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관(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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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
李在寬| Lee Jae-g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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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3년 9월 24일[1]
일본 도쿄도
사망
2022년 6월 11일 (향년 58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부모
아버지 이창희(1933.5.24.~1991.7.19.)
어머니 나카네 히로미(이영자)(1936년생)
형제자매
3남 1녀 중 장남
남동생 이재찬(1964.7.12.~2010.8.18.[2]), 이재원(1966년생)
여동생 이혜진(1967년생)
배우자
김희정(1966년생)
자녀
슬하 2녀
장녀 이지혜(1995넌생)
차녀 이다현(1997년생)
1. 개요
2. 생애
2.1. 성장 과정
2.2. 경영 활동과 몰락
2.3. 몰락 이후 죽음까지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새한그룹의 부회장으로 범삼성가의 일원이었으며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차남인 새한그룹 이창희의 장남, 즉 이병철의 손자이자 한솔그룹 이인희, CJ가 이맹희, 삼성그룹 이건희, 신세계그룹 이명희의 조카이다. 현 CJ 이재현 회장의 사촌동생이자 삼성 이재용 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게는 사촌형이다.


2. 생애[편집]



2.1. 성장 과정[편집]


태어날 당시 아버지 이창희와 어머니 나카네 히로미(한국 귀화명 : 이영자)는 결혼 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안 그래도 아버지 이창희가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반대하는 일본인 여성과의 연애결혼으로 인해 이병철에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었는데 이창희가 1969년 말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자기 아버지 이병철을 삼성그룹에서 영원히 쫓아내야 한다는 투서를 보냈다가 온 집안이 왈칵 뒤집혀져서 이창희는 물론 이재관 등 그 자식들도 같이 미국으로 쫓겨났고 이병철은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귀국하지 말라"는 엄포를 놨다.

분가 이후 미국에서 살며 공부하다가 6년 뒤 할아버지 이병철의 이창희 귀국 금지령이 풀려 한국에 귀국한 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터프츠 대학교에 유학하여 국제경영학을 전공하여 졸업하였다.

아버지 이창희가 삼성가에서 쫓겨나 미국에서 살던 시절 미국에서 새한미디어를 창업했을 때는 경영실적이 썩 좋지 않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웠으나 이창희가 이병철에 용서를 빌어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는 이병철의 지원을 받아 지분도 어느정도 떼어받고 재정상태와 생활환경도 안정을 찾았다.


2.2. 경영 활동과 몰락[편집]


집안사정도 차츰 안정되고 기업 운영도 이제 막 안정적으로 흘러가던 1991년 아버지 이창희가 아직 58세밖에 안된 나이에 백혈병으로 급작스레 사망하여 큰 충격을 받았고 어머니 이영자와 함께 새한그룹을 이끌었다.

이창희의 3남 1녀 중 맏이이자 장남인 이재관 본인조차 아직 28세에 불과했기에 본인 대신 어머니 이영자가 회장직을 맡았고 이재관은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업종의 시대흐름을 읽지 못하고 무리한 확장과 잘못된 업종선택 등 본인과 어머니 포함 주요 경영진들의 실책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2000년 새한그룹부도가 나자 247억 사재를 출연 후 경영권을 포기하였다.

이후 분식회계 혐의로 2003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출소 후 여생을 은둔했다.


2.3. 몰락 이후 죽음까지[편집]


은둔 이후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그룹의 사장이던 남동생 이재찬이 생활고로 인해[3] 2010년 자살하는 등 불운을 겪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 동생의 장례식에서 어린 조카들을 대신해 상주를 맡으면서 구속 이후 오랜만에 언론에 포착되었다.

2012년 삼성가의 유산 분쟁 때는 큰아버지 이맹희, 어머니 이영자, 제수(이재찬의 부인) 최선희와 그 자녀인 두 조카, 고모 이숙희와 달리 소송을 포기했고, 2015년 큰아버지 이맹희의 장례식 외에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다가 2022년 6월 11일 향년 58세로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유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동생 이재찬처럼 우울증이 있었고 당뇨병도 앓았다. 일단 자살이 아닌 병사인 것은 확실하다.


3. 가족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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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년생인 동생 이재찬이 1964년 7월 12일생이어서 실제론 1963년 9월생이 아닐 수도 있다. 1962년 9월생이거나 생년은 1963년이 맞되 9월생이 아닌 것이거나. [2] 생활고로 인해 자신이 살던 아파트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했다.[3] 비참한 것이 명색이 한국 재계서열 1위 재벌가 창업주 이병철의 친손자이자 한때 그 그룹의 유력 후계자 후보였던 사람의 아들이었던 사람이 IMF로 몰락 이후에 새로운 사업을 하는 족족 망하고 월세 아파트에서 살며 라면으로 매 끼니를 떼우고 슈퍼마켓 외상 100만원도 못 갚을 정도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아내와도 5년째 이혼 같은 별거를 하고 두 아들도 만나지 못해 심적인 외로움도 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