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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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맘루크 왕조의 28, 30대 술탄. 1382년과 1389년 두 차례의 정변을 일으켜 130년 역사의 바흐리 정권을 무너뜨리고 체르케스계 위주의 부르지 맘루크 정권을 세웠다. 그의 치세에 수도 카이로에는 여러 대규모 건축물이 세워지는 등 맘루크 조는 경제력을 과시하였다. 내정에서 바르쿠크는 친족들을 중용하여 중앙집권화에 나섰다. 한편 외정에선 주변국들과 대 티무르 동맹을 맺어 그를 견제하였다. 하지만 사후 티무르는 시리아를 침공해 황폐화시키고, 이로써 맘루크 조는 일시적인 쇠퇴를 겪게 된다. 여담으로 바르쿠크는 아랍어로 자두라는 뜻이다.
2. 생애[편집]
앗 나시르 하산을 암살한 권신 얄부가 알 우마리의 맘루크로, 1377년 마지막으로 실권을 행사한 바흐리 술탄 샤바안 2세가 사망한 후 실세가 되었다. 1382년 샤바안 2세의 어린 아들 앗 살리흐 하지를 폐한 바르쿠크는 스스로 술탄위에 올랐다. 친족들을 요직에 임명한 그는 1384-86년 카이로에 거대한 마드라사-모스크 단지를 건설하여 정당성을 세우려 하였다. 한편 그의 아미르 자하르카스 알 칼릴 역시 유명한 '칸 엘 칼릴'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389년 바흐리계 맘루크인 말라티야 총독 민타쉬와 알레포 총독 얄부가 앗 나시리가 봉기하여 시리아를 장악하고 카이로로 진군하였다. 바르쿠크는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전통적인 유배지인 케라크로 보내졌고 새 정권은 앗 살리흐 하지를 복위시켰다. (알 만수르 하지)
하지만 1389년 말엽 바르쿠크는 시리아 일대의 체르케스 맘루크들을 결집시켜 봉기하였고,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후 카이로로 진군하였다. 내분을 벌이던 바흐리 맘루크들은 손쉽게 분쇄되었고, 1390년 초엽 바르쿠크는 카이로에 입성해 술탄으로 복위하였다. 이후 친족들을 시리아 각지의 총독으로 임명하여 권력을 공고히 한 그는 이라크의 잘라이르 왕조 및 오스만 제국과 동맹하여 급성장하는 티무르를 견제하였다. 1399년 알레포에 당도한 티무르의 사신을 참수하며 확고한 의지를 보인 바르쿠크는 같은해 여름 사망하였고, 아들 앗 나시르 파라즈가 계승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티무르는 시리아를 침공하여 알레포와 다마스쿠스에서 대학살로 응답하였다. 그외에 바르쿠크는 콥트 정교회의 신년 축일인 나이루즈의 공휴일 지위를 박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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