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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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泰輔
1654년 (효종 5년) ~ 1689년 (숙종 15년)

1. 상세
2. 여담



1. 상세[편집]


조선 왕조 숙종 재위 당시의 문신. 본관은 반남이며 호는 정재. 아버지가 박세당이다.
아버지 박세당은 현종1년 증광시 장원이고, 아들 박태보는 숙종3년 알성시 장원으로 부자가 문과 장원하였다.

숙종 1년(1675) 사마시를 거쳐서 관직에 등용되었으며 예조좌랑을 지냈고 한때 과거시험 출제위원으로 있을 때 시제를 잘못냈다는 남인들의 탄핵으로 쫓겨나 평안도 선천으로 귀양하였다가 풀려났고 이후 교리, 이조좌랑, 전라지방 암행어사를 지냈다.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었을 때 부당하다고 반대하여 숙종으로부터 추국을 받아 전라도 진도로 귀양을 떠났다. 귀양지로 가던 중 한강 이남 노량진 사육신묘 앞을 지날 때 고문으로 인한 장독으로 죽었다. 소론과 노론의 입장에서 각각 쓰인 졸기가 있다.숙종실록보궐정오 졸기숙종실록 졸기

후에 숙종이 희빈 장씨를 폐서인한 후 과오를 깨달아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정려문(旌閭門)을 내렸으며, 그가 죽었던 노량진(지금의 노들역 근처 래미안트윈파크 자리)에 그를 배향하는 노강서원(鷺江書院)을 세웠다. 경종 3년(1723)에 문열(文烈)이라는 시호를 내려졌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소실되었다가 1969년에 그의 아버지 서계 박세당 고택이 있는 경기도 의정부시 수락산 아래로 옮겨져 복원되었다.

2. 여담[편집]


여담으로 그를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박태보전'이라는 고전 소설이 있는데, 2022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었다. 박응교전이란 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의 1833년 판본에서 흥부전 필사본 중 가장 오래된 흥보만보록이 발견되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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