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랑(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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施琅
1621 ~ 1696

1. 개요
2. 행적
2.1. 정지룡 시절
2.2. 정성공 시절
2.3. 청나라에 투항
2.4. 성조 강희제 시절
3. 기타
4. 매체



1. 개요[편집]


중국 명말청초수군 지휘관.

한때 대만동녕 왕국 최고의 지휘관이었으나, 결국 동녕 왕국을 무너뜨린 청나라제독이 되었다.


2. 행적[편집]



2.1. 정지룡 시절[편집]


당시 중국 최고의 수군 제독으로, 국성야(国姓爺) 정성공(鄭成功)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실제로 정성공의 아버지인 정지룡의 시대부터 해적 함대에서 활약해 온 인물이었다. 본래는 복건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항해술에 신묘한 능력을 보였고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반청 대만주족 항전에 참여했다.

정지룡 함대에서 그의 역할은 좌군 선봉 선단의 통솔이었다. 함선을 지휘하는 능력뿐 아니라 수군 병기와 선박용 장비를 설계하는데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정후'(鄭侯)라는 별명을 지녔던 그는 정지룡 함대의 선원들에게도 엄청난 인기를 지녔던 인물이기도 했다.


2.2. 정성공 시절[편집]


대단한 실력과 명성을 가진데다가 경험까지 풍부한 시랑과, 아버지 정지룡이 청나라에 투항한 후 새로운 지배자가 된 정성공은, 서로간에 존중은 하면서도 약간은 소원한 껄끄러운 관계였다. 시랑이 가끔 정중하면서도 솔직하게 정지룡이 통솔하던 예전이 좋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고, 이것이 젊은 정성공의 심기를 건들면서 둘은 충돌하게 되었다.

어느날 시랑의 선단에서 부하 한 명이 불분명한 죄목으로 고발되자 탈출하여 정성공에게로 몸을 피했다. 시랑은 다른 부하들을 정성공의 진영으로 보내 탈출자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처형했으며, 이 과정 속에 정성공의 권위가 무시되어버렸다. 예컨대 시랑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야말로 정지룡의 후계자가 될 법한 사람이자 또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정성공에게 고분고분하게 구는 법이 없었고, 대놓고 정성공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자 정성공은 시랑의 부관인 만례(萬禮)를 시랑보다 높은 지위에 올리는 것으로 응수했고, 이 일로 분쟁이 노골적으로 벌어졌다.

1650년(청 순치 7년, 남명 영력 4년) 쯤 시랑은 류큐 열도에서 군수품을 사들이기 위해 많은 은을 수송하고 있었는데, 불운하게도 엄청난 폭풍을 만나 은이 유실되고 말았다. 그러자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한 정성공이 매우 크게 질책했고, 격노한 시랑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상투를 칼로 잘라 들어올려 사의를 표했다. 정성공은 우선 사태를 수습해서 그 자리에서 시랑이 정가 함대를 떠나는 일은 피했다.

그러나 이듬해(1651) 다시 문제가 터졌다. 정성공이 명나라중흥을 위해 중국 대륙 본토 공격을 노리면서, 적들이 점령하고 있는 도성을 공격한 후 금•은만 탈취하고 도성은 내버려둔 채 철수하자는 의견을 내었다. 그런데 시랑은 이를 반대했다. 그렇게 한다면 보통 해적떼들의 도적질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 그것이 반청복명이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적과 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니냐는 식의 모욕을 받은 정성공은 정말 크게 격노해 시랑을 가택연금시켰고, 그의 행동 범위를 선박 안으로만 제한했다.


2.3. 청나라에 투항[편집]


이쯤되자 시랑은 조용히 야음을 틈타 달아나 정성공의 숙부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숙부는 시랑의 의견에 일부 동조하면서도 조카인 정성공의 권위를 거스르기 힘들어서 보호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오갈데 없어진 시랑은 결국 청나라 정부에 귀순 요청을 하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정성공은 격노해 시랑과 그 가족을 모두 죽이기로 하고, 특공 암살대를 조직했지만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시랑은 가족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청나라는 이 일로 한족 최고의 해군 제독인 시랑과 그의 머릿속에 있는 정성공 함대의 정보를 함께 손에 넣었지만, 몇 년 동안은 그것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정성공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심지어 만주족 함대를 조직해 공격을 하다가 엄청난 대패를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4. 성조 강희제 시절[편집]


시랑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은 것은 제4대 강희제 시기였다. 강희제는 복건 총독 요계성과 제독 시랑을 앞세워서 정씨 대만(동녕 왕국)의 정복을 꾀했다. 시랑이 과거 정씨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점이 문제가 됐지만, 강희제는 총신인 이광지로부터

'적임자는 오로지 시랑밖에 없다.'

는 추천을 듣고 시랑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리하여 시랑은 1683년 6월, 230척의 전함과 20,000명에 달하는 수군을 앞세워 대만을 통과하는 주요 관문인 팽호도에 이르렀다.

당시 팽호도를 지키던 장수는 똥별 유국헌이었다. 유국헌의 전함은 200여 척이 넘었고, 병력도 20,000여 명이나 되어 시랑은 숫자로 우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6월 17일에 시랑은 팽호 열도의 팔조서라는 지역에 정박을 했는데, 이 지역은 해마다 봄과 여름에 걸쳐 거대한 태풍이 자주 오는 곳으로 유난히 물의 흐름이 급하여 태풍이 다가오면 어마어마한 파도가 정박해 있는 배를 쓸어버렸다. 게다가 해마다 6월 17~19일 3일간은 "관음폭"이라고 하는 강력한 바람이 불어 정박하기에는 최악의 장소였다.

시랑의 청군이 팔조서에 정박하는 것을 본 유국헌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시랑을 비웃었다고 한다.

"누가 시랑을 뛰어난 장수라고 하더냐? 천문지리도 모르는 작자가 어찌 군대를 거느린다는 말인가! 우리는 그저 술이나 마시며 적들이 섬멸되는 것을 구경하면 되겠군!"

그런데 놀랍게도 시랑이 팽호도에 도착한지 무려 10일이 넘게 바다에는 태풍은 커녕 큰 파도조차 치지 않았다. 이것이 그저 우연인지 천문지리를 꿰뚫어본 시랑의 혜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상이 크게 빗나가면서 유국헌의 동녕 함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려 22일간 벌어진 격렬한 전투에서 유국헌 휘하의 동녕 함대 159척이 전파당했고, 35척은 나포됐으며 12,000여 명의 군사들이 전사했다. 그러는 동안 시랑이 이끄는 청나라 함대의 피해는 2,000여 명의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는 수준에 불과했으며, 문제가 있다면 시랑이 오른쪽 눈을 좀 다쳤다는 것일뿐 완벽한 대승으로 끝났다. 이 펑후해전의 결과로 정씨 동녕 왕국은 주력군을 모조리 잃었고 펑후 열도 36개 섬까지 잃어버렸다.

복건 총독 요계성은 시랑에게 승전의 기세를 살려 동녕군의 패잔병을 추격하자고 주장했지만, 시랑은 이에 반대했다.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고, 사사로운 원한으로 국사를 행해서는 안될 일이지요."

그러면서 정씨에 대한 회유책을 주장했고 북경 조정의 대신들과 강희제도 이에 찬성을 했기에, 시랑은 대만 섬의 코앞에 함대를 주둔시키고 정극상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스페인령 필리핀으로 달아날 계획까지 짜고 있었던 동녕 왕국의 어린 군주 정극상과 왕의 장인으로 권신이었던 풍석범은 시랑이 이렇게 나오자 불안감을 덜고 마침내 항복했고, 대만에 상륙한 시랑은 8월 18일 강희제의 칙령을 읽는 것으로 역사적인 대만 정복 작전을 완수했다.

시랑은 자신을 해치려 했던 정적 정성공의 사당에서 제사를 올리는 등 사적인 복수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대만이 막 항복한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러한 시랑의 태도는 대만의 안정화에 큰 기여를 했다. 강희제는 시랑이 세운 대공에 크게 기쁨을 표시하며, 마침 중추절이었던 까닭에 <중추일문해상첩음>이라는 시를 써써 시랑을 칭찬하고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시랑에게 하사하겠다고 밝히며, 적을 토벌한 시랑의 지혜와 용맹함이 청사에 남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 후 시랑은 정해후(靖海侯)[1]에 봉해졌다. 10년 뒤에 시랑이 강희제에게 특별히 황족이나 고관대작들이 쓰는 모자 뒤에 드리우는 공작의 꼬리[2]를 주십사 하고 부탁하자,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강희제는 흔쾌히 이를 허락했다.


3. 기타[편집]


중공우크라이나로부터 구매한 구소련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에 바로 시랑의 이름을 붙였다는 루머가 있었다. 인민해방군 해군은 훈련용 함선에는 인명을, 실전용 함선에는 지명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이 항모에는 지역명인 랴오닝(요녕)을 딴 랴오닝급으로 이름지어졌다.


4. 매체[편집]


녹정기》에도 등장한다. 능력은 여기서도 뛰어나다고 인정을 받지만, 어찌되었건 한족배신자(한간)라는 속성 때문에 김용에게 미움을 받는지 위소보에게 갈굼당하는 신세이다(...).

[1] '바다를 바로 잡은 제후'라는 뜻이다.[2] 이를 화령(花翎)이라고 한다. 공작새의 깃털 수에 따라 그 격이 달라지며 3개(三眼)을 최고로 친다.파일:화령.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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