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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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2012년 9월 16일[1]
제18대 대선 경선

민주통합당
해산

선출 대상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투표율
56.69%
방식
본경선
국민선거인단(100%)
과반수 득표자 없을 시 결선투표
선거 결과
후보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

선거인단


87,842표
14.3%
136,205표
22.2%
347,183표
56.5%

당선인

파일:MoonJaeIn.jpg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문재인


1. 개요
2. 일정
2.1. 경선
2.1.1. 후보
2.1.2. 선거인단 모집
2.1.3. 예비토론회
2.1.4. 본경선토론회
2.2. 후보
3. 결과
3.1. 세부 결과
4. 여담



1. 개요[편집]



파일:문재인후보선출.jpg

경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후보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당시 예비후보의 경선 슬로건

민주통합당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이다.

경선 결과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2. 일정[편집]


파일:민주통합당 로고.svg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일정[2]
본경선
7월 29일 ~ 7월 30일
예비경선[3]
8월 8일 ~ 8월 24일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
8월 25일
제주
8월 26일
울산
8월 28일
강원
8월 30일
충북
9월 1일
전북
9월 2일
인천
9월 4일
경남
9월 6일
광주 · 전남
9월 8일
부산
9월 9일
세종 · 대전 · 충남
9월 12일
대구 · 경북
9월 15일
경기
9월 16일
서울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지명[4]
결선투표
결선
9월 23일
결선투표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지명
[1] 후보 확정일. 경선 시작일은 2012년 8월 25일.[2] #[3] #[4] 특정 후보가 누적 득표율 과반을 점했을 경우 그대로 해당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득표율 1위 및 2위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해 9월 23일 후보를 확정한다. 이번 경선의 경우 문재인 후보가 56.5%로 과반을 가볍게 뚫는 득표율을 올리며 결선투표로 진행되지 않고 그대로 문재인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2.1. 경선[편집]


민주통합당 당규는 대통령 후보 경선을 상당한 사유가 없는 한 대선 180일 전까지 치르도록 되어있었고, 따라서 2012년 후보 경선은 2012년 6월 22일까지 치러져야 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흥행을 위해 2012 런던 올림픽 기간을 피해서 경선을 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게 너무 독이 되었다. 런던 올림픽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경선을 하느라 그만큼 잡아먹은 시간만큼 대통령 후보에 대한 홍보를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경선을 끝내고 박근혜를 대선 후보로 삼아서 민주통합당의 경선 기간에 이미 대선후보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너무 불리한 싸움이 되어 버렸다.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경선이 끝난 후 새누리당 강세지역인 부산에서 3번 연속 당선된 조경태 의원이 6월 11일 가장 먼저 출마선언을 했고 손학규 전 대표도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모토를 발표하며 6월 14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사흘 후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의원도 6월 17일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고, 김영환 전 의원도 7월 5일 중부권 대통령론을 내세우며 출마를 선언했다.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김두관경남지사 역시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7월 8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 외에 종로 입성에 성공한 정세균 전 의원도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며 정동영 고문은 출마를 고심했으나 2007년 대선의 패배 책임을 지고 불출마하기로 했다.[5] 마지막으로 박준영전남지사7월 1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에 한하여 1-2위간의 결선투표를 하기로 하였다.# 손학규 캠프와 김두관 캠프가 결선투표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했고, 문재인 캠프는 반대했는데, 손학규 캠프와 김두관 캠프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경선 중간에 사퇴하는 후보가 있을 시 해당 후보가 그 전까지 받은 표는 모두 무효 처리한다는 규정을 유지해 자칫 결선투표제가 무력화될 여지를 남겨두었다.#[6]

7월 28일과 29일에 걸쳐서 8명의 후보 중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하위 3명을 탈락시키고 5명으로 후보를 압축시키는 예비 경선을 치렀다. 일단 압도적 1위인 문재인 후보와 치열한 2위 싸움 중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는 생존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보여 사실상 김영환, 조경태, 김정길, 박준영 후보 중 한 명만 생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7월 30일에 발표된 컷오프 최종 결과 예상대로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가 경선 진출이 확정되었으며, 남은 한 자리는 박준영 후보가 차지했다. 다만 후보별 득표율은 이후 경선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공개되지 않았다.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은 8월 8일 시작되었다. 각종 여론조사 등을 본격적인 경선 본선에 돌입한 상황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이고 2위를 놓고 손학규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모양새다. 본 경선은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치러줬다.

8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를 시작으로 울산광역시, 강원도, 충청북도 순으로 초반 경선이 진행되었다. 제주 지역 경선 선거인단은 모집이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3만명 이상이 등록했다.[7]

이런 가운데 8월 21일, 박준영 후보가 경선 사퇴를 발표했다. 생각만큼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지사직을 유지하면서 경선에 계속 참가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기사.

8월 25일 열린 제주 경선에서 접전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문재인 후보가 약 60%를 정도의 득표율을 보이며 압승하였다. 다음날인 26일 열린 울산 경선에서는 예상대로 역시 문재인 후보가 과반득표를 하며 승리하였다. 한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는 모바일 투표의 불합리한 방식 때문에 무효표가 속출한다고 주장하며 울산 경선에 불참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무효표는 1%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 전원이 다시 경선에 복귀했다.

8월 28일, 강원도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며 3연승을 달렸다. 강원도 지역에선 당대표 때부터 공을 들인 손학규 후보가 유리하다고 예상했었는데,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는 26일 있었던 경선 불복이 손학규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8월 30일, 역시 손학규 후보의 강세 지역으로 예상되었던 충북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여 과반수 1위를 고수했다. 2위는 손학규 후보.

하지만 초반 4연전 결과와는 별개로 흥행은 지지부진한 편인데, 서로 깎아내리는 소모적인 경선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8]. 이대로 가면 문재인 후보가 확정된다고 해도 손학규 측이나 김두관 측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문재인과 손학규 - 김두관 측의 극한 대립 끝에 후보가 확정된다면 과연 패배한 쪽이 순순히 승복할 수 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경선에서 대립이 있는 건 흔한 일이라며 이런 걱정이 기우라는 소리도 있다.

그 외에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아직 경선이 초반임에도 안교수와의 단일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결국 스스로 경선을 포기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 반대로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안철수 교수인 만큼 안교수와 단일화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뻔한 정치공학적 사고가 문제[9]라는 지적도 있다.

9월 1일, 초반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어 왔던 전북[10] 지역 경선이 치러졌다. 이 지역은 김두관 후보를 제외한[11] 세 후보가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던 지역이었는데[12]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박빙 승리(38% 득표)로 끝났다. 2위는 정세균 후보, 3위 손학규 후보, 4위 김두관 후보. 문재인 후보는 연승을 이어나갔으나 누적 득표에서 득표율이 45%대로 떨어졌다. 정세균 후보는 초반의 저조한 득표율을 딛고 누적 득표율 10% 넘겨 3위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손학규 후보는 내심 승리를 기대했으나 다만 결선 투표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것. 반면 김두관 후보는 10% 초반대의 저조한 득표율을 보이며 4위 정세균 후보에게도 턱밑까지 따라잡히게 되었다.

9월 2일, 인천광역시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50%를 약간 넘는 득표율로 승리하여 6연승으로 대세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누적 득표율은 45%대를 유지해 결선투표를 건너뛸지는 알 수 없게 됐다.

9월 4일, 경상남도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가까스로 1위를 차지하며 7연승을 이어나갔다. 도지사를 지냈던 김두관 후보도 1위 문재인 후보와 2%정도 차이로 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 경남에서의 선전으로 김두관 후보는 손학규 후보와의 누적 득표율 표차도 3%대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한편 이 날을 마지막으로 경선참여인원 모집이 마감되었으며 총 참여 인원 수는 대의원과 이전 전당대회 투표 인원등을 포함하여 108만 5004명으로 집계되었다.

9월 6일, 약 14만명의 선거인단이 몰려 있는 광주광역시 - 전남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약 48%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8연승을 이어나갔다. 2위는 손학규 후보. 민주당의 핵심인 광주 - 전남에서 승리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누적 득표율은 여전히 46%로 결선투표의 여지를 남겨둔 상황.

게다가 하필 이런 시점에 새누리당의 안철수 불출마 협박설이 터지는 바람에 문재인 후보 입장에선 벙찔 수밖에... 그러나 이 협박설이 터지기 직전 여론조사의 결과는 안철수 교수와 문재인 후보의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걸로 나와 이후 상황에 따라선 문재인 후보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경선 흥행이 부진하고 안교수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크게 터져나오는 상황. 비주류 쪽에선 의원총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9월 8일, 부산광역시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당초 지역구가 있는 문재인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개표 결과 역시 문재인 후보가 66%대의 압도적인 득표를 기록하며 누적 득표율을 49%로 끌어올렸다.

9월 9일, 역시 문재인 후보 강세 지역으로 예측되었던 세종특별자치시 - 대전광역시 - 충청남도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문재인 후보는 이번에도 62%대의 압도적인 득표를 바탕으로 누적 득표율 과반을 회복했다.

또한 그 동안 대세론이 있었다고 해도 신분상으론 민주당의 경선 후보들 중 한 명이었던 문재인 후보가 계속되는 연승으로 1위가 확실시되고 결선 투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누적 득표율 50%의 고지를 넘김에 따라 민주진영의 확실한 대권주자로 인식되면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9월 12일, 대경권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고 누적 득표율 과반을 유지했다.

9월 15일, 경기도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고 누적 득표율을 과반 이상인 53%로 끌어올렸다.

9월 16일, 서울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서울 경선에서도 압도적인 표차였고 권리당원과 대표선거인단의 투표결과도 비슷하여 56%대의 득표율로 과반 득표율을 유지하여 결선투표 없이 바로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2.1.1. 후보[편집]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 정세균 의원,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박준영 전라남도지사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영환, 조경태, 김정길은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을 맡았고, 이러한 노무현 향수를 바탕으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 사상에 깃발을 꽂았다.

정세균 후보 역시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의 당 의장을 지내는 등 범친노 진영의 중진으로 분류되는 인물이고,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온건하고 중도적인 색채를 보였다.

손학규 후보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다. YS 키즈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김두관 후보는 시골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상남도지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박준영 후보는 2004년 재보궐선거, 2006년 지방선거,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며 3선 전남지사를 지내고 있었다.

단순 지지율상으론 문재인 후보가 독주를 이어가고 정세균, 손학규, 김두관, 박준영 후보가 추격을 하는 구도가 경선 내내 이어졌다.[13]


2.1.2. 선거인단 모집[편집]


민주통합당은 과거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과 마찬가지로 국민선거인단을 모집해 대선 경선을 치르기로 했다.

선거인단 모집에서 1,083,579명의 선거인단이 모집되었다.#


2.1.3. 예비토론회[편집]




2.1.4. 본경선토론회[편집]




2.2. 후보[편집]


기호
후보
현직
출마 선언
1
정세균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2012년 6월 26일[14]
2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2012년 7월 8일[15]
3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2012년 6월 14일[16]
4
문재인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사상구)
2012년 6월 17일[17]
5
박준영
전라남도지사
2012년 7월 15일[18]


3. 결과[편집]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정세균(丁世均)
43,027
4위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7.0%
낙선
2
김두관(金斗官)
87,842
3위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14.3%
낙선
3
손학규(孫鶴圭)
136,205
2위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2.2%
낙선
4
문재인(文在寅)
347,183
1위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56.5%
당선
5
박준영(朴晙瑩)
사퇴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선거인 수
1,083,579
투표율
56.69%
투표 수
614,257


3.1. 세부 결과[편집]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
지역
1. 정세균
2. 김두관
3. 손학규
4. 문재인
선거인단수 (투표율)
제주
965 (4.80%)
2,944 (14.65%)
4,170 (20.74%)
12,023 (59.81%)
36,329 (55.33%)
울산
387 (4.07%)
3,053 (32.11%)
1,117 (11.75%)
4,951 (52.07%)
14,798 (64.25%)
강원
344 (5.56%)
678 (10.96%)
2,328 (37.63%)
2,837 (45.85%)
10,102 (61.25%)
충북
466 (2.64%)
1,931 (10.95%)
7,108 (40.30%)
8,132 (46.11%)
31,323 (56.31%)
전북[19]
11,556 (26.53%)
5,454 (12.52%)
10,193 (23.40%)
16,350 (37.54%)
95,707 (45.51%)
인천
787 (6.65%)
1,976 (16.70%)
3,143 (26.56%)
5,928 (50.09%)
24,719 (47.87%)
경남[20]
400 (1.55%)
11,381 (43.93%)
2,444 (9.43%)
11,683 (45.09%)
41,388 (62.60%)
광주/전남
2,435 (3.48%)
11,018 (15.75%)
22,610 (32.31%)
33,909 (48.46%)
139,276 (50.24%)
부산[21]
603 (2.20%)
5,907 (21.58%)
2,726 (9.96%)
18,135 (66.26%)
43,773 (62.53%)
대전/세종/충남
1,960 (8.14%)
2,640 (10.96%)
4,380 (18.19%)
15,104 (62.71%)
46,899 (51.35%)
대구/경북
938 (5.20%)
3,621 (20.06%)
3,214 (17.81%)
10,275 (56.93%)
31,122 (57.99%)
경기[22]
3,864 (4.90%)
6,978 (8.84%)
18,477 (23.42%)
49,585 (62.84%)
148,520 (53.13%)
서울[24]
18,322 (7.02%)
30,261 (11.59%)
54,295 (20.79%)
158,271 (60.61%)
419,623 (62.23%)
총합
43,027 (7.00%)
87,842 (14.30%)
136,205 (22.17%)
347,183 (56.52%)
후보 확정

1,083,579 (56.69%)

선거인단 1,083,579명 가운데 614,257명[25]이 참여, 56.69%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최종 결과는 기호 4번 문재인 후보가 56.52%로 과반 이상 득표율을 확보함에 따라 결선투표 없이 민주통합당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최종 선출되었다.


4. 여담[편집]



[5] 제6공 이후로 대선에 본선에서 2위한 후보들중 유일하게 차기 대선에서 불출마했다. 김영삼(13대), 김대중(14대), 이회창(15,16대), 문재인(18대), 홍준표(19대) 모두 차기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었다. 이중 김영삼과 김대중, 문재인은 재수 끝에 당선되었고, 홍준표는 경선에서 윤석열에게 낙선당했으며, 이회창은 16대때 재수를 도전했으나 다시 2위를 하고 다음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3위를 했다. 만약 20대 대선 2위인 이재명이 21대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시, 이 타이틀은 깨지게 된다.[6] 손학규, 김두관 측은 1위 후보의 과반 돌파 여부를 계산할 때 사퇴 후보들의 득표수도 포함해야 한다며 반발했으나, 결국 룰은 수정되지 않았다.[7] 제주도의 인구 수를 감안하면 꽤 높은 참여 비율이다.[8]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상황이라 다른 후보들이 모두 문재인 후보의 꼬투리를 잡는 식으로 경선이 흘러갔다. 그 역풍으로 손학규 후보가 강력한 기반이라던 강원에서도 패배한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듯. 이를 의식했는지 강원경선 이후의 후보 토론회에선 서로에 대한 비판보다는 정책 토론이 이뤄지는 모습으로 흘러갔다.[9] 호남+수도권에 영남후보로 영남표 잠식=대권이라는 구도.[10] 이전 4개 지역(제주+울산+강원+충북)의 선거인단보다 전북지역 선거 인단이 더 많다.[11]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 LH 이전 문제 등으로 전북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다.[12] 정세균은 전라북도에서만 4선을 한 터줏대감이고, 손학규는 지역 조직이 우세하며, 문재인은 지지율이 높다.[13] 안철수 교수를 포함한 범야권 주자를 대상으로 매일경제신문이 실시한 대선후보 적합도(7월 13~14일 조사)에서 각 후보는 문재인 27.0%, 안철수 25.2%, 손학규 11.0%, 김두관 7.5%, 정세균 1.1% 의 지지율을 기록했다.#[14] #[15] #[16] #[17] #[18] #[19] 정세균 후보의 고향이며 전 지역구인 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이 있는 곳.[20] 문재인, 김두관 후보의 고향이며 김두관 후보가 전 도지사를 지낸 곳.[21] 문재인 후보의 전 지역구인 사상구가 있는 곳.[22] 손학규 후보의 전 지역구인 광명시와 성남시 분당구가 있는 곳. 그리고 도지사를 역임한 곳.[23] 그러나 고향이 경기도이던 시절 태어났기에 사실상 경기도 출신으로 분류한다. 경기도지사 등을 맡으며 경기도에서 정치를 했던 것도 이 이유.[24] 손학규 후보의 고향[23]이며 정세균 후보의 전 지역구인 종로구가 있는 곳.[25] 민주통합당 경선에서는 실제 참여 인원 중 유효표만 집계하여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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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2-10 23:38:16에 나무위키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