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백제의 이름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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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百濟
Baekje (Paekche)
[1]

군기
작중 초기의 영역
삼한통합 후 영역과 영향권
기원전 18년[2] ~
위치
한반도 서・중부
→ 한반도 서남부
→ 한반도 중남부[3]
→ 삼한[4] 전역 및 요서
역사
[ 펼치기 · 접기 ]
기원전 18년 온조왕 건국[1]
657년 부여풍 귀환
660년 사비성 함락
65X년 전투

수도
위례성웅진성[5]사비성위례성 재건[6]
인구
백제 회복 당시
신라점령 당시
삼한통일 시점
종족
삼한(韓)
언어
삼한어
문자
한글, 한자
종교
토착 신앙불교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어라하
주요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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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성
부여(扶餘)
현재 국가
백제 연방 공화국[7]

1. 개요
2. 역사
3. 영토 및 행정구역
4. 정치
5. 외교
6. 사회 및 생활상
7. 군사
8. 문화
9. 기타



1. 개요[편집]


백제의 이름을 잇다에 등장하는 백제. 부여풍에 빙의한 주인공이 당의 침공을 이겨내며 역사가 개변된 나라이다.


2. 역사[편집]


655년까진 기존과 동일하며, 부여풍에 빙의된 이후로도 사비강 적조 해결 건 등을 제외하면 사비성 멸망까진 원역사와 유사하게 흘러간다.


3. 영토 및 행정구역[편집]


660년 당 침공 직전의 백제 영토로 시작하여, 신라를 병합하고 고구려 왕위를 계승하며 삼한 전역을 확보했다. 이외에도 현 연해주 인근은 고구려가 그랬듯 간접지배하는 듯한 묘사가 있으며, 거란과 해족, 부활한 동돌궐에도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다.[8]

당나라 장안 점령 후에는 연운16주에 담로를 설치하고, 삼한의 유력귀족 여럿을 분봉하여 봉신국으로 삼았다. 또한 본편 완결 직전(부여풍 말년)에는 아예 산동반도를 담로들과 협력하여 확보하고 담로의 군왕과 후작에게 수여했으나, 부여퐁 시점으로 오래 유지하긴 힘들 것이란 언급도 있었다.[9]

4. 정치[편집]




5. 외교[편집]




6. 사회 및 생활상[편집]


감자

7. 군사[편집]




8. 문화[편집]




9. 기타[편집]


작중 초반 부여풍은 물시계와 유사 앙부일구를 만들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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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중 시점으로부터 과거의 사건 상당수는 생략[2] 다만 원역사속 백제의 건국년도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3] 5세기 후반에 황해남도 동남부와 한강 유역, 영서 지역 등을 상실한다.[4] 작중 부여풍이 삼한과 삼한 통합을 강조함[5] 475년~538년[6] 단 부여풍은 고구려 장악후부턴 평양을 임시 도읍으로 삼아 활동하였고, 위례성 재건을 천천히 진행했기에 말년에야 일부 완성된 건물을 사용했다.[7] 근현대 시점에서 어라하가 공화파에게 정권이양을 함[8] 이중 거란과 해족 등 소규모 유목민들은 중원에 흡수되지 않도록 한글을 전파하였다.[9] 에필로그 시점에서 산동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담로들은 몽골에게 멸망했다가 다시 재건되었다고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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