도다.[19]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 때 얻었다. 나고야 시에서 시즌 중 아들을 낳은 것. 그래서 주니치 팬들이 KBO리그에서 성공한 뒤에는 선수뎁스가 안습한 주니치로 오라고 하고 있다. 드래곤즈의 푸른피가 흐른다 주니치 팬 반응. 이종범보다는 주니치 레전드 아라키 마사히로를 닮았다는 말이 많다.[20] 고교 시절 아버지가 꾸준히 타격에 관해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21] 여기서 볼 만했던 것이 40년만에 투수로 등판한 그 분이었고, 포수가 김경문 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름 재밌는 장면.[22] 오히려 몇 가지는 현역 선수들과 비교당해서 저평가되는 감이 없잖아 있다. 만화에서는 최훈이 90년대 이종범의 펀치력을 최진행급이라고 했는데, 데뷔 해인 93년을 제외하고 90년대 이종범 장타율이 최진행보다 높다. 주력이 이대형급이라는데 90년대 이종범은 방위로 풀타임 못 뛰었던 95년만 제외하면 wSB값이 거의 3~7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더 높다. 다만 주력의 경우 만화를 그릴 당시에 가장 빠른 선수가 이대형이여서 그 쪽으로 비교햇다고 할수도있다.[23] 광주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구 진월동 한국아델리움아파트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광주동성고 바로 맞은편에 아파트가 있다.[24] 참고로 두 사람은 충장중-광주제일고 동기동창인 절친이다.[25] 참고로 개명 전의 이름은 정정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