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데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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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mL48r9WEAATrEh.jpg

Carro de combate Verdeja
1. 개요
2. 제원
3. 상세
4. 형식
4.1. 베르데하 1
4.2. 베르데하 2
5. 파생형
5.1. 베르데하 75mm 자주포
6. 최후
7. 미디어
8. 모형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전간기~제2차 세계 대전기에 스페인국에서 개발된 경전차. 대전기 스페인에서 개발된 유일한 경전차기도 하다. 명칭은 개발을 맡은 소령 펠릭스 베르데하 바르달레스에게서 따왔다.


2. 제원[편집]


Carro de combate Verdeja
베르데하 전차

개발사

중량
t
전장
m
전폭
m
전고
m
승무원

주무장

최대사거리
km
발사속도
발/분
부무장

장갑
차체 전면 mm
차체 전면 하단 mm
차체 측면 mm
차체 후면 mm
포방패 mm
포탑 전면 mm
포탑 측면 mm
포탑 후면 mm
엔진 및 마력

현가장치

최대속도
km/h
항속거리
km
개발년도

생산량



3. 상세[편집]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정권과 국민전선은 독일로부터 1호 전차, 이탈리아로부터 L3/35를 지원받았고, 이들과 대치한 스페인 인민전선과 공화군 세력은 소련으로부터 T-26BT-5을 다수 지원받았다. 그러나 국민전선의 1호 전차와 L3는 주무장인 기관총의 떨어지는 대전차 능력 때문에 150m 정도의 근거리에서조차 T-26과 BT-5의 장갑을 관통하지 못한 반면, 인민전선의 전차들은 문제 없이 1호 전차와 L3를 관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민전선이 불리해졌다. 결국 제대로 된 전차전에서 붙기 위해서 국민전선은 인민전선으로부터 노획한 차량들을 써야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스페인 내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프랑코 정권의 스페인 군부는 인민전선으로부터 노획한 T-26과 기존의 1호 전차를 대체하고 기갑전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기존의 1호 전차와 L3보다 강력하면서 대전차 능력이 더욱 강화된 신형 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개발은 1937년부터 펠릭스 베르데하가 맡았고, 구경 45mm 주포, 두 개의 공축기관총, 최소 15mm의 장갑 두께, 최소 30mm 장갑 두께의 포방패, 70km/h의 도로 주행 속도, 200km의 주행 가능 거리, 개선된 서스펜션과 궤도 등이 요구되었다.

주포로는 소련의 T-26 1934년형부터 장착된 45mm 53-K 대전차포가 장착되었다.


4. 형식[편집]



4.1. 베르데하 1[편집]



파일:post-7518145-0-46519300-1404295280.jpg

Verdeja 1
첫 차량인 베르데하 1은 스페인 내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개발되었다. 베르데하 1은 T-26과 비슷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포탑같은 특징을 가졌고, 포드 모터 컴퍼니의 V8 엔진이 생존성 증가를 위해 차체 앞부분에 탑재되어 경 트랙터와도 비슷해졌다. T-26의 영향을 받은 차체와 달리 포탑의 설계는 1호 전차의 영향을 받아서 설계되었다. 스페인의 경제 사정과 부족한 산업력 때문에 실차 제작은 1940년이 되어서야 1대가 완성되었다.

1940년 12월에 베르데하 1을 1000대 생산하여 100대씩 10개 부대로 배치할 계획까지도 잡혔지만 엔진을 공급할 포드와 마이바흐와의 계약 문제, 스페인의 경제 사정, 생산 공장의 미완성 등의 문제로 결국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직후에 ADESA(Armamento de Aviación, SA)라는 업체에서 추가로 프로토타입 2대를 제작하고 엔진 조달에 실패했음에도 일단 300대를 생산할 계획이 세워지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1941년에 프로젝트가 완전히 취소되었다.


4.2. 베르데하 2[편집]



파일:CmL49g0XIAAa5SQ.jpg

Verdeja 2
베르데하 1이 취소된 이후 1942년부터 새로 설계에 들어갔다. 베르데하 1과 달리 엔진이 포탑 뒤로 이동했으며, 장갑도 5~10mm 정도 늘어났다. 그러나 나치 독일 정부가 베르데하 1에 4호 전차의 엔진을 공급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스페인군이 1943년에 독일로부터 4호 전차 H형과 3호 돌격포를 소량 도입하면서[1] 베르데하 2의 생산은 더 미루어졌다. 결국 1944년이 되어서야 프로토타입 1호차가 제작되었다. 게다가 엔진 조달과 재정 문제 때문에 스페인의 자동차 회사 페가소가 제작한 Z-202 국산 엔진을 장착하는 시도가 이루어진 2차 대전 종전후인 1950년까지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1950년대 기준으로 시대에 뒤떨어지는 성능 때문에 생산되지 못했고, 결국 시제차량은 1973년까지 공장에서 방치 된채로 있다가 톨레도의 보병 사관학교로 이전되어 전시물이 되었다.


5. 파생형[편집]



5.1. 베르데하 75mm 자주포[편집]



파일:Museo_de_Unidades_Acorazadas_de_El_Goloso_(8617069110).jpg

Cañón Autopropulsado Verdeja 75/40 mm
2차 세계대전 말부터 종전 후인 1950년대까지 스페인군은 기존의 기갑차량들을 개조하여 자주곡사포를 만들 계획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베르데하 1의 차체를 사용하여 만든 자주포도 만들어졌다[2].

1945년 3월부터 기존의 베르데하 1과 2의 개발을 담당한 베르데하 소령이 개발을 주도하였고, 베르데하 1에서 포탑을 제거하고 개방형 전투실을 탑재한 다음에 주포로 스페인제 75mm 40구경장 곡사포를 장착했다. 장착된 곡사포는 0.5°에서 25° 사이에서 발사할 수 있었고 좌우로 4.5°의 포각을 가졌다. 탄약은 약실 옆의 벽에 총 8발 적재할 수 있었고, 추가적인 탄약 보급을 위해 PaK 36 견인대차를 활용하여 만든 포탄 24발을 적재할 수 있는 수송용 수레를 견인할 수도 있었다.

베르데하 2와 비슷하게 1973년에 기계화 보병 연대 Wad Rass nº 55가 주둔한 알폰소 XIII 기지로 옮겨질 때까지 카라반쉘(Carabanchel)의 시험장에 방치되었다. 그런데 옮겨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기지로 옮겨졌고 최종적으로 기갑차량 박물관이 있는 마드리드 외곽의 엘 골로소(El Goloso) 기지의 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6. 최후[편집]


1950년대까지 이어진 프로젝트였지만 1953년에 미국이 서유럽의 국가들에게 M47 패튼을 공여하면서 베르데하 전차 개발 프로젝트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거기에 미국이 스페인에 M37 HMCM44 SPH까지 제안해서 베르데하 기반의 구식 자주포도 도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베르데하 프로젝트를 향한 관심도 1954년 이후로 시들시들해졌고, 스페인에서도 1980년대에 나온 린스(Lince) 프로젝트가 시동될 때까지 베르데하 전차가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자체 개발한 전차가 되었다.


7. 미디어[편집]



7.1. 만화[편집]



7.1.1. 걸즈 앤 판처[편집]



파일:GUPDFPRT2_39.jpg

걸즈 앤 판처에서 등장한 베르데하 2
걸즈 앤 판처에 청사단 고교가 가진 차량으로 베르데하 2가 있다. 최종장2화에서 청사단 고교의 전력으로 투입되었으나 별 활약 없이 격파당한 모습으로만 잠시 지나치는 수준으로 나온다. 위 사진의 왼쪽에 있는 격파당한 2호 전차 바로 아래에 있는 차량이다.


8. 모형[편집]




9.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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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프랑코 정권은 4호 전차 100대에 6호 전차 티거까지 구입하려고 했으나, 독일 국방군이 쓸 물량조차 부족해서 독일로부터 거부당했다.[2] 원래는 3호 돌격포를 개조하여 105mm 등의 곡사포를 장착하려고 했지만 이런 계획이 실패하면서 베르데하의 차치를 사용하는 방안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