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겐자부로

덤프버전 :

파일:신센구미마코토.png
신센구미

[ 펼치기 · 접기 ]
국장 · 국장 보조
국장
곤도 이사미
총장
야마나미 케이스케
참모
이토 카시타로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
군사
타케다 간류사이
조장
1번대
오키타 소지
6번대
이노우에 겐자부로
2번대
나가쿠라 신파치
7번대
타니 산쥬로
3번대
사이토 하지메
8번대
토도 헤이스케
4번대
마츠바라 츄지
9번대
스즈키 미키사부로
5번대
타케다 간류사이
10번대
하라다 사노스케
감찰 · 회계
감찰
야마자키 스스무 · 핫토리 타케오 · 요시무라 칸이치로 · 시노하라 타이노신
제사취조역 및 감찰
시마다 카이 · 오이시 쿠와지로
회계
카와이 키사부로
미부 로시구미 시절 인물
국장
세리자와 카모 · 니이미 니시키



신센구미 6번대 조장
이노우에 겐자부로
井上源三郎

출생
1829년 4월 4일
무사시국 히노군 (現 도쿄도 히노시)
사망
1868년 1월 29일 (향년 39세)
야마시로국 쿠세군 센료마츠
(現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재임기간
신센구미 6번대 조장
1864년 ~ 1868년

[ 펼치기 · 접기 ]

카즈타케(一武)
부모
아버지 이노우에 도자에몬(井上藤左衛門)
형제
장남 헤이스케(平助)
차남 마츠고로(松五郎)
사남 요시로(与四郎)
오남 겐타로(権太郎)
여형제 5명
유파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1. 개요
2. 생애
3. 미디어



1. 개요[편집]


신센구미의 6번대 조장.

2. 생애[편집]


무사시 국의 히노에서 막부 하급병사를 돌보는 이노우에 도자에몬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겐자부로의 형제는 장남 헤이스케, 차남 마츠고로, 사남 요시로, 오남 겐타로, 여형제 5명까지, 총 10형제이다. 장남 헤이스케는 안자이 가문의 양자로 들어갔으나, 후사가 없어 동생 요시로를 자신의 양자로 들였다. 결국 차남 마츠고로가 가문을 이어 이노우에 가의 당주가 되었다.

그 뒤 마츠고로는 다마 지역을 순회하면서, 당시엔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검술 유파인 천연이심류를 가르치던 곤도 슈스케(近藤周助) 밑에서 검술 수련을 하였다. 이 때 겐자부로도 형을 따라 입문하였고, 만엔 원년(1860년)에 천연이심류를 전부 전수받는다. 가에이 2년(1849년), 촌장 사토 히코고로가 천연이심류에 입문하였는데, 그는 자택의 일부를 개조하여 도장을 개설한다. 이 도장에서 검술 지도를 맡은 사람이 마츠고로와 겐자부로. 후에 신센구미의 부장이 되는 히지카타 토시조도 사토 도장에서 수련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아마 이때부터 이노우에 형제와 친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분큐 3년(1863년), 겐자부로는 낭사조의 상경의 움직임이 있자 히지카타 토시조 등과 함께 상경한다. 낭사조에는 히노 출신 바바 헤이스케, 나카무라 다키치로, 오키타 린타로 등이 있었다. 교토에 잔류하게 된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 등을 중심으로 하여 좌막(佐幕) 낭인부대인 신센구미가 결성되었고, 겐자부로는 6번대 조장으로 임명되었다.

겐자부로는 세리자와 일파가 숙청되자 부장보좌(副長助勤)가 되었고, 겐지 원년(1864년), 신센구미가 존왕양이파를 습격한 이케다야 사건 때에는 히지카타 부대의 분대 지휘를 맡아 8명의 낭인들을 포박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 7월에 있었던 덴노산(天王山) 공격에서는 발가락에 총탄을 맞으면서도 산 정상에 있는 적을 과감히 공격하는 용맹함을 보였다. 겐자부로는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교토 지역 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가 교토 시중을 순찰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의 독실한 성격 덕에 상인들에게 높은 신망을 받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곤도와 히지카타와는 친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매우 친했고 인품은 온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1] 그리고 오키타가 20세에 면허 전수까지 했던 것에 비해 그 때 당시의 겐자부로는 목록이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연하인 곤도 이사미가 천연이심류를 상속받았기 때문에 사제인데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만 했지만 본인은 딱히 마음에 두지 않았다. 게다가 곤도, 히지카타, 오키타와는 유대감이 돈독했는데, 중요한 일은 4명 등이 모여 의논하고 결정하곤 했다.

게이오 원년(1865년) 6월, 조직 개편으로 인해 6번대 조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게이오 3년(1867년) 6월에는 신센구미가 막부직속 부대가 되어 자연스레 막신이 되었다. 메이지 원년(1868년) 정월, 도바 · 후시미(鳥羽 · 伏見) 전투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아 39세의 나이로 전사.[2] 그의 묘석은 히노 시 호센지(宝泉寺)에 있다.

3. 미디어[편집]


여러 매체에서는 악명높은 신선조의 인물답지 않게 온화하고 선한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묘사되며 대원들의 건강이나 생활적인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이른바 신선조의 어머니.[3] 특히 세리자와 카모 암살이나 조직 장악등의 어두운 면에도 위치상 당연히 관여를 했을 터인데도 왠지 모르게 이노우에 겐자부로는 음모를 꾸미는 자리에는 빠져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러한 사람 좋은 이미지 때문에 반대로 검객으로 활약하는 장면은 드문 것도 아이러니한 부분.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3 06:56:23에 나무위키 이노우에 겐자부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분위기가 늙은이 같지만 실제로는 곤도들보다 5,6살 더 먹은 것 뿐이다.[2] 이 때 에도에 귀대 가능했던 부대 병사는 20여명 뿐이었다고 한다.[3] 이러한 평가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에서 나온 것으로 곤도 이사미는 아버지, 히지카타 토시조는 엄격한 장형, 오키타 소오시는 철없는 막내로 묘사되면서 어머니의 역할을 이노우에 겐자부로가 담당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