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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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李正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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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6년 6월 10일 (77세)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녹번리
(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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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948~
본관
전주 이씨[2]
학력
양정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부모
아버지 이칠림[3], 어머니 허희숙[4]
형제자매
2남 4녀 중 장남
남동생 이무섭[5]
여동생 이정자[6], 이정순[7], 이정미[8], 이정심[9]
배우자
장인숙[10]
자녀
슬하 1남 2녀
장녀 이귀연[11], 장남 이진규[12], 차녀 이서연[13]
데뷔
1994년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14]
종교
유교(성리학)

1. 개요
2. 생애
3. 그 외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이자 MC, 요리연구가.

2. 생애[편집]


1946년 6월 10일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녹번리(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15]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중년의 나이부터 방송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주조연으로 상당히 주목받던 배우이다. SBS 가족시트콤 LA 아리랑에서 견미리의 남편이자 이제니의 아빠 역할로 코믹연기를 하며 히트를 쳤다. 각종 드라마나 방송에서 느릿하고 정확한 딜리버리가 특징인 말투로[16] 특색있는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출연작 자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올 때마다 좋은 연기력과 개성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17] 곱상한 외모로 여장을 하며 여자 역할도 하는 등 연극에서도 활동을 잘 하였다. 본인이 직접 여자들하고 노는 것을 좋아해 공기놀이, 줄넘기도 잘하고 꽃꽂이나 요리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방송인으로서도 구수한 입담으로 무난한 진행을 하고 있기도 하다. 배우 활동 외에도 요리연구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홈쇼핑 식품판매 방송에도 출연했었다.

이렇게 방송이나 드라마에서는 특색있는 말투와 친근한 캐릭터들로 통하고 있어서 온순해 보이겠지만, 그건 이미지일 뿐이지 사실 굉장히 사나운 성격이다. 굉장히 한성깔 하는 데다가, 욕도 엄청 걸쭉하게 잘 한다고 한다. 실제로 집안에서도 상당한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고, 연예계 후배들도 이정섭을 어려워한다고 한다. 조형기세바퀴에서 했던 증언으로는, 이정섭이 90년대에 아들을 데리고 방송국에 왔는데, 청소년이던 아들이 지루해하며 힘없이 돌아다니자, 조형기와 이야기하던 이정섭이 갑자기 아들 쪽을 보고 "야 이 새끼야! 사내새끼가 걸음걸이가 비리비리하게 그게 뭐야 이 새끼야! 남자새끼가 남자답게 안 걸어?"라고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질러서 조형기가 깜짝 놀랐을 정도라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인 MZ세대들이 보기에는 이정섭이 아들에게 너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강압적인 훈육을 하는 아버지처럼 보이겠지만, 9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 자체가 권위주의적인 잔재가 상당히 남아 있었으며, 1946년생인 이정섭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정섭의 아들 또한 1975년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자랐으니 요즘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는 나이 든 기성세대인 만큼 가치관 차이가 상당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에는 규율반장이었으며, 군대현역으로 제대했고, 헌병대 547기(?)에다 태권도 교관 출신이라고 한다. 상술된 이야기대로 규율 위반한 사병들을 데려갈 때 반항을 하면 바로 "야 이 새끼야 반항하는거야? 너 똑바로 안 서?"라며 욕설을 했다는 이야기를 아침방송에서 한 적이 있다. 애초에 이정섭이 군복무를 했던 시절은 60년대 후반 내지 70년대 초반일테니 그 시대면 가혹행위병영부조리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폭력도 아니다.

물론 이순재라는 연예계 최강의 군기반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성스러운 어투의 소유자인 이정섭을 순한 사람으로 보기 쉽지만 이정섭을 단순 나이로 따지기만 해도 1946년생으로 배우계의 호랑이로 유명한 김영철, 김갑수, 김병기보다 연상이며 당연히 이들보다 후배 배우들 기준으로는 까마득한 무시무시한 선배다.


3. 그 외[편집]


  • 김을동과는 45년지기 친구라고 한다. 그리고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조선 중종의 5번째 아들인 덕양군의 14대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확히는 덕양군의 장남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 1538. 9. 8 ~ 1611. 10. 8)-풍산군 이종린의 6남 귀흥군(龜興君) 이섬(李睒, 1602. 4. 25 ~ 1682. 5. 9)-귀흥군 이섬의 4남 오창군(烏昌君) 이형극(李炯𣷉, 1645. 10. 13 ~ 1714. 10. 4)-오창군 이형극의 차남 이단(李檀, 1680. 11. 7 ~ 1743. 11. 8)-이단의 장증손자 이약제(李若濟, 1777. 7. 22 ~ 1838. 3. 11)-이약제의 차남 이동익(李東翼, 1816. 6. 12 ~ 1858. 1. 22)-이동익의 6대 주손이다.[18]

  • 아버지 이칠림(李七林, 1926. 8. 21 ~ 1993. 9. 10)은 서울은평초등학교(8회)를 졸업하고 서울특별시 공무원에 임용되어 녹신동장·응암1동장·불광동장을 역임했으며, 1978년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서울 서대문구)[19]에 선출되기도 했다. 또한 은평구 응암동 37-54번지 부근에 있는 녹신약수터(구 냉정약수터)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정자를 세우기도 했다.[20]

  • 무한도전 식객 특집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였으며 특유의 재미있는 말투와 말솜씨로 호평을 받았다. 칭찬할 건 칭찬을 해주고 비판할 건 조곤조곤하게 뼈를 때리며 평가를 했는데, 특히 의 해물 신선로를 맛보고는 ''여지껏 간이 좀 세도 봐주려 했는데 이게 소태지! 이게 이게..."라며 혹평을 했다.

  • 흑역사 중의 흑역사로는 이문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못생긴 모델이라는 김동수와 함께 어찌하오리까라는 고민상담 프로를 진행하면서 광고가 나가는 중에 고민을 의뢰한 상담자에 대해 "정신 나간..."이라는 험한 말을 했다가, 그 내용이 방송을 타자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거다. 은근 이 할아버지도 매서운 면이 많은 듯...

  • 개그맨 안일권개그 콘서트 - 슈퍼스타 KBS에서 그를 패러디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21]


  • 지금의 머리는 사실 가발이다. 젊은 나이부터 탈모가 생겨 오랫 동안 가발을 착용했는데, 가발의 대명사(?)가 된 이덕화설운도에 비하면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방송활동 자체를 중년이 되어서야 시작했기에 두 사람처럼 청년기 방송 자료가 있지도 않고, 중년이나 노인이 탈모인 것[22]은 신경 안 쓰는 사회 분위기도 있어서 그러하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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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덕양군파-오창군(烏昌君)계 15세 섭(燮) 항렬.[3] 李七林. 1926. 8. 21 ~ 1993. 9. 10.[4] 許喜淑. 1927년 12월 7일생. 양천 허씨이다.[5] 李茂燮. 1962년 10월 12일생.[6] 李正子. 1954년 1월 12일생.[7] 李正順. 1955년 12월 26일생.[8] 李正美. 1959년 8월 14일생.[9] 李正心. 1962년 10월 14일생.[10] 張仁淑. 1947년 4월 6일생. 인동 장씨 장연수(張連守)의 딸이다.[11] 李貴蓮. 1973년 9월 17일생.[12] 李晋圭. 1975년 6월 18일생.[13] 李瑞蓮. 1977년 5월 19일생.[14] 이전에는 연극 무대에서 연출가, 연기자로 활동해 왔다.[15] 이정섭이 출생했을 당시의 은평 일대는 고양군 관할에 있었다가 1949년에 서울 서대문구로 편입되었고 1979년에 은평구로 분구 신설되었다.[16] 이게 서울 방언이란 의견도 있으나, 원래 평안도 방언강원도 방언표준어까지 섞이다 보니 이런 말투가 된 것으로 보인다.[17] 대표적으로 신돈(드라마)안도치.[18] 헤럴드경제 뉴스 기사에서도 7대 종손이라고 언급했다.[19] 현재 불광동·응암동 등이 속해 있는 은평구는 1979년 10월 10일 이전에는 서대문구의 일부였다.[20] 이후 화재로 전소되자, 지역 주민들이 그 자리에 그를 기리는 송덕비를 세웠다. 현재는 정자가 있던 자리에 녹신경로당이 건립되었다.#[21] 참기름을 챔기름이라고 발음하는 이정섭의 특징을 살려서 모든 ㅏ를 ㅐ로 발음하는 게 포인트. 예를 들어 "어머 냄재 재식(남자 자식)이 패이팅(파이팅)이 이쓰야Zㅣ(있어야지)! 패이팅이!" 하는 식.[22] 이덕화와 설운도는 20대 청년기에 탈모가 시작됐고 30대에 대머리가 완성되었으며 그때 이미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이었다. 물론 이정섭도 인지도를 얻고 아침방송에 한창 나오던 시절에는 군대 갔다오고 오래 지나지 않아 탈모가 시작되었다는 말을 방송에서 한 적이 있으나, 그 시절에는 방송에 나오지 않았으니 주목받을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