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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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餘德璋
생몰년도 미상[1]


1. 개요[편집]


皇金紫光祿大夫ㆍ故衛尉卿ㆍ帶方郡王義慈曾孫, 皇光祿大夫ㆍ故太常卿ㆍ襲帶方郡王隆之孫, 皇朝請大夫ㆍ故渭州刺史德璋之女也.

광록대부(皇金紫光祿大夫) 고(故) 위위경(衛尉卿)ㆍ대방군왕(帶方郡王) 의자(義慈)의 증손(曾孫), 황관록대부(皇光祿大夫) 고(故) 태상경(太常卿) 대방군왕(帶方郡王) 융의 손(孫)을 이으며, 아버지는 황조청대부(皇朝請大夫) 고(故) 위주자사(渭州刺史)를 지낸 덕장(德璋)의 딸이다.

부여태비 묘지명 中 부여덕장에 대한 유일한 언급.


巨母扶餘氏, 吉溫嫡母之妹也.

(이)거[2]

의 어머니는 부여씨로, 길온(吉溫)의 적모(嫡母)의 여동생이다.

- 《구당서》 권 112, 이거(李巨: ? ~ 761년) 열전


백제의 인물. 의자왕의 손자이자 부여융의 아들이다.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 등 문헌이 아니라 2004년 부여태비 묘지명이 확인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부여태비의 묘지명에서만 언급되는 인물로, 당나라에서 황조청대부와 위주자사(渭州刺史)[3]를 지냈다고 한다.


2. 가족관계[편집]




3. 기타[편집]


  • 부여덕장의 두 딸은 각각 길거[4], 당나라 황족 이웅과 혼인시켰다. 이웅과 부여태비의 결혼은 묘지명상 711년으로 확인되었지만, 부여태비의 언니와 길온의 결혼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 682년 아버지 부여융이 사망할 당시에도 다른 형제인 부여문선[5]과 함께 생존해있었는데도 웅진도독 대방군왕의 자리는 부여융의 손자인 부여경에게 돌아갔다. 이를 볼 때, 부여문선과 부여덕장은 부여융의 적자가 아니었던 모양.
  • 토번과 인접한 지역인 위주에서 관직을 지낸 점을 볼 때 흑치상지, 부여준처럼 대토번 전선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1] 738년 부여태비가 사망한 뒤 기록된 묘지명에서 호칭 앞에 고(故)를 붙인 점을 보면 늦어도 738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2] 괵왕 이옹과 부여태비의 아들.[3]간쑤성 딩시시 지역이다.[4] 길온의 아버지. 다만 길온이 서자라고 기록된 것을 볼 때, 적모인 부여씨의 소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5] 오주연문장선산고의 기록 이외에도, 구당서 돌궐열전에 따르면 698년 돌궐의 침공 때 종군한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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