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승려)/조계종과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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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과정
2.1. 조계종 승려 도박 사건
2.2. 고위직 승려들 룸살롱 출입 및 성매매 파문
2.3. 저서 출판
2.4. 자승 총무원장과의 화해?


1. 개요[편집]


발차기 9단 스님(성인인증 필요)

성호조계종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은 2009년에 실시된 제33대 총무원장 선거 때였다. 이 선거에서 현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이 당선되었는데, 성호는 자승이 승적, 학력을 위조해 후보 등록을 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하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과 2심까지 간 재판에서 모두 패소했고, 오히려 조계종 측으로부터 역습을 당했다. 조계종 측에서는 성호가 자승에 관해 허위 사실을 작성한 문서를 배포하여 명예를 훼손한 점, 과거 토지처분대금 7,000만 원을 임의로 사용했다는 점을 들어 승려증을 박탈하고 승적을 말소하는 멸빈의 징계를 내린 것이다. 성호는 조계종 측에 자신에게 내린 부당한 징계에 대한 배상금 1억 원을 내라는 것, 멸빈 징계를 취소하라는 것 등으로 2건의 소송을 냈으나 또 패소했다.

결국, 2012년 8월 17일 자로 완전히 승적을 박탈당했다. 다시 승적이 환원되기까지는 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2. 과정[편집]



2.1. 조계종 승려 도박 사건[편집]


완전히 승적을 박탈당하기 3개월 전인 2012년 5월 9일, 성호는 승려 8명이 전라남도 장성군 백양사 관광호텔에서 거액의 도박판을 벌였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조계종의 본산인 서울특별시조계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요란하게 사건을 일으켰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도박 사건에 연루된 승려들이 실천승가회[1]의 주요 임원들이라는 점이다. 성호가 일으킨 조계종 승려 도박 파문으로 인해 물의를 빚은 실천승가회 집행위원이었던 토진과 의연 등의 승려들은 모두 임원직을 사퇴하였고, 이들의 계파인 무차회도 모두 해체되었다. 이명박 정부 때 종교 편향 논란이 빚어지자[2] 조계종 측에서는 정권에 맞서 사회 현안에 대해 개념 찬 목소리를 내어 내심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는데, 이거 한 방으로 조계종의 이미지도 실추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도박 사건에 대해 성호 측은 "우연히 백양사 대웅전 앞에서 동영상이 담긴 USB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단군 할아버지가 내게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특히 고발 배경과 관련해 성호는 TV조선종편 방송에 출연하여 실천승가회 측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심을 드러냈으며, 2012년 5월 19일 MBN과의 인터뷰에선 실천승가회를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로 지칭하는가 하면 "좌파 스님을 척결하기 위해 이번 폭로를 결심했다."고 고백한 바 있었다.

반면 실천승가회 측에서는 이 도박 파문에 대해 '쇄신과 성찰의 기회'란 점은 인정하면서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동영상 촬영이 처음부터 기획되었을 확률에 주목하고 있다"란 견해를 밝혔다. 불교단체 사무국의 한 담당자는 당시 호텔 내 다른 객실들도 예약돼 있었다는 점, CCTV가 전문 업체에 의해 설치됐다는 점, 고의로 음성 녹음을 누락했다는 점, 촬영된 동영상이 언론에 유포되기 전 몇몇 사람들에 의해 웹하드에서 공유 됐다는 점, 성호스님이 어디서 고발 영상을 입수했는지 제대로 밝히고 있지 못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이번 파문은 고발을 담당한 성호스님, 촬영을 담당한 대행업체, 객실 예약 및 자금지원을 담당한 모 뉴라이트 계열 스님 등이 공모한 결과로 보고 있다"란 의견을 전달했다. 도박 파문에 연루된 의연스님도 "전문가가 투입됐다"란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한편으로는 차기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그리고 백양사 주지승 선임 문제를 놓고 둘러싼 알력 다툼에서 촉발된 사건으로도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출처.

그리고 6일 후인 5월 15일에 성호는 MBC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승려들이 성매수를 했으며 자신이 조계종 호법부 스님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조계종 측에서도 성호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종단을 음해하고 있다고 밝히며 호법부장 정념의 이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결국 2012년 6월, 이 몰카 동영상은 백양사 주지 선임을 놓고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상대 측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촬영된 것임이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고 검찰에서는 도박 파문을 일으킨 승려 8명 가운데 도박을 하지 않은 승려 1명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도박을 주도했던 전(前) 조계사 주지였던 토진과 백양사 소속 승려 무공 2명은 불구속 기소했으며 죄질이 가벼운 5명은 약식 기소를 했다. 또 몰카를 설치했던 백양사 승려 보연과 설치업자 등 2명도 모두 불구속 기소되었다. 관련 기사.


2.2. 고위직 승려들 룸살롱 출입 및 성매매 파문[편집]


조계종 승려들의 억대 도박 사건을 폭로한데 이어 추가로 터뜨린 것이 고위직 승려들의 룸살롱 출입 및 성매매 파문이다. 승려들이 상습적으로 강남의 모 룸살롱에 출입하여 술을 마시고 성매매를 저지르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것은 2012년 5월 15일에 성호가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처음으로 폭로한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 룸살롱 출입 사건에 연루된 인물인데,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자승이명박 정부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해온 명진이었다. 성호는 당시 인터뷰에서 "과거 명진과 자승 등이 강남 모 룸살롱에서 성매수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성호는 3개월 넘게 조계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조계종 측에서는 당연히 이 사실을 명예훼손으로 간주하여 서울중앙지검에 성호를 고소했다. 반면, 명진 측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죄송합니다. 질책은 달게 받겠습니다. 12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책임을 지고 종회 부의장직을 사퇴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당시 언론을 통해 비난도 받았습니다"며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용서를 빕니다" 그러나 명진은 "계율은 지켰다"며 성매수 사실은 부인했다. 한편, 자승 측에서는 15일부터 100일 간 108배를 올리며 참회정진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했으나 이 사건에 대해 진솔한 해명이 없어 오히려 비난을 사고 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 그전까지 국민들에게 개념 있는 스님, 바른말 하는 스님으로 칭송받았던 명진의 이미지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으며[3] 친정부, 극우 성향을 띠던 성호는 일베저장소에서 애국스님, 호국신장으로 추앙받는 희한한 지경에 이르렀다. 또 이 사건들이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다뤄졌는데 한국 불교는 협잡 투성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한국 불교 전체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은 2015년 10월 20일에 법원에서 성호와 연경불교정책연구소장 김영국에게 실천승가회 측에 명예훼손을 한 사실이 인정되어 각각 500만 원과 3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지면서 일단락되었다. 법원 측에서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는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백양사 문중 내부 문제에 개입하려 한다는 주체가 실천승가회가 아닌 회원 중 일부였을 뿐만 아니라 풍문에 불과했던 점 등에 비추어 배상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2013년 5월에 서울중앙지검에서 약식 명령으로 성호와 김영국에게 각각 200만 원과 7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었다. 관련 기사.


2.3. 저서 출판[편집]


위 두 사건이 이슈가 될 무렵인 2012년 7월 15일에 성호는 글마당이란 출판사를 통해 성호스님 종북 불교를 告함이라는 서적을 출간했다. 이 책의 부제는 룸살롱 간 총무원장 부처가 통곡한다이다. 그 책에서 주로 깎아내리는 대상은 자승 총무원장이며, 진보 성향의 승려들이 모인 실천승가회, 명진, 법륜 등의 네임드 승려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종북 성향을 드러낸 사실은 분명하게 밝혀진 바 없는데다 이 책에서도 자승, 명진 등의 룸살롱 출입 문제 성매매 문제에 대해서만 장황하게 지적하고 있다. 승려 신분으로 룸살롱에 출입하고 성매매를 해온 건 개인의 윤리가 타락한 근거가 될 수는 있어도 그거 하나만으론 해당 승려들의 성향이 종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식의 논리로 종북 딱지를 붙인다면 어지간한 높으신 분들 역시 죄다 종북이 된다(...).


2.4. 자승 총무원장과의 화해?[편집]


2009년 총무원장 선거를 기점으로 자승에게 꾸준히 비난을 퍼붓다 못해 아예 종북 승려라는 과격한 딱지까지 붙였던[4] 성호는 2015년 8월 18일에 돌연히 참회를 선언하고 나섰다. 성호는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불조와 종단에 큰 죄업을 지었다"며 운을 뗀 후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 대해 일방적인 비난과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종단의 명예와 신뢰를 크게 실추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참회가 아무 조건이 없다는 자필 확인서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나의 참회가 아니라 종단 불자들이 많은 상처 받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 참회했으니까 앞으로 수행하고 정진하는데 힘을 쏟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호는 이미 불가에서 제적된 상태이며,[5] 조계종 측에서도 참회 이후에 성호에 대한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논의 계획이 없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의현 스님 재심 판결 등 종단 분위기를 틈타 사면을 노린 의도적인 행보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일단 겉보기로는 자승 총무원장과 화해를 한 듯하나 뒤가 찜찜한 구석을 남기고 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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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 성향을 띤 조계종의 승려들이 주축이 된 모임으로, 4대강 정비 사업이라든지 쌍용자동차 노조원 평택공장 점거 농성 사건 등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집단이다.[2] 이명박대한민국 대통령은 알다시피 아주 독실한 소망교회 장로이다. 그래서 개신교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웠던 반면 불교/가톨릭과의 관계는 시원찮았다.[3] 그리고 명진은 룸살롱 사건이 밝혀진 이후에도 여전히 종단 비하와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일삼다가 조계종에서 제명되며 파계승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성호가 복권이 될 무렵에 명진은 승적이 박탈되었다. 따라서 현재로서 명진은 자칭 승려인 셈.[4] 정작 자승은 정권과 영합했다는 비판을 받던 상황이었다.[5] 이후 2017년에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