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거(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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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추존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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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추존 황제
여황 | 戾皇

묘호
없음
시호
여황(戾皇)

유(劉)

거(據)
부황
무제(武帝)
모후
무사황후 위씨
황후
여후(戾后)
생몰
기원전 128년 ~ 기원전 91년 9월 30일

1. 개요
2. 생애
3. 참고 항목



1. 개요[편집]


전한의 황족으로 유진의 부친, 한선제의 조부이다.

유거 본인은 한무제의 태자이며 효무위황후(孝武衛皇后) 위씨 소생이다. 생전 무고의 화로 인해 모함을 받고 아버지인 무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배하고 자살하였다. 이후 손자 선제가 즉위하자 유거는 여태자(戾太子)의 시호가 추시되었고 황제의 예로 장사지내졌다.[1]


2. 생애[편집]


기원전 128년, 무제와 위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유거를 낳은 위씨는 황후로 승격되었다. 유거를 낳았을 당시 무제의 나이는 29세였다.

기원전 122년, 유거는 7세의 나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무제는 그를 위해 박망원(博望院)을 지었다.

유거는 천성적으로 성격이 유했고 그로인해 많은 민심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엄한 형벌과 법을 지지하는 관리들에게 반감을 샀고 외삼촌인 위청이 죽자 본인의 입지도 약해지기 시작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이광리(李廣利)가 흉노로 출정하는 등 이씨 세력이 대두하여 위황후의 입지도 약화, 동시에 이부인(李夫人) 일가가 병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무제조(武帝朝) 말기 강충(江充)과 태자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강충은 태자가 즉위하면 자신의 처형 당할것을 우려해 주술을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기로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무제가 악몽을 꾸자 강충은 누군가의 무고 때문이라며 자신이 조작한 주술 흔적을 무제에게 보여줘 조정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처형시키게 하였다. 유거 역시 이 수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반란을 일으켰으나 관군에게 포위당하자 목을 메어 자살하였다. 유거의 모후인 위황후 역시 폐위된 후 유폐되어 자살하였고 아들인 유진 일가도 처형되었다.

이후 무제는 상소를 통해 무고의 화가 조작임을 알았고 강충을 처형한 후 태자를 복권시켰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유거가 죽은 후 그를 사칭하는 사람이 장안을 방문했으나 사칭인 것이 금방 드러났고 요참형을 당했다.


3. 참고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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