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커스터의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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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퍼드 공작
랭커스터의 존
John of Lancaster, Duke of Bedford


이름
랭커스터의 존
(John of Lancaster)
출생
1389년 6월 20일
잉글랜드 왕국 케닐워스
사망
1435년 9월 14일 (향년 46세)
프랑스 왕국 노르망디 루앙
장례식
1435년 9월 30일
루앙 루앙 대성당
배우자
부르고뉴의 안 (1423년 결혼 / 1432년 사망)
룩셈부르크의 자퀘타 (1433년 결혼)
아버지
헨리 4세
어머니
마리 드 보헌
형제
헨리 5세, 토머스, 험프리, 블랜치, 필리파
종교
가톨릭
1. 개요
2. 생애
3. 결혼



1. 개요[편집]


잉글랜드 왕국의 왕자. 헨리 4세의 아들이자 헨리 5세의 동생이다. 백년전쟁에서 활약한 유능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389년 6월 20일 헨리 볼링브로크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1399년에 아버지가 헨리 4세로 즉위하면서 토지를 수여받고 가터 기사단의 작위를 받았다. 1414년에 형 헨리 5세에 의해 베드퍼드 공작과 켄달, 리치몬드의 백작으로 임명되었다.

헨리 5세의 명에 따라 백년전쟁에서 각종 활약을 했다. 아쟁쿠르 전투에도 참전했으며, 헨리 5세의 명령으로 프랑스제노바의 연합함대를 격파하고 외교적으로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를 갈라놓아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공을 세웠다.

1422년에 헨리 5세가 사망하자 동생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와 함께 어린 조카 헨리 6세의 섭정을 맡은 동시에 프랑스의 섭정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약 두달 뒤 프랑스의 샤를 7세가 즉위했다. 베드퍼드 공작은 샤를 7세를 견제하기 위해 부르고뉴 공작, 브르타뉴 공작과 동맹을 맺었다. 1428년에 잉글랜드 내부의 문제를 정리하고 베드퍼드 공작은 즉시 프랑스 원정을 떠났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나타나기 전까지 승승장구하며 프랑스군을 격파했다.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패배를 곱씹어야 했지만, 후에 잔 다르크가 콩피에뉴에서 체포되어 잉글랜드로 이송되자 재판에 회부해 복수를 한다.

1435년, 아라스 회합을 위해 루앙에 머물던 베드퍼드 공작은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해는 루앙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베드퍼드 공작 사후 잉글랜드는 프랑스에 있는 잉글랜드령을 모두 잃고 사실상 백년전쟁에서 패했으며, 그가 수호하던 헨리 6세는 에드워드 4세에게 밀려 왕위에서 쫓겨나고 유폐되었다.


3. 결혼[편집]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의 딸 부르고뉴의 안과 결혼했다. 부부는 금슬이 좋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고 안은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안의 사후 두번째 아내로 룩셈부르크의 자퀘타와 결혼했다. 그러나 자퀘타와의 사이에서도 자식은 없었고 존은 그녀와 결혼한지 2년 만에 사망했다. 이후 자퀘타는 남편의 시종무관이었던 리처드 우드빌과 재혼해 훗날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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