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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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 조선 시기의 관료로 윤영렬의 아들, 대한민국의 4대 대통령 윤보선의 부친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인물이다.[1] 창씨개명 이후 이름은 이토 치쇼(伊東致昭)이고 자는 자경(子敬), 호는 동야(東野)이다.
2. 생애[편집]
이재룡의 딸 이범숙(李範淑)과 결혼하여 1897년 윤보선을 낳았다.
1898년 윤치호, 정해원(鄭海源)과 함께 경성신문을 창간하였고 정해원이 사무원을, 윤치소 본인은 사장을 맡았다. 이후 신문의 이름을 대한황성신문으로 바꾸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농사개량을 주도하던 농담회(農談會) 참여 및 주식회사 경성직뉴(京城織紐)의 사업가를 지냈고 1915년엔 경성협찬회(京城協贊會) 정회원의 자격으로 일본 제국의 조선통치 5주년을 기념하는 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지원하였다.
1917년, 서울 안동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1920년,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의 이사를 지냈다. 이 외에 교육계에서의 행적으론 경성학교 비평 의회의 평의원을 지냈으며 1924년부터 1927년까지 3년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재직해 연수당 600원을 받았고 퇴임 당시 정7위에 임명되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을 진행 중인 일본 제국 지원을 위해 임전보국단(臨戰報國團)[2] 에 참여했고 투자 권유 및 비행기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3. 참고 항목[편집]
- 윤치소(尹致昭)
- 1938년 5월 8일자 매일신보
- 윤치호 일기(김상태 편역)
- 조선관리회보(朝鮮監理會報) - 1938년 6월 1일자
- 조선총독부관보 - 1924년 5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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