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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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백제 21대 개로왕 시기에 활동한 백제 왕족.
2. 생애[편집]
458년, 개로왕이 유송에 사신을 보내 백제 신하 11명에게 관직을 제수할 때[1] 정3품인 '관군장군 우현왕(冠軍將軍右賢王)' 직위을 제수받았다. 개로왕의 두 아우인 부여곤지와 문주왕보다 서열이 높으므로 개로왕의 동생이면서 곤지/문주의 형이거나, 개로왕의 아들로 추정되고 있다.
475년, 고구려의 한성 함락 이후에도 살아남아 활동하는 부여곤지나 문주왕과는 달리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475년 이전에 자연사했거나 한성 함락 때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3. 칠지도 등장?[편집]
이 이름이 칠지도에 나오는 백제 왕세자 기(奇)에 대응된다는 시각이 있다. 만약 백제 왕세자 기가 구이신왕을 가리키고, 부여기 또한 구이신왕의 다른 이름이라면, 《송서》에서 백제 왕위가 전지왕에서 구이신왕을 건너뛰고, 비유왕으로 계승되기 때문에, 개로왕이 사후 우현왕으로 추증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칠지도의 연호 태화 4년은 전지왕 4년이라는 추정이 있으며, 이는 칠지도에 기록된 육십갑자와 맞아 떨어진다.
[1] 11명의 인물 중 8명이 부여씨이므로, 이때 개로왕이 친족 위주로 기용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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