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타임라인/2016년 10월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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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과[편집]
1.1. 박근혜 정부 출범 전[편집]
가장 첫 출발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출발한다. 이 부분은 이야기가 기니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 문서 참고.
2007년 6월 17일 한나라당 당원인 김해호가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전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아무런 실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최태민과 그의 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측근에 의해 작은 재단 하나도 소신껏 꾸려가지 못하고 농락당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 지도자가 되고 험난한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李측 "朴이 대통령 되면 최태민 일가 국정농단"
또한, "최태민 일가는 육영재단을 재산증식의 장으로 이용했다."면서 "박 전 대표는 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밝히지 않고, 최태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천벌을 받고 벼락을 맞는다.'고 국민을 향해 공갈과 협박을 치고 있다."면서 자기가 최태민의 행적을 직접 조사한 결과 횡령과 사기, 권력형 비리 등 모두 44건의 범죄 혐의를 수사기관 등에서 확인했고, 이 중에는 성추행 관련 사건도 18건이나 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최태민이 고등계 형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영생교(영세교)'란 종교의 교주를 지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 목사의 딸(최순실)이 박 전 대표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각종 실권을 장악하고 있고, 최씨의 두 번째 남편인 정윤회가 박 전 대표의 사조직 비서실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링크
당시 박근혜 캠프에선 김해호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재판 결과 유죄로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박근혜 캠프에서 일하던 김재원 대변인은 김해호의 기자회견 당일에 "이미 언론을 통해 해명됐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험담 수준에 불과하므로 답변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튿날인 18일에도 "한두 번도 아니고 중요 고비마다 최태민이란 죽은 사람을 불러내어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박 후보를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하고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청문회에서 최태민, 최순실 부녀에 관한 질의응답이 있었다. 내용이 꽤 길고,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나올 만큼, 엄청난 내용까지는 없으므로 간략한 소개만 하도록 한다. 전문①, 전문②
2007년 7월 20일 주한 미국 대사인 알렉산더 버시바우(Alexander Vershbow)가 본국으로 비밀문서를 송고한다. 이게 나중에 위키리크스에 폭로가 되는데 이 문서에 따르면,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지배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프레이저 보고서에 나왔다고 일부 신문들에서 잘못 인용되고 있고,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 일간지에서 비중있게 다루었다. 참고, 링크 1, 링크 2
2007년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는 김해호를 2007년 9월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김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언론매체를 통한 네거티브 공세는 후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해 공익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엄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링크
1.2.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편집]
1.2.1. 2014년 4월[편집]
1.2.2. 2014년 11월[편집]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1.2.3. 2014년 12월[편집]
문체부 국장, 과장 경질 관련 의혹과 관련하여 2014년 12월 3일 박 대통령, 일개부처 국·과장 이름 직접 말하며 인사조처 지시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특히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는 정윤회씨의 전처 최순실씨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젊은 시절 멘토 격으로 알려진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로,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친분 관계만으로 박 대통령을 통해 중앙부처의 감사와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라는 것이 보도한 기자의 논평이었다.
그런데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순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라는 비유가 청와대 안팎에 있다는 보도가, 이때 아마 처음으로 있었다. 최근 불거진 ‘비선 논란’의 핵심인 정윤회씨와 함께 정씨의 전처 최순실 씨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14년 12월 4일 <고발뉴스>에서 박 대통령 취임식 한복을 최순실이 주문했다고 보도하였으나,# 문제의 한복을 디자인한 김영석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며 이를 부인하였다. #
2014년 12월 5일 정세균은 "특히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최순실 몸통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부실, 편파, 축소수사로 흘러가는 것을 결코 좌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 그 무렵 '새정치민주연합에 국정 농단 의혹에 관한 제보는 많이 들어오는데 결정적 한 방이 없다'라는 보도가 있었다. #
2014년 12월 10일 <주간경향>이 정윤회·최순실 실세설…아니 땐 굴뚝의 연기?라는 제목으로 최순실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시점에서 다시 읽어 보면 상당히 뜨악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그 해 말 <여성조선>은 최순실에 관한 기사에서 "최순실 씨는 지금까지도 청와대 출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 씨는 자기가 노출되면 박 대통령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도 드러날 수 있어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해왔다고 한다."라고 보도하였다.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측 박근혜 후보 검증팀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한 최측근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박근혜에게 박지만은 가족이 아니라 애물단지, 골칫덩어리에 불과하다. 최태민과 최순실, 정윤회가 가족이라고 보면 된다.” 이 인사는 “우리가 확보한 증언이나 자료 내용은 너무나 쇼킹한 내용이라서 당시엔 MB까지 보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기록은 남겨뒀다”고 말했다. 기자가 사석 참석자를 통해 확보한 이 인사의 ‘증언 내용’은 지금까지 알려진 박 대통령 주변 이야기와 너무도 다른 부분이 많고, 또 검증하기도 사실상 어려운 이야기다.
“혹시 이재만, 이춘상, 정호성(이상 수석보좌관 및 보좌관)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안봉근, 정윤회(이상 수행보좌관 및 삼성동 캠프 실세) 두 분을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중략)…제가 박근혜 캠프에 몸 담고 있던 시절 앞서 언급한 최측근 보좌진들이 박근령씨와 신동욱씨에 대해 대책회의를 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불과 수개월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사안에 해당되는지 당시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 그는 “이들 보좌진이 삼성동을 오가며 정윤회씨를 만난 뒤 캠프 내 공론이 모아진 것이 180도 수정되는 것을 목격하며 삼성동팀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수소문 끝에 글을 작성한 당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관계자를 찾아냈다. 그는 “실제 삼성동 팀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닌 추론에 불과한 것이어서 글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삭제했는데, 누군가 퍼가서 글이 남은 것 같다”며 “결국 일하면서 들은 소문에 기초한 것인데 정말 소문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이미 망하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런데, 위 기사에서는 지인들 및 정치권 인물의 입을 빌려 “친한 언니와 동생으로 의지하는 사이다. 자주 연락하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계기로 서슴없이 지낸 사이니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최순실 씨가 정책에 개입할 정도의 인사는 아니다. 친한 사람들은 그녀가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안다. 행동을 조심하는 편이다. (이번 문건 유출 관련 이슈는) 조금 과하게 해석된 점이 있는 것 같다”, “(최순실이 실세라는 말은) 언론에서 너무 과하게 해석을 하는 것 같다. (최순실이) 측근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점은 분명히 있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은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의 직무라는 것은 그렇게 틈이 있을 수 없는 자리다”라고 하였다.
2014년 12월 28일, 미주 한인언론사 선데이저널은
정윤회 국정농단 '정권 후반 최순실이 반드시 정국의 핵 될 것'이라며, 최순실 게이트를 2년 전에 예상하고 있었다.
1.2.4. 2015년 1월[편집]
2015년 1월 7일 박관천 경정의 이른바 '황당한 권력서열 강의' 사실이 보도되었다.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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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9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현 정부에 비선 실세는 없다'라고 강조하고, 이재만은 '최순실과는 정윤회가 박 대통령이 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할 때 인사를 나눈 적은 있고, 그 이후에는 만나거나 연락을 한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답변하였다. #, #
2015년 1월 19일 정윤회가 박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순실에 관한 질문과 대답도 일부 있었다. #
1.2.5. 2015년 7월~2016년 5월[편집]
정윤회 관련 의혹이 일단락(?)된 후 미르재단 관련 폭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마각이 드러나기 전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박근혜 정부 법조비리 나비효과 문서 참고.
20대 총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면 어쩌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저 작은 소동으로 끝났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1.3. 2016년 7~8월[편집]
- 참조: 조선일보와 박근혜 정부의 불화
7월 18일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의혹을 처음 제기하며 한창 청와대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던 조선일보는 7월 26일, TV조선을 통해 미르재단 관련 폭로를 보도하였다. 일개 민간 문화재단에 여러 대기업과 안종범 정책수석이 깊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밝혀졌다. 미르재단이 언론에 처음으로 언급된 보도였다. 같은 날 보도된 다른 기사들: #, #, #
다음날인 27일, TV조선은 미르재단의 실권자가 차은택이라는 보도를 하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미르재단 모금에 개입은 없었고 기업이 순수히 자발적으로 한 일이다"고 해명했다. # 그 다음날인 28일에도 TV조선의 미르재단 의혹 제기는 계속되었다. #, #
8월 2일, K스포츠재단의 비리가 처음 보도되었고, 미르와 K스포츠의 유사성에 대한 보도도 같은 날 나왔다.
8월 3일, TV조선은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창립 총회 회의록을 단독 입수하여 보도했다. 해당 회의록에는 이사진 이름과, 모금액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그리고 두 재단의 창립 회의 자체가 없었으며, 회의록도 모두 허위로 작성된 상황이었다. #, #
그 뒤로도 두 재단에 대한 의혹제기가 계속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종범, 차은택에 관한 이야기는 줄어들고 두 재단이 대통령 박근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 # # # #[2] # # # #
미주 언론 선데이저널은 8월 18일 추적 기사를 통해서, 최순실과 미르재단과의 연관 의혹을 최초로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선데이저널이 최초로 보도하고 한겨레는 9월에 자신들의 기사를 무단 인용해서 보도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그러던 8월 29일, 친박계 의원 김진태의 폭로에 의해 조선일보 송희영 당시 주필의 비리 의혹이 터지고 조선일보의 미르-K스포츠, 우병우에 대한 보도가 힘을 잃게 된다.
1.4. 2016년 9월[편집]
1.4.1. 9월 20일[편집]
조선일보의 폭로 보도가 끊긴 이후 약 한 달 동안 관련 보도는 잘 나오지 않았고, 사회적인 관심은 당시 일어났던 경주 지진
[단독] K스포츠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
[단독] 최순실의 오랜 지인 “내게 먼저 참여 제안했지만 거절”
[단독] ‘권력의 냄새’ 스멀…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
아래는 해당 한겨례 기사에 대해 당시 나왔던 각 정치 세력의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