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미국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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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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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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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버즈
THE BYRD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로저 맥귄, 데이비드 크로즈비, 진 클라크,
마이클 클라크, 크리스 힐먼

입성 연도
1991년
후보자격 연도
1991년
후보선정 연도
1991년













버즈
The Byrds


파일:the byrds.png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결성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데뷔
1965년 4월 12일
데뷔 앨범
전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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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런스 화이트†
크리스 힐먼
진 클라크
그램 파슨스
진 파슨스
마이클 클라크†
데이비드 크로스비†[1]
로저 맥귄
스킵 배틴†
케빈 켈리†
존 요크

장르
, ,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컨트리 록, 쟁글 팝, 라가 록
레이블
파일:컬럼비아 레코드 로고.svg

1. 개요
2. 역사
2.1. 결성 & 포크 록 시기
2.2. 사이키델릭 록 시기
2.3. 컨트리 록 시기
2.4. 재결합, 그리고 해체
3. 기타
4. 디스코그래피



1. 개요[편집]


미국의 록밴드.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컨트리 록 등 여러 장르에 음악적으로 기여하여 1960년대와 그 이후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팬 사이트...라고 해봤자 별건 없다. 각 멤버 홈페이지로 갈 수 있는 링크 정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만들어놓고 안 돌리고 있다. 지금도 활발히 돌아가는 1960년대 대표 밴드 비틀즈비치 보이스 SNS와는 대조적이다.

대표곡은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Mr. Tambourine Man.(발표는 이쪽이 먼저 했다.) 본디 로저 맥귄의 찰랑거리는 기타음을 주축으로 하는 포크록 밴드지만 66년도 부터 68년도 까지 사이키델릭 록을 선보이다, 60년대 후반에 그램 파슨스의 영입으로 컨트리 록으로 전향했다.


2. 역사[편집]



2.1. 결성 & 포크 록 시기[편집]


1964년 채드 미첼 트리오 등 다양한 밴드를 전전하며 브릴 빌딩에서 작곡 알바를 하던 로저 맥귄(당시엔 짐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 진 클라크와 데이비드 크로즈비를 끌어들여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되었다. 멤버들 전원이 원래는 포크, 컨트리, 블루그래스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곧 비틀즈의 로큰롤에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음악적 배경과 접목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맥귄은 이미 버즈 결성 이전에도 비틀즈의 곡들을 모두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부를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다. 비틀즈의 1964년도 앨범 A Hard Day's Night에서 조지 해리슨이 사용한 12현 리켄배커 기타에 영향을 받아 버즈도 같은 기타를 사용했으며 조지 해리슨과 로저 맥귄의 쟁글거리는 기타 사운드는 훗날 쟁글 팝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극초기엔 제트 세트, 비프이터라는 이름을 썼지만 곧 버즈로 바뀐 뒤 드러머 마이클 클라크와 베이시스트 크리스 힐먼이 들어오고 밥 딜런이 써준 'Mr. Tambourine Man'[1]을 데뷔 싱글로 발표하면서 빌보드 핫 100 & 영국 차트 모두 1위를 달성하여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포크를 로큰롤의 DNA에 접목시킨 이 곡은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와 쟁글쟁글 거리는 기타로 포크 록의 시대를 열여 젖히는 중요한 시금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동명의 앨범은 대중음악 명반을 꼽을 때 자주 나오는 앨범이다. 당시의 인기와 위세가 대단해서 미국을 대표할 만한 밴드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다음으로 그들은 음악적 성숙의 박차를 가한 앨범인 Turn! Turn! Turn! 을 발표하게 된다. 앨범은 빌보드 차트 17위, 영국 차트 11위를 기록하여 빌보드 차트 6위, 영국 차트 7위를 달성했던 전작보단 부족한 성적을 얻었으나, 동명의 싱글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밴드는 여전히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2.2. 사이키델릭 록 시기[편집]


1966년, 버즈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싱글 'Eight Miles High'이 약물을 다뤘다는 이유로 라디오에서 금지당하고[2] 비행기 공포증으로 인해 작곡을 도맡았던 진 클라크가 밴드를 탈퇴해버린 것이다. 이때 닥쳐온 위기 때문에 인기가 시들해져서 버즈는 초기의 인기에 무색하게 더 높은 단계의 스타덤에 오르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발매된 앨범 Fifth Dimension은 비록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하였으나, 사이키델릭 록, 라가 록, 컨트리 록 등 기존의 버즈가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내 고도의 음악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어찌 맥귄과 크로즈비 체제로 밴드를 재정비한 버즈는 게리 어셔라는 걸출한 프로듀서를 끌어들여 Younger Than Yesterday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지금까지 다듬어진 작곡 실력을 최고조로 뽑아낸 이 앨범에는 TV 쇼에서 만들어진 밴드인[3] 몽키즈디스 하는 'So You Want to Be A Rock 'N' Roll Star'라든가 'Have You Seen Her Face', 밥 딜런의 'My Back Pages' 등 널리 애창되는 버즈의 곡이 실려 있으며, 후일 버즈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항상 나오는 앨범이 되었다. 앨범의 또 다른 특징적인 요소는 크리스 힐먼의 기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힐먼은 연주곡 'Captain Soul'에서 공동 작곡 크레딧을 얻은 것이 전부였으나, Younger Than Yesterday에서는 4곡을 단독으로 작곡하고 'So You Want to Be A Rock 'N' Roll Star'를 맥귄과 공동 작곡하면서 무려 다섯 곡의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 때를 시작으로 힐먼은 활발히 작곡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이후 그램 파슨스와 함께한 The Flying Burrito Brothers 및 솔로 활동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이 앨범이 끝난 후 그들은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앨범 제작 중에 크로즈비가 맥귄과 힐먼에 의해 해고되는데,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제작 과정에서의 다툼이었다. 밴드는 게리 고핀과 캐롤 킹의 Goin' Back을 앨범에 수록하려고 하였는데, 작곡가가 세 명이나 있는 밴드가 커버곡을 앨범에 수록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크로즈비가 대신 자신의 곡인 Triad를 수록하자고 주장하여 불화가 심해진 것이다[4]. 맥귄은 크로즈비가 밴드를 떠난 뒤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앨범 커버에서 대놓고 크로즈비를 말로 표현해 디스 하기도 했다[5]. 이후 진 클라크가 크로즈비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밴드에 재가입했으나 이번에도 비행기 공포증 문제로 얼마 안 있어 밴드를 탈퇴하였으며, 마이클 클라크도 이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 후 탈퇴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The Notorious Byrd Brothers는 무그 사운드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흡수해 찬사를 받으며 버즈판 페퍼 상사펫 사운즈로 남게 되었다.


2.3. 컨트리 록 시기[편집]


로저 맥귄과 크리스 힐먼만 남은 버즈는 그램 파슨스와 힐먼의 사촌인 케빈 켈리를 기용해 테네시 내시빌에 짱박혀서 Sweetheart of the Rodeo를 만들었다. 원래는 컨트리에서 시작해 우주적인 스페이스 록에 이르는 더블 앨범이었으나 그램의 강력한 주장으로 컨트리 록만 남게 되었다. 기존 버즈와는 다른 컨트리 록 일색의 이 앨범에 그나마 남아있던 팬들이 질겁을 하며 비난했으며 밴드 권력을 잡고 싶어 했던 그램의 시도[6], 저조한 판매량 역시 갖가지 충돌을 낳다가 남아공 투어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탈퇴했다. 이후 이 앨범은 얼트 컨트리 록의 시발점으로 재평가 받았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버즈의 또 다른 명반이 된다. 나중에 그램 파슨스는 탈퇴 후 짧고 굵게 솔로 활동을 하면서 얼트 컨트리 장르의 시금석을 놓은 뒤 약물로 산화했다.

파일:external/www.rollingstone.de/103550200_BINARY_556704.png

▲ 왼쪽부터 : 클래런스 화이트, 스킵 배틴, 진 파슨스, 로저 맥귄


다른 멤버들의 탈퇴로 로저 맥귄과 크리스 힐먼만 남은 버즈는 Younger Than Yesterday 세션에 참가한 기타리스트 클래어렌스 화이트를 정식 멤버로 영입하여 트윈 리드기타 체제를 구축하고 드럼에 진 파슨스를 영입한다. 하지만 곧 크리스 힐먼도 떠나고 대신 베이시스트 존 요크가 가입해서 활동을 재개한다. 요크는 이후 Ballad of Easy Rider 앨범 발매 전에 밴드를 떠나게 되었으며, 그의 자리는 화이트와 파슨스의 추천으로 스킵 배틴이 대체하게 되었다. 이 시기 4명의 멤버 구성으로 밴드는 5개의 음반을 내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기존의 버즈 팬들에게 크게 어필하지는 못 했다. 하지만 당시 붐을 일으키던 싸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내세운 이들은, 새로운 팬층들을 끌어 들였다. (Untitled)는 버즈 후기 라인업으로 나온 앨범 중 최고라고 종종 꼽히는 등 꽤 호평받는 편이다.

후기 멤버들인 클래런스 화이트, 스킵 배틴, 진 파슨스, 이 들은 버즈 역대 멤버중 가장 연주력이 뛰어났던 사람들인지라, 당시 라이브 수준은 매우 높았던 편이다. 대표적으로 1970년 Filmore East에서 연주한 Eight Miles High 라이브가 있는데, 3분 짜리 곡의 중심 멜로디를 가지고 10분에 달하는 잼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2.4. 재결합, 그리고 해체[편집]


데뷔 당시 라인업이었던 진 클라크, 로저 맥귄, 크리스 힐먼, 데이비드 크로즈비, 마이클 클라크 이 다섯 명은 1970년대에 들어 재결합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그들은 1972년 10월 로저 맥귄의 저택에 모여 리허설을 진행했으며, 리허설에 크게 만족했던 멤버들은 5인조 체제로 발매했던 마지막 앨범 Turn! Turn! Turn! 이후 8년만에 다시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녹음 시간은 겨우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결국 결과물은 초기 작품들에 비해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평단의 반응 역시 부정적이었으며, 멤버들은 버즈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1973년 버즈는 해체를 선언하였으며, 멤버들은 각자의 솔로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3. 기타[편집]


  • 해외에서는 히트곡이 여전히 애창되고 명반들 순위에 오르는 등 비치 보이스[7] 비틀즈보다는 못해도 나름 메이저라 할 수 있는 밴드이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바닥이다. 한국인들이 아는 노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온 'Turn! Turn! Turn!' 정도밖에 없다.[8]
하지만 그들이 보여줬던 12현 리켄배커 기타의 찰랑거리는 하모니는 이후 후대 뮤지션들에게 큰 영감을 줘서 비틀즈와 함께 파워 팝쟁글 팝의 선구자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틴에이지 팬클럽이라던가 빅 스타, R.E.M.에게 영향을 많이 준 편이다.
더 스미스조니 마의 기타 사운드 역시 찰랑이는 기타 사운드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조니 마 본인은 버즈의 영향을 부정했다. 심지어는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버즈의 로저 맥귄이나 스미스의 조니 마나 둘 다 리켄배커 12현 전기기타 연주를 제일 선구적으로 구사한 비틀즈조지 해리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유난히 멤버 교체가 잦았던 밴드이기도 한데, 아래 표는 버즈의 멤버 교체를 잘 알려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ac63e4eb019045548b839813946a2b.png

  • 1996년부터 나온 버즈 카탈로그 리마스터 재발매 프로젝트는 소니 뮤직 리이슈 프로젝트 중에서도 수준급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가격도 비싸지 않은 데다 충실한 부록과 최신 음향 기술을 동원한 리마스터링으로 호평을 받았다. 링크

  • 로저 맥귄은 메탈리카라스 울리히냅스터를 고소하였을 때, 라스도 참여한 디지털 음원에 대한 미국 공청회에서 인터넷 P2P 음원 공유 서비스 덕분에 젊은이들이 버즈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언급하며 냅스터를 옹호한 적이 있다.


4. 디스코그래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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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이 곡과 I Knew I'd Want You 녹음 때 프로듀서 테리 머처는 멤버들의 연주력을 의심했는지 로저 맥귄을 제외한 나머지 악기를 세션 밴드인 뤡킹 크루가 담당하도록 했다 한다. 물론 그 이후부터는 멤버들이 악기를 담당하게 된다.[2] 그래도 빌보드 차트 14위, 영국 차트 24위를 기록하며 나름의 상업적 성공을 이루었다.[3] 사실상 악기를 든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밴드였다.(아니 사실 기획형 아이돌 그룹의 시초가 된 밴드다.) 나중에는 자기들 스스로 작곡과 연주를 주도한 앨범을 발표함으로써 음악성을 인정받긴 했지만...[4] 이후 크로즈비는 Triad를 제퍼슨 에어플레인에게 주었다.[5] 다만 맥귄과 힐먼은 말이 크로즈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을 부인했다.[6] 원래 버즈의 리드 보컬은 로저 맥귄이 맡고 있었지만 그램은 그 리드 보컬도 자신이 맡으려고 했다. 즉슨 버즈 자체를 자신의 백밴드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7] 참고로 비치 보이스랑은 친구 사이였다. 교류도 활발했던 편.[8] 한국인이 버즈하면 이 버즈가 더 유명하니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