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캘리

덤프버전 :

William Laws Calley Jr.
(1943년 6월 8일~)
파일:external/media.npr.org/william-calley-1971-0f3244cb88f1889add2e7825d424bac86c836ce4-s40-c85.jpg
육군 정복 차림의 캘리 소위.
파일:external/dicksworld.files.wordpress.com/calley-2.jpg
현재의 캘리.

1. 개요
2. 생애
2.1. 미라이 학살
2.2. 출소 후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William Calley

1943년 6월 8일 출생. 미군의 장교. 계급은 소위로, 베트남 전쟁에서 발생한 미라이 학살의 주범으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전범이다.


2. 생애[편집]


윌리엄 캘리는 본래 미군 병으로 입대했는데 병 기본 훈련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장교로 차출되어 GTG로 임관했다. 하지만 병사로서 우수한 것과 장교로서의 능력은 별개였는데 소위로 임관한 후 장교로서는 대단히 무능했다.

지능도 매우 낮아 지원하면 무조건 입학한다는 전문학교에서조차 낙제할 정도로 엄청난 학습부진아였다. 그렇다고 성격이 선량한 것도 아니라서 부하들에게 계속 함부로 대한 탓에 그의 소대원들은 언제나 상관 살해를 저지를 준비를 할 정도였다.

이 사람의 무능함과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GTG 선발에 있어 병으로서 복무기간 3년 동안의 복무성적으로 GTG를 선발하도록 관련 규정이 변경되었다.


2.1. 미라이 학살[편집]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학살로 22명의 비무장 남베트남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로 군법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전 미군 장교이자 미국의 전범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캘리는 유죄 판결을 받은지 3일 만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가택 연금을 위해 석방되었다. 미국 제5 순회 항소법원에서 재심을 명령했지만 그 판결은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캘리는 살인 혐의로 3년 동안 가택 연금을 선고받았는데 이 가택이 웬만한 미국 중산층 저택 이상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여론은 또 다시 공분에 휩싸였다.


2.2. 출소 후[편집]


캘리는 출소 후 1976년 페니 빅이라는 보석상 집의 딸과 결혼했다. 결혼 후 장인의 가게에서 보석상 일을 했으며 페니 빅과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2005년경 이혼했다고 한다. 2009년에는 자신의 학살에 대해 사죄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 거주 중이다. 무고한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하고 강간한 죄질을 생각하면 괘씸할 정도로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는 셈이다.


3.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1 15:09:48에 나무위키 윌리엄 캘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