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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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천주교 의정부교구 제2대 교구장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민족화해위원장으로,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1947년 12월 31일 평양 출생으로 실향민. 경동고등학교 22회(1966년) 졸업생이다.
2. 생애[편집]
1947년에 (고조부, 고조모, 증조부가 순교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신부였던 작은아버지[5] 도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순교당하고, 6.25 전쟁으로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자, 부모님과 함께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와 잠시 정착했다가 이후 서울로 올라왔다.
1973년에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75년에 서울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군종 신부로 봉직했으며, 1990년부터 약 5년간은 일본 도쿄대교구 한인성당 주임신부를 맡았다.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을 맡고 있던 1999년 10월 29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동년 12월 14일에 주교품을 받았다.[6]
2010년 2월 26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이한택 주교의 후임 의정부교구장으로 전보되었고, 동년 5월 4일에 정식으로 착좌했다.
어린 시절부터 민족의 고난을 직접 봐온 이기헌 주교는 평사제 시절부터 민족화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연구하면서 직접 방북을 하기도 했으며, 주교가 되고 나서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을 맡고, 의정부교구 내에 동북아평화연구소를 설치하는 등 남북한 평화 문제에 관심이 정말 많다고 알려져 있다.
2024년 3월 13일, 이기헌 주교의 교회법상 정년에 따른 사임청원이 받아들여졌고 후임 교구장으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인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가 임명되었다.
3.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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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북한 평양시.[2] 주교 수품은 1999년 12월 14일이었으며, 그 다음 날(1999년 12월 15일) 착좌식을 거행했다. 주교 서품식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주례하였다.[3] 후임교구장인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임명되던 2010년 9월 14일 이전까지는 의정부교구장과 군종교구장 서리를 겸임하였다.[4] 시편 149편 말씀으로, 기쁨에 충만한 찬양 시편의 내용을 표상하였다. 여담으로, 군종교구장 시절에는 문장에 갈레로(주교 모자)가 없었으나, 의정부교구장 시절에 갈레로가 추가되었다.[5] 이재호 알렉시오, 1919 ~ 1950(추정). 평양교구.[6] 당시 서품 주례자가 김수환 추기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