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살레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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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살레르노
Anthony Salerno


파일:팻 토니 살레르노2.jpg

출생
1911년 8월 15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사망
1992년 7월 27일 (향년 80세)
미국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마피아
신체
168cm, 109kg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어록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 뉴욕 시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

일명 뚱뚱한 토니(Fat Tony), 삼촌 토니(Uncle Tony)

세기의 재판(Case of Cases)이라 불린 1985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의 수석 피고인이다.


2. 생애[편집]


뉴욕 시에서 태어난 앤서니 살레르노는 어려서부터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에 소속되어 도박, 숫자 도박, 고리대금, 보호세 갈취 등에 연루되다가 1948년에 지부장이 되었다.

1953년 어느 정보원에 의하면 앤서니 살레르노는 자신의 사업이 하루 평균 3만 달러 규모(현대로 환산하면 30만 달러)라고 시인했다.

1959년 프로권투업계 관계자들에게 일명 '미스터 엑스(Mr. X)'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앤서니 살레르노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 헤비급 권투 타이틀전 플로이드 패터슨 vs 잉게마르 요한슨 경기의 프로모터 윌리엄 로젠손과 함께 흥행을 공모했다.[1] 훗날 로젠손은 경기 며칠 전 있었던 살레르노와의 담판 자리에서 실제로 자신의 머리에 권총이 겨누어져 있었다고 밝혔다. 경기 이후 비리가 드러난 로젠손은 3년간 프로모터 자격이 박탈되었고 챔피언 플로이드 패터슨의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 역시 마피아와의 관계 등이 지적되며 자격증이 박탈되었다. 하지만 살레르노는 그 어떠한 법적인 제재도 받지 않았다.

앤서니 살레르노는 뉴욕 시 맨해튼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마이애미 해변가에 위치한 주택, 뉴욕 주에 위치한 말 농장, 맨해튼 이스트 할렘에 위치한 팔마 보이즈 사교클럽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1960년대까지 매년 5000만 달러의 총 수익을 올리는 뉴욕 시에서 가장 큰 숫자 도박판을 운영했다. 동시에 대부업자들의 대부업자로 여겨졌다.

1975년 부두목이 된 앤서니 살레르노는 수년 후 약 200명이 고용되어 1년에 최소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고리대금 및 도박 사업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다. 이 수사 중 살레르노 본인이 8000만 달러(현대 기준 4억 6400만 달러)의 미지불된 대출금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육성이 도청기에 포착되었다. 기소된 살레르노는 전설적인 변호사 로이 콘을 선임했고 징역 6개월에 벌금 2만 5천 달러를 선고받았다.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앤서니 살레르노는 은퇴하는 필립 롬바르도의 뒤를 이을 제노비스 패밀리의 유력한 차기 두목 후보였지만 뇌졸중을 앓는 등 건강 문제를 겪었던 탓에 그 뜻을 단념하고 1981년부터 패밀리의 거리 책임자(Street Boss)를 맡았다.

앤서니 살레르노를 감시하던 FBI 요원들은 문제가 생긴 이웃들이 그를 찾아와 이런저런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 살레르노를 공동체의 신으로 묘사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대부에서 비토 콜레오네 딸의 결혼식 날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수사기관에서는 이런 살레르노가 마피아 위원회에 의석을 가진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라고 판단했지만 그가 실제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앞잡이일 뿐이라는 것은 당시 뉴욕 암흑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제노비스 패밀리의 교활한 전략은 수사기관뿐 아니라 언론도 완벽히 속였는데, 1986년 포춘지는 미국 최고의 조직폭력배 순위를 정하며 살레르노를 1위로 선정했다.[2]

이 시기 앤서니 살레르노는 두목 빈센트 지간테가 정신질환자 연기를 할 때 입는 옷차림(잠옷 위 목욕 가운을 걸친 차림)을 따라 한 뒤 사진을 찍어 몇몇 동료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로 보냈다. 실제로 그 사진을 본 마피아들은 누구를 풍자하는지 바로 알아챘기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고 한다. 지간테는 상당히 비밀스러운 남자였고 그런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살레르노에게 아무런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당시 패밀리의 고위 간부였던 살레르노는 지간테를 풍자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살레르노가 두목을 존중하는 만큼 지간테 역시 살레르노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1985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에 필요한 모든 수사를 마친 연방정부는 앤서니 살레르노가 빈센트 지간테의 프런트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으로 지목하여 기소했다. 이 수사에는 살레르노의 오랜 오른팔이었던 빈센트 카파로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이듬해 살레르노는 도합 징역 170년에 벌금 61만 6천 달러를 선고받았다. 그는 패밀리의 실제 두목이 아니었음에도 침묵의 계율 오메르타를 어기지 않았고 모든 걸 받아들였다.

수감된 앤서니 살레르노는 교도소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가를 항상 물고 다녔다.

1992년 당뇨와 전립선암 의심 증상으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뇌졸중 합병증으로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 연방교정의료센터에서 사망했다.


3. 여담[편집]


  • 심슨 가족 제작진들이 마피아 두목 캐릭터 팻 토니를 창작할 때 이름을 이 사람의 별명에서 따왔다.


  •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앤서니 살레르노의 권력을 설명하기 위해 그와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1980년대에 프란지스는 살레르노가 불러 그를 만나러 갔다. “자네의 휘발유 사업이 큰돈이 된다지?”라고 운을 뗀 살레르노는 "내 주변에 5센트도 못 버는 얼간이가 다섯 명 있어, 일자리를 주겠나?"라고 물었다. 프란지스는 흔쾌히 수락했고 살레르노가 주급을 얼마 줄 수 있는지 묻자 그를 모욕하기 싫었던 프란지스는 1500 달러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살레르노는 피우고 있던 시가가 거의 입 밖으로 뛰쳐나올 정도로 놀라며 “1500? 그놈들한텐 500씩 주고 나한테 1000을 가져와.”라고 얘기했다. 그날 이후 살레르노는 가만히 앉아서 주당 5000 달러씩 받게 되었다.

  • 전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는 거친 성격의 앤서니 살레르노와 점잖은 성격의 감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를 대비한 바 있다. 줄리아니는 CBS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대처를 예로 들며 둘을 비교했다. 카스텔라노의 경우 기자에게 명함을 꺼내며 자신의 변호사에게 연락하라고 한 반면, 살레르노는 어딜 가나 시가에 불부터 붙였고 질문하는 기자에게 "꺼져버려(Go fuck yourself)" 혹은 "네 엄마랑 붙어먹어(Go fuck your mother)"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살레르노가 카스텔라노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우아하게 말할 수 있는지 물어본 일화도 존재한다.

  • 앤서니 살레르노는 여성편력으로 유명했다. 그가 만났던 여성들은 대개 같은 특징들을 공유했다. 그녀들은 매우 어리고 몸집이 작았으며 살레르노보다 2.5cm~5cm 정도 키가 컸다. 직업은 주로 댄서, 가수, 배우 지망생, 모델, 쇼걸, 예술가, 스트리퍼, 매춘부였다.

  • 앤서니 살레르노의 변호사 앤서니 카르디날레는 살레르노를 만나는 걸 두려워했다. 자기가 알면 안 되는 특정한 질문을 하기가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살레르노가 그걸 알아차리고 말을 막더니 "나한테 뭐든 물어봐도 좋아. 난 항상 진실을 말할 거야. 나한테 하는 질문이 대답할 수 없는 일이면 그렇다고 말해주지. 질문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또 카르디날레의 딸이 2살이었을 때 아기 양배추 인형이란 걸 갖고 싶어 했다. 그 인형은 어딜 가나 품절이어서 구할 수 없었는데 하루는 살레르노가 자신에게 준 박스를 열어보니 아기 양배추 인형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 앤서니 살레르노의 어느 재판 도중,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한 어머니가 살레르노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려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내용을 보면 자신은 딸이 동네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걱정이 많았는데, 살레르노가 나서서 앞으로 그 아이를 건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을 했고 그 뒤 문제가 해결되어 본인에겐 은인이라는 것이었다.

  • 앤서니 살레르노는 2011년 영화 킬 더 아이리쉬맨에서 폴 소르비노가, 2019년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도메닉 롬바르도지가 각각 연기했다. 실제로 살레르노는 지미 호파의 전미트럭운송조합 위원장에 로이 리 윌리엄스가 당선되게 불법적으로 도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만큼 호파를 다룬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영화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호파를 살레르노가 시가를 피우며 노려보다 그에게 윙크하는 장면에서 배우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4. 어록[편집]


들어봐 토니, 내가 아니었으면 마피아는 남아나지 않았어. 조직원들은 다 내가 키웠지. 이봐, 하나만 말할게. 놈들을 제거해, 쏴 죽여버리라고. 가만히 놔두면 안 돼. 구역질 나니까. 이제 자네 건강과 빌어먹을 모든 걸 위해 건배하세.

Listen Tony, if it wasn't for me, there wouldn't be no mob left. I made all the guys. Tony, one thing. get rid of them, shoot them, kill them. You Can't go on. It's disgusting. Well here's to your health and fuck everything.

뉴욕 루케시 패밀리 두목 앤서니 코랄로와의 대화에서.


가서 이건 뉴욕 위원회의 결정이라고 전해. 그놈한테 지금 거물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전하라고.

Tell Him it's The Commission from New York. Tell him he's dealing with the big boys now.

조직 내 갈등을 얘기하는 버팔로 패밀리 두목과의 대화에서.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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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레르노와 함께 프로권투업계의 거물로 유명한 루케시 패밀리의 프랭키 카보는 '미스터 그레이(Mr. Gray)'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2] 이 순위에서 지간테는 19위에 불과했다. 18위로 선정된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훗날 "당시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마피아였던 지간테를 어떻게 하면 나보다 아래인 19위에 올릴 수 있지?"라고 말하며 포춘지의 순위를 어리석은 집계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