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익산 2인조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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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추적 60분에서 정리한 피살자 목록
2004~2005년 연쇄 강도 사건으로 체포된 이병주(1966~)와 이진구(1946~2011)에 의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7건의 사건에서 9명이 피살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의혹이 있으나 이 중 석촌동 전당포 살인사건과 방이동 빌라 살인사건만 유죄가 선고되었고 미아동 살인미수는 1심 무죄, 나머지 사건들은 공소시효 만료 및 증거불충분 등으로 불기소되었다. 현재 이진구는 간암으로 사망했고 이병주는 형사에게 여죄를 털어놓을테니 사형수가 되고싶다는 편지를 붙이고 있다.
마약에 취한 탓인지 이들이 벌인 공격 행위는 과도할 정도로 잔인했다. 추적 60분에 나온 프로파일러 분석에 따르면 이들은 비계획적이고 즉흥적이고 충동성이 강한 범죄자로 보인다고 한다.
2. 2인조의 정보[편집]
이병주와 이진구[1]
각각 전과 12범, 전과 14범이었던 이병주와 이진구는 전국을 떠돌면서 일용직 노동을 전전했고 필로폰을 투약하면서 형,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 왔다. 그러던 중 이들은 "먹고 살기 힘드니 한탕하자"며 범행을 모의하기에 이르렀다.
2004년 11월 28일 오후 6시경 웨딩샵에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간 이들은 웨딩샵 주인 최모 씨(여.59)를 식칼로 위협해 결박한 후 15만 원과 카드 1장을 빼앗은 것을 시작으로 압구정의 한 성형외과에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가 돈을 빼앗고 목동, 신정동, 광명시 등의 병원들도 습격하는 등 2005년 2월 28일까지 16여 차례에 걸쳐 6,000여만 원 상당을 털었다.
3. 석촌동 전당포 살인 사건[편집]
이들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2004년 12월 8일 오후 1시 이진구(59)와 이병주(39)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가락시영아파트 인근 상가건물 3층에 입주한 모 전당포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진구는 해당 전당포의 주인 고모씨(남, 57)와 몇 차례 거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안면이 있었다.
전당포 내부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병주는 밖에서 망을 보고 안면이 있는 이진구가 단독으로 전당포에 올라갔다. "할 얘기가 있으니 문 좀 열어달라"고 말하여 전당포 내실에 들어온 이진구는 미리 준비해온 장도리로 고씨의 머리를 마구 난타했다.
망을 보던 이병주가 전당포에 들어섰을 때 고씨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도망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진구는 그런 고씨를 식칼로 가슴 부위를 무자비하게 찔러서 확인사살했다.
고씨를 살해한 뒤 이병주는 그곳 철문을 열고 나오다 전당포 앞의 모 비디오방에서 근무하던 신모씨(남, 23)를 복도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둔기로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와 비명 소리 때문에 확인차 나온 신씨에겐 큰 불행이었다.
이병주가 들고 있던 피 묻은 칼을 본 신씨는 "살인이야!"라며 소리를 지르며 비디오방으로 도망가려고 했고 놀란 이병주는 뒤따라 들어가 신씨의 멱살을 잡고 부엌칼을 들이대면서 조용히 하라고 위협했지만 신씨가 계속 저항하자 칼로 가슴 부분을 찔렀고 이후 등 부위를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경찰이 왔는지 확인하려 상가를 빠져나온 이진구와 이병주는 경찰이 오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상가로 올라가 현금 10만원과 금고 안에 들어 있던 합계 1,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쇼핑백에 집어넣고 숙소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은 뒤 택시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3.1. 도피 행각[편집]
CCTV에 얼굴이 찍혀서 몽타주가 만들어진 탓인지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도 피하기 위해 휴대폰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사창가 일대를 전전하면서 제각기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접선도 간간히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모 다방에서 만나자는 약속만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들이 2인조 강도범행을 하면서 정형외과에서 턴 강도피해 수표를 사용한 게 단서로 걸렸고 이진구는 2005년 3월 15일 오전 12시 30분 대구 중구 향촌동의 모 여인숙 앞길에서 검거되었다.
일요신문에 기재된 <잊을 수 없는 그 사건 22> 파트에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나왔는데 이진구는 후줄근한 도망자의 행색이 아닌 성형외과 의사에게서 빼앗은 선글라스와 바바리코트를 이용해 사업가로 보일 만큼 멋지게 차려입고 커다란 가방을 끌고 있었다고 한다.
이번엔 이병주 차례였다. 다음날 8시 30분 대전 동구 중동의 대전역 지하상가에서 붙잡혔다. 둘 다 검거 당시 흉기와 독극물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찰서에 끌려와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농담을 하는 등 죄책감은 없었다고 하며 반성은 커녕 오늘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등 식사 메뉴까지 정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진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에서 나를 어떻게 잡았느냐"며 경찰을 칭찬하는 엽기적인 면모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2005년 무기징역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벌인 살인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4. 언론에 다시 거론되다[편집]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은 잊혀지는 듯 했지만 이들이 다시 거론된 것은 2009년이었다.
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이병주는 이진구에게 "방이동 빌라에서 부녀자들을 살해했는데 이들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 "우리가 죽인 사람 알려지면 유영철, 강호순은 게임도 안 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본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수감자가 편지를 보고 있었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감춰졌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재조사엔 10개월이 걸리긴 했지만(2008.8~2009.7) 부검기록과 사건기록을 꼼꼼히 다시 살피면서 용의자의 진술과 면밀히 대조한 결과 상당 부분이 실제 범행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2011년에 65세가 된 이진구는 간암으로 사망하기 전 숨겨뒀던 자신의 범행과 공범 이병주의 범행을 추가로 자백했다. 그 사건은 자신이 저지른 서초동 디스코텍 사건과 이병주의 명일동 주부 살인사건, 미아동 살인미수 사건 등이었다.
5. 여죄 목록 [편집]
이진구의 단독 범행부터 서술하자면 먼저 1995년 7월 전북 익산에서 마약에 취한 상태로 차를 몰던 중 신원불상의 행인을 치고 난 뒤 시신을 다른 장소에 유기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되었다.
1997년 3월 11일 오전 6시 40분경 서울 서초동 최대 디스코텍이었던 딥하우스 지하 1층에서 디스코텍 주인 오모 씨(52, 여)와 관리인 김모 씨(55, 남)가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밝혔다. # 다만 범행 동기나 경위가 확인되기 전에 이진구가 사망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2001년 2월 25일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익산시 모현동의 서점 종업원 우모 씨(20, 여)를 위협해 골방으로 끌고 가 결박한 후 강간하고 가슴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실도 밝혀졌지만 강간살인이 아닌 강간치사로 인정되어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되었다. 당시 기사
그렇게 무기수인 이들은 다시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이진구의 범행은 기소되지 않았고 이병주가 단독으로 벌인 방이동 살인사건과 이진구의 논현동 강도상해 사건, 공동 범행인 월계동 이비인후과 강도 사건만이 다시 기소되었을 뿐이다.
2005년 1월 4일 오후 3시 15분 서울 논현동에서 이진구는 모 골프클럽 뒤편의 도로에 주차된 차량 문이 잠겨있지 않은 걸 보고 문을 열고 담배를 꺼내다가 이를 목격한 차 주인 남모 씨(44, 여)가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다가오자 남 씨의 팔을 칼로 찌르고 달아난 사건과 같은 해 2월 일자불상 토요일 오후 4시, 마약에 취해 있던 이들이 진료환자로 가장해 이비인후과에 들어가 상황을 살피다가 병원 진료실에 들어가 원장을 칼로 위협해 20만 원을 빼앗고 손발을 결박한 뒤 달아난 사건이 있다.
2000년 익산 어양동 주부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5.1. 방이동 주부 살인사건(유죄)[편집]
당시 CCTV 촬영 모습
2004년 10월 8일 오후 11시경 인근 공원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이병주는 이진구의 집으로 찾아가던 중 서울 송파구 방이동 모 빌라 201호에 가스 검침원을 가장해 들어갔다.
범행 장소는 피해자 이모 씨(56, 여)의 집이었는데 집 안엔 이씨와 친구인 김모 씨(56, 여) 둘이 있던 상태였다. 이병주는 빌라 내 부엌에서 가스 점검을 하는 행세를 하다가 부엌칼을 꺼내들고 강도로 돌변해 피해자들을 위협하며 안방으로 끌고 간 다음 현금 10만 원과 신용카드 6장을 빼앗았다. 이어서 이 씨의 가슴과 등을 10회, 김 씨의 가슴을 8회 찔러 죽였으며 이후 피해자들의 손에 있던 반지와 장롱에 있던 현금 40만원도 훔쳐서 빌라를 빠져나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10월 9일 새벽 1시 서울 중구 소공동 모 마트 내에 설치되어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합계 50만원도 인출했다.
이병주는 무기징역, 이진구는 징역 9년이 추가되었다.
6. 이진구의 사망과 여죄 자백[편집]
2011년 암에 걸렸던 이진구는 죽기 전 당시 사건 담당 형사를 불러 이병주의 또 다른 범행과 자신의 디스코텍 살인사건을 자백한 뒤 사망했다. 이병주는 또다시 조사를 받게 되었고 또 한번 더 기소될 경우 사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2016년 뉴스1은 단독으로 이병주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당시 이병주는 진범만이 알 수 있을 만한 정보들을 말하면서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나 이후 '경찰이 영치금을 줄 테니 허위자백을 하라고 했다'며 최초 진술 내용을 번복했고# 당시 사건현장에 CCTV 영상 등 물적증거가 없어 불기소처분될 수 있었다. 다만 당시에 알려진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6.1. 명일동 주부 살인사건(불기소)[편집]
2004년 8월 15일 오후 1시, 마약에 취해 있던 이병주와 이진구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김모 씨(49, 여)를 흉기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서 달아났다.
이병주가 자백했으나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용의자 자백, 불기소 처분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현장에 담배꽁초가 아주 많았기에 이병주의 자백을 듣고 현장에 있던 담배꽁초를 검사했으나 현장의 DNA는 이병주와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6.2. 미아동 살인미수 사건(2심 무죄)[편집]
당시 현장검증
2004년 8월 19일 오전 3시 30분 이병주는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주택 계단에서 귀가 중이던 채모 씨(21, 여)를 칼로 찔렀고 5~10분 후 600m 가량 떨어진 주택가 골목에서 마주친 원모 씨(19, 여)도 칼로 찔렀다.
당시 이병주는 범행 동기가 딱히 없었다고 했다. 채씨는 1개월 동안 혼수 상태에 있었으며 원 양 역시 3개월 동안 중태였으나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건졌다.
이병주는 2019년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2021년 11월,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2022년 1월 10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은 이병주에 대한 1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병주와 이진구를 잘 아는 사람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
2022년 11월 17일 대구고법은 2심 공판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해 무죄를 선고했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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