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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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문선(文宣)
성씨
부여(扶餘)
생몰년도
미상
가족관계
할아버지 의자왕
아버지 부여융
직위
자총관(子總管)[1]
사선경(司膳卿)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낙랑군공(樂浪郡公)[2]


1. 개요[편집]


백제의 유민이자 당나라의 장군. 부여문사, 부여덕장과 함께 부여융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2. 생애[편집]


660년 백제가 멸망당한 뒤, 아버지 부여융을 따라 당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명나라 대 지어진 풍속통의에 따르면, 관직은 사선경 좌위대장군 낙랑군공(司膳卿左衛大將軍樂浪郡公)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편 신당서 돌궐전에 의하면 698년 돌궐이 당나라를 공격하자 행군대원수 이현, 적인걸, 송현상, 곽헌가, 길욱 등과 함께 종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3. 관련 기록[편집]


백제는 부여(夫餘)의 별종(別種)으로, 왕의 성씨는 부여씨(夫餘氏)이다. 《후주서》, 《만성통보》에, “부여씨(夫餘氏) : 백제국 왕 부여관(夫餘寬)[3]

이 부여장(夫餘璋)을 낳았는데, 대방군왕(帶方郡王)이라 불렀고, 이가 부여의자(夫餘義慈)를 낳았는데, 당나라에서 대방군왕(帶方郡王)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를 제수하였으며, 이가 부여융(夫餘隆)을 낳았는데, 웅주도독대방군왕(熊州都督帶方郡王)이 되었고, 이가 부여문선(夫餘文宣)을 낳았는데, 사선경 좌위대장군 낙랑군공(司膳卿左衛大將軍樂浪郡公)이 되었다.” 하였다.

해동역사 제 31권 관씨지


《풍속통(風俗通)》에 오(吳)의 태자(太子) 부개(夫槩). (부개)왕이 초나라로 도주하고 남은 아들이 오나라에 있었다. (남은 아들이) 부여(夫餘)를 성씨로 삼았다. 백제국왕 부여관(夫餘寬)이 장(璋)을 낳았다. 칭호는 대방군왕이다. (장이) 의자를 낳았으며, 당나라(唐)는 (의자에게) 대방군왕(帶方郡王)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벼슬을 주었다. (의자가) 융을 낳았는데, 융은 웅주도독(熊州都督)이었다. (융이) 문선을 낳았는데, 사선경(司膳卿)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낙랑군공(樂浪郡公)이 되었다. 이것은 만성통보(萬姓統譜)를 본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천지편 지리류 인종 부여 부유변증설



4. 기타[편집]


2009년 세상에 알려진 부여태비 묘지명에서도 언급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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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98년 돌궐정벌 당시 받은 직책.[2] 명나라 시기 능적지가 지은 씨족지인 만성통보의 기록. 이후 해동역사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인용되었다.[3] 법왕(백제)의 이름인 부여선의 오기란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