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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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아도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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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9대



클럽








Ballspiel-Verein Borussia 09 e. V. Dortmund

파일:Addo.jpg

이름
오토 아도
Otto Addo
출생
1975년 6월 9일 (48세)
서독 함부르크
국적
[[가나|

가나
display: none; display: 가나"
행정구
]]
| [[독일|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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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브람펠더 SV (1992~1993)
VfL 93 함부르크 (1993~1996)
하노버 96 (1996~1999)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II (1999~200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9~2005)
마인츠 05 (2005~2007)
함부르크 SV II (2007)
함부르크 SV (2007~2008)
감독
함부르크 SV (2009~2015 / 코치)
FC 노르셸란 (2016~2017 / 코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17~2019 / 코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9~ / 코치)
가나 대표팀 (2021~2022 / 코치)
가나 대표팀 (2022)
행정가
가나 대표팀 (2013~2015 / 수석 스카우트)
국가대표
파일: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5경기 2골 (가나 / 1999~2006)


1. 개요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경력
2.2. 지도자 경력
3. 여담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가나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코치로 재직중이다.

현역 시절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선수로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황금기를 함께한 선수였다.

2. 축구인 생활[편집]



2.1. 선수 경력[편집]


서독 함부르크에서 가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때문에 프로경력 전반을 모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보냈다.

함부르크 지역의 작은 팀인 VfL 93 함부르크에서 성인리그 선수로 데뷔했다. 레기오날리가에서 4년간 80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다. 이후 같은 리그의 하노버 96으로 이적했는데, 여기서 맹활약하기 시작했고, 같은 팀에 있던 가나계 독일 선수 게랄트 아사모아와 함께 하노버의 승격을 이끌고 프로선수가 되었다.

1998-99 시즌 2. 분데스리가에 데뷔했고, 첫 프로시즌임에도 불구하고 30경기 7골로 승격팀 하노버가 2부리그 4위에 오르는 데 크게 공헌했다. 1999년엔 그의 부모님의 나라 가나에서 대표팀 합류제안을 받아 가나 대표팀으로 데뷔전도 치르게 되었다. 일약 2부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 된 그를 당시 분데스리가 강호 중 한 팀이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잽싸게 영입해간다.

도르트문트 시절은 오토 아도의 전성기 시기기도 했다. 1999-00 시즌 합류 첫 시즌부터 주전급으로 뛰며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데뷔골을 넣었고, 가나와 나이지리아가 공동개최한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출전하며 첫 메이저대회를 밟는다. 2000-01 시즌에는 리그 32경기 9골로 리그 탑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1-02 시즌 개막부터 무릎 부상을 크게 당했고,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가면서 거의 시즌을 통으로 날릴수밖에 없었다. 이 시즌 도르트문트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UEFA컵 결승에도 올라갔지만 오토 아도에게는 선수 생활 끝까지 그를 괴롭히는 부상 악령이 처음 도진 시즌으로 기억된다. 다만 2001-02 UEFA컵 결승전에서 오랜 재활 끝에 복귀전을 가졌다.

이후에도 도르트문트에서 그를 활용하려 애를 썼지만 유리몸이 되어버린 그는 한 시즌당 10경기도 뛰지 못하면서 계륵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2003년엔 2년 전 수술을 했던 그 무릎부위를 다시 다치면서 2004년을 통으로 결장해야했다.

결국 2005-06 시즌 1. FSV 마인츠 05에 입단해 도르트문트 생활을 마감했다. 그래도 마인츠에선 어느정도 경기를 주기적으로 뛰면서 리그 17경기 출전과 포칼 4경기 출전 등 정말 간만에 2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을 소화했다.

이후 고향팀인 함부르크 SV로 2007년 이적해 백업 멤버로써 한 시즌을 소화한 뒤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국가 대표로선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암흑기였던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을 누볐기에 명성에 비하면 기록이 초라했던 편이었다. 그나마 선수 은퇴 직전 조국의 2006 FIFA 독일 월드컵 출전을 달성시키고 16강 행을 이끌었던 유종의 미 정도가 그의 국가대표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다.

2.2. 지도자 경력[편집]


2009년 함부르크 SV에서 은퇴 후 바로 유소년팀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이후 2014년부터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이중국적자 선수들을 체크하고 스카우트하는 역할을 맡았고, 2016년 FC 노르셸란, 2017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코치직을 거쳐 2019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수석코치직을 맡았다.

2021년 9월 밀로반 라예바치 당시 가나 감독과 함께 가나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로 합류했고, 그가 중도 경질되자 가나 대표팀 임시감독직을 맡아 가나 대표팀을 8년만에 월드컵 본선진출로 이끄는 대업을 완수했다.

이에 가나축구협회 사무총장은 아도 감독을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려는 계획을 전했다. 벨기에 안더를레흐트와 앤트워프 등을 이끌었던 프랑키 페르카우테런 감독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는데, 우선 가나축구협회에서는 "아도 감독과 협상이 진행 중이다. 결론이 나면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코트디부아르에서 열리는 202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후까지 18개월 계약을 채결했다. #

한편 월드컵을 며칠 앞두고 스위스와 평가전을 가졌는데, 놀랍게도 스위스를 2:0으로 완파하면서 가나는 절대로 동네북이 아니라는 것을 전세계에 증명하였다.

이후 월드컵 본선 1차전 상대였던 포르투갈을 상대로 2대3으로 패했지만, 그래도 2골을 몰아붙이며 마냥 무력한 최약체가 아님을 증명해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는 전반전부터 매서운 공세를 쏘아붙여 3대2로 승리하면서 잠시나마 승점 3점으로 조 2위까지 치고 올라 16강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와 마지막 경기에서 안드레 아이유의 PK 실축 속에 0:2로 패배해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통산 1승 2패. 그래도 한국이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승전보를 전해듣자 얽힌게 많았던 우루과이를[1] 탈락 길동무로 삼겠다는[2] 의지를 보인건지 패배하는 상황에서도 공세를 수세로 전환시키는 우주방어를 보이기도 했으며 기나긴 추가시간에 선수 교체를 번번이 보이는 등 시간을 끌어주는 모습을 보인덕에 추가 실점은 허용하지 않고 루이스 수아레스를 울리는 성과라도 챙겨내었다.

우루과이전을 끝으로 가나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성적과 관계없이 이번 월드컵까지만 할 생각이였다고 말하면서 원래부터 월드컵이 끝나면 도르트문트로 돌아가는 계약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때문에 계약만료로 인한 사임으로 전해졌다.[3] 그래도 지난 1월만 해도 코모로(피파랭킹 132위)에게 패할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던 가나 대표팀이 포르투갈을 상대로 석패할 정도로 경기력을 끌어 올렸고, 가나의 원수 우루과이와 동귀어진하는데는 성공했으며, 한국 상대로는 1승을 챙기며 짧은 시간임에도 어느 정도 성과는 확실히 내고 떠나는 셈이 되었다. 또한 본인의 옛 제자 손흥민에게도 엿을 먼저 먹이긴 했지만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떠난 셈이 되었다.

3. 여담[편집]



  •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스위스와의 친선경기가 끝난 이후 인터뷰에서 함부르크 코치 시절 인연이 있는 손흥민에게 건투를 빈다며 독일어로 인터뷰를 했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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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당시 토너먼트 8강에서 벌어졌던 루이스 수아레스의 신의 손 사건.[2] 조 2위 자리를 놓고 한국과 우루과이가 경쟁하는 구도였는데, 우루과이로선 한국과 승점은 같지만 2득점만으론 한국에게 다득점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우루과이로선 추가 득점이 절실했다.[3] 사실 라예바치 전 감독이 네이션스컵에서 졸전을 펼쳐 아웃당하고 도르트문트 코치직에 재직중에 소방수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