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동 고분군

덤프버전 :






고성 송학동 고분군
固城 松鶴洞 古墳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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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 일원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면적
64,923㎡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건축시기
가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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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45682593953500.jpg
고성 송학동 고분군의 전경

1. 개요
2. 상세
3. 조사 내용
4. 외부 링크
5. 사적 제119호



1. 개요[편집]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에 위치한 소가야(고자국)의 고분군.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9호로 지정되었고, 2023년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 상세[편집]


고성읍 북쪽의 무기산 일대에 7기 가량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유적이다. 소가야(小加耶)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분 가운데에는 겉모습이 일본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닮았다 하여 한일 양국간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제1호분도 위치하고 있다. 1호분은 조사 결과 내부 구조가 모두 13개의 돌덧널과 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개의 독립된 둥근 봉토를 가진 고분이 합쳐진 것으로 판명되어 이를 바탕으로 한국 고고학계 및 사학계에서는 "가야의 독자적 고분 형태이며, 일본의 전방후원분과는 다른 양식의 무덤이다."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송학동 고분군의 규모나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소가야의 왕릉급 위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지배계층이 다른 가야 연맹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조사 내용[편집]


모든 고분의 봉토(封土)가 인공으로 다져 쌓아 올려졌다. 언덕 위를 평평하게 고른 뒤 한 켜씩 다져가며 쌓아 올린 판축(版築)의 기술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금동 귀걸이, 마구(馬具), 금동장식 큰칼, 청동제높은잔, 유리구슬 등이 출토되어 소가야 왕릉의 면모를 짐작케해 주었다. 출토된 유물의 특징을 통해 고분군은 대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장 북쪽의 고분에서 발견된 B-1호 돌방은 전통적 가야고분과는 다른 모양인데, 입구·돌벽·천장에 붉은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고분군에서 도로명이 유래한 송학고분로가 바로 옆에 있다.

4. 외부 링크[편집]



5. 사적 제119호[편집]



고성읍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있는 7기의 가야 무덤들이다. 가장 높은 곳에 1호 무덤이 있고 점차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6기의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국의 자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1호 무덤은 겉모습에서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보여지기도 하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무덤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는 딸린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호 무덤은 좋은 위치와 무덤의 규모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지방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며, 만들어진 시기는 A·D 400년을 중심으로 앞뒤 50년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쪽에는 고성 동외동 조개더미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조개더미에서는 널무덤(토광묘)·독무덤(옹관묘)·돌널무덤(석관묘) 등의 유적과 청동 투겁창(청동광모)·청동 칼자루 끝 장식(검파두식)·거울조각·불탄쌀·회색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 지방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송학동 무덤은 동외동 조개더미의 초기철기시대를 뒤 이은 후대 문화를 대표하는 가야 문화 유적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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