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해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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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楚)의 영윤(令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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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楚)나라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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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해휼
昭奚恤

최종직위
영윤(令尹)

미(羋)

소(昭)

해휼(奚恤)
아버지
불명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기원전 ???년

1. 개요
2. 기록
2.1. 《전국책》〈초책〉 172.荊宣王問群臣
2.2. 《전국책》〈초책〉 173.昭奚恤與彭城君議於王前
2.3. 《전국책》〈초책〉 174.邯鄲之難
2.4. 《전국책》〈초책〉 175.江尹欲惡昭奚恤於楚王
2.5. 《전국책》〈초책〉 176.魏氏惡昭奚恤於楚王
2.6. 《전국책》〈초책〉 177.江乙惡昭奚恤
2.7. 《전국책》〈초책〉 178.江乙欲惡昭奚恤於楚
2.8. 《전국책》〈초책〉 181.郢人有獄三年不決
2.9. 《한비자》〈내저설하육미편〉



1. 개요[편집]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영윤. 소왕의 후손으로 거족이었던 소(昭)씨 가문의 사람이다. 아들로는 소양이 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고사의 주인공이다.


2. 기록[편집]



2.1. 《전국책》〈초책〉 172.荊宣王問群臣[편집]


荊 宣王이 群臣에게 묻다

荊(楚) 宣王이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내 들으니 북쪽 여러 나라들이 모두 우리의 昭奚恤을 두려워한다는데 과연 어찌된 일인가?”
신하들 누구 하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江一[1]

이 대답하였다.
“호랑이가 百獸를 찾아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여우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을 수 없다.
天帝께서 나를 백수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지금 그대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이는 天帝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대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그대 앞에 서서 걸을 테니, 그대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백수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 놈이 있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호랑이는 그렇다고 여기고는 드디어 함께 가는데 만나는 짐승마다 보고는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무서워해서 달아나는 줄을 모르고, 여우를 무서워해서 그런 줄로 여긴 것입니다.
지금 왕의 국토가 方 5천 리, 군사가 1백만 명이나 되면서 이를 전적으로 소해휼에게 맡겨 놓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북방 여러 나라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실은 왕의 甲兵을 두려워하는 것으로서 백수가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이것이 고사성어 호가호위의 어원이다.


2.2. 《전국책》〈초책〉 173.昭奚恤與彭城君議於王前[편집]


昭奚恤과 彭城君이 王 앞에서 의논을 벌이다

소해휼과 팽성군(彭城君)이 楚王(宣王) 앞에서 쟁론을 벌였다.
왕이 江乙을 불러 물어보자 강을이 말하였다.
“두 사람 말이 모두 맞습니다. 저는 무어라고 그 뒤를 잇지 못하겠습니다. 잘못 말하였다가 어진 이를 다치게 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2.3. 《전국책》〈초책〉 174.邯鄲之難[편집]


邯鄲의 싸움[2]



邯鄲의 싸움에, 昭奚恤이 楚王(宣王)에게 말하였다.
“왕께선 趙나라를 구원하지 않음으로써 魏나라가 강해지도록 하느니만 못합니다.
위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의 토지는 더욱 깎여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조나라가 위나라의 요구를 거절하려면 굳게 수비해야 하므로 끝내 쌍방이 모두 피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景舍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해휼은 알지 못합니다. 대저 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하면서 우리 楚나라가 그 뒤를 칠까 겁내고 있습니다.
지금 조나라를 구원하지 않으면 조나라는 망할 형세가 있고 위나라로서는 초나라에 대한 근심이 없게 됩니다.
이는 마치 초나라와 위나라가 공동으로 조나라를 친 것이 되어 조나라로서의 피해는 막심하게 되는데 어찌 양국(趙‧魏)이 모두 피폐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위나라가 조나라 깊숙이 병력을 투입하여, 趙나라가 자기 나라가 망해 가는데도 우리 초나라가 조나라를 구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면, 조나라는 반드시 위나라와 연합하여 우리 초나라를 치고자 도모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우선 약간의 병력을 내어 조나라를 돕느니만 못합니다.
그러면 조나라는 우리 초나라의 강한 힘을 믿고 틀림없이 위나라와 싸울 것이며, 위나라는 조나라가 강한 데 노할 뿐더러 초나라의 구원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끝내 조나라에 대한 침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趙나라‧魏나라가 서로 피폐해지고 齊나라와 秦나라가 우리 초나라 편을 들게 되면 위나라는 깨뜨릴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초나라는 景舍를 시켜 군대를 일으켜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끝내 초나라는 위나라가 邯鄲을 함락시키자 위나라의 睢‧濊 사이의 땅을 점령해 버렸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2.4. 《전국책》〈초책〉 175.江尹欲惡昭奚恤於楚王[편집]


江尹이 楚王에게 昭奚恤을 악담하려고 하다

江尹이 昭奚恤을 楚王(宣王)에게 악담하려고 하였으나 힘이 모자랐다.
이에 자기 고국인 梁(魏)나라 출신 山陽君을 楚나라에서 봉해 주기를 청하였다.
초왕이 말하였다.
“좋다.”
그러자 소해휼이 말하였다.
“산양군은 초나라에 아무런 공로도 없습니다. 그를 봉해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강윤은 이로 인해 산양군을 얻어 함께 소해휼을 헐뜯게 되었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2.5. 《전국책》〈초책〉 176.魏氏惡昭奚恤於楚王[편집]


魏氏가 楚王에게 昭奚恤을 악담하다

魏나라가 사람을 보내어 昭奚恤을 楚王 앞에서 헐뜯었다.
초왕은 이 사실을 당사자인 昭子에게 일러주었다.
소자가 말하였다.
“저는 조석으로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실행하고 있는데, 위나라가 우리의 군신 사이를 이간시키려 하니 저는 대단히 걱정됩니다.
저는 결코 위나라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우리 군신 사이의 일을 누설하여 천하가 이를 믿게 하는 것이니, 그런 위인은 아주 악합니다.
참으로 밖으로 누설하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데 어찌 안에서 무함하기를 어려워하겠습니까?
제가 죄를 입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알고 있는데, 大夫께서는 무엇을 근심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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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전국책》〈초책〉 177.江乙惡昭奚恤[편집]


江乙이 昭奚恤을 악담하다

江乙이 楚王에게 昭奚恤을 악담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기 개가 집을 잘 지킨다고 하여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개가 한번은 우물에다 오줌을 쌌습니다.
그 이웃 사람이 그 개가 우물에 오줌을 싸는 것을 보고는 주인에게 알리려 들어가려 하였지만,
개는 이를 미워하여 문을 지키고 물어버려 이웃 사람은 두려워서 결국 주인에게 들어가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번 邯鄲 싸움에서 우리 초나라가 進兵하여 大梁에 들어가 이를 취하였을 때, 소해휼은 魏나라의 보물을 取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魏나라에 있었으므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소해휼은 항상 제가 왕을 만나는 것을 증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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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전국책》〈초책〉 178.江乙欲惡昭奚恤於楚[편집]




2.8. 《전국책》〈초책〉 181.郢人有獄三年不決[편집]




2.9. 《한비자》〈내저설하육미편〉[편집]


昭奚恤이 楚나라에 重用되어 다스릴 때 곡식창고와 여물창고와 광에 불을 지른 자가 있었으나 불을 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소해휼이 관리를 시켜 띠(茅)를 파는 사람을 체포하여 심문하게 하였더니 과연 그가 불을 지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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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江乙, 江尹이라고도 표기한다. 본래 魏나라 사람으로 楚나라에 와서 벼슬하고 있었으며 계략과 모략에 뛰어났다.[2] 기원전 355년 위 혜왕 때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한 사건. 계릉 전투로 이어지며 고사성어 위위구조의 유래가 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