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이파크/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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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width=50%><bgcolor=#676767>과거 참가 구단별 사건·사고||





1. 개요
2. 김주성-데니스 충돌 사건
3. 서울특별시 입성 시도
4. 엘리치 무단 잠적 사건
5. K리그 1만호 골 해프닝
6. 정민형 자살 사건
7. 코치의 팀닥터 폭행 사건
8. 성추행 단장 불명예 퇴진 사건
9. 전지훈련 중 집단 식중독 사건
10.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사망
11. K리그 40주년 명예의 전당 후보 사건



1. 개요[편집]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사건사고를 정리한 문서.


2. 김주성-데니스 충돌 사건[편집]





3. 서울특별시 입성 시도[편집]


2002 월드컵의 대성공의 여운은 곧이어 서울특별시 연고 프로축구단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서울특별시장이 신생팀 창단보다 타지역 연고 구단을 빼오는 게 낫지 않겠냐는 방침을 정했고 결국 연맹에서 나서서 기존 K리그 12개 구단 중 서울 입성을 원하는 구단의 신청을 받는 촌극이 벌어졌다.

연맹의 연고 이전팀 신청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서울행 의사를 표했던 안양 LG 이외에 1팀이 더 신청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 술렁임이 가득했고 이어 부산 아이콘스가 서울로의 연고 이전 신청을 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산팬들의 민심이 들끓기 시작한다. 그러나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부산 아이콘스 구단측에서는 이는 소문에 불과하며 곧 공식 입장을 내겠다며 얼버무렸다.

2004년 2월 11일, 마침내 부산 아이콘스 역시 서울 입성 신청을 발표해 부산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연맹 이사회에서는 다각도의 고려를 거쳐 두 팀 중 한 팀을 서울 연고 구단으로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부산측에서 서울 연고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서울에 들어갈 팀은 결국 안양 LG로 결정되었다.

결국 부산 구단측은 결국 얻은 것은 없었고,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부산 아이콘스로 모기업과 팀 이름이 바뀌었어도 열정적으로 응원하던 부산 축구팬들에게 이 사태를 계기로 '언젠가 떠날 팀'이란 잘못된 인식을 각인시켜주었고 이는 곧 관중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안 그래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의 경기장 이전 및 포터필드 감독의 수면 축구로 인한 부산의 축구 열기 저하를 가속화시키기만 했던 백해무익한 일이었다.[1]


4. 엘리치 무단 잠적 사건[편집]


아마드 엘리치는 아랍 혈통으로 호주 올림픽 대표[2]와 국가대표를 거친 이색적인 이력의 소유자로, 2004 시즌을 앞두고 부산과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부산에 입단해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부산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듯 싶더니 프리미어 리그풀럼 FC에서 엘리치에게 이적 제의를 넣으면서 모든 게 꼬이게 된다. 엘리치는 부상을 핑계로 자국으로 돌아가더니 갑자기 잠적했고, 그 사이에 구단 모르게 풀럼과 이적 협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부산은 엘리치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작정하고 잠수탄 선수와 접촉이 될 리도 없고, 결국 임의탈퇴와 FIFA 제소라는 강수까지 둔다. 몇 달간의 공방 끝에 어찌어찌 엘리치는 풀럼 유니폼을 입긴 하지만 경기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자국 리그로 돌아갔다.


5. K리그 1만호 골 해프닝[편집]


1983년에 출범한 K리그는 2008년에 10,000번째 골이 나올 것이 확실시되던 상황이었고, 같은 해 11월 9일 열릴 K리그 26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그때까지 9,999개의 골이 나와서 이 날 동시에 개최되는 경기에서 골을 넣는 선수가 역사적인 1만호 골의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다. 프로축구연맹에서는 1만호 골의 주인공을 맞추는 이벤트까지 실시하며 분위기를 한껏 올렸고, 26라운드 당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부산의 경기에서 18분만에 1만호 골이 터졌다! 득점의 주인공은 바로 김태영이었는데, 단 한 가지 문제는 이 골이 자책골이었다는 것.

파일:20081109.gif

연맹에서는 당초 1만호 골을 넣은 그 공에 선수의 사인을 받아서 전시하고, 선수에게 기념패도 전달할 계획을 세웠지만 한순간에 다 물거품이 되었다. 부산 김태영의 자책골을 맞힌 유일한 정답자가 있는데 돗자리를 편게 아니고 그냥 작성자가 "축구 경기에서 골은 누구나 넣을 수 있는 것 아닌가. K리그 선수 거의 모두를 일일이 적어 보냈다"고 직접 밝혔다.기사

연맹에서는 워낙 황당하고 개그스런 결과에 K리그 10,000골을 크게 선전하지 못했는데, 언론과 팬덤에서는 이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전세계적으로 통틀어도 이런 기념적인 골이 아주 이슈가 될만하게 들어간 사례는 없지만 자책골이 선수 입장에선 괴로운 경험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홍보에 이용하기엔 어려웠을 것이다.


6. 정민형 자살 사건[편집]


2010년에 부산에 입단하여 수비수 및 미드필더로 뛴 정민형이 2012년 7월 4일 돌연 자살한 사건. 1군과 2군을 오가며 성실한 태도로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였기에 충격이 컸다.

한편 이 사실이 알려진 7월 5일은 K리그 올스타전이 개최되는 날이었는데, 프로축구연맹 차원에서 선수에 대한 추모의 말 한 마디도 없었기 때문에 고작 올스타전 잔치 분위기 안 망치려는 이유 때문에 선수가 죽었는데 모른 척 하냐는 빈축을 샀다.


7. 코치의 팀닥터 폭행 사건[편집]


2014년 10월 27일 새벽, 백 모 코치가 술에 취해 구단 숙소로 들어와 팀닥터로 근무하던 김 모 의무팀장을 40분 동안이나 폭행했다. 이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구단이 백 모 코치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아 문제가 되었고 피해자는 이 코치를 고소한 상태. #


8. 성추행 단장 불명예 퇴진 사건[편집]


2013년 4월부터 단장으로 재임해 온 김원동 전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이 구단 내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기 전 구단의 단장과 대표이사가 교체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축구팬들은 위의 코치 폭행사건에 책임을 지는 인사겠거니 생각했는데 성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는 소식이 추가로 알려지자 그야말로 대충격... #


9. 전지훈련 중 집단 식중독 사건[편집]


2017년 1월 순천에서 전지훈련 중 선수들이 집단 식중독에 걸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0.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사망[편집]


2017년 10월 10일 조진호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별세해 충격을 주었다.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인판티노 피파 회장과 AFC 살만 회장, 대한축구협회, K리그 각 구단들 등이 애도 성명을 발표하면서 측구계와 축구팬들의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일어났다. 특히 이날 스위스에서 열렸던 한국과 모로코의 A매치 친선 경기 직전 그를 추모하고자 묵념을 거행하기도 했다. 이후 11일 열린 K리그 클래식, 챌린지 전 경기에서 경기 전 그를 기리는 추모 묵념을 실시했다.


11. K리그 40주년 명예의 전당 후보 사건[편집]



2023년 3월 3일 오후 구단 공식 SNS 계정에 부산의
레전드 후보 선수들을 뽑아달라고 게시물을 올렸으나 1세대에 레전드로 감독으로만 보름 (1경기 지휘) 하고 대표팀으로 빤스런한 박성화와 3세대에 샤사를 올리고 뒷배경 바탕에 부산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통수친 송종국도 있었다. 그리하여 해당 게시물 댓글에는 엄청난 팬들의 비난과 여론이 좋지 못하였는데 그걸 파악한건지 곧 얼마뒤에 송종국 사진과 샤샤를 내렸지만 런성화는 끝내 내리지 않았다. (저니맨 우성용은 또 있다..)더 웃긴건 구단 공식 인스타그램 관리자의 답변이 가관이었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동래고를 졸업했고 모교의 감독으로도 부임했었다. 현재도 부산에서 부산축구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계신다. 이러한 부산축구와의 인연을(?) 감안해 감독님을 후보에 올렸다.라고 답글을 달았다.. 다른 역대 부산에서 뛰신 레전드분들이 보신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해프닝을 보드진 스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구단에서 일하는 관계자와 프런트들이 자기구단의 역사와 레전드들을 제대로 모르고 관심이 없다는것을 입증해버린게 아닌가 싶은 대 참사이자 흑역사다.

[1] LG 혼자 서울 연고 이전을 추진하는 데 구색을 맞춰 주기 위해 현대家 구단인 부산이 신청만 했다가 바로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소수설도 있다.[2] 여담으로 올림픽 대표 유니폼을 입고 한국을 상대로 골을 넣은 적이 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서귀포에서 개최된 평가전 무대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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