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스미스-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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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조지 스미스커밍
Sir Mansfield George Smith-Cumming


KCMG CB


파일:Mansfield Smith-Cumming.jpg

출생
1859년 4월 1일
영국 켄트 주 리
사망
1923년 6월 14일 (항년 64세)
영국 런던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학력
셰필드 대학교
직업
군인
복무
영국군 (1974~2022)
최종 계급
대위
서훈 내역


1. 개요
2. 상세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영국의 군인으로 SIS의 창설자이다. 최종 계급은 해군 대령.


2. 상세[편집]


맨스필드 조지 스미스-커밍은 1859년 4월 1일 남해 회사동인도 회사의 이사이자 은행가였던 아벨 스미스(Abel Smith)의 차남이자 저명한 상인이었던 존 스미스(John Smith)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1872년, 13세의 나이에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한 스미스는 1877년부터 HMS 벨레로폰에서 말레이 해적 소탕 임무에 투입되었고, 1878년 임시 소위로 임명되었다. 1883년 이집트에서 근무했던 스미스는 배멀미로 인해 복무 부적격 명단에 올라갔고,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스미스는 예비역 장교로서 강안 방어 임무에 종사했으며, 1906년 예비역 해군 중령으로 승진했다.

스미스는 1889년 레슬리 마리안 발리언트-커밍(Leslie Marian Valiant-Cumming)과 결혼한 후부터 스미스-커밍이라는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1. SIS[편집]


1909년 영국 정부는 통합적인 정보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비밀임무국(Secret Service Bureau)를 창설하고 초대 국장으로 당시 해군정보국장이었던 알렉산더 베델 소장의 추천을 받아 스미스-커밍을 국장으로 임명했다. 창설 당시 비밀임무국은 독일 제국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한 해군성과 전쟁성의 합동 조직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스미스-커밍은 보안정보국장 버논 켈 육군소령과 특별 부서의 바질 톰슨 경과 함께 영국 국내의 독일 스파이 22명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쟁 기간동안 비밀임무국은 현재도 유명한 별칭인 군사정보부 제6실(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6)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전쟁 당시 중립국, 점령지, 러시아의 네트워크를 통해 군사 및 상업 정보를 수집해 독일의 정보를 분석해온 MI6와 커밍은 전쟁이 끝난 후, 지원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무부와의 협조로 MI6 요원들에 대한 여권 심사를 면제시킬 수 있었다.

전쟁 당시에는 전쟁성의 통제를 받았던 MI6였으나, 전쟁이 끝난 뒤 외무부의 통제로 넘어간 후에도 소련에 대한 첩보전을 지속해 스파이계의 에이스로 불리게 되는 시드니 라일리와 브루스 록하트가 블라디미르 레닌의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이외에도 조지 힐 육군대위를 중심으로 소련에서 지속적인 첩보전을 벌였다.

MI6은 창설 당시 해군정보국이 상급 조직이나 마찬가지였으나, 1923년 6월 14일에 스미스-커밍이 사망하자 그의 후임으로 해군정보국장 휴 싱클레어 소장이 부임하게 될 정도로 조직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


3. 대중매체[편집]


스미스-커밍은 자신의 성 중 스미스를 떼어낸 다음 커밍의 앞 글자인 C를 자신의 서명으로 사용했고, 이는 존 르카레의 소설 속 컨트롤이나 이안 플레밍의 소설 속 M의 모델이 된다.

조커 게임에서도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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