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프란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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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프란지스
Michael Franzese


파일:마이클 프란지스.jpg

출생
1951년 5월 27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전) 마피아, (현) 사업가, 강연가, 작가, 유튜버.
신체
175cm
배우자
카밀 가르시아 (1985년 ~)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미국 뉴욕 시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출신의 사업가, 강연가, 작가, 유튜버.

일명 여피 두목(Yuppie Don), 마피아 왕자(Prince of the Mafia)

전설적인 콜롬보 패밀리 부두목 존 프란지스의 아들이다. 강연가 겸 작가로 400개가 넘는 NCAA 대학에서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했고 MLB, NBA, NFL에서 뛰는 프로선수들에게도 강연을 했다.

교정당국 자문위원으로 전국 교도소를 다니며 소년수용자들과 일부 성인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범죄 예방 강연을 했다. 또 그가 쓴 책이 한국어로 번역돼서 출판되기도 했다.

현재 각종 마피아 관련 다큐멘터리나 프로그램에 관계자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2. 생애[편집]


조셉 콜롬보가 저격되어 토마스 디벨라가 콜롬보 패밀리를 임시로 이끌던 1970년대에 정규조직원(Made member)으로 입단했다. 그가 행동대원이던 시절 직속 지부장이 훗날 콜롬보 패밀리의 두목이 되는 앤드루 루소다.

프란지스는 1980년에 지부장이 되는데, 모든 마피아를 통틀어 가장 사업 수완이 뛰어난 인물로 유명했다. 자신의 주력사업이었던 휘발유 밀매업 외에도 노동조합과 건설, 엔터터인먼트, 스포츠, 도박과 마권, 고리대금에 관여했고 자동차 대리점과 정비 공장을 운영했으며 나이트클럽과 연회장 사업에 기웃거리는 한편, 은행원과 회계사를 관리하며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고 주식에도 직접 손을 댔다.

전성기 시절에는 한 달 최고 수입이 약 3000만 달러였다고 밝혔다. 프란지스는 두목에게 “지금껏 본적도 없을 만큼의 큰돈을 벌어다 주겠다고 얘기하면서 휘발유 밀매 사업건을 허가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수입의 20%만 두목에게 상납하고 나머지는 본인 몫으로 가지는 마피아 조직의 특성상 프란지스는 당대 가장 부유한 마피아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지부장 시절 두목에게 1주일에 200만 달러(2021년 기준 약 573만 달러)씩 상납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 그는 마피아 위원회의 의장이 되는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프란지스와 비슷한 인물로 감비노 패밀리 소속 카마인 롬바르도지가 있다. 그 역시 패밀리 내 최고소득자였다.

단, 사업 수완과는 별개로 당시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이던 존 고티와 중고품 시장 사업건으로 마찰을 빚은 적이 있는데 담판 끝에 자신이 굴복했다고 밝혔다. 그에 의하면 고티는 절대 굴복시킬 수 없는 남자라고.

일전에 루돌프 줄리아니의 기소가 포함된 4번의 재판에서 모조리 승소한 그였지만 1985년 14개 정부기관이 연합된 연방검사 에드 맥도널드의 ‘마이클 프란지스 특별반’의 기소를 받았다. 특별반은 복잡한 프란지스 사업의 수익원을 정확하게 분류하는데 형광펜 색깔이 20가지나 들었고 조직을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고 한다. 마침내 28가지 혐의로 구성된 98페이지 짜리 방대한 공소장을 받았을 때, 그의 변호사는 줄리아니도 이긴 우리가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며 결의를 다졌지만 정작 프란지스 본인은 재판에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대신 마피아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국 10년형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 1989년에 가석방되지만, 2년 뒤 가석방 규정 위반으로 재수감된 뒤 1994년에 출소했다. 그는 수감 중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었고 마피아 세계를 떠났다. 프란지스의 탈퇴 소식을 접한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는 격분했고 1989년에 암살 계획을 진행시킨다는 이야기가 돌자 프란지스를 기소했던 에드 맥도널드 연방검사가 교도소로 찾아와 정부 증인이 되기를 권했지만 프란지스가 거절했다. 다만 일부 자료에 따르면 마이클 프란지스가 내부 정보를 발설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마이클은 자신의 영상에서 누구에게도 해가 가는 증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몇몇은 그의 증언 때문에 감옥에 갔다고 한다.#,# 복싱경기와 조직범죄의 연루에 대해 증언하는 영상도 있다.#

실제로 FBI 특별 수사관 버니 웰시가 청문회에서 “그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했고 에드 맥도널드 연방검사는 “저는 마이클 프란지스의 입장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암살 계획은 진행되지 않았다. 에드 맥도널드 연방검사는 프란지스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콜롬보 패밀리에 100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주장했지만 프란지스 본인은 아버지가 자신의 처형을 막는데 모종의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프란지스와 함께 휘발유 밀매 사업을 한 레드 마피아 두목들의 최후는 좋지 않았는데, 정부 측 증인이 되어 마피아 측에 불리한 증언을 한 마이클 마르코위츠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1989년에 자신의 롤스로이스 자동차 안에서 총격을 당해 살해되었고 레브 퍼시츠 역시 비슷한 시기에 총격을 당해 영구적인 장애인이 되었으며 데이비드 보가틴의 경우 해외로 도피하는데 성공했지만 1992년에 폴란드에서 체포되어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된 뒤 약 6년의 옥고를 치렀다. 훗날 프란지스는 마르코위츠와 퍼시츠를 습격한 배후가 콜롬보 패밀리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1994년에 만기 출소한 그는 조직 세계를 떠났고 현역 시절 프란지스의 주 수입원이었던 브루클린레드 마피아와 함께하는 휘발유 밀매 사업은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다니엘 파가노가 이어받았다.[1]

현재의 프란지스는 강연을 병행하며 꽤나 성공한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모했다.사실 프란지스는 유죄판결과 동시에 마피아 생활 청산을 선언했기 때문에 다른 고위급 마피아와 달리 복역 중에 사업을 관장할 수도 없었고, 조직으로부터 지원은커녕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가계 수입이 0에 가까운 상황에서 그간 모아놓은 재산만으로 총 7년의 수감 기간 동안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부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여섯 식구를 부양했다. 여기에 더해 유죄판결에 따른 벌금과 1400만 달러의 손해 배상액, 재판에서 탈세 혐의가 인정됨에 따라 국세청으로부터 청구 받은 5000만 달러가 넘는 세금까지 성실하게 납부했고, 출소 후에는 새로 시작한 사업이 연달아 3차례나 실패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자가용 비행기, 전용 헬리콥터, 뉴욕과 캘리포니아, 플로리다에 위치한 저택 등 마피아 생활을 통해 얻은 재산들을 하나씩 잃었다.

제일 어려웠던 시기에는 다시 범죄 사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오른 적도 많았지만 끝내 잘 이겨내어 피자 프랜차이즈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상연되는 마피아 연극 제작 등 합법적인 방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가 공개활동을 나서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1번이 "정말 사람을 죽였나요?"이고 2번이 "당신 자산은 어디에 은닉했나요?"이고 3번이 "지미 호파는 어디에 묻혀있나요?"라고 한다. 1번 질문에는 굳이 살인을 하지 않아도 패밀리로부터 가치 있음을 인정받으면 입단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밖에 살인을 했냐는 직접적인 질문을 받으면(영상) 답변을 회피한다. 2번 질문의 경우, 조직 세계를 그만둔 뒤 대부분의 돈을 소비했고, 바닥부터 새 출발을 했다고 얘기하지만, 당대 전문가들은 프란지스가 오스트리아나 파나마 등지에 최소 수백만 달러를 은닉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라고 여겼고 할리우드 연예계와 마피아 사이의 브로커로 알려진 오리 스파도는 과거 프란지스가 파나마에 5000만 달러를 은닉했다고 주장한다.(영상) 스파도는 연루된 변호사를 알고 있으며 이름은 밝힐 수 없는 대신 이니셜을 밝혔는데 'R.P'라고. 스파도는 소니 프란지스와 콜롬보 패밀리의 40년 동업자로 알려진 인물로, 5년의 수감 경력이 있고 소니 프란지스를 상당히 존경했다. 다만, 그의 아들인 마이클과의 사이는 상당히 나쁜 편이다. 실제로 마이클은 휘발유 밀매 사업을 파나마와 연계해 주관했으며 사업 과정에서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에게 뇌물을 줬다고 밝힌 바 있지만 스파도의 주장처럼 정말로 5000만 달러를 파나마에 은닉했는지는 알 수 없다.(스파도란 인물에 관해서는 마피아/기타 문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3번 질문은 프란지스 자신도 지미 호파가 어디 묻혔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물에 잠겨있다는 것만 안다고 대답한다.

유튜브에 인터뷰 영상이 있다. 마이클은 자신의 저서에서 마피아 두목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설정의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비현실성에 대한 논평을 한 바 있다.[논평내용]


3. 여담[편집]



  • 프란지스는 영화 좋은 친구들에 1차례 등장한다. 본인은 아니고 본인 역을 맡은 배우가 1컷 나온다. 정작 프란지스 자신은 다른 조직이었기에 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스콜세지 감독이 본인을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2]

  • 자전적 일화를 다룬 책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미국 20개 도시 극장에서 상영됐다. 영화 트레일러 그의 삶을 변화시킨 계기로 종교를 꼽았다.

  • HBO, 내셔널 지오그래픽, 넷플릭스 등에서 제작한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와 방송에 출연해서 각종 일화에 대해 증언을 했다. 인기와 유명세를 얻어 돈도 많이 번 듯 하다.

  • 2021년까지 7권의 책을 저술했다.

  • 2번 결혼했으며 1984년 결혼한 아내 카밀 및 가족과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힐즈에서 살고 있다.

  • 콜롬보 패밀리의 어소시에이트였던 동생 존 프란지스 주니어는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HIV와 각종 성병에 감염됐다. 결국 FBI의 유혹에 넘어가 증인이 됐고 아버지 존 '소니' 프란지스에 대해 증언을 했다. 2019년 아버지와 화해했다고 한다.

  • 마이클은 마약을 싫어한다고 영상에서 밝혔는데 바로 동생이 마약 중독자가 돼서 아버지에 대해 증언을 하고 인생이 파탄나고 형제자매들도 마약 때문에 고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1996년 개봉한 존 고티의 전기영화 '고티'를 가장 현실과 엇비슷한 마피아 영화라고 극찬했다. 그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엄청 많이 봤다고 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존 고티 본인도 옥중에서 감상하고 호평했다.

  • 자신이 마피아로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가장 강력했던 마피아 두목으로 빈센트 지간테를 꼽았다.# 이후 빈센트 지간테의 딸 리타 지간테와 대담을 하기도 했다.#

  •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이자 정부증인으로 돌아섰던 새미 그라바노와 만나서 대담도 하고 단편 다큐 영화도 찍고, 대담 도중에 서로 말싸움도 했다.#,#,#

  • 새미 그라바노의 딸 카렌 그라바노와 대담도 했다.#

  • 전 뉴욕시장이자 마피아를 대거 검거한 검사였던 루디 줄리아니와도 화상으로 3자 인터뷰를 했다.#

  •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유명한 오토 버만의 문구인 "개인적인 감정은 없고, 그냥 비즈니스일 뿐이야(Nothing personal, it's just business)"를 비틀어서 "단지 비즈니스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가는) 개인적인 것이야"라는 광고를 했다.#

  • 이탈리아인이 아닌 갱스터에 대한 이야기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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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가노는 4개 뉴욕 마피아 패밀리가 참여한 협회의 주축이 되었고, 이를 통해 레드 마피아의 불법 휘발유 사업을 약 12년간 갈취하며 큰돈을 벌었다. 1999년 연방정부는 파가노가 7700만 달러에 달하는 자동차 유류세를 탈루한 혐의를 입증했다. 파가노는 그로 인해 약 8년간 복역했다. 그는 프란지스와 달리 마피아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고 2015년엔 공갈 혐의로 2년 3개월형을 선고받기도 했다.[논평내용] 조직범죄는 뭐고, 연 매출 500억 달러의 산업은 또 무슨 소리인가. 미국 철강산업보다 높은 수익률? 컨설턴트, 변호사, 노동법 전문가? 대기업과 흡사한 비즈니스 구조라니, 우리의 토니 소프라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 물론 현실 속 마피아와 '토니 소프라노'는 전혀 다른 존재다.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조직범죄 보고서에 등장하는 '마피아 비즈니스'와 토니와 그 수하들이 대표하는 마피아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바로 뉴욕 5대 마피아 중 하나인 콜롬보 패밀리의 지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토니 소프라노와 그의 조직 이야기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마피아의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비즈니스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과 여의사에게 조직 이야기는 물론이고 속내까지 털어놓다 걸린 마피아 두목이 있다면 십중팔구 자동차 트렁크에서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2] 인터뷰에서 그는 이 영화가 감옥에서 출소한뒤 아내와 처음 본 영화라 했다. 재밌게도, 영화를 보던 도중, 아내가 정말 마피아의 삶이 이렀냐 묻자,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 자신의 캐릭터가 나왔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좋은 친구들을 가장 현실적인 마피아 영화중 하나라며 호평했으며, 주연 조 페시가 가장 마피아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칭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