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부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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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연안부두.png

이름
연안부두
YEON AN BU DU
출생
1978년 10월 19일
죽음
1998년 4월 2일 (20세)
마번
1223684
성별
수컷
털색
흑갈색
아비
Rascolnik
어미
Special Label
성적
48전 16승
총상금
14,259,500원
주요 우승
무궁화배(1982)
그랑프리(1982)
농수산부장관배(1982)
주요 자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상승군(1988)
상세 정보
파일:한국마사회 로고.svg | HORSEPIA

1. 개요
2. 혈통
3. 생애
4. 종마 생활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경주마. 국내 경주마중에서 최초로 한 해의 대상경주 3관왕을 달성했다. 또한 에이원에 이은 13연승을 기록하며 포경선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에이원 다음가는 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 혈통[편집]


1대
2대
3대
Rascolnik
1969 파일:영국 국기.svg
Reliance
1962 파일:프랑스 국기.svg
Tantieme
Relance
English Miss
1955 파일:영국 국기.svg
Bois Roussel
Virelle
Special Label
1973 파일:호주 국기.svg
Ruantallan
1961 파일:영국 국기.svg
Ribot
Tarbert Bay
Valid Label
1967 파일:호주 국기.svg
Parthia
Validity

현재 스터드북과 호스피아에서는 부마의 혈통표가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3. 생애[편집]


연안부두는 1978년 10월 호주에서 출생하여 1980년 4월 16일에 도입되었으며 도입 당시에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연안부두는 비교적 작은 몸집이었으나 당대 어떤 말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였었다. 연안부두의 기승했던 최태환 기수는 연안부두가 스피드가 빠르지 않은 말이라 선행형 마필은 아니고 추입형이라고 한다.

연안부두는 1982년에 3번의 대상경주를 우승했다. 연안부두는 김명주 기수와 함께 제1회 무궁화배에서 우주호, 금란초, 천하대장군 등을 꺽으며 2400m를 국내 레코드를 갱신하며 우승하였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2400m 대상경주인 제1회 농수산부장관배에서도 우승했다. 겨울에는 최태환 기수와 함께 제1회 그랑프리에서 2위마를 3마신의 격차로 따돌리며 우승하였다.[1] 연안부두는 1982년에 시행되었던 주요 대상경주 3관왕을 달성하며 역사적인 위업을 이루며 최고의 명마로 칭송받았다. 그가 기록한 한 해 대상경주 3관왕은 훗날 80년대 후반을 대표하던 차돌이 등장하기 전까지 달성한 경주마가 없었다.

연안부두가 활약하던 1982년에는 4개의 대상경주밖에 없었다. 한국마사회가 1984년에 편찬한 한국경마60년사에 근거하면 나머지 한 경주는 한일쟈키컵으로 이 경주에서는 복민호가 우승하였다. 이 해에 복민호는 3세의 나이로 13승을 거두며 그 해의 다승왕에 올랐다. 그러나 연안부두가 승수에서는 밀렸지만, 주요 경주들을 우승함으로써 대중으로부터 그 해 최고의 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연안부두는 전성기때 13연승을 기록할정도로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가해지는 부담중량이 점차 커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안부두는 현역당시 착순권 밖으로 벗어난적이 없었다. 그러나 높은 부담중량은 경주마의 한계를 시험하였고 이에 따라 1983년에 출전횟수가 줄어들고, 후반기에는 우승횟수가 줄어들며 슬럼프에 빠졌다고 평가받았다. 당시 연안부두는 65kg에 부담중량을 달고 1800m 경주에서 1분 56초.4의 성적을 거두었는데, 이는 당시 국내 경마계에서 상당히 빠른 수준이었다.

위와 같이 높은 부담중량이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안부두는 최강의 말로써 정점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마사회는 경주의 흥미를 반감시킬수 있다는 우려와 1980년 초부터 국산마 생산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있어, 국산마 생산을 위한 씨수말로써 강제 은퇴가 이루어졌다. 1984년 3월 17일 연안부두는 포경선과 같이 공식적인 은퇴식이 아닌 퇴역식으로 그의 현역생활을 마무리했다.


4. 종마 생활[편집]


국산마 생산을 위한 1세대 말로써 기대를 모았던 연안부두는 1990년대 초반까지 41두의 자마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 6마리의 1군마(상승군, 십년지기, 미듬직, 옥관자, 쏜살같이) 를 배출했으며 연안부두가 생산한 첫째 암말인 '반경'이 AJC(호주 자키클럽) 교류기념경주와 특별경주를 한번씩 우승했고 가장 대성한 말은 1988년 출생의 상승군이다. 상승군은 현역 당시 67전 12승에 92년 일간스포츠배 3위, 95년 문화일보배 2위, 96년 문화일보배 3위, 97년 문화일보배 4위를 기록했다.

이후에는 씨수말로써 제주삼부목장에서 종마생활을 하며 주로 한라마 육성에 쓰이다가 1998년 4월에 목뼈 골절로 폐사하였다.


5. 여담[편집]




  • 최태환 기수에 말에 따르면 연안부두는 평상시의 걸음거리가 짝발로 뛰어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리가 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 강승영 조교사에 따르면 연안부두는 성격이 차분하고 온순하며 복종심이 강했지만 경주만 나가면 무서운 근성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 연안부두는 한때 스캔들에 시달리기도 했다. 1990년 10월 제주 경마장 조랑말 경마가 오픈하자 키가 작은 연안부두가 조랑말 암말들과 밀월을 즐기며 씨를 뿌리고 있다는 루머가 나돌았던 것. 그러나 씨수마 시절 한라마 육성에 자주 쓰이긴 했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는 소문일 뿐이었다.
  • 1982년 1월. 뚝섬경마장 관람대 앞에서 전직원이 도열한 가운데 KRA 회장이 경주마에게 손수 당근을 먹이는 이색행사가 열렸다. 당시 이건영 회장은 매년 창립기념일에는 기수와 조교사, 직원들에게 상을 주면서도 정작 경마의 주인공격인 경주마들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당근을 전체 경주마에게 하사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1200여마리나 되는 경주마에게 일일이 당근을 먹여줄 수는 없어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연안부두'에게 대표로 먹이기로 하고 이를 식순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연안부두'가 당근을 받아먹는 순간 박수를 치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이윽고 조교사가 '연안부두'를 끌고 나왔고 이 회장은 최고 명마에 대한 예를 갖추느라 흰장갑을 끼고 당근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연안부두'가 고개를 돌려버리며 당시 날씨도 추운데다 전직원이 늘어서서 지켜보는데 마치 주눅이라도 든듯 당근을 좀처럼 먹으려 들지 않았다. 머쓱해진 이 회장은 악착같이 먹이려 했으나 '연안부두'는 계속 고개를 돌리며 거절하다 나중에는 뒷걸음질까지 했다. 그 바람에 이 회장은 얼굴이 홍당무가 돼 버렸다. KRA는 그뒤 이같은 의식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일화가 있다. 해당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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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마신은 대략적인 격차로 그 때 당시 기승했던 최태환 기수가 당시 연안부두가 그 정도의 거리로 우승하였다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